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아프셨던 아빠

1.

저 아래 회사 직원의 아버지가 10년 병치레를 마감하시고 가셨다는 글을 보니..저도 저희 아빠 보내드리던 생각이 나서 몇글자 써봅니다.

벌써 2년이 다되어 가네요.

아빠도 5년을 아프셨어요.

조기위암이라 진단이 나와  내시경을 통한 간단한 수술로 해결될 줄 알았던 것이 수술로 이어지고, 수술 후 또 염증발생으로 거의 두달을 물 한모금 못드시고 고통스러운 병원생활을 견뎌내셨고

퇴원 후 즉시 항암치료..

일년반 후 재발

이후 계속되는 항암치료- 정맥주사, 경구투약, 토모테라피, 일반 방사선 치료, 할 수 있는 것들은 다해봤지요.

그리고 2년 전 여름 주치의가 치료를 포기하고 초겨울 돌아가실 때까지 통증케어밖에 없었지만 일정 정도의 통증을 벗어나니 집에서는 감당이 되지 않더군요.

통증 완화 패치를 온 등에 빈틈이 없도록 빼곡히 붙이고, 보통사람은 반알만 먹어도 정신이 혼미해질만한 강력한 진통제를 수시로 한주먹씩 드시고, 몰핀을 링거에 섞어 맞고 계셔도 순간적인 통증이 올때는 추가로 또 진통제를 맞으셔야만 했고, 밤이면 강력한 수면제 없이는 두시간도 수면이 불가능한 시간을 보냈어요.

나중에는 제발 이제는 나를 보내달라셨지만 오빠도 저도 그 눈길을 외면할 수 밖에 없었어요. 자식으로서 차마 그 손을 놓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아니 더 적극적으로 아빠의 남은 삶을 연장하기 위한 노력을 했어요.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 긴 고통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렸어야 맞는게 아닌가 싶지만, 그 당시는 그날그날의 혈액검사 수치가 조금만 안좋아도, 식사량이 조금만 떨어져도,  알부민이다 뭐다 영양제를 놔달라고 주치의나 레지던트를 붙잡고 늘어졌었죠.

위암이 폐로 전이되고 나중에는 뼈까지 전이되는 극심한 고통속에서 마지막에는 폐렴이 와서 열이 펄펄 끓어오르는 와중에도 아빠는 끝까지 정신을 놓치지 않으셨고 신변 청결 또한 철저하셨죠. 그래서 더욱 더 우리 가족들은 아빠가 그리 급하게 가실거라 생각을 못했던 거 같아요. 전날까지 또렷하게 계시다가 다음날 그리되셨으니...

 

2.

아빠가 가시고 아빠 지인들께 부고를 전해야 했습니다.

일견 예견되어 있었기에 아빠 수첩을 받아 연락처를 모두 미리 엑셀에 정리를 해두었던걸 출력해 전화를 돌렸어요.

거의 모든 전화번호가 011, 017, 018, 019 로 시작되고 있었고

70%이상의 전화가 결번이거나 명의가 바뀌어 있었어요.

아빠가 아프시기 전까지는 꾸준히 사회활동을 하고 계시고 인맥이 제법 넓었었는데 5년이 채 안되는 투병기간 동안 주변의 사람은 거의 떨어져 나가고

동창과 오랜 친구, 한동네에 오래 거주했기에 동네분들만 남아있더군요.

다행히 오빠와 제가 장성해서 각자의 직장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기에 장례식장은 정신없이 북적거렸죠.

그런 북적거림 속에 아빠 잃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뭉쳐두고 있을 수 있었던거 같네요. 어쨌든 해내야 하니까요. 엄마는 거의 실신 지경이고 오빠도 문상객을 맞이하느라 정신없었고, 저도 제 문상객을 맞으면서 또 어찌되었던 이틀간의 살림을 꾸려내야 했으니까요..

 

3.

오랜 아빠의 투병 끝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몇몇 있습니다.

큰 수술을 하고 난 후 환자 본인도 가족들도 정신이 없을 때 오지 말래도 부득불 찾아오시던 아빠의 지인들.. - 이후 예의상의 전화도 없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병문안..그거 본인이 원치 않으면 엄청난 민폐이니.. 자제했으면 좋겠습니다.

 

눈이 펑펑 내려 저도 병원을 들러 일찍 집으로 나선 날

제가 병원에 없었는데도 겨울철 귀했던 고급과일 들을 한아름 챙겨서 찾아와 엄마와 아빠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갔던 친구

 

그리고..마지막으로..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날 문병을 왔던 대학 선배..

제법 멀리살던 선배인데 마치 이웃동네 놀러오듯 그냥 보고 싶어서 왔다며 와서 너만 봐도 되고 아빠가 허락하시면 아빠 뵙고 가겠다고 조심스레 물어보던 선배..

가족이 아닌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아빠를 뵈었던 사람이예요.

그리고 직장이 있었는데도 이틀 밤을 함께 지세워주었고요.

겨울 북해도 여행을 다녀와서.. 그냥 생각나서 샀어 아빠 가져다 드려~~ 하며 타르트를 한통 쑥 내밀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아마 평생을 두고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될 거 같네요.

 

4. 마지막으로....

오늘이 제가 지금 회사에서 일한지 만으로 14년 되는 날입니다.

오늘 밤 조촐히 자축파티라도 할까합니다..

그 파티는 두산의 코시우승 파티를 겸하리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 지금 철없는 생각이기는 한데 부모님 가실때 그냥 조용히 같이 있다가 보내드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 조금 있습니다. / 난 어디 팬도 아니니, 이 원글에서는 곰돌이 편 되어 드리지요.
    • 담담히 쓰셨는데 마음이 싸하게 아픈 글이네요. 슬퍼서라기 보다는 슬픔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여름숲님의 마음이 어느 정도 느껴져서요.
      14주년..축하드립니다. 한 직장에 오래 있는게 참 힘든 일인데, 대단하시네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하실 것 같아요.
      두산 코시 우승............... 믿어의심치않습니다2
    • 4번 반대요!

      결승은 11월로 이월~ 이월~ 이월~
    • 저도 항상 제가 죽을 때에는 정말 내 주변사람에게
      슬픔을 주지 않고 가기를 바라고 있어요

      힘든 일 이겨내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
    • 이런...담백해서 더 먹먹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힘든 시간 이겨내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버님도 여름숲님도.
    • 김전일/그냥 조용히 있다가.. 아빠가 그런 복을 타고난 사람을 엄청 부러워하셨었어요. 꼭 그렇게 되시길..
      러브귤/벌써 덤덤해지다니.. 그래도 기일이 한달정도 앞으로 다가오니 센치해는 거 같아요.. 여러모로? 감사 ^^ 참..이직 후 해외이주는 잘 준비중이신가요?
      이인/이인님의 반대와 세상은 무관합니다!! ㅎㅎㅎ
      흐흐흐/생노병사.. 원하는 것 그무엇 하나도 바라는대로 되는 것이 없어 인생 아닌가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굿럭,잡음/고생은요 뭘 아픈분은 오죽하셨을까 싶습니다.
    • 두달전에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보냈던터라 펑펑 울었네요. 지병이 있긴 했지만 지병과 관쳔없이 사고사였거든요. 마지막으로 봤던 사람이 저였는데 경황없이 실감도 못하고 보내드렸던게 기억나네요.

      다헁스럽게도 저희 아버지가 모임은 계속 하고 계셨어서 모임분들도 오셔서는 이틀전까지 멀쩡하고 심지어 더 건강해지던 양반이 이게 무슨일이냐고 하셨었고...

      도저히 납득이 안되서 보내드리고도 실감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보니까 그 ㄸ개 장례식장에서 내가 왜 여기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때가 떠오르네요.

      그래도 눈물이 나는건 머리로는 돌아가신걸 알고 있어서이겠죠.
      • 아 수프님 맘고생 많으셨겠어요.
        저는 그렇게 준비를 많이 하고 맞았어도 경황이 없고 힘든 시간을 겪었었는데 사고라니..
        남은 가족 특히나 어머니가 계신다면 함께 위로하고 함께 보듬는 시간을 많이 가지세요.
        배우자를 잃은 상대방은 그게 회복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희 엄마도 그때 이후 여지껏 병치레를 계속하고 계셔요.. 몸의 병도 마음에서 오는 거죠.
        • 여름숲님 댓글보고 반성하게 되네요. 내 생활 바쁘다고 어머니께 좀 무신경했던것 같아요. 이번달부턴 새사람이 되어야 겠어요. 조언 감사합니다.
    • 저희 가족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갑자기 폐렴이 오고 바로 다음날 돌아가신 것도 비슷하네요.
      고통 속에서 돌아가시게 한 것이 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아파요. 결국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더 편하게 보내드릴 수도 있었는데.
      • 네 누구나 사람은 죽지요.
        저희도 많이 고민하고 또 나중에 후회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누구든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힘이 듭니다.
        저는 지금부터라도 저라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지키면서 죽기위한 의료주권을 가지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인위적인 영양공급 등은 거부한다는 서명도 미리 해놓을 예정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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