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의 수필 중 '보스턴 심포니'

회원리뷰 게시판에서 베베른님의 공연후기를 읽고 이 글이 너무 생각이 나서 찾아본 김에

멋진 글 함께 다시 읽고 싶어서 옮겨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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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턴 심포니

 

 

재즈라도 들으려고 AFKN에다 다이얼을 돌렸다.

시월 어떤 토요일 한 시경이었다.

뜻밖에도 그때 심포니 홀로부터 보스턴 심포니 75주년 기념 연주 중계 방송을 한다고 한다.

나의 마음은 약간 설레었다.

 

1954년 가을부터 그 이듬해 봄까지에 걸친 연주 시즌에 나는 금요일마다 보스턴 심포니를 들으러 갔었다.

 

삼층 꼭대기 특별석에서 듣는 60센트짜리 입장권을 사느라고 장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때마다 만나게 되는 하버드 대학 현대시 세미나에 나오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교실에서 가끔 날카로운 비평을 발표하였다.

크고 맑은 눈, 끝이 약간 들린 듯한 엷은 입술, 굽이치는 갈색 머리, 그의 용모는 아름다왔다.

오케스트라가 음정을 고르고 샹들리에 불들이 흐려진다.

 

갑자기 고요해진다.

머리 하얀 콘덕터 찰즈 먼치가 소낙비 같은 박수 소리를 맞으며 나온다.

배턴이 들리자 하이든 심포니 B 플랫 메이저는 미국 동부 지방 불야성(不夜城)들을 지나

별 많은 프레리를 지나 해 지는 태평양을 건너 지금 내 방 라디오로부터 흘러 나오고 있다.

 

그는 이 가을도 와이드나 연구실에서 책을 읽고 벌써 단풍이 들었을 야드에서 다람쥐와 장난을 하고,

이 순간은 심포니 홀 삼층 갤러리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을 것이다.

꿈 같은 이태 전 어느 날 밤 도서관 층계에서 그와 내가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 미소는 나의 마음 고요한 호수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음향과 같이 사라졌다.

중계 방송이 끊어졌다.

7천 마일 거리가 우리를 다시 딴 세상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이든 심포니 제 1 악장은 무지개와도 같다.

 

 

 

    • 이게 전문인가요? 행갈이를 해서 그런지 수필이라기보다는 시 같네요.
    • 그르게요. 이게 전문이고요. 문단이 바뀌는 부분을 띄었더니 시처럼 되었네요. 안 그러고 문장을 그대로 다 붙여 쓰면 옆으로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요.
      제가 가지고 있는 범우문고 문고판 [수필]처럼 글자체를 바꾸었어요.:)
    • 헐 역시 잘 쓰시네요 ㅠㅠ
    • 피천득씨가 소설을 썼으면 하루키보다 분위기 있게 썼을 것 같습니다.
    • 허 이거 참.
      대단하군요.
    • 우와...너무 좋아요. 피천득씨가 소설을 썼으면 하루키보다 분위기 있게 썼을 것 같습니다.222
      이 수필 한 편이야말로 피천득 선생님의 인생과 저를 연결해주는 무지개같네요...
    • 세월은 흘러흘러.. 지금은 보스턴 심포니 창립 130주년쯤 되겠네요.ㄷㄷ
      심포니 홀에서는 피천득 선생님의 외손주인 스테판 피 재키브가 바이올린 연주를 이미 했거나 앞으로 하거나 하겠구요.
      이분이 특유의 심플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소설을 썼으면 한국의 하드보일드 작가가 되었겠지요?^^
    • 브랫/ 찾아보니 스테판 피 재키브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지휘로 보스턴 심포니와 협연했더군요.
      예술적인 재능을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집안의 자손이라 너무 좋겠어요....물론 엄청 노력도 했겠지만요.
      보러워라....ㅜㅜ
    • 찰즈 먼치는 샤를르 뮌쉬(Charles Munch)겠죠? 몇년전 모 신문에서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를 하논코트라고 쓴거보고 한참 누굴까 한 기억이 있는데요...근데 미국사람들은 프랑스식 이름 다 영어식으로 읽나요?
    • 이 글을 보고 베베른 님의 후기도 찾아봤습니다. 저도 좋아하는 수필이에요. 보스턴 심포니 125주년을 축하한지도 좀 지난 것 같네요.

      Norbertus/ 네. 미국 사람들은 유럽어 고유 명사를 영어식으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랑스식이나 독일식 이름, 지명을 굳이 원어 발음으로 하는건 한국에서 외래어 발음을 굴려서 하는거랑 비슷한 인상을 준다고 보시면 됩니다. 미국에 사는 유럽인들이 자기 이름을 영어식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많아요.
    •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났는데, 피선생님의 수필들을 사랑하는 어떤 제작자가 있어서 옴니버스식으로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요.
      이 글도 좋고, 어머니 관련 이야기요. 과부였던 아름다운 어머니에게 사랑받던 어린시절 이야기, 북쪽 약수터에서 요양중 위독한 어머니에게 세상에서 가장 늦게 달리는 기차를 타고 달려가는 이야기, 가난한 한약방 이야기, 딸 서영이(와 인형 난영이) 이야기, 영국 대사관의 가든파티 이야기 등등. 이야기마다 위트와 유머와 풍자와 낭만, 그리움과 사랑이 가득해서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영상에 담아도 재미있고 감동적일 거 같아요.
      샘터에서 나온 략간 두꺼운 [인연] 보다는 주요 수필들만 모아놓은 손바닥만한 범우문고판 [수필] 책을 저는 너무 아낀답니다. 여행갈때는 꼭 들고 가지요. 요즘은 나오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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