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나의 첫사랑~.
심심해서 첫사랑 이야기 해 봅니다.
제 첫사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찾아왔어요.
저는 당시 동네 성당 어린이 미사를 빠짐 없이 다니는 고지식한 바른생활 어린이였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동내는 신도시로 개발중이어서 주변이 어수선했습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와 당시에 벌써 개교 60년을 맞을 참이었던 오래 된 초등학교 건물 빼고는 태반이 공사중이었습니다.
등교길에는 항상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보였고 담임 선생님은 공사장에 가까이 가면 안된다는 주의와 함께
'예전엔 여기가 다 배 밭이었단다' 하는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쉬는 시간엔 아이들이 4학년 4반, 혹은 6학년 6반의 어떤 언니가 포크레인 때문에 다쳐서 죽은 후에 귀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구요.
그 난장판 속에 역시 공사중이었던 건물 중 하나가 제가 다니던 성당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저와 같은 교리반이었죠.
(교리반이란 성서와 신앙에 대해서 가르치는 성당 학교 쯤 되는 곳입니다. )
당시 저는 머쉬멜로우처럼 하얗고 통통한 어린 여자 아이였고,
그 아이는 팔다리가 빼빼로 처럼 마르고 까무잡잡한 키 큰 남자 아이였습니다.
반한 계기는 정말 단순합니다.
그 성당에는 지하 대성당(미사를 올리는 메일 홀 같은 곳)으로 연결된 장애자 및 노약자용 경사길이 있었는데
굉장히 천정이 낮은 통로였습니다.
어느 날 미사를 마치고 그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는데 조금만 키가 크면 천정의 서까래에 왠지 손이 닿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한 팔을 높이 뻗어서는 폴짝 폴짝 뛰어봤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편에 속했기 때문에 상당히 낮은 천장이었음에도 서까래에 손이 닿지 않았죠.
약간 분해서 폴짝 폴짝 뛰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시커먼 손이 나타나서 '턱' 하고는 여유있게 천장을 터치하는 거에요.
그게 바로 그 아이였고, 저는 바로 반해버렸습니다.
나는 팔짝팔짝 뛰어도 손이 안 닿는 곳에 그 아이는 여유있게 손이 닿는다는 게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더라구요.
(발 뒤꿈치 정도는 들었겠죠...걔도 초딩이었는데...)
그 후로 그 아이가 달라보였습니다.
교리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두근 거리면서... 그 아이 주변으로만 햇살이 비추는 것 같았고,
평소에 말이 없다가 가끔 조용히 장난을 치는 모습이 요즘 유행하는 '차도남' 분위기로 쿨하게 다가왔어요.
6학년 때던가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텔레비전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방영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가끔 케이블 틀면 대작 영화 방영이야 흔하고 재방 삼방 해주지만, 그 때는 그런 일이 드물었었고 그래서 본방 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만들어지기까지...' 비슷한 제목으로 제작 비화와 출연 배우들의 인터뷰를 모은 특집 방송까지 해 줬었습니다.
성당 교리반 꼬마들 사이에서도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는데 저의 첫 사랑이 '비비안 리 정말 예뻐' 라고 한 말 한마디에,
저는 질투를 하고 말았습니다.
초딩 주제에 전설의 여배우 '비비안 리'를 질투한 거죠.
'예쁘긴 뭐가 예뻐, 살아 있었으면 할머닌데... 내가 크면 더 예쁠 걸...' 하고 말이죠. (아직 덜 컸는지 그다지 예뻐지진 않았어요. ㅠ0ㅠ)
그리고 아마도 같은 해에 '아마데우스'도 방영이 되었는데, 저는 일부러 모차르트가 멋있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했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저는 애정 표현이 서투르고 어장 관리는 커녕 어쩌다 찾아온 물고기도 쫓아내버리는 성격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관심을 끌고 싶으면서도 일부러 속마음을 숨기려고 더 차갑게, 사내아이 같이 굴어버렸어요.
농담을 하면 까칠하게 받아치고, 그 와중에도 이쁘게는 보이고 싶어서 그 애가 보는 앞에서 갑자기 머리를 푼다든가,
새 옷을 입고 온 날이면 일부러 그 아이 앞을 왔다 갔다 했지요. (초딩 때부터 철벽녀...)
교리반에서 매주 '마니또 게임' 이란 걸 했는데 매주 제비를 뽑아 상대를 정할 때 마다 내가 그 아이를 뽑기를, 혹은 그 아이가 나를 뽑기를
속으로 로 얼마나 기도하고 또 했는지...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에는 자기 마니또에게 선물을 주고 받곤 했는데, 어느 해인가 부활절 날 그 아이가 제 이름을 뽑았었는지 제게 달걀 모양 양초를 줬어요.
저는 벌어지는 입꼬리를 꾹 누르며 새침하게 받아서는 그걸 고등학교 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했죠.
('마니또 게임'을 모르는 분은 주변의 언니, 오빠, 삼촌, 이모에게 물어보세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성당이 조금씩 층수를 늘리고 외관을 다듬는 사이에 저는 머쉬멜로우 초딩에서 찹쌀떡 중딩 정도로 커졌습니다.
해가 거듭해도 저는 여전히 키가 작고 통통했으며 흰 피부에 이마에는 사춘기와 함께 증폭된 심술과 신경질 갯수 만큼 여드름이 톡 톡 튀어나왔구요.
그리고 여전히 그 아이를 좋아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학교 선생님, 교리반 남자 선생님(돌이켜 보니 겨우 대딩), 만화 주인공(명탐정 번개, 그 와중에 멍멍이),
극기훈련 캠프장 교관 (돌이켜보면 대딩 알바)에게 마음의 외도(?)를 하긴 했어도
NO.1은 항상 그 아이였고,제가 돌아갈 마음의 고향은 그 아이였죠.
젊었을 때 즐기다가(?) 결혼은 그 아이와...(;;;) 뭐 그런 마인드였던 것 같습니다.
('극기훈련'이나 '명탐정 번개'를 모르는 분은 주변의 언니, 오빠, 삼촌, 이모에게 물어보세요~;;)
그 아이도 빼빼로 체형이 더욱 진화하여 부쩍 늘어난 팔다리를 주체 못하고 흐느적 거리는 중닭 같은 소년이 되었구요.
나중에 드라마 '종합병원'에서 신은경을 짝사랑하는 구본승을 보고 '닮았다'라고 느꼈었죠.
('종합병원'과 '구본승'을 모르는 분은 주변의 언니, 오빠, 삼촌, 이모에게 물어보세요~;;)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중학교 3학년 때였나...'견진성사'라는 천주교 의식이 있는데 그 때 그 아이도 있었어요.
그래서 단체 사진에 함께 찍혔는데 그게 유일하게 같이 찍은 사진이죠. 가끔 꺼내보면서 새끼 손톱 만하게 나온 그 아이
얼굴을 보고 얼굴을 붉혔습니다.
그 것 이외에는 중학교 시절에 그 아이와의 특별한 기억은 없습니다. 아마 머리가 좀 굵어지면서 가끔 미사를 빠지거나
교리반에 나가지 않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어버렸을 거에요. 그리고 당시에도 사교육이다 입시준비다 해서
커 갈 수록 성당에 나오는 아이들 숫자도 점점 줄어들었죠. 대신 '과고 준비반', '외고 준비반'이라는 학원이 붐볐구요.
그러다 고등학교 들어간 첫해의 학교 축제 때, 다른 학교로 배정을 받아 다니던 그 아이가 우리 학교로 찾아왔습니다.
제가 몸 담았던 서클에서는 물풍선 던지기 코너를 준비했는데, 저는 물풍선을 건내주는 역할이었어요.
(그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
그 아이가 저를 알아보고는 '어? 너 여기 다녔었어?' 하고 반가워하는데 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은 그 아이
신발 끝에 고정한 채 물풍선만 건내주었습니다. 그 날은 하루 종일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느낌으로 걸어다녔어요.
그 전날 대학생 큰 언니가 심심하다며 시험삼아 제 눈썹을 다듬어 줬던 게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을 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어떤 이유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1,2년 정도 성당과 담을 쌓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고3 때 입시가 다가오자
마음이 간사해져서 다시 미사와 교리 교실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숫자가 적긴 했지만 성당 친구들이 많이 남아 있었고
그 아이도 있었습니다.
내심 반갑고, 신경쓰이고 두근 거렸는데...
미사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가는 길에 누군가 그러더군요. '쟤는 신부님 될 거래' 라구요.
설마 농담이겠거니... 했는데,
정말 그게 꿈이라고 자기가 말을 하더군요.
성당의 신부님과 수녀님, 교리 선생님들도 다들 알고 그 아이를 특별히 아끼는 눈치였구요.
그래서 그날로 저의 길고 게으른 짝사랑이 막을 내렸습니다.
수능 시험을 보고, 가나다라군 맞춰서 원서 내고, 논술 시험 보고 하는 사이에 그 아이를 잊었고,
대학교 들어가서는 술 잘 마시고, 밥 잘 사주고, 취하면 '대학 시절에 꼭 해봐야 할 세 가지가 뭔지 알아?' 류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 '(당시엔) 멋있는 (줄 알았던) 선배'가 대신해서 제 마음 속을 차지했구요.
그러다가 인생의 이비와 희노애락을 아는 나이를 먹어버렸습니다.
(요즘도 국어 시간에 '요람기' 배우나요?)
가끔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 교정이 궁금해 지듯이 가끔 그 아이가 궁금해집니다.
겨울이면 큰 길 너머에 야외 스케이트장이 문을 열고, 비오는 날엔 포장 안된 학교 가는 길이 진흙탕이 되곤 했던
그 동네도 지금은 아파트 촌이 되어 제법 땅 값 비싼 곳이 되었다던데...
그 아이도 지금쯤 멋진 신부님이 되어서 작은 성당을 알차게 이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만나면 알아 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