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가 재미있어서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웠던 경험 (2013)

1년쯤 전에도 비슷한 글을 올렸는데, 작년말 부터 올해 동안 읽은 책들 돌아 보고 다시 올려 봅니다.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는 "어떻게 되는 거야?" "그래서 끝에가서 어떻게 되는데?" 라면서 빠르게
단숨에 읽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꺼운 책이라도 잠깐 사이에 다 읽어 버리게 되는 겁니다.

올해 제가 읽은 책 중에는 경찰 소설 시리즈의 대표작 87분서 시리즈 "살의의 쐐기"나
유행따르는 연애 소설의 날렵한 모습을 보여줬던 소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같은 책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서,
훨썬 더  재미난 책을 읽다보면,
너무너무 재미나서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읽게 되고
완전히 몰입해서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진짜처럼 안타까워하고,
책 속의 세상이 영영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만큼 책 내용에 푹 빠져서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책을 읽으면서 남은 책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자꾸 남은 분량을 의식하게 됩니다. 벌써 끝나면 안돼... 하면서 말입니다.

중독성있는 TV프로그램 볼 때에도 TV프로그램 끝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아쉽게 느껴져서
자꾸 시각을 확인하던 경험도 있는데(다른 분들도 있으신지요?), 이것도 비슷한 느낌이지 싶습니다.

작년 말에서 올해 사이에 읽은 책 중에는 이런 것들을 꼽아보자면,



1.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이미 2000년대에 유행했던 책인데, 저는 빌 브라이슨 책 중에서는 비교적 뒤늦게 보게 되었습니다.
빌 브라이슨의 특징인 과장과 농담으로 엮은 수필들은 "발칙한 미국학",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를 재밌게 봤고,
반대로 유명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재미없게 봤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웃긴 글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래도 빌 브라이슨이 웃기게 쓰려고 하는 건 술술 잘 읽히기는 하니까."

하면서 잡았던 것이, 가장 잘 팔린다는 "나를 부르는 숲"이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많이 걸어다니는 여행, 정처 없고 일정 없는 떠돌이 여행이라는 것을
어릴적 부터 워낙 동경하던 터라, 그렇게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읽다보면, 이 책이 처음 나왔던 90년대 후반에는 날카로웠던 풍자, 놀리기였던 것이
이제는 너무 널리 퍼져 유행이 한번 돌아서 좀 피상적이고 맥빠지기만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래도 전반부 같은 경우에는
웃긴 경험, 과장하는 농담 말투, 풍자, 아름다운 풍경 묘사가 잘 어울려서 무척 재미났습니다.

취미로 등산하는 재미를 좋아하는 느낌에 보기에는 정말 즐거운 책이었고,
또 작년부터 몰아 닥친 주위의 캠핑 열풍과 묘하게 어울려서 더 재밌고 즐겁게 읽어서,
계속해서 비슷한 여행, 끝없는 여정이 계속 되기를 바라게 되어 책이 끝나는 것이 참 아까웠습니다.


2.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은 소설 보다는 수필 쓰는 작가 아닌가... 싶어서 유명한 책인데도 안보고 있다가
올해에야 보기 시작한 소설책이었습니다.

책 내용은 평범한 이야기인데 화려한 수사법과 안어울릴법한 온갖 과한 학술용어들을
막 퍼부어서 오히려 재미를 자아 내는 수법이 엮여 있는 것인데...
말하자면 옛날 딴지일보 같은 곳에서 사소한 소재나 별볼일 없는 영화에 대해서
별별 분석 및 잡담들을 길게 서서 재미나게 써 올릴 때 쓰던 수법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요즘 읽으면 이런 식으로 말 늘어 놓는 것이
약간은 철지난 유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게 참 잘되어 있어서, 예리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기까지 이야기의 면면을 늘어 놓는 것의
재미난 부분들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특히나, 평범한 사랑 이야기 - 그렇지만 그만큼 누구에게나 와닿고 애절한 이야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주절주절 말 많이 늘어 놓으면서 웃긴 소리 많이하는 것이
워낙에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 거리라서, 더욱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간에 "삐짐"에 대해서 고찰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고
결말 부분의 "500일의 써머" 같은 영화 끝날 때 분위기 비슷한 감상도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3. 아직은 신이 아니야 (듀나)
듀나님의 최신작으로, 이곳저곳에 저도 이미 따로 감상글을 올린 적 있는 책입니다.

짧게 다시 돌아 보자면,
"면세구역", "태평양 횡단 특급"과 함께
지금까지의 듀나 3대 걸작집으로 누구나 꼽을만한 책입니다.
흡인력으로 따지면 이야기가 연작소설이라서 이어지는데가 있어서
"면세구역"이나 "태평양 횡단 특급"보다도 앞서는 면이 있으니,
조금 낯간지럽지만,
한국 SF 소설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꼽아도 될만한 소설이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중반부 소설들의 몇몇 화통하고 후련한 전개나,
한국적, 내지는 아시아 공업 국가의 신도시적인 지역색이 사는 부분을 감안하면,
세계 SF 소설계에서도 뚜렷한 위치를 새길 수 있는 멋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편들이 담겨 있는 책이지만, 꾸준하게 같은 세계를 배경으로 이어져 가는 내용이고
등장인물들 중에는 다른 이야기에 반복해서 나오고 있는 경우도 있어서,
한 편, 한 편 이야기 읽어 갈 수록
어느 책 보다도 "끝나 가는 것이 아까운 느낌"이 큰 책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책 읽다가 재미있어서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웠던 경험 있으십니까?
있으시면 무슨 책을 읽을 때였는지요?
    • 주로 단편집이 그렇지요/ 번역하는 분량이 줄어드는게 아쉬운 그런 책을 빨리 만나야 하는데
      • 정반대로 정말 재미있으면, 책속 세계에 정이 들면서 푹 빠지게 되는 기나긴 대하소설류도 비슷한 느낌 드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 듭니다.
    • 곽재식님이 추천하신 책이니 일단 저장합니다~
      • 앞의 두 권은 스테디셀러급이고, 듀나님 책도 널리 좋은 평 받는 책이니 큰 후회는 없으실 것입니다.
    • 아직은 신이 아니야 어제 다 봤는데 대단하더군요.
      분량 줄어드는게 아까워서 하루에 한 챕터씩만 읽었더니 한 열흘 정도 걸리더라고요..
      • 저는 서점에 나온 DAY1에 바로 서점에서 사서 집에 들고 오는 길에 그냥 폭독 해버렸습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껴 읽도록 참지 못할 만큼 계속 읽고 싶어서.
    • Bill Bryson씨의 I'm A Stranger Here Myself는 어느 정도 정착한 후의 얘기입니다. 이것도 엄청 웃겼어요.
      • 국내에는 안나와 있는 책인것 같습니다. 빌 브라이슨 다른 책들이 서서히 절판되는 것도 좀 아깝습니다. 그러다보니 헌책방에서 겨우 구해서 산 책도 한 권 있습니다.
    • 재미면만 따진다면 헝거게임 시리즈...밤 잠 설쳐가며 봤습니다. ㅎㅎ
      • 저는 왜인지 초장 이야기가 잘 안잡혀서 제대로 못 읽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별 이유없이 좀 재미없게 여기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 레이먼드 챈들러의 모든 책들이요
      특히 롱 굿바이에서 등장인물간의 케미는 정말...끝까지 다 보자마자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보고 또 보고 요즘 계속 보고 있어요
      • 저는 레이먼드 챈들러는 "롱 굿바이"와 함께 "리틀 시스터", "안녕, 내 사랑아"가 재밌었습니다. "롱 굿바이"에서 "금발"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부분은 레이먼드 챈들러스러움을 그냥 불살라버리는 봉우리였다는 감상이었는데, 저는 그래도 "리틀 시스터"가 옛날 느와르 영화 분위기와 훨씬 더 잘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라 그런지 조금 더 끌립니다.
    • 밀레니엄 시리즈를 시작했는데, 1부를 정말 재밌게 봤고. 2,3부는 주인공 살란데르의 이야기인데 이게 전체 이야기의 포석 정도로 깔리고 그 뒤로 4부 정도부터는 더 큰 판의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는 느낌이 계속 드는 거에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제 이어지지 않죠. (작가가 죽었죠...) 그런 생각이 드니 재밌어서 계속 읽을 수밖에 없는데 한편으로는 더 이상 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게 억울하고 우울한 감정... 아.
      • 저는 영화만 봤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좀 전형적인 이야기 같아서 책은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말씀해 주시니 다시 한 번 찾아 볼 생각이 듭니다.
    • 저는 기시유스케의 <악의 교전>이요. 하스미가 병원에서도 난동을 좀 부려줬으면 했는데...
      • 추천은 몇 차례 받았던 책인데 미처 읽지 못한 책입니다. 최근에 일본 추리소설 여럿 중에 "악의 교전", "아웃" 사이에서 고르다가 "아웃"을 읽었는데 초반에 비해 중반 이후가 영 실망스러워서 아까웠던 적 있습니다. 다시 "악의 교전"에도 들러 붙어 볼 생각 듭니다.
    •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와 모살기가 제겐 그런책이었네요.
      • 훌륭하십니다!

        제가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였는데, 이 책은 "끝나는 것이 안타깝다"는 느낌은 없었던 것이, "계속 이런 이야기가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 속편격인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대로 속편격인 이야기를 이 손으로 쓰면 되었기 때문에 맘편하게 죽죽 읽을 수 있었습니다.
        • 이 손으로 쓰면 되었기 때문에,라니 우어어 쫌 멋있으시다.
          • 이런게 1년 후에 보면 부끄럽다는 작가의 허세인데... 사실 "속편이야 쓰면 되지"까지는 그럴만도해서 괜찮은데, 자기 책이 제일 재밌었다는 허세는 제가 봐도 좀 무리수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쓴 것 중에 저도 맘에 안드는 것도 사실 많은데,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수록작들은 참 재밌었습니다.

            오늘도 잠깐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수록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를 좀 읽었는데, 중간에 여자친구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신경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어색해하면서 밥을 먹고 있는데, 그 분위기 잘못타서 괴상하게 과식을 해 버렸다는 대목을 보고는 - 이 부분 어떻게 이렇게 재밌게 잘썼나... 싶었습니다.
    • 올해 읽은 책으로만 따지자면 저는 랠프 앨리슨의 보이지 않는 인간이요. 번역된 글이었지만 작가가 전달하려는 리듬이 전해졌어요.
      • 저는 올해의 번역작 중에서 "리듬감"스럽게 읽었던 것들은, 필립 K. 딕 장편 소설들이 생각 납니다. 한국어 번역판들이 줄줄이 나와서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좋은 소설이라는 느낌에 가까웠던 것은 "유빅"이었는데, 애착이 가고 다시 보게 되는 쪽은 "화성의 타임슬립"이었습니다.
    • 오! 감사히 스크랩하겠습니다.
    • 1. 제목이 나를 부르는 '숲'이길래 정말 숲인 줄 알고 봤는데 애팔래치아 산맥 종주더군요.

      이런 종류의 책이라면 동무 겸 가이드로 경험이 풍부하고 인간성이 좋은 사람을 고를텐데, 빌 브라이슨과 같이 간 카츠는 여러 면에서 깨는 인물이었더라고요.

      그리고 여정의 마무리도 여러면에서 깼지만(스포라면 스포니까) 둘에 걸맞는 마무리라고 납득이 갔습니다. 사실 전 그 마무리에 꽤 감동받았어요.
    • 나를 부르는 숲 국내판이 표지에 곰 얼굴이 반쯤 그려진 그것이지요? 저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 올해는 읽어야 하는 텍스트에 치여 그 외의 독서를 많이 못 했네요. 줄어드는 게 아깝기보다는 아 아직도 이만큼이 남았어 하는 절망감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ㅠㅠ
    • 요즘 딱 나를 부르는 숲을 읽고 있는 중인데 재미있어요. 다만 예전에 김영하 팟케스트에서 빌브라이슨 책 소개하면서 자기는 카츠가 실존인물인지 의문이 든다란 얘기를 했는데,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읽으면서 계속 카츠는 실존 인물일까 빌브라이슨이 지어낸 인물일까, 이러면서 계속 읽게되네요.힝.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해외에서도 카츠의 존재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긴 하더라구요.
    • 천명관의 '고래'와 정유정의 '28'이 그랬어요.
      중간쯤 읽다가
      '아, 여기서 그만 읽을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배부른데'하는 느낌도 받았어요.

      '아직 신은 아니야'는 아껴서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책 두께가 얇은 편이라 아껴 읽게 되는군요.
    • 게시물 참 은혜롭습니다..
      연말에 보너스가 있으려나..
      하지만 사놓고 읽지도 않은 책이 산더미. ㅠㅠ
    • 전 어슐러 르귄의 어스시 연대기하고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어벤저와 코브라요. 이야기가 끝나고 주인공들을 더 볼수 없다는게 너무 슬펐습니다.
    •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가 그랬어요. 막 읽다보니까 어느새 1/3도 남지 않았길래 엄청 슬펐죠. 테드 창씨를 찾아가서 바짓가랑이 붙들고 더 써달라고 애원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 밀레니엄 시리즈요. 얼마 전에 읽은. 미야베 미유키 에도 시리즈 거의 다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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