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탐 일기 2.

한 주 빨리온 책탐 일기입니다. 애인이 다음 주 일요일에 자리를 비워, 한 주 땡겨서 도서관에서 책을 갈게 되었네요. 글 제목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책에 욕심만 많아서 꽤 못나게 욕심을 부리는 모습에 적합한 단어라 만족하고 있어요. 애인과의 대화에서도 자주 사용하는데, 최근에도 '책탐이 너무 많아서 큰 일이야.', '그러게 정말 책탐만 많아서 큰 일이야.'며 한탄을 했네요. 도서관이 아니었더라면, 돈을 훨씬 더 탕진했을지도. 그 사이 정말이지 그 말에 맞게 감당할 수 없게 또 책을 사버렸답니다. 집의 읽은 책 대비 안 읽은 책이 1:80 정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젠 변명조차 잘 안 하게 됩니다 ㅋㅋ.


일단 반납하는 책.


- 후르츠칵테일

절반 정도 읽고 반납했습니다. 다는 못 읽었지만, 도서관에 들리면 별 일 없으면 반납한다가 원칙입니다. 총천연색의 그림들이 그냥 구경해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과일 좋아하시는 분들은 눈요기 삼아 한 번 쯤 쓱 둘러봐도 재미있지 않을지.


- 군중심리

생각보다 딱딱하고 지루해서 보내버렸습니다. 사회학 책들 중에서는 세월을 타는 책도 있고 안 타는 책이 있는데 (예를 들어 뒤르켐은 시간이 흐르고 읽어도 꽤 재미있음) 이건 놀랄 정도로 시간을 타서, 간절하다 싶을 때나 빌려보자 싶더군요.


- 새들이 전하는 짧은 철학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평이한 논지로 이야기들을 서술해서 빠르게 헤어졌습니다.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정도를 바라는건 아니지만 재대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그리고 재대출.


- 서울의 어느 집

잡지 에디터를 꾸준히 사셔서 그런지 글맛이 상당해서 벌써 절반을 읽었네요. 보통의 집 수리보다 상당히 독특한 경로와 개인 특성을 살려, '읽고 싶은 이야기를 예측해서 쓰기'를 상당히 탁월하게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던 키친]도 한 번 훑은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 사람이었구나! 하는 깨달음도 있었네요. (이 책의 이야기를 보면 꽤나 공을 들여 썼다는 느낌.) 비슷한 글을 읽고 싶을 때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을 빌려보고자 싶어지더라구요. [잡지의 사생활] 이런 것도 백스토리를 쉽게 써서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더군요.


- 30/3 산문선

이 책을 반납할까 말까 꽤나 고민했습니다. 반납했으면 [어스탐 경의 임사체험]과 교체했을텐데, 그 책은 밀리의 서재에 있거든요. 이 책은 없고. 가끔 심심할 때 읽을만한 에세이는 구독형 플렛폼에 안 올려놓는게 네임드일 경우 팔릴 가능성이 높다, 라고 할까요. 쳅터 몇 개를 더 읽었으면 결정이 쉬웠을텐데 거의 안 읽어서 더 잡고 늘어지게 되었네요. 도서관에서 휘리릭 3개 정도 읽어보곤, 다시 빌리자 각이 섰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책.


소상공인을 버린 AI

지긋지긋한 AI 이야깁니다. 이번에 과소비하면서, [AI 전쟁 2.0]을 사버렸거든요. 그 책도 밀리의 서재에 있긴 한데 어쩔 땐 종이책으로 읽고 싶을 때가 있단 말이죠.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그 책 출간일은 2025년 중반인가 되더군요, 이런! 현재 가장 실무자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책을 썼다 하더라도 이 분야에서 1년이나 늦어지면 이미 낡은 이야기가 되버리까요. 이 책은 그나마 올 해 2월에 나와서 뭔 소리하나 궁금해서 빌려봤습니다. 정부측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사람들이 이런저런 책을 냈는데, 뭐... 내용이 다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고 정부측이 어떤 방식으로 뭘 생각하고 있기는 한가 궁금해서 떠들러 보려고 합니다.


부채로 만든 세상

요새 꽂힌 주제는 '대공황'입니다. 작년 내내는 전쟁, 그 중에서도 1차/2차 세계대전, 그 중에서도 아시아권 책들을 꽤 핥아왔는데요. 이제는 일자리 감소 이후의 세계가 무엇인지 좀 궁금해지더군요. 그런데 첫째로는 대공황 자체를 테마로 둔 책들이 생각보다 얼마 없고, 둘째로 있다한들 대부분 300번대 경제 서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기억의 대공황은 세계 역사 한복판에 대여섯 줄로 묘사될만큼 상당한 것이었는데, 그 테마 수기가 거의 없을 수 있다는게 놀랍긴 하더군요. 분명, 종이에 자기의 스킬을 다 적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해 거리에 가득한 영상 같은 것들을 봐온 것 같은데 말이죠.


이 책은 당장 가져와서 더 살펴보니 최근 이야기보다는 너무 케이스 범위가 넓게 전 인류사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다 읽진 않고 뒷 부분만 좀 읽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곳에서 가져온 [대공황의 세계 1929-1939]와 맞춰보면서요. 이후에 대공황 테마를 좀 넓게 찾아보니, 크게 보면 [방랑기]나 [분노의 포도], [위건부두로 가는 길]도 포함될 수 있다는걸 알고 머리가 깨이는 기분을 느꼈네요. 거기에 아직 읽어보지 않은 [파비안]이나 [그들은 말을 쏘았다], [한밤이여, 안녕] 같은걸 AI 멱살을 잡고 뽑아냈는데, 나중에 떠들러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미의 조건 (양장)

마지막 책으로는, 제가 전혀 상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적히는 이야기들을 읽고 싶어서 최대한 안 빌릴 것 같은 느낌의 책을 골라봤습니다. 문장은 술술 읽힐 것처럼 간결하게 쓰여 있고요. 다 털어서 어, 이런 관점이 있네? 하는 지점을 한 두 문장만 걷어가도 건졌다 싶은 책이네요. 컬러 사진도 많이 실려있고, 제가 대부분 본 영화들이라서 맥락을 모르진 않겠지? 싶네요. 다른 것보다 제목이 너무 도발적이라서, 책등으로 꽂혀 있을 때 선뜻 손이 가더군요. 과연 던진 낚시줄에 뭐가 걸릴까요.


시절이 하수상해서 나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점입니다. 다들 마음건강 몸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며, 담 번엔 정말 3주 뒤가 될 것 같습니다. 그 땐 벌써 5월이겠죠. 휴가 쪼개 넣으면 길게 쉬는 휴가도 지난 다음 주.

    • 책 읽은지 오래라 듀게분들이 써주시는 책 후기를 뭐랄까… 고독한 미식가 드라마 보는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안 먹어 봤지만 분명히 맛있을거고 못 먹을테지만 이미 먹어봤다! 이런 마음으로요ㅋㅋㅋㅋ 정신승리도 뛰어넘어버린ㅋㅋㅋㅋㅋㅋ)

      근데 그래도 하는것이 있으니 제가 있는 지역 도서관에 있는지 찾아보고 없으면 사달라고 신청하는 거에요. 듀게분들 추천 책이 없는 경우가 좀 있어서 “이 책 사주세요!!!”하고 신청합니다(대출 여부는 다른 문제) 그래서 들어오면 다른 분들이라도 읽을테니까요?ㅎㅎㅎㅎㅎ

      다른 글도 종종 올려주세욤
      • 그렇게 읽어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ㅋㅋㅋ.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맛을 봐야겠네요.


        헉, 희망도서신청 열심러이군요? 저는 도서관의 신간 도서가 들어오는건 손에 꼽아 기다리지만, 희망도서신청은 거의 안하는 편이거든요. 서점에서 책을 구경할 때 끌릴 정도면 그냥 사버리는 편이고, 도서관에선 없는 도서를 보고 신청할 수는 없으니까요. 감사하게(?) 매 번 들어오는 도서들에서 찾아 읽네요. 생각지도 못 했던 것들을 신간 도서에서 발견할 때의 재미가 있네요.


        다른 글... 뇌가 최근에 잘 안 돌아가는 기분을 느껴요. 어떤 걸 더 써야 할 지. AI에게 계속 시키니까 바보가 되나 싶네요 ㅋㅋㅋ.

    • 역시 제 눈이 잘 안 가는 쪽의 다양한 책 소개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서울의 어느 집]의 저자는 저도 최근에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인터넷에서 짥은 글을 읽었어요. 지금 하는 일이 문학 쪽은 아닌 것 같은데 글을 참 단정하게 쓰는구나, 해서 검색해 보니 역시 어문학 전공자였어요. 김혜리 기자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잡지에 고정 출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5월부터요.


      김영하의 산문선은 다시 빌리셨군요. 틈틈이 읽기에도 좋죠. 이 작가의 산문은 항상 재미와 예리함을 겸비하는데 최근의 글은 깊이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 그런 정보가 있었나 하고 책날개를 다시 살펴보는데 전공 내역이 있었군요. 이 에세이에서 받은 다른 인상은, 인생을 살아가는 철학이 맞아서 부드럽게 읽힌다, 였거든요.


        그 비슷한 느낌으로 흘러가며 팟캐스트에도 참여하게 되었을 것 같아 반갑네요. 그런데 '팟캐스트' '잡지'란 것도 있군요 신기합니다.


        산문선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읽으면 아이스크림처럼 머리가 띵해지니까, 굳이 완독은 생각하지 않고 부분 부분 뜯어먹고 있네요. 저도 뼈대가 느껴지는 지점이 좋아요.

    • 직장에서 아이들에게 늘 '책 좀 읽어라'고 잔소리 하는 사람이면서 본인은 책을 읽지 않는(...) 비양심적 인간으로서 thoma님의 시리즈나 잔인한오후님의 글들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고 그렇습니다. '나도 예전엔 많이 읽었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게 많이 읽었던 건 10대 뿐이었던 것 같고. 음... 암튼 이 대 영상물 시대에 이렇게 독서 열심히 하시는 분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하하;

      • 크흐흐... 저도 로이배티 님을 존경하고 있으니, 서로 존경을 교환하면 되겠군요. 그런데 솔직히 다른 무엇보다 독서의 가장 큰 동인 중 하나는 적어도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칭찬해주는 취미라는 것에 기인합니다. 작년인가 올핸가도 도대체 독서하자, 라는 다큐가 몇 편이나 편성되서 공중파에 틀어졌는지. 다른 거 하고 놀면 약간 찌푸린 눈초리를 받는 대신, 책 읽고 있으면 사람들이 한 수 접어 존경스럽다는 말으 해주니 마음 속의 속물 엔진이 우렁차게 작동합니다. 다른 많은 것들과 같이, 책을 읽는 것에는 어떠한 상당한 즐거움의 사금파리가, 금을 걸러내는 접시에서 반짝하고 가끔 걷어내는 중독인데요. 안 읽으시는 분들이 약간 이 맛있는 것을 안 먹다니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케헤헤, 같은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남을 기분 좋게 한다는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니 힘 받아서 계속 써야겠습니다. 우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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