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플레이] 옛날엔 이렇게 재밌지 않았는데? '도망자' 잡담입니다

 - 1993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2시간 10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초간단, 결말 위주로만 적겠습니다.

(해리슨 포드가 그 도망자다!! 라고 직역해서 영화 제목으로 삼으면 재밌겠다는 뻘생각을...)

 - 시카고의 유능한 의사 리처드 킴블씨... 는 영화 시작과 거의 동시에 아내를 살해한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유죄, 사형 판결을 받고 감옥에 끌려갑니다만. 운 좋게도 같은 호송 버스를 탄 죄수들이 열심히 준비해서 탈옥 시도를 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탈주하게 되고. 내친 김에 자신의 누명을 벗기고 아내의 원수를 찾기 위해 자신이 살던 동네로 돌아가... 라고 적다가 생각해 보니 자칫하면 영화 내용을 다 적어 버릴 것 같아서 이만하겠습니다. ㅋㅋ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냉철하고 가차 없는 연방 보안관 새뮤얼 제라드라는 아저씨가 등장해서 킴블의 뒤를 쫓겠죠. 달려라 킴블!!!

(요즘도 자주 보이는 방식이지만, 도입부에 큰 볼거리를 던져서 스케일 크다고 생각하게 만든 후 이후로는 소소하게만 굴러가는... 그런 경제적인 이야기였네요. 당시엔 이렇게 교통 수단 하나 부수는 게 큰 홍보 거리였죠. ㅋㅋ)

 -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 봤던 영화입니다만. 전 그렇게 재밌게 보질 못했어요. 이유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명색이 '도망자'인데 주인공이 도망보단 당당하게 시내를 누비고 다니며 범인 잡기에 몰두하는 것도 좀 괴상했고. 또 평범하게 자기 일 열심히 하던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경찰 따돌리기 만렙의 금강불괴 액션 히어로가 되어서 날뛰는 게 영 어색하단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그걸 왜 그렇게 어색하게 받아들였나... 라고 생각해 보니 '평범하게 살던 시민 A씨가 큰 음모에 휘말리자 난데 없이 액션 히어로가 되어 설치는' 류의 스토리 유행이 이 영화였던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그 전의 액션 히어로들은 아무리 서민적인 느낌이어도 기본적으로 경찰이거나 군인이거나 퇴직 뭐뭐 거나 그랬죠. 이 영화가 원조일 리는 없겠지만, 한동안 유행을 선도했던 건 맞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증거는 없습니다. ㅋㅋㅋ

(지나칠 정도로 유능한 우리의 도망자 해리슨 포드...가 물론 주인공이지만)

(포스터에 얼굴도 못 비친 이 분의 영화로 사람들에게 기억됐죠. 정말로 이 분에겐 새 삶을 선사한 영화 아니겠습니까.)

 - 암튼 재밌습니다. 헐. 어째서 그토록 아무 거나 다 재밌던 시절에 시큰둥하게 봤던 영화가 지금 보니 이렇게 재밌는 걸까요.

 일단 다시 보니 참으로 전형적인 히치콕 스타일 이야기더라구요. 누명 쓰고 쫓기는 일반인 남자가 경찰과 악당들의 추격을 뿌리치며 여행 다니는 이야기... 인데 그렇다고해서 히치콕스런 재미를 잔뜩 느낄 수 있는 영화까진 아니구요. 그냥 그 분이 늘상 하던 이야기의 뼈대만 들고 와서 쫓고 쫓는 술래잡기와 액션 쪽에 힘을 잔뜩 줘서 만든 영화인데 그게 참 유려하고 매끈매끈합니다. 두 시간이 넘는 이야기지만 늘어지는 구간 없이 내내 사건과 이벤트를 이어가며 달리는데 거기에서 특별히 빠지는 구간이 없어요. 오! 하고 감탄할만한 장면은 없어도 그냥 거의 모든 장면들이 고퀄이랄까요. 그래서 시간이 술술 흘러갑니다.

 그리고 이게 1993년 영화니까요. 군중 씬도 자주 나오고 경찰차도 많이 동원되고 헬기도 수시로 시내를 붕붕 날아다니고... 이러는데 이게 cg로 그린 게 아니라 다 실제로 동원한 것들이잖아요. 그걸 생각하며 보니 더 좋아 보이는 건지 실제로 생동감의 차이가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암튼 이런 느낌 때문에 더 좋게 본 부분도 컸습니다. 어찌보면 요즘엔 티비 시리즈들에서도 흔히 보여줄만한 장면들인데, 이 시절 영화에서 보면 그게 감탄이 나오고 더 거대해 보이고 그런단 말이죠. 사실 기차 한 대 탈선해서 데굴데굴 구르는 장면 같은 걸 요즘에 영화 홍보 포인트로 써먹고 그러진 못잖아요. ㅋㅋㅋ 근데 이 영화에선 그게 되게 거창하고 멋져 보입니다. 하하. 보기 좋고 다양하게 찍어낸 시카고 모습도 구경거리였구요.

(지금 와서 보니 엥? 하고 놀라게 되던 장면이었네요. 원래는 비중이 커서 주인공과 러브라인으로 연결되는데 아내 죽음으로 길길이 뛰는 주인공 처지와 안 어울린다 싶어서 통편집 당하셨대요. 왠지 어색하게 사라진다 했죠.)

 -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건 두 주연 배우였습니다. 그리고 역시 토미 리 존스요.

 다시 보니 기억이 확 살아나는 전설의 장면이, 댐 앞에서 둘이 처음으로 마주쳐 대치할 때 주인공이 "나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어!!"라고 외치니까 토미 리 존스 캐릭터가 곧바로 받아 치는 대사 있잖아요. "내가 알 바 아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각본 잘 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보면 이 양반은 영화 내내 이런 식의 쏘쿨하고 가차 없는 대사로 본인의 캐릭터를 어필하시는데 그게 담당 배우님의 시큰둥함이 얼굴에 새겨져 있는 생김새와 연기와 어우러져서 참 재밌고 매력적이에요. 사실 이게 어찌보면 참 얄팍한 묘사인데요. 정말로 이 캐릭터에게 부여된 특별한 배경 설정이나 현실적인 디테일 같은 게 전혀 없거든요. 넌 그냥 쏘쿨하여라. 그게 니 캐릭터니까! 라는 식인데 그걸 이렇게 매력적으로 잘 살려 내셨으니 아카데미 받을만도 하시다 싶었고. 또 이게 해리슨 포드의 세상 억울하고 선량한 캐릭터랑 부딪히면 부딪힐 때마다 재미납니다. 그래서 엔딩에서 둘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씨익 웃을 땐 참 그 뻔한 전개에도 기분이 흐뭇해지고 그랬죠.

(내 알 빠 아니라고!!!! 최고의 명장면이었죠. ㅋㅋㅋㅋㅋㅋ)

 - 그래서 이걸 뭐라 해야 하나...

 대략 90년대 스타일의 액션 스릴러 영화로서 참 모든 면에서 빈틈 없이 매끄럽게 잘 뽑아낸 최선의 오락물이란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토미 리 존스의 존재감을 빼고 보면 남다른 한 방 같은 건 딱히 없거든요. 스케일이 막 큰 것도 아니고 완전 강렬한 액션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 그냥 모든 게 매끈매끈하고 보기 좋고 즐거워요. 늘 하는 얘기지만 이렇게 특별히 대단한 아이디어 없이 그냥 잘 만들어서 이만큼 재밌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죠. 이 시절의 앤드류 데이비스 아저씨는 참 훌륭한 감독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잘 봤습니다. 끝이에요.



 + 하지만 이게 또 앤드류 데이비스의 정점이기도 했죠. 다시 말해 다음 작품부터 곧장 내리막이었고, 이젠 극영화에선 아예 손을 뗀지 한참 됐더라구요. 사람 일이란 참.

 ++ 확인해 보니 이 시절 토미 리 존스 아저씨 나이가 대략 47세 쯤입니다. 역시 노안계의 전설... 지금의 나보다 어리다니!! 라고 감탄(?)을 하며 봤습니다. ㅋㅋㅋㅋ

 +++ 각본 칭찬을 많이 했는데... 사실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개연성은 대략 포기한 수준입니다. 주인공이 지나치게 튼튼하고 유능한 건 둘째 치더라도 보다 보면 은근슬쩍 주인공이 벗어나기 절대 불가능한 상황들을 '잠시 후에 보니 암튼 벗어났군요' 라는 식으로 처리해 버리는 게 여러 번 나와요. 하지만 뭐 90년대 영화니까요.

 ++++ 다 보고 나서 출연진을 확인하다가 발견한 의외의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시겠죠. 저도 몰랐습니다. 근데 이 분이

본인 아드님과 함께 출연하셨더라구요. 둘 다 단역입니다만... 암튼 이 아드님의 동생이 바로 존. 존 쿠삭입니다. 이 집안 사람들은 대체... ㅋㅋ

 +++++ 아 근데 이 코트 말이죠

혹시 이거랑 같은 옷 아닙니까?

 괜히 반갑더라구요. 하하.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만. 정말로 결말만!

 주인공 킴블 박사는 딱히 누구에게 원한 살만한 일을 안 하고 살아온 평범 의사 아저씨... 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아내를 죽인 건 강도인 줄 알았죠. 그래도 어쨌든 잡아야 원수도 갚고 본인도 사형을 면하니 죽어라고 도망쳐다니면서 동시에 진범을 추적합니다. 써먹을 수 있는 유일한 힌트는 그 강도의 한쪽 팔이 의수였다는 거! 그래서 의수 제작과 관련된 병원들을 뒤지고, 자기를 공격했던 놈과 같은 조건의 의수를 주문해서 퇴원한 환자들을 추적하고... 이런 식으로 후보자를 좁혀서 결국 범인을 찾아내는데요. 여기 와서 일 좀 하라는 의도로 아예 그 범인의 집에 숨어들어간 상태에서 경찰에 전화하고 통화를 끊지 않은 채 도망쳐 버리죠. 그래서 연방 보안관 아저씨도 드디어 킴블의 주장에 조금씩 신경을 쓰기 시작하구요.

 문제는 킴블이 찾아낸 그 범인의 정체였습니다. 킴블네 병원과 거래하는 제약회사에서 경호원 일을 하는 은퇴 경찰이었거든요. 그래서 기억을 돌이켜 보니 자기가 이 회사에서 만들어낸 기적의 신약이 환자들에게 치명적 데미지를 입힌다... 는 걸 어쩌다 증명해 버린 일이 있었어요. 근데 그걸 회사와 내통하는 병원 의사 누군가가 실험 샘플 조작을 통해 무마해 버렸고. 그 무마가 벌어진 타이밍이 딱 킴블이 사형 언도를 받게 되든 그 언저리였단 말이죠. 그래서 그 실험 샘플을 최종 확인, 승인한 놈이 범인이다!! 라는 상황이 되고, 범인은 시작부터 계속 수상한 내를 풀풀 풍기던 킴블의 절친 의사였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서 그만... ㅠㅜ

 그래서 그 친구가 발표자를 맡은 세미나로 쳐들어가... 던 킴블은 가던 길에 지하철에서 외팔이 킬러를 만나구요. 간신히 제압하고 세미나장으로 들어가서 진실을 마구 폭로하니 당황한 절친은 킴블더러 조용히 얘기하자며 외딴 곳으로 가서는 먼저 킴블을 급습했다가 금방 입장이 뒤집혀 본인이 신나게 얻어 맞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자길 잡으러 온 연방 보안관 부하를 쓰러뜨리고 총을 빼앗아서 보안관까지 죽이려는 이해 안 되는 뻘짓을 하다가, 숨어 있다 튀어 나온 킴블에게 쇠파이프 연타를 맞고 기절. 연행됩니다.

 마지막이야 뭐, 기자들이 우루루 몰려온 가운데 보안관들 차를 나란히 탄 두 주인공. "니 알 바 아니라며?" "ㅎㅎ 이젠 내 알 바야." 같은 대화를 나누며 훈훈하게 자리를 벗어나요. 이렇게 엔딩입니다.

    • 잘 읽었습니다. 이것도 아마 미드 드라마 원작이었을 텐데 (이 영화도 아들과 같이 보셨던) 저희 어머니는 원작 드라마를 보셨다고 하지만 저는 못 본 드라마라서 어머니와는 감흥이 좀 달랐던 기억입니다. 이런 오해 풀기 이야기도 지금은 꽤 흔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만 일단 뭐 무난하게 본 영화이긴 했는데 말이죠. 생각날 때 다시 보고 싶기는 한데 언젠가 Btv 무료 영화라도 나오면 그걸 챙겨보고 해야 할지도요. :DAIN_

      • 당시의 세대 차이 확인 비슷한 거였다고 기억합니다. 원작 드라마 본 사람과 그런 거 영화 잡지에서만 읽어 본 사람! ㅋㅋ 하지만 이 영화로 뜬 건 주인공이 아닌 토미 리 존스였고 그래서 나중에 나온 속편은 토미 리 존스 캐릭터의 이야기였죠.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속편 겸 스핀오프였다지만 전 아직도 안 봐서(...)

        본문에 적었듯이 의외로 재밌게 봤는데, 거기엔 90년대풍 헐리웃 영화들에 대한 추억 어린 감정도 꽤 많이 작용했을 거라 다른 분들도 저만큼 재밌게 보실 거란 말은 못하겠습니다. ㅋㅋ 말씀대로 어디에서 무료로 볼 길이 생기면 그때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 어? 이거 전에도 글 쓰신 적 있지 않으셨어요? 아닌가? 왜 본 거 같지? 저도 이거 극장에서 봤던거 같아요. 댐 장면 생생하네요ㅋㅋㅋ
      도망자2도 본 거 같은데 기억엔 하나도 안 남아있네요ㅋㅋㅋㅋ
      •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저도 이 글을 썼던 것 같은 기분이 막 듭니다만. 아마 아닐 걸요? ㅋㅋㅋ 여기 말고 다른 데는 다 유료 vod로만 있으니 아마 아닐 거에요. 음... ㅋㅋ

        댐 장면 말씀하시니 참, 옛날 영화들 주인공들은 정말 아래에 물만 있으면 아무리 높은 데서 떨어져도 늘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고 그랬죠. 요즘엔 안 그러는 것 같아서 다행(?)이구요. 하하.

    • tv시리즈는 80년대 재방영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영화판은 역시 감상이 비슷하네요 뭔가 지루한데? 이러면서 나중에는 결국 수십번을 보고 또 봤거든요.

      보다보니, 킴블이 진단서 고쳐쓰고 아이를 수술실로 데려가는 거 좋고요, 제랄드가 다른 탈주범 잡으러 가서 쏴 죽이고 "나는 협상은 안해" 이것도 명대사고

      킴블이 반지하방에 있다가 경찰이 와서 놀라는데 주인집 아들 잡아간 뒤에 혼자서 떨면서 우는 거 보고 과연 해리슨 포드만이 할 수 있는 연기가 있구나

      감탄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우연하게 옛날 tv시리즈를 접하고 어쩌다 거의 다 봤네요. 유튜브에도 전부 다 올라왔다가 지워졌다가 다시 올라오기도 하고요.

      굉장히 재미있어요. 한국 전쟁 군의관 출신이라는 설정도 그렇고, 커트 러셀이니 윌리엄 샤트너 같은 배우들 모습도 볼 수 있고요. 이게 1950년대 후반

      60년대 초반 배경인데. 폭발하는 미국의 풍요로운 모습도 볼거리입니다. 

      --------------------

      예전에 해리슨 포드 복장을 보고 좋아서, 청바지, 마이, 버튼 다운 셔츠에 넥타이까지 맸는데 역시 나는 배우가 아니었다는 거... 

      • 뭔가 화끈하게 뙇! 하고 꽂히는 부분은 없는데 그냥 계속 술술 넘어가더라구요. ㅋㅋ 

        어린애 구해주는 그 장면 참 좋죠. 근데 뭔가 연속극에서 나올 법한 장면, 전개라는 느낌이 들어서 혹시 원작에 있었던 부분인가 했습니다.

        적어주신 내용을 보고 60년대 초반인데 커트 러셀이 나왔다고? 하고 찾아보니 세상에나... 어린이 꼬맹이 커트 러셀이었군요. 세월아... ㅠㅜ

    • 아니 이 분이 이 영화 찍을 때 이렇게나 젊으셨었나요
      • 저도 놀랐습니다. 여기에서 몇 년 안 흘러서 대통령 역할하고 살았는데 말이죠. ㅋㅋㅋ 원래 동안이셨던 건지 이 영화에서 유독 젊어 보이는 건지 암튼 되게 젊어 보이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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