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짐승 뒤치다거리 하고 약간의 애착을 형성하는 일
일반적으로 돌봄 노동으로 분류되는 일은 제 적성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터져나오면 오죽했으면 저랬을까-라는 생각부터 들 정도예요.(물론 강력히 처벌하고 그쪽 직종에선 아예 추방해야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 몇주간 병아리를 돌보면서 새삼 깨달은 건데 전 짐승 뒤치다거리 하는 일은 정말 취향입니다.
사촌언니의 아기가 침 흘리면서 저한테 오면 내한테 오지마 싶은데(내색은 안합니다) 맨손으로 닭똥 만지는 건 괜찮단 말이죠.
오늘은 회식 끝내고 집에 와서 똥밭이 된 바닥을 치워주려고 병아리 집으로 쓰는 상자에 손을 넣었더니
얘들이 안쪽 방에서 자고 있다가 제 손을 보고 갑자기 우르르 밖으로 달려나오는 겁니다.
뭔가 먹을 걸 줄 거라고 착각을 한 것 같은데 전 조금 감동해버렸어요. 아 얘들이 내를 밥 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구나- 이러고요.
이 멍청이들아 똥 치우러 온 거지 뭐 줄 거 없다, 라고 말은 했지만(모이도 밥그릇 가득 있었거든요)
실상 행동은 냉장고에서 배추잎 커다란 거 하나 꺼내주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설거지하면서 생각해 보니까 왜 이렇게 사소한 행동에 쉽게 감동하는 건가 싶네요.
연애하던 시절에 예전 애인이 기타 치면서 노래 불러줘도 아 참 이런 거 고맙기야 하다만 취향은 아니구나 이랬던,
무미건조한 인간인데 이름도 못 알아먹는 짐승들이 제 손짓에 달려오는 모습은 왜 이리 사랑스러울까요.
저한테 충성을 바치겠단 것도 아니고 고작 밥셔틀로 여기고 있을 뿐인데요.
무신론자 동물행동학자랑 연애해서 마다가스카르에 따라가 알락꼬리여우원숭이 똥 주으러 다니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같은 기분으론 무신론자가 아니라 근본주의 일신교도여도 따라 갈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