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바낭] 새해 첫 영화는 '빛나는 TV를 보았다'였습니다

 - 2024년이 이제 재작년이라는 현실에 적응을 해야겠죠. 런닝 타임은 1시간 40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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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티비가 빛나는 걸 보았다' 라고 직역하면 혼이 날까요.)



 - 때는 1996년. 정확히는 이야기의 시작 지점이 그렇습니다. 주인공은 7학년의 흑인 소년 오언. 학대까진 아닌 듯 하지만 억압적이고 정 안 주는 아버지와 사랑 넘치지만 몸이 안 좋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구요. 딱 봐도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이... 이고 가만히 보면 얘가 적응 못하는 게 학교가 아니라 그냥 인생인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특별히 마구 험한 일을 당하진 않으면서 외롭게 살고 있는데, 티비에서 자꾸 보게 되는 '핑크 오페이크' 라는 시리즈의 광고 때문에 그걸 엄청 보고 싶은데 아빠가 허락을 안 해줘서 슬퍼요. 밤 열 시 반에 하는 시리즈인데 취침 시간이 그 전이라서.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배회하다 같은 프로그램을 격하게 사랑하는 2년 선배이자 역시 인생이 아웃 사이더인 매디를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요. 오언의 사연을 들은 매디는 '그럼 친구네 가서 잔다고 뻥치고 우리 집 와서 같이 보자?' 라고 제안을 하네요.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하고. 조금은 서로 의지하는 관계가 형성이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엄청 가까워지는 것까진 아닌 상태로 또 세월이 흘러요. 그러던 어느 날, '핑크 오페이크'의 시즌 5 마지막 방송이 전파를 타던 그 날에 매디가 샥. 하고 사라집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리고 오언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지. 거지 같은 결말로 끝나 버린 '핑크 오페이크'의 시즌 6은 과연 가능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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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과 매디. 그 중 주인공은 오언 쪽이고 의외로 긴 시간대를 커버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언 역의 배우가 몇 번 바뀌어요.)



 - 호러인 줄 알고 봤습니다. 아니 딱 그래 보이지 않아요? ㅋㅋㅋ 주인공들이 빠져든 '핑크 오페이크'는 누가 봐도 '뱀파이어 해결사 버피'를 모델로 삼은 틴에이저 퇴마사들 이야기구요. 영화는 자꾸만 몽환적인 분위기를 깔며 신비로운 느낌을 촥촥 뿌려댄단 말입니다. 매디의 실종도 마찬가지이고 그런데... 음. 뭐랄까요. 막판 전개를 두고 아주 폭 넓게 해석을 한다면 호러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고. 그냥 이야기, 형식, 표현 같은 것들을 놓고 장르 개념에 맞춰 본다면 호러는 아니고 그렇습니다. 그러니 일단 호러 영화를 기대하고 보진 마세요. 아마 저만 그랬을 것 같긴 하지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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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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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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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요소가 강하게 들어가 있지만 그것도 스릴러 보단 그냥 드라마 속 수수께끼 정도에 가까워요.)



 - 그럼 무슨 이야기냐면요. 음. 얘기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ㅋㅋ 보다 보면 아 그거구나... 라고 쉽게 눈치 챌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모르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스포일러 아닌 수준으로만 설명하자면 사회적 소수자들 이야기구요. 그거에 세기말이라는 시대 배경을 부여해서 애상적인 분위기도 자아냄과 동시에 지금보다도 더 힘들었을 그 당시 소수자들 인생사를 풀어내는 풀어내는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매디의 갑작스런 실종과 막판에 밝혀지는 진상... 을 고려한다면 다크한 환타지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스스로의 무언가를 자각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 그 시대의 공기에 억눌리고 질식해서 살아가는 소수자 청소년들의 고달프고 애달픈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대충 그런 이야기 맞기는 하거든요. 근데 뭐가 됐든 '장르적 재미' 같은 건 크게 기대하지 마시길. 꿈결 같은 분위기를 팍팍 깔아가며 아주 느릿하게 흘러가는 이야깁니다. '시적인 느낌'이라고 우겨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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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극 '핑크 오페이크'의 주인공들입니다. 아마도 시리즈 제목은 이 분들 목덜미에 새겨진 문신(?)을 나타내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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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듯 괴상한 듯 예쁜 그림들이 많이 나오는데 분위기는 쭉 우울하고 푹 가라 앉아 있고 그렇습니다.)



 - 뭐... 사실 이 이야기 주인공의 실체(?)와 사건의 진상이란 게 정말 스포일러일까? 라는 생각이 들긴 해요. 듀나님만 해도 리뷰에다가 그냥 대놓고 적어 놓으셨구요. 하지만 그래도 모르고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본문에 적진 않겠고. 그래서 할 말이 별로 없고 그렇습니다. ㅋㅋ 그런 핑계로 바로 마무리하자면요.


 좋게 봤습니다. 이미 적은대로 전개도 느릿, 장르적 재미는 별로 없음. 등등의 이유로 막 재밌다! 라고 할 수 있는 영환 아니었습니다만. 그 느릿느릿 꿈결 같은 분위기가 상당히 근사하구요. 주인공의 처지는 보다 보면 깝까아~ㅂ한 느낌으로 충분히 이입이 되고 또 걱정도 되게 만들어 주고요. 또 막판에 가서 이 모든 것의 진상 비슷한 게 밝혀지고 나면, 그래서 영화의 테마가 무언인지를 깨닫고 나면 밀려오는 절박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있습니다. 그걸 또 아주 적절한 엔딩으로 잘 강조해 주고요. 그러니 참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한동안 유행했던 표현을 소환해서 말하자면 좀 많이 '하이 컨셉'입니다. ㅋㅋ 작품의 분위기와 캐릭터에 납득을 하면 기억에 남는 좋은 영화가 될 수도 있겠고. 그게 잘 안 되면 지루하고 모호한 영화로 남을 수도 있겠구요. 그러니 평소에 본인 취향을 잘 생각해 보시고 시청 결정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끝이에요.




 + 듀나님 리뷰에 이런 표현이 있거든요. '한마디로 이 영화는 원한과 울분에 가득 찬 [버피] 팬의 회상입니다.' ㅋㅋㅋ 근데 정말 이게 맞습니다.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극중 극으로 등장하는 '핑크 오페이크'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이미 적었듯이 틴에이저 퇴마사들 이야긴데 주인공이 여자애 둘이에요. 그리고 조금씩만 보여주는 극중 극 장면들을 보면 이 둘은 확실히 동성애자들이지만 노골적인 장면까지 나오는 건 아니구요. 그러한데요.

 매디와 오언이 이 드라마에 함께 빠져 살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와중에 둘은 각자가 극중 주인공 하나 하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하지만 그래도 둘이 연인이 되진 않아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오언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애정 없는 (하지만 빌런은 아니구요!) 아빠랑 둘이 지내다 보니 삶이 더 퍽퍽해지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낙 자체가 없이 아무 의욕도 에너지도 없이 그냥 살아가지는 삶을 살게 된 오언이구요. 그 와중에 매디가 오언에게 이야기합니다. 난 이제 더 이상 여기서 못 살겠어. 난 무조건 떠날 건데 너도 함께 가자. 오늘 밤 몇 시에 우리 집으로 와!


 하지만 오언은 그렇게 의욕적인 인간이 못 되구요. 고민하다 결국 약속 시간과 장소로 안 찾아 가요. 그리고 다음 날 매디는 실종됩니다.


 그런데 또 세월이 흐르고. 오언은 고등학생을 거쳐 20대가 되고 학교를 졸업하고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하지만 여전히 세상 어느 것에도 애착과 의욕을 못 느끼며 숨만 쉬고 살구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매디가 나타나서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가 그동안 가 있던 곳은 바로 '핑크 오페이크' 속의 세상이야. 사실 나는 그 시리즈의 주인공이었고, 또 다른 주인공이 바로 너야. 근데 시즌 5 마지막 내용처럼 우리는 최종 악당에게 붙들려 심장을 빼앗긴 채 산채로 매장되었고, 악당은 우리의 영혼을 지금껏 우리가 현실이라 믿고 살아 온 환상 속에 가두어 버린 거야. 하지만 나는 탈출 방법을 찾아냈고, 너도 구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로 돌아왔어. 날 믿고 따라줘. 오늘 밤 나를 만나서 내가 시키는대로...


 하지만 오언은 또 마지막 순간에 이게 말이 되나!!!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매디를 밀어내 버리고 도망칩니다. 다음 날 당연히 매디는 다시 사라졌고. '이후로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는 나레이션으로 미루어 볼 때 이걸로 다 끝난 거죠. 그리고 옛날 생각에 매디가 녹화해 줬던 '핑크 오페이크' 테이프를 다시 틀어 보니 이런. 그동안 자기가 봤던 시리즈가 아닌 전혀 다른, 유치 발랄 청소년 시리즈가 되어 있어요. 이제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린 겁니다.


 이렇게 버스 다 놓친 후에 뒤늦게 매디를 믿고 싶어진 오언이 이러쿵 저러쿵 난리를 치는 장면이 좀 나오구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미친 놈 취급을 받을 뿐이고. 다음 날 출근해서 역시나 영혼 없고 비굴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어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가 약을 안 먹어서...' 라고 사과하며 다니는 오언의 꿈도 희망도 의욕도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엔딩이에요. 네. 매우매우 배드한 엔딩이었습니다. ㅠㅜ


 +++ 그래서 퀴어 이야기, 동성애자 로맨스 이야기이긴 한데 여기에 하나 추가된 게 트랜스 설정인 거죠. 오언은 남성의 육체 속에 여성의 영혼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본인은 그걸 전혀 깨닫지 못하는. 깨달으려다가도 포기하고, 누가 대놓고 일깨워주려는 것도 거부하고. 그러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 찾기를 포기한 채 삶에 기쁨도 즐거움도 없이 우울하고 고독하게 살아가게 되는 게 엔딩이고 그렇습니다. 아무리 본인 인생 반영 스토리라고 해도 감독님 매정하신 분...

    • 저 이거 어젯밤에 봤는데 글이 딱 올라와있어서 무척 반갑네요! 제가 따로 추천글을 쓸 필요도 없고 ㅋㅋ 작년엔 국내영화 '승부' 보고왔더니 thoma님 후기가 올라와있던 적도 있었어요.




      제작년(...) 초에 선댄스에서 첫 상영하고부터 반응이 상당했던 걸로 기억하고 심상찮은 포스터와 예고편의 분위기 때문에 저도 무척 기다렸던 작품입니다. 이게 분명 보통의 현실에 적응을 잘 못하는 두 아웃사이더 일종의 소수자 이야기라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 뭔지는 아리까리하다가 영화 중간 매디의 바뀐 외모, 후반부 잠깐 나오는 회상 시퀀스에서 오언이 입어보는 옷 등으로 아! 그거였구나 깨달았고 다 보고 찾아보니 감독님도 그러셨더군요. 하하;;




      촬영스타일도 음악도 제대로 인디 아트하우스 스타일, 우리나라로 치면 요즘은 잘 안쓰는 표현 같지만 딱 홍대 스타일 영화인데 그 완성도가 엄청 고급이었어요. 잔잔히 천천히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신비하고 환상적인 무드에 빠져 들었고 막판엔 제가 주인공들의 입장도 아닌데 엄청나게 공포스럽더라구요. 저에게는 호러영화 맞는 걸로 ㅋㅋ 다만 몰입이 안되는 관객분들에게는 이게 뭐야? 싶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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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디 역의 Brigette Lundy-Paine은 넷플 시리즈 '별나도 괜찮아'에서 매력적으로 생각했던 배우였는데 성별을 논바이너리로 표기해왔고 오랜만에 검색해보니 최근엔 아예 이름을 Jack Haven으로 바꾸셨다고 하네요. 오언 역의 저스티스 스미스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라고










      엔딩곡의 가사 내용이 영화의 스토리, 메시지와 겹쳐서 생각하니 참 의미심장하더군요. 노래도 참 좋고 중간에 클럽에서 공연씬도 인상적이죠. '트윈 픽스' 3시즌에서 종종 나왔던 클럽씬도 생각나고 



      • 아니 이런 장문의 정성 댓글을 적어 주실 거면 새로 글을 적어주셔도!! ㅋㅋㅋ 맞네요. '홍대 스타일'이란 설명이 딱 와닿습니다. 요즘 말고 옛 홍대란 부분도요. 하하.




        막판이 정말 그랬죠. 전 초중반까지의 갑갑하고 우울하지만 어쨌든 서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결말이 그딴 식으로 날 거라곤 정말 생각을 못 했어요. 아니 뭐 적절한 결말이긴 한데,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끝이라서 이게 맞나... 했네요. ㅋㅋ




        아니 저 분이 매디였다구요? 그럴 리가 있나 사진을 잘못 올리렸나 했다가 밑에 적어 주신 설명을 보고... 이런. 그럼 뭐랄까, 매디와 오언을 맡은 배우들이 극중 역할을 서로의 상황을 연기한 거네요. 재밌는 우연인 것인지 의도적 캐스팅이었던 것인지.




        맞아요 갑작스레 격하게 공들여 펼쳐지는 공연 장면이었네요. ㅋㅋ 여기서 갑자기? 라고 생각했지만 장면이 멋져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말씀대로 노래 가사도 의미심장하구요.

        • 저는 매디도 오언도 둘 다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했는데 뭐 작품안에서 명확하게 정의해주진 않지만요.

          • 아 그렇게 볼 수도 있으려나요. 저는 정말 단순하게 매디는 드라마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다 생물학적 여성 배우가 연기했으니 그냥 레즈비언인 걸로... 라고 생각하고 말았지요. 제가 그 쪽을 잘 모릅니다. ㅠㅜ

            • 어차피 다른 댓글이 안달리니 그냥 적으면 매디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의 헤어스타일이나 복장이 트랜스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받아들인 것 같아요. (+ 핑크 오페이크가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믿음) 처음에는 단순히 레즈비언인줄 알았으나 알고보니 사실은 트랜스 남성으로서 여성을 사랑하는 그런? 쪽이 아닐까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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