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이즈 로스트를 봤습니다.
[그래비티]의 10분의 1도 안되는 제작비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그래비티]의 영화적 세련미에 비하면 떨어져보일수도 있습니다.
시종일관 로버트 레드포드의 힘든 일상을 찍으면서, 그 일상을 점프컷으로
편집하고 있습니다. 뭐...편집 문제도 가끔 지적당하는 느낌인데요,
정말 그 어떤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 1인극의 한계랄까? 그게 연출-기술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조금은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도 풍깁니다.
생각해보면 뒤뚱거리는 보트와 배우 한 명만 등장하는 환경에서 촬영-편집으로
순수하게 영화가 될 수 있을런지 굉장히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 1인극은 또 다른 단점이 있습니다. 이 영화 스타일은 정말 건조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랄까요.
[그래비티]에서 나온 일종의 캐릭터 설정-또는 환상장면같이 캐릭터간의 일말의 교류도 없을 뿐더러,
[그래비티]의 그 따뜻한 정서(무전기씬), 마지막 장면의 카타르시스도 완전히 배제하고 있습니다.
또 [그래비티]에서 잔해 충돌장면에서 나타나는 급박한 음악조차 없이, [올 이즈 로스트]는
폭풍 장면에서 일종의 음악도 없습니다. 같은 1인극인 [127시간]의 유머도 없고,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
[라이프 오브 파이]의 '리차드 파커'같은 존재도 없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은 영화에서 3마디만 할 정도로
과묵하고 유머도 없습니다. 정말 1인극에서 보여줄 수 있는 온갖 장르적 장치를 자기 스스로 몽땅 잘라냅니다.
보면서 정말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근데 이 영화는 그 단점을 끌어안고, 기꺼이 영화적 성취에 도달하는 느낌입니다.
그 과묵함, 그 어떤 겉치레를 모두 벗어버린 순수함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보는 내내 '실존'이란 단어가 아른거립니다. 주인공의 심정이 구구절절한 나레이션없이도,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한 행위를 담은 이미지만으로도 대체되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한 노인의 생존 투쟁기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생존 투쟁을 할수록 죽음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한 행위와 도구들은, 실패와 소진으로 계속 끝납니다. 어쩌면 코엔 형제라면 이거도
유머로 썼을 법한데...(2002년에 브래드 피트 주연으로, 2차대전 배경에 조종사가 섬에 불시착하는 일종의
'무성영화'를 만들려다 엎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참 몹쓸 비교지만, [그래비티]가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에 가깝다면, [올 이즈 로스트]는 미카엘 하네케 영화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어쩌면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아무르]같기도 합니다.
하여튼 영화를 볼 때보다, 본 이후의 감흥과 여운이 더 길게 남았습니다. 굉장히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