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짐 자무쉬 감독의 베니스 수상작입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큰 영화제의 일등 상에 어울리는지...모르겠습니다. 출연진이 화려하였고, 일견 심심한 전개인 듯하지만 약간의 맵싸한 맛이 담긴 영화였어요. 

세 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모자식 이야기라는 점이 같고 몇몇 공통의 재료들이 들어가긴 해도 세 편의 등장 인물들 사이에 연관성은 없어요. 소설로 치자면 아주 짧은 길이의 단편들이 연작을 이룬 작품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에 저나름 생각이 조금 들어가 있어요. 


파더

속을 알 수 없는 아버지, 딸의 말에 의하면 어릴 때도 비밀이 있는 사람 같았던 아버지가 중심입니다. 마지막에 이르면 관객은 이 아버지가 자녀들의 짐작보다 살짝 더 음흉스럽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딸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들보다 아버지에게 좀 냉정해 보입니다. 자식들이 독립해서 자기들 삶을 살고 있으니 그들을 우선하기 보다는 자신을 우선하고, 자식들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는 외딴 곳에 홀로 살며 휴대폰도 없고 전기세도 내지 못하는 '늙은 아버지' 포즈를 연기하지만 사실은 그냥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는 나이 든 남자입니다. 그냥 아니고 세련되기까지 한. 장성한 자녀들이 부모 눈을 벗어나면 자녀 모드로 살지 않는 것과 같긴 한데, 이 아버지는 눈속임 정도가 조금 심합니다. 그러나 용서할 수 없는 범위일지? 그렇게 보이진 않았습니다. 자식들이 뭔가 눈치챈다 해도 진실을 파헤칠 필요까지도 없을 것같고요. 이런 아버지, 이런 아버지가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한국에는 흔하지 않았나(앓는 소리하면서 자식들에게 돈 받아서 섯다 판에 가는 등등) 싶은데 짐 자무쉬 영화의 이 아버지는 스타일리쉬하게 다가오니 이상합니다.


마더

일 년에 한 번 티타임을 갖는 세 모녀가 어머니 집에 모이는 날입니다. 어머니가 차린 식탁에 앉아 차와 케이크를 먹으며 잠깐의 대화 시간을 갖는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책을 여럿 낸 작가이며 모든 것을 꿰뚫어 볼 것 같은 눈을 가졌습니다. 큰 딸에게는 모범생의 답답함이 있고 다른 딸에게는 자유분방함이 있습니다. 자유분방함에 더해 거짓말도 자연스러운 인물인데 엄마는 어쩐지 이 딸을 더 편해하는 거 같네요. 식탁을 사이에 두고 하나마나한 형식적인 대화를 나눈 후 딸들은 가려고 일어납니다. 대화가 끊기는 경우에도 속을 드러내며 '수다'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어요. 택시가 올 때까지 현관에서 기다리는데 이제 몇 분 후면 오는지 시간만 재며 서 있네요. 세 사람은 현관에 서 있는 그 어색함 속에서도 누구도 자기 개인성을 허물지 않습니다. 특히 이 어머니는 부모자식 사이라고 해서 다른 인간 관계에서 하지 않을 법한 일을 하진 않습니다. 이 어머니는 샬롯 램플링의 외모를 하고 있거든요.


시스터 브라더

부모가 경비행기 사고로 죽고 쌍둥이 남매가 부모와 살았던 아파트로 가서 추억을 되살리고, 유품을 맡긴 창고로 가 보는 내용입니다. 모든 일을 처리한 남자형제의 안내를 당시 사정으로 함께할 수 없었던 여자형제가 듣고 따라다니게 되는 전개. 

이제는 텅 빈 아파트에서 남자 형제가 가방에 넣어온 몇 장의 사진과 따로 챙긴 물건 몇 개를 함께 들여다보며 추억하고 그리워합니다. 자식들에게 남은 전부입니다. 아니 자식들이 소중하게 챙길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 외의, 임대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엄청난 유품들을 자식들이 갈무리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창고에 쌓여 있는 부모의 그 많은 흔적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물건들은 잠시 보관되다가 처분되고 잊힐 겁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남매는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거라는 마무리입니다. 부모의 흔적은 몇 장의 사진과 몇 개의 물건만 남습니다.



.....'천국보다 낯선' 보다 앞인지 후인지 몰라도 '쿨하다'라는 단어가 유행했을 때 저는 항상 '천국보다 낯선'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아무 정보 없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며 뭔가 새로웠고 좋은 느낌을 가졌었어요. 이후에 이 감독의 영화를 몇 편 더 보았는데 다 만족스러웠던 거 같아요. 이번 영화도 감동하게 되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지만 괜찮게 봤습니다. 새해 첫 극장 관람 영화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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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 바람이 무섭게 불었는데(뒤에서 불면 몸이 밀리더군요. 저 완전 뚱뚱인데도) 극장 나들이 하셨나봐요.

      글 잘 읽었습니다. 보고 싶어서 상영관 찾아 봤는데 역시 제 거주지 근처에는 없ㅜㅜㅜ

      제 기분탓인지 뭔지 토마님의 글을 읽으면 누가 굉장히 다정하게 옆에서 얘기하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제 글은 좀 정신 없고 시끄러울 거 같고요ㅋㅋㅋㅋ(갑작스런 고백ㅋㅋㅋ)

      오늘 춥고 많이 건조하네요. 맛있는게 땡기는 일요일입니다. 뭐 먹죠?
      • 어제 차도 조금 흔들렸어요. 몸은 당연히 밀렸을 거예요.


        저는 글에 틀이 있고 딱딱하다고 생각하는데 좋게 보셔서 그런듯요? 쏘맥 님 글이 시끄럽긴요, 자연스럽고 가끔은 웃게 되는 편안함이 있죠. 


        컬리에서 산 훈제연어가 있긴 한데 오뎅탕 같은 게 먹고 싶네요. 맛있는 거 찾아내서 드시고 후기 올려주시길.  

    • 이 영화 개봉 기념으로 자무쉬 감독 이전작들도 상영하고 좋은 기회였는데 (디스크 때문에 리클라이너관 밖에 못 가는) 저는 다 놓쳤습니다. 나중에 텔레비전에서 볼 기회가 있겠지만 극장에서 보셨다니 매우 부럽습니다. 

      • 마지막 에피소드에 파리 골목을 차로 다니며 구석구석 좀 길게 보여주는데 그밖에는 집에서 보셔도 괜찮지 않나 합니다. 디스크 땜에 고생하시네요. 새해에는 차츰 나아지시길 바랍니다.   

    •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얼마 전 듀나님이 지상의 밤 리뷰를 올리신 걸 보고 지상의 밤은 아직 못봤지만 이 영화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옴니버스 영화들이 대부분 단편 구성 중 2<1<3 으로 좋던데 이 댓글을 적다보니 왠지 우연과 상상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 잘읽었습니다.

      • 저도 '지상의 밤'은 못 봤으나 자꾸 문학에 빗대어 말하게 되는데 이 감독님은 갈등 자체를 파고드는 쪽은 아니고 톡 던지는 느낌의 단편 소설과 시에 가까운 기질인 것같습니다. 이런 맛도 좋네요.

        • 보니까 그 영화는 빔 벤더스감독이고 친구감독이자 파더 마더 브라더 시스터를 찍은 짐자무쉬의 패터슨과 비슷한 느낌의 퍼펙트 데이즈를 2024년 경 발표했었네요. 친구끼리 서로 닮아가는지도.

    • 참 자무쉬다운 캐스팅이네요. 베니스에서 수상할 당시 심심한 선택이라고 말이 좀 많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작품이 충분히 좋으셨나봐요. 이 감독님 전작 좀비물이 참 실망스러웠는데 심기일전하고 오랜만에 복귀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아서 일단 다행입니다.

      • 캐스팅 때문인지 어색해 하는 장면 때문인지 미국의 홍상수인가...생각했습니다. 사실 왜 뉴저지와 더블린과 파리일까 하다가 캐스팅과 마찬가지로 그냥 감독이 가고 싶어서 간 장소인갑다 했어요. 할 수 있고, 갈 수 있으니까... 많이 좋은 것은 아니고 조금 좋았습니다.ㅎ    

        • 뉴저지는 자무쉬가 사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전작이었나요. 패터슨시도 뉴저지 주에 있죠. ㅎㅎ

          • 그렇군요. 모두 익숙한 도시들인가봅니다.

    • 포스터의 톤을 보니 최근작 느낌이 물씬 나네요.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의 최고상을 받은 작품을 보며 늘 그래, 이 작품이어야지 하게 되는 경우는 의외로 별로 없지 않나 해요. 제가 영화를 잘 모르고 안목이 부족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캐스팅은 굉장하네요. 올려주신 글을 보니 보고 싶어졌어요.
      • 저도 영화제 수상작에 대한 안목 같은 건 없는데 이 영화는 드라마나 주제 전달에 대한 의욕이 없고 작은 영화 느낌이었어요. 감독의 경력과 유명세로 캐스팅은 어렵잖게 가능한 것일지도요. 글에 너무 내용이 드러났을 텐데... 그래도 즐길 여지는 있으니 나중에라도 보셔요.

        • 내용을 알아도 혹은 알기에 즐길 수 있는 면도 있으니까요. 캐스팅이 너무(?) 화려한 작품은 외려 작품 자체로는 그저 그런 경향도 있는데 주제 전달에 있어서 무욕하다니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겠어요.
    • 맞아요. '천국보다 낯선'과 짐 자무쉬는 그 영화를 안 본 사람들에게까지도 그런 이미지였죠. 아마 세기말 감성에 너무 잘 맞았던 영화 제목과 스틸샷들의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지금도 그 제목을 어디에서 볼 때마다 그 시절의 공기가 느껴지는 기분이 들고 그래요. ㅋㅋ 어쩌면 이름까지도 이렇게 폼이 나는지 말입니다. 짐 자무쉬. 플러스 원으로 빔 벤더스도 있었구요. 하하.

      • 네, 복고풍인데 새롭고...그런 영화였어요. 감독이 음악을 해선지 음악도 좋았고요. 지금 보면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 아직 안봐서 나중에 보고 읽어봐야겠네요
      • 보실 예정이신가 봐요. 만족스럽게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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