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감상

프로젝트 헤일메리', 18일 개봉 앞두고 메인 포스터 공개



[프로젝트 헤일메리]   2026

감독: 필 로드 & 크리스토퍼 밀러

출연: 라이언 고슬링, 산드라 휠러, 제임스 오티즈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방대한 과학적 상상력과 '로키'라는 경이로운 존재가 어떻게 시각화될지 SF 팬들의 기대감은 커져갔습니다. 


앤디 위어의 세계관 속에서 과학은 늘 생존의 도구였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과학은 낯선 존재와 소통하는 다리가 됩니다. 

전작 [마션]이 화성에서의 생존 투쟁을 다룬 1인극이었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전 지구적, 아니 전 우주적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탑승한 편도 여행입니다. 


기억을 잃은 채 낯선 우주선에서 깨어난 과학자 라일랜드 그레이스가 자신의 임무를 복기해 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커다란 퍼즐과 같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플래시백으로 교차하면서 그레이스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고, 관객은 그레이스가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씩 알아가며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애정이 쌓입니다.


원작 소설은 치밀한 과학적 설정과 주인공의 유쾌한 나레이션으로 몰입감을 선사했죠.

영화는 지루할 수 있는 원작의 복잡한 과학 이론들을 관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리드미컬한 영상 언어로 담아냈습니다.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 감독은 [레고 무비]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 보여준 복잡한 설정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기술적 설정에 유머와 온기를 더해 지적인 즐거움을 충족시켰습니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페트로바 선의 묘사와, 두 우주선의 첫 만남, 그리고 페트로바선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황홀한 장면은 텍스트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한 경이로움입니다.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자 기대했던 요소인 '로키'의 등장은 이 영화의 명실상부한 하이라이트입니다.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를 공포와 신비주의로 몰아가지 않고, 언어와 감각의 장벽을 과학이라는 도구로 허물어가는 과정은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입니다.

특히 두 존재가 서로의 환경에 맞춰 특수 제작된 격벽을 사이에 두고 소통하는 장면들은 단순한 버디 무비를 넘어 생명체 간의 깊은 연대감을 자아냅니다. 


눈물 터지는 포인트도 다수 존재합니다.

절망의 끝에서 한줄기 빛을 밝혀주는 'Grace Go Home' 장면과, 지구인 과학자와 에리디언 엔지니어의 협업이 돋보이는 'Grace, Rocky, Save Stars' 장면, 그리고 비틀즈의 'Two of Us'가 나오는 장면은, '나약한 개인이 거대한 운명 앞에서 어떻게 단단해지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물론 원작의 방대한 분량을 시간의 제약 안에서 압축하다 보니, 소설에서 천천히 쌓인 감정들이 일부 생략되거나 빠르게 지나가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원작에서 공들여 묘사되었던 일부 과학적 난관 해결 과정이 영화에서는 다소 신속하게 처리되어, 주인공이 겪는 고난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원작의 방대한 '과학적 삽질' 과정을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서사의 템포가 급하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로키와 그레이스의 우정이 형성되는 과정이 소설에서는 수십 번의 실험과 실패와 웃음 속에서 자라나지만, 영화에서는 몇 개의 장면으로 압축됩니다. 

덕분에 영화는 속도감을 얻지만, 그 우정의 깊이를 충분히 느끼기 전에 감정적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후반부의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원작보다 극적인 연출에 치중하다 보니, 과학적 개연성보다는 감정적 호소에 더 무게가 실린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고도 러닝타임이 2시간 38분에 달하는 걸 감안하면, 각색을 담당한 드류 고다드의 노고가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근래 보기 드문 수작 SF입니다. 

영화와 소설이 공유하는 가장 큰 힘은 결국 '소통'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그레이스와 로키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과학을 통해 교류하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고, 위기 앞에서 서로를 먼저 생각합니다. 

SF라는 외피를 걸치고 있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는 인간(과 비인간)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비범하지만 평범한 과학교사가 인류와 에리디언을 구하는 영웅담인 동시에, 우주 끝단에서 만난 두 외로운 영혼이 서로의 집이 되어주는 과정을 담은 아름다운 동화입니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다면 더 풍성한 경험이 되었을겁니다. 

영화를 먼저 봤다면, 소설을 꼭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이 이야기는 두 번 경험할 가치가 있습니다. 아니, 두 번 경험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전 원작도 영화도 아직 안 봤습니다만. 이미 보고 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적어주신대로 '과학적이라기 보단 감성적인 부분이 강한 영화'라는 거더라구요. 근데 그 중에 원작 소설 읽은 사람이 없다 보니 저를 포함 아무도 반박하진 않았구요. ㅋㅋㅋ




      암튼 이렇게까지 극찬을 하시니 먼저 소설부터 읽어보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 주에 연휴도 있고 하니 학교 도서관에서라도 찾아봐야겠어요. 언제나처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영화는 아무래도 책에 비해 감성을 자극하는 비중이 크죠. 소설은 맞닥뜨린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는데서 오는 쾌감이 큽니다.

        <마션>이 좀 더 공과스럽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좀 더 이과스러운 재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원작 보신 분들 얘기가 책 보다는 일단 영화부터 먼저 보길 추천하더군요. 영화 보고 난 뒤에 책을 보면 원작의 생략됐던 부분들이 덧붙여지면서 마치 선물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요. 그런데 원작 먼저 보고 영화를 보면 에구 이게 이렇게밖에 안 나오네, 잉 이게 생략이 되다니 아쉽다, 뭐 이런 아쉬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 애초에 책을 보면서 이 방대한 내용을 영화에 다 담을 수는 없다는 건 익스큐즈 되니까요. 오 이렇게 생겼네, 아 이렇게 바꿨구나 하는 느낌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영화 먼저 보고 나서는 책까지 찾아 읽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네요.
    • 책보다는 요소요소 연한 맛이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영화고 좋은 것은 변함없지요. 그런 점들을 잘 짚어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 예, 예고편 공개부터 가졌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아르테미스>도 영화화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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