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현대 사회의 자랑법


 1.어떤 사람이 50억을 벌었다면 어떨까요. 그순간부터 그 사람에겐 50억원 어치의 걱정거리가 생기는 거겠죠. 


 그래서 내가 보기엔 50억이 생길 거면 그냥 로또 당첨으로 생기는 게 제일 속편해요. 최소 세 번은 넘게 당첨되어야 하겠지만.



 2.왜냐면 로또로 50억이 생기면 그건 걱정거리가 아니거든요. 그냥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선물이죠. 그래서 마구마구 써버릴 수가 있어요. 아무리 조심스러운 놈, 건실한 놈이라도 2~3억 정도는 뇌 비우고 쓸 수 있죠.



 3.하지만 노력해서 50억 번 놈은 1억원도 못 써요. 애초에 그 사람은 1억원을 시원하게 써버릴 수 있는 타이밍이 여러번 있었거든요. 5억원 벌었을 때 '이제 5억원 생겼으니 1억만 써보자'라고 할 수도 있었고 10억원 벌었을 때 1억원 쓸 수도 있었어요.


 그때 못 썼어도 20억 벌었을 때는 겨우 5%의 돈이니까 1억원쯤은 쓸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러지 않고 30억까지 버텼어요. 물론 30억이 됐을 때도 돈을 안쓰고 40억까지 참았어요. 그렇게 50억이 되었다면?


 이미 돈을 안쓰는 것 자체가 관성으로 굳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돈은 영원히 못 써요.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이 관성을 더욱 굳어버리게 만드는 것은 현대 사회의 구조 때문이예요.



 4.휴.



 5.과거에는 이런 행동이 무의미한 자린고비 짓이었겠지만 현대에는 그렇지가 않거든요. 현대 사회에서는 그냥 계좌를 보여줌으로서 부를 과시할 수 있으니까요. 비싼 소비재나 사치품을 사는 출혈로서 부를 과시할 필요 없이, 단 한푼도 안 쓰고 깔끔하게 돈자랑을 할 수 있죠.


 한데 도돌이표같지만, 문제가 바로 그거예요. 현대 사회에서는 소비를 통해 부를 과시할 필요가 없다는 거요. 옛날에는 옷을 사거나 말을 사거나, 마차와 마부를 사야 했겠지만 이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디바이스를 통해 '딸깍'으로 자산을 보여줄 수 있거든요. 



 6.한데 계좌 인증이라는 게 단순 돈자랑이 아니라 자신의 성취와 통찰력까지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장치란 말이예요. 언제 뭘 샀고 그걸 얼마나 버텨서 몇 배를 먹었는지까지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이 사람이 돈이 많은 게 아니라 얼마나 똑똑한지 얼마나 실력이 있는지 얼마나 뚝심이 있는지까지 모조리 꺼내서 보여주는 거니까요. 심지어는, 원래는 얼마나 가난했었는지까지 말이죠. 


 원래 부자였던 사람이 더 부자가 되는 것보다는 가난했던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게 멋진 거니까요.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앞다투어 자랑하는 이유가 다 있는 거죠. 한데 현대에는 누구나 가지고 다니는 디바이스를 켜는 것만으로 그런 서사까지 한번에 챙길 수 있다는 거죠.



 7.사실 내가 보기에, 돈을 벌었을 때 하는 소비라는 건 '돈자랑'의 속성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물론 정말 사고 싶었던 허먼밀러 의자를 산다던가 가고 싶었던 여행을 가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평소에 하고 싶었던 소비를 하는 사람조차도 그 와중에 약간의 허세는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원래 사려고 했던 의자보다 좀더 비싼 의자를 사거나, 원래 묵으려고 했던 숙소보다 좀더 화려한 숙소를 잡는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그걸 인스타에 올려서 자랑을 좀 하는 거죠.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돈자랑을 목적으로 소비를 하려고 하면, 그 어떤 방법보다도 그냥 계좌를 보여주는 게 제일 가성비가 좋거든요. 그래서 돈을 안쓰게 된다는 거죠.


 물론 돈을 별로 못 벌었는데 많이 번 척 하고 싶은 사람이야 슈퍼카를 사거나 뭐 그러겠죠. 하지만 돈을 정말 많이 벌었다면 슈퍼카를 살 거 없이 계좌를 보여주면 된다는 사실이 소비에 대한 의욕을 꺾어버리는 거예요.



 8.위에는 돈자랑이라고 썼지만 정확히는, 누구든 성공을 하면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죠. 과거에는 그게 매우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가능했는데 현대에는 통째로 보여줘버리는 게 그렇게 어색한 일이 아니게 되었어요. 실제로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만 봐도 옛날에는 자동차를 올리거나 했었는데 이젠 자신의 계좌 스크린샷을 올리는 사람이 많아졌죠.







메인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열람 잡담...현대 사회의 자랑법 278 03-06
294 책 잡담 11 264 03-06
293 (쿠플)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 2 164 03-06
292 [넷플릭스바낭] 충분히 괴상한 걸로 만족하실 수 있다면, '쿠쿠' 아주 짧은 잡담입니다 2 256 03-06
291 프랑켄슈타인스 아미 1 148 03-06
290 애플의 맥북 새제품 발표(Neo, 그리고 진짜 M 프로칩..) 195 03-05
289 넷플릭스 [어쩔수가 없다] 감상 6 407 03-05
288 김초희 감독이 홍상수 전원사에서 짤린 내막 17 839 03-05
287 소울메이트를 다시보며(분위기 완전 야르한데) 206 03-05
286 이런저런 투자 잡담... 202 03-05
285 [핵바낭] 개학 잡담 12 414 03-04
284 [vod 시리즈] 재미가 없는데 재미가 있다 ‘어스’ 5 298 03-03
283 민희진을 미워하는데 미친 사람들 316 03-07
282 삼국지 13 365 03-03
281 일본 배우 겸 가수 카미시라이시 모네 4 328 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