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 뒤 발 도네의 초상

Portrait of Charlotte du Val d'Ognes (attribution), 1801, oil on canvas,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ity

 샤를로트 뒤 발 도네의 초상, 마리 드니즈 빌레르, 1801년, 캔버스에 유채, 높이 161.3cm, 너비 128.6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만약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안견이 아닌 이름 없는 여성화가가 그린 것이라고 밝혀진다면? 정선(鄭歚)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역시 정선이 아닌 다른 이름 없는 여성화가가 그린 것이라고 새롭게 알려진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니 두 작품을 감정했던 미술사학자들이야말로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이런 고약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샤를로트 뒤발 도네의 초상이라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지난 191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된 아이작 더들리 플레처(1844~1917)라는 사람의 유증품 중의 하나입니다. 사업가이자 미술 애호가였던 플레처는 세상을 떠나면서 일생 동안 모은 고전 명화들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했는데, 그 중 이 샤를로트...’의 초상화는 가장 주목받은 작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신고전주의 의 최고 거장 다비드가 그린 초상화였기 때문이죠. 작품을 살펴보면 마치 고대 그리스 조각처럼 품위 있는 젊은 여인이 진짜 그리스 사람 같은 의상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작품이 제작된 1801년은 나폴레옹 제정기로, 여인은 당시 유행했던 의상을 입고 무릎에는 화폭을 세워 한 손으로 짚고 다른 한 손은 펜을 거머쥐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스케치를 시작할 듯 고개를 들어 측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 특유의 진지한 눈빛이 자연스럽고 힘 있는 자세와 어우러지며 진중한 분위기를 자아내죠. 실로 단순하고 명료한 힘을 가진 걸작입니다.


당시 박물관 측의 보도 자료를 보면 다비드의 걸작’ ‘뉴욕의 다비드같은 수식어들이 등장하는데, 이 초상화를 한 시대를 풍미한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대가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대표작 중 하나로 한껏 치켜세우려는 의도가 보여서 흥미롭습니다. (사실 충분히 그 정도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시각으로 봐서는 신고전주의 사조 자체가 모더니즘 이후로 그다지 평가받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보니(현재 신고전주의 사조가 크게 유행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북한과 중국을 꼽을 수 있는데 이것만 봐도 이 사조가 왜 지금은 인기가 없는지 알 수 있는) 이런 호들갑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아직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채 끝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서구 미술계에서 신고전주의의 위상은 건재했었습니다.(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0년대까지도) 여하튼 대가의 작품이라는 위상에 힘입어, 그리고 작품 자체가 가진 매력과 뛰어난 예술성에 힘입어 이 샤를로트의 초상화는 이후 수십 년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인기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947년의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게 됩니다. 전쟁 때문에 미국으로 피난 온(폴란드 출신 유대인)프랑스에서 활동하던 미술사학자이자 메트로폴리탄의 학예사였던 샤를 스털링이 전시를 위해 프랑스 회화 컬렉션을 준비하던 중 다비드의 1801년 살롱전에 관한 문헌자료를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다비드는 그해 살롱전에 출품을 안 하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정작 그의 작품이라는 샤를로트...’의 초상화는 그 살롱전에 출품된 것을 확인한 것이죠. 이후 4년 뒤인 1951년 스털링은 연구 자료를 보강한 뒤 메트로폴리탄 회보에 이 초상화가 다비드의 작품이 아니며 놀랍게도, 다른 여성 화가의 작품으로 보인다는 소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스털링은 당시 그 여성 화가가 콩스탕스 샤르팡티에(Constance Marie Charpentier, 1767~1849)로 보인다고 추정했는데 이는 그 여성화가가 다비드의 제자이기도 하고 당시 다비드가 여성 제자들에게도 큰 편견 없이 초상화와 역사화를 가르쳤던 걸 생각해보면 타당한 추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1969년 스털링이 매트로폴리탄을 떠나서 뉴욕대학교 미술대학원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박사과정에 있던 그의 제자인 마가렛 오펜하이머가 1996년에 이 그림의 창작자로 또 다른 여성 화가를 지목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프랑스의 여성화가이자 다비드의 또 다른 제자인 마리 드니즈 빌레르(Marie Denise Villers, 1774~1821)였습니다.

 

이후 벌어진 일련의 반응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일단 어느 누구도 다비드에 필적할 무명화가의 재발견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유명 남성 화가가 그렸다고 여겨졌던 인기 있는 작품이 사실은 이름 없는 여성 화가가 그렸다는 것으로 알려지자 나타난 사람들의 반응은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된 것이 기쁘기는커녕 은근한 실망감이나 혹은 상실감이었던 겁니다. 물론 이 작품에 대한 대중적인 인기는 여전했지만 - 미술사학자 브리짓 퀸의 표현을 빌린다면, 대중은 다비드(신고전주의)와 들라클루아(낭만주의)도 구별 못할테니 - 일부 학자들이나 평론가들의 태도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애초에 이 작품이 여성 화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밝혀낸 스털링은 심지어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이 작품이 가진 단점을 전부 설명한다고 단언하기까지 할 정도였죠. 바로 작품 전체에 흐르는 특유의 여성적인 분위기가 이 작품의 유일한 결점이었는데, 작가의 성별이 그 모순점을 제대로 설명해준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인물이 한 손을 감춘 것도 사실은 손을 그리기가 어려워서 그런 식으로 자세를 잡은 게 아니냐는 시비조의 비평까지.(물론 인체의 부분 중 손이 가장 그리기 어려운 대상인 건 사실이긴 합니다. 초상화를 그릴 때 손을 그리냐 마느냐로 가격이 달라지기도 하고 대가들 중에도 유독 손을 못 그린 화가들도 있으니까) 영국의 미술사학자 제임스 라버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1964년에 이 작품에 대해 지적하길, "이 그림은 그 시대의 작품으로서는 매우 매력적이지만, 다비드와 같은 대가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몇 가지 미숙한 점이 있다."고 말하면서 애초에 작가가 남자였으면 안했을 말들을 이리저리 꺼내서 자신들의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논란은 작품의 가격에서도 얘기가 나왔습니다. 지난 1917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작품의 원소유주 플레처에게 이 그림을 유증 받았을 때 언론에 발표하길, ‘플레처 씨가 이 그림을 구입할 때 20만 달러를 지불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원작자 논쟁이 본격화된 이후, 무려 반세기가 지난 시점인 1971년에 새삼 이 그림의 가치가 200만 달러에 달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이런 언사의 배경에는 작가가 유명 (남성)작가에서 무명 (여성)작가로 밝혀진 이상 작품의 가격에도 큰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있습니다.(거칠게 말하면 200만 달러 날렸다는 얘기) 그런데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설마 매트로폴리탄이 저 그림을 경매장에 넘기는 일이 있을까요?

 

이러한 식자들의 대단히 합리적이지 못한 평가는 아직 페미니즘 미술 평론이 등장(68혁명 이후 1970년대)하기 전의, 1950년대의 미술계의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미술사학자와 평론가들은 작품 그 자체에 대한 평가에 성별 특유의 편견을 담는 것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이 없었던 겁니다. 놀랍게도 남자 작가로 알려졌다가 여자 작가로 새롭게 밝혀진 이 같은 작품에 대해서조차도 그런 편견에 의거해 학술적 견해를 손바닥 뒤집듯 손쉽게 뒤집는 것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죠. 이러한 불합리한 관점은 1970년대에 페미니즘 미술 비평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 비로소 학술적으로 교정이 가능해졌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문화부 장관을 지냈던 앙드레 모루아(1885~1967)는 이 작품을 "완벽하고 잊을 수 없는 그림" 이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물론 작가가 다비드라고 다들 알고 있을 때 한 말이긴 합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저 작품에 대한 가장 공정한 평으로 여겨집니다.

 





 출처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 - 미술사가 놓친 위대한 여성 예술가 15인, 브리짓 퀸, 박찬원 옮김, 아트북스, 2017년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 | 브리짓 퀸 - 교보문고





한정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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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예...반갑습니다 ㅎㅎ

    • 으아니!!! 빅캣님!!! 이게 얼마만이에요!!!

      (저를 기억 못 하시겠지만) 너무나 반갑습니다. 돌아오셔서 기쁘고 글도 너무 잘 읽었어요.

      새해 인사 전하며 종종 글 올려주세요!!
      • 저를 기억해주시다니 제가 더 고맙습니다. 쏘맥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앞으로 제가 종종 올리는 글도 재밌게 봐주세요 :-)

    • 정말 오랜만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클릭하긴 했는데 저번 글 적어주신 연도를 보니 으악...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른가요. 잘 지내셨죠? ㅋㅋㅋ 그러셨길 빌구요.




      미술 쪽으로는 정말 완벽한 문외한이지만 클릭해서 보는 순간 정말로 멋진 그림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히 왜 그런지 설명은 전혀 못하겠구요. ㅋㅋㅋ 




      그리기가 가장 어려운 게 손이라고 하시니 요즘 AI 생성 그림, 사진들이 늘 손 표현에서 삑사리를 내는 게 떠올라서 재밌네요. 갸들도 인간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까요. 대체 왜 그렇게 손만 못 그리는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해가 되는 기분!

      • 반갑게 인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물론 잘 지냈습니다. 그동안 생업에 바빠서 게시판에 전혀 들르지를 못했네요. 사실 이번에 게시판에 다시 온 것도 생업 때문이니 ㅎㅎ


        그러게요. 정말 어떤 그림이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왜 그렇게 멋진지 설명하기는 정말 곤란하죠. 그 그림이 무엇을 그렸고 무슨 뜻이 담겼는지는 그냥 설명하면 되는데.


        손이 그리기 어렵다는 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해부도를 보면 알 수 있죠. 그 양반이 손가락을 정확히 그리겠다고 그려댄 인체 해부도만 봐도 ㅎㄷㄷ 말씀하신 AI 얘기 재밌네요. 걔네도 손 그리기가 그렇게 어렵다니
    • 오랜만에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 그림의 제작자 관련 사연도 흥미롭지만 저는 그림의 주인공이 누군인지 항상 궁금했는데요. 그림의 주인공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네요. 위키디피아에 따르면 Charlotte du Val d'Ognes는 나이가 팔십이 넘도도록 살았다는데 십대 때 모델 잠깐 섰던 그림으로만 사람들이 기억하게 되다니 그것도 참 이상하지요. 

      •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그러게요. 저 그림의 모델 샤를로트라는 사람도 당시 흔치 않은 여성화가였고 - 이 그림을 그린 동료 화가 마리와 함께 - 무려 혁명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아 당시 박물관으로 바뀐 루브르에 화실까지 배정받은 '국가 공인 화가'였는데, 아무래도 이후 화가로서의 경력이 그냥저냥 평범했었던 모양입니다. 예술가는 결국 작품으로 남는 것인데 그냥 잊혀졌던 것으로 보면. 정말 예술가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 좋은 그림과 관련 이야기 알려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인물의 얼굴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자화상이었을까요...


      정말 오랜만에 오셨어요. 그림 관련 글 또 올려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힘들게 글 쓴 보람이 있네요. 학자에 따라서는 이 그림을 자화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스승 다비드의 초상화를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고 추정하기도 하더군요.
    • 반갑습니다. 그림이 음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


      성별도 나의 정체성중 하나이지만 그전에 사람으로 봐주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 저도 반갑습니다.^^


        그전에 먼저 사람으로...저 시절 여성 인권 현실을 생각해보면 정말 절실한 얘기죠. 저 그림을 그린 마리 드니즈나 모델을 선 샤를로트 모두 혁명정부 시절에는 루브르에 자기 화실도 배정받은 화가였지만 곧이어 들어선 나폴레옹 제정기에는 - 민법전의 완성과 함께 - 루브르의 화실을 빼앗기게 됩니다. 뭐 화가로 일을 하는 거야 개인의 자유였지만 국가에서 공적인 자리에 여성화가의 자리를 지워버린 건 대단한 사회적 압력이었을테니, 저 두 사람의 여성화가가 예술가로서 제대로 작품을 남기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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