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어쩔수가 없다] 감상

영화 리뷰]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가 그린 한국 사회 “정말 우리는 어쩔 수 없었는가” : 월간조선


[어쩔수가 없다] 2025


감독 : 박찬욱 

출연 : 이병헌, 손예진, 이성민, 염혜란, 박희순, 차승원, 유연석 




영화 [어쩔수가 없다]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가 원작입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영화화 한 적이 있고, 영화 말미에 가브라스 감독에 대한 헌정한다는 자막이 뜨죠. 

박찬욱의 신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을 한 몸에 받았고,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하며 기대감은 커져갔으며, 해외 영화제에 출품 소식에는 당연스레 수상을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제 수상에 실패하고, 개봉 후 불만스러운 입소문이 퍼지면서 아쉬운 흥행을 기록하더니, 예상보다 빨리 OTT에 풀렸습니다. 


이번 작품은 이전의 박찬욱 영화들과 조금 결이 다른 느낌입니다. 박찬욱답게 미학적인데, 동시에 그답지 않은 느슨함이 감지됩니다. 그 간극이 흥미로울수도, 아쉬울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갑작스럽게 해고당한 한 남자가 재취업을 위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감독은 한 개인의 범죄 연대기에 현대 사회의 고용 불안과 계급 간의 미묘한 신경전을 담아, 특유의 뒤틀린 유머 감각으로 풀어냅니다.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면 좀 더 관조적이고 냉소적으로 주인공을 바라보게 됩니다. 


초반부에 주인공이 '어쩔수가 없이' 살인을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논리를 구축하는 과정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중반부에 경쟁자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어쩔수가 없이'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각각 독립된 단편 영화처럼 기능하며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종반부에 다다르면 긴장과 결말의 여운은 있지만, 박찬욱 영화에 기대하는 강렬한 카타르시스로 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병헌은 무너져가는 중산층 가장의 '한남'스러운 정서를 탁월하게 묘사하며, 손예진은 의외의 생활력이 있고 현실적인 캐릭터를 그려냈습니다. 

이성민과 염혜란의 존재감은 주인공 부부 못지않게 강렬합니다.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왁자지껄한 난장판 속에도, 영화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프레임은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고, 계단과 경사를 활용한 공간구조와 인물의 동선은 심리적 압박을 증폭시킵니다. 

김우형 촬영 감독의 카메라는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조영욱 음악 감독의 스코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며 영화의 톤과 조화를 이룹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박찬욱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분명 아쉬움을 남깁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서사의 템포가 다소 늘어진다는 점입니다. [올드보이]나 [아가씨]의 압도적인 추진력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중반부 이후 전개는 다소 반복적이고 피로하게 느껴집니다. 

극의 리듬감이 단조롭게 유지되어, 긴장감이 고조되어야 할 타이밍에 오히려 동력이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러닝타임이 실제보다 길게 느껴지게 만들며, [헤어질 결심]이 주던 처연한 여운에 미치지 못합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분명 완성도 높은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연기, 안정된 연출, 절제된 미장센은 충분히 감상할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올드보이]의 광포한 충격이나 [아가씨]의 탐미적인 해방감, [헤어질 결심]의 절제된 우아함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이 영화의 느릿한 호흡과 냉소적인 유머가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쩔 수가 없었다"는 변명 뒤에 숨은 인간의 본성과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이 작품은, 감독의 새로운 시도를 확인하고 싶은 관객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입니다.

    • 쓰신 글에 여러 부분 동의하며 읽었어요. 기대치가 있어선지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박찬욱 감독표 재미로 즐겁게 봤습니다. 


      이성민염혜란의 극장 데이트 신에서 나오는 '불 좀 켜주세요'는 요즘도 설거지하면서 흥얼거립니다. 이상하게 강하게 입력되어버렸어요. 뽕짝의 힘이란...  




      • 국내 흥행은 294만에서 멈춘 듯해 아쉬웠지만, 북미 흥행은 1천만달러를 돌파하며 성공했네요. 다행입니다.
    • 저는 “나는 그닥 박찬욱의 팬은 아니야”하는데 이 영화도 잘 봐서 제 속의 두 자아가 싸우고 있는건가 했습니다ㅋㅋㅋㅋ

      써주신 내용 다 너무 잘 읽었구요. 오랜 시간 공들인 이야기도 좋지만 가볍게 부담없이 다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발!!!
      • 사실 단편이나 드라마, 제작, 사니리오까지 생각하면 쉼없이 창작을 이어가는 편이긴 합니다만, 기왕이면 많은 영화를 자주 만나고 싶네요.
    • 맞아요. 연출, 미장센, 연기 다 좋았는데 이야기가 좀 늘어지는 느낌이었고 클라이막스에서 확실하게 방점을 찍어 주는 느낌이 아니어서 다 보고 나니 인상이 흐릿해지는, 좀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나쁘진 않았는데 말이죠.

      • 박찬욱에게 '나쁘진 않다'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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