1월에 산 책
2026년 1월에도 책을 살 수 있어 우주에 감사합니다. 여전히 눈이 잘 작동하여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몸이라는 의미라서요.
안 읽은 책을 쌓아놓고 계속되는 이 사재기 취미에, 욕심에 제동이 걸리는 슬픈 날이 멀찍이 느리게 느리게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의 책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게시판에서 짧게 끄적인 적이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도 자전적 서사와 사회학적 분석을 결합한 글쓰기를 선보인다고 합니다. 제목의 서민 여성은 저자의 어머니를 가리키고요. 아래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를 일부 옮깁니다.
'평생 노동계급으로 살아온 어머니의 삶과 갑작스러운 죽음을 따라가며, 노년과 돌봄, 취약한 몸, 공공 요양과 죽음의 문제를 사유한다. 개인적 회고에서 출발해 프랑스 노동계급 여성의 전형적 궤적, ‘노인’이라는 사회적 범주, 집단과 대변의 정치로 논의를 확장한다. 계급과 젠더, 나이 듦이 교차하는 지점을 통해 사회 구조가 개인의 정신과 신체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보여준다.'
노인 인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나서 앞으로 돌봄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인이 약자라 아직 이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심각' 단계로 진행 중이라 봅니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노년과 돌봄 등의 문제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저자를 보고 선택한 것이긴 합니다만 여러 생각 거리를 던지리라는 예상이 됩니다.
책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는데 하드커버 아니면서, 본문 글 진하게 인쇄되어 있고, 크기와 두께도 적당하고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좋네요.

[감정의 혼란]
슈테판 츠바이크의 '불타는 비밀', '아모크 광인',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 '감정의 혼란', 이렇게 중편 네 편을 모은 책입니다.
최근 읽은 장편 [초조한 마음] 쪽 보다 이 작가는 중단편이 훌륭하다는 평을 듣는 거 같습니다. 장편을 읽으면서 심리에 대한 이해가 깊고 표현이 섬세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추천 인사 중에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있어요. '이 걸작들은 일류 창작자가 이뤄낸 최고의 업적이다'라는 평을 내놓으심. 대표적인 중편들을 뒤늦게 접하려고 합니다. 읽기도 전에 좋아하며 읽을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책이 있잖습니까. 그런 책입니다.
고전을 꾸준히 끼워서 읽으려고 합니다. 너무 오래 전 말고 19세기부터 20세기 전후가 딱 좋은데 더 옛날 작품도 못 읽은 게 많아서리...더 옛날 작품은 어떤 계기가 와서 결심이 있어야 될 것 같은데 과연.

[오래된 빛]
존 밴빌의 [바다]를 읽고 작년에 후기를 썼었어요. '소통을 중시하지 않는 스타일리스트'... 스토리의 재미로 읽게 되지는 않는, 집중력과 약간의 끈기를 요구하여 피곤하면 수면에 이르기 쉬운 책이었습니다. [바다]는 집에 있던 책이었고 이 책은 이번에 샀습니다. 열다섯 살 소년이 친구 어머니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 나온다는데요, [바다]에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 작가님 무슨 일일까요. 청소년의 부모뻘 연장자와의 사건 같은 내용은 좋아하지 않으며, 지난 [바다] 독서 경험이 흡족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또 읽겠다고 마음을 먹었네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 책에 대한 다른 이들의 호평 영향이 제일 큰 것 같기도 한데, 그냥 다시 시도해보고 싶은 작가인 모양이라고 내 맘을 남 맘 같이 짐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두번 째 접하게 되면 첫 책과는 다를 때가 많았으므로 그런 점에 기대를 갖습니다.

[말하라, 기억이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난 연말에 개정판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갖고 있던 구판을 찾아보았는데, 책장을 뒤졌으나 못 찾았네요. 개정판에 새로 보충된 내용이 있기도 해서 그냥 샀어요. 오래 전에 띄엄띄엄 부분적으로 읽었습니다. 작가 자신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차례 개정 작업을 한 책이라고 합니다. 논픽션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하고요. 내용도 언어적 표현도 작가가 공을 많이 들인 책이라는 소개가 있는데 언어에 있어 정교함으로 유명한 책은 내가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는가, 라는 마음이 항상 듭니다. 언어 자체를 중시해서 다듬어 쓰는 경향을 가진 작가의 번역 책은 소개하는 쪽에서 말하는 만큼 뛰어남을 못 느낄 때가 있는 거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요. 문장의 아름다움, 단어 사용의 정교함, 언어적 기교의 뛰어남....이런 것을 내세운 작품의 경우에는 원저자의 의도가 맞게 된 것일까를 의식하게 될 때 긴가민가 읽게 되고, 이런 신뢰없는 독서는 뭔가 공허한? 헛발짓하는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가끔 생각하기를, 이런 책은 아예 역자를 믿고 역자의 창작 쪽으로 더 무게를 두며 읽으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자인 제가 그런 마음에까지 도달해 있느냐, 일반적인 마음이 될 수 있느냐... 모르겠습니다. 번역하는 분들이 제일 고민이 많을 것 같네요.
파스텔톤의 흐릿한 표지가 위의 디디에 에리봉의 책과 비슷한 느낌인데 본문 글자의 선명함이나 전체적인 책의 만듦새가 문학과 지성사 쪽의 승입니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아래 띠지에 적혀 있듯이, 그렇다고 합니다. 쓸 때부터 마지막 책임을 생각했고, 번역서 포함 책 출간일을 동일하게 했습니다. 암도 다스려 가면서 책을 쓰신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작가를 확실하게 좋아하게 된 것은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고 나서입니다. 작가는 책 속표지에 마지막 인사를 적으면서 이 책이 [플로베르의 앵무새]와 유사한 형식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픽션, 논픽션, 자서전이 섞인 방식입니다. 영국 현역 작가 중에 제일 재밌게 따라 읽은 작가인데, 세월은 어김없이 도달하고야 마네요. 반스 뿐만 아니라 나이든 작가들이 - 마거릿 애트우드, J. M. 쿳시, 스티븐 킹, 조이스 캐롤 오츠, 시그리드 누네즈... 줄줄이 떠오르네요. 70, 80대인 이 소설가들이 떠나고 나면 개인적으로 새로 나오는 소설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줄게 될까, 읽는 작가군이 넓지 않은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껴 읽어야겠습니다.

[몰록]
지난 번에 펀딩했던 듀나 님의 책도 도착했어요.
제목과 표지가 다 눈길을 끄네요. 책이 많이 팔리길 바랍니다.
'몰록'은 고대 가나안 지방(학교에서는 페니키아라고 들었습니다)에서 사람을 제물로 받았다는 신이라고 해요. 소설에 직접 나오는 단어는 아니지만 소설 속 고약한 사건들의 미스터리함을 관통하고 있는 단어라고. 재미있을 거 같은데 다른 분들 읽어 보신 후기를 읽고 싶습니다...

'롤리타'를 읽기 싫어서 나보코프 책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가 예~전 상트 페테르부르그 여행을 계기로 야심차게 "Speak, Memory"의 영문판을 샀는데 먼지만 쌓이고 있습니다. 언어의 정교함으로 유명한 작가라 번역이 못 미더워서 만용을 부린 건데 첫 몇 페이지만 읽고 방치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겠죠. 그리고 다시 생각하니 그때 러시아 여행을 다녀온 건 잘한 일 같네요. 당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관광하러 러시아에 갈 마음은 안 날 것 같으니 말이에요. 제가 갔을 때가 2차대전 전승기념일 무렵이라 탱크와 전차가 에르미타주 광장에 서 있고 러시아 군중이 인터내셔날 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묘한 감격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분 느끼기가 힘들어졌죠.
저도 조금의 저항감을 갖고 있습니다. '롤리타'도 그렇지만 뭐 물어보면 무시하면서 설명 안 해 주고 잘 난 척 할 것 같은 교수님 이미지입니다. 잘 난 건 맞지만 하여튼 사람 좋은 이미지는 아닙니다.(도스토엡스키 낮게 평가하는 것도 보세요...) 위에도 그런 마음을 쓰려다가 작품 얘기도 아니고 주관적인 이미지 얘기는 자제했습니다. 게다가 이분 책을 몇 권만 읽었으니 더 읽고 판단해야 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발트 작가님 책을 좋아하는데 이 작가가 나보코프를 무척 고평가했어요. 제가 팔랑귀이기도 하지만 독자적으로 판단할 깊이가 없으니 다른 분들 이야기를 존중하려고요.
러시아 여행 잘 하셨네요. 여행 말씀 듣고 생각해보니 어릴 때 읽은 소설 속의 러시아와 지금 푸틴이 우두머리로 있는 러시아가 같은 나라가 아닌 거 같습니다. 실제로 같은 나라가 아니긴 한데 소설 속의 러시아는 그냥 차원이 다른 시공간인 거 같고 그게 어느 나라보다 크게 느껴집니다. 지금의 러시아는 정말 이미지가 안 좋아요...
지금껏 적어 본 중 정말 극강의 뻘플에 미리 사과 드리며...
글 제목을 보고 '산 책'과 '산책' 생각을 하며 한참 혼자 망상의 나래를 뻗고 있었습니다. ㅋㅋㅋ thoma님 글 시리즈의 제목으로 참 좋겠단 생각도 들고. 산책을 좀 하며 살아야 하는데 너무 방구석에 숨어 OTT만 보고 살았구나 그런데 날이 추워서 나가기 싫어 눈이 생각보다 많이 내리네 벌써 방학이 한 달 밖에 안 남았... (쿨럭;)
제가 사는 곳은 북쪽인 수도권 지방보다 추위는 덜 한데 바람이 심한 편입니다. 방에 있으면 바깥이 바람 휘몰아치는 벌판을 연상시키고 위험한 느낌인데 막상 나가보면 괜찮아요. 건물 사이라 더 소리가 심했나 싶어요. 요즘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하고 산책합니다. 차갑고 쨍한 공기가 걸을 때 기분은 더 좋게 만들기도 해요. 산책 나온 개 구경하는 것도 즐겁고 일단 나가면 좋습니다. 뭣보다 기본 운동량이 생존 문제라서요.(골다공증 문제도 있고요..)
유튜브로 새로 지어진 도서관을 몇 개 봤는데(수원, 대구, 흥해 등) 좀 실망했습니다. 특색이 없고 그냥 새 것이었어요. 책 중심의 아늑한 느낌은 없고 책장도 의자도 품질 면에서 구색 갖춘 양산형 느낌만 들더군요. 계단형으로 앉아서 책 보는 공간도 유행인지? 미적 감각이나 인식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최신의 도서관 건축물에서도 확인하고 씁쓸했어요. 돈을 쓸 곳에 제대로 써서 멋진 도서관을 지을 수는 없었을까... 유튜브 화면에서 보는 것과 실물 현장은 다를 수 있어서 실제로 보면 더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화면상으로는 그렇더군요. 저번에 수원의 경기도서관 얘기를 한 적이 있어서 저도 수원 사시는 로이배티 님께 엉뚱한 잡담을 덧붙여봅니다.ㅎ
책 정리는 연간 행사도 아니고 그 이상으로 잘 안 합니다. 거실 벽과 제 방 벽에 책장이 있고 제 방 바닥에도 최근에 산 책은 쌓여 있어요. 분류라고 할 수 없는데, 일단 최근에 읽은 책들은 같이 꽂아 둡니다. 그리고 어느 날에 작가별로 같이 두고 외에는 분야별로 같이 모아 둡니다. 그러면서 정말 두번 다시 안 펼쳐볼 거 같은 책은 어디 구석에 모아 놨다가 처리합니다. 한 달에 사는 책이 대여섯 권 이하이기를 희망하는데(지금 확인해 보니 열 권 넘을 때가 많네요. 종류에 따라서는 이북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요 정도 분량은 어느 곳이든 스며들어서 크게 공간이 부족하지 않더라고요.
블루베리 먹고 있어요. 블루베리는 필요한 영양소가 냉동해도 유지된다 해서 칠레산 냉동제품요. 국산 냉장은 너어무 비싸서 계속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제 어머니 나이가 많고 최근 기억력에 문제가 느껴져서 많은 노인들의 노년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곧 닥칠 혈연의 일로 나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보살핌이라는 것이 대부분 인력과 돈 문제에 연결되어 있고 쉽지 않습니다.
한 번 더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 거 같아요. 같은 작가라도 책이 다른 내용과 수준일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이전 책에서 경향을 익혔기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기대하지 않아 더 공정한 감상을 갖는다는 점도 크더라고요. 제 경우에는 다른 이들의 평가에도 영향을 받는 거 같고요. 몇 권은 읽어야 나와 그 작가의 거리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