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친화력 퀸에 대한 기억
오래 전 모가수의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가 있어요
나름 30년 넘게 살면서 다양한 사람을 봤다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도 그녀보다 친화력 좋은 사람은 만나 보지 못했어요
딱히 엄청 활달하다거나 재밌다거나 인간적으로 굉장한 매력이 있다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친구 주변에는 미친듯이 사람이 많았습니다
살아온 환경이 좀 드라마틱(?)하긴 했어요
대학전까지 제주도에서 성장했고 엄마가 교편을 잡고 있는 고등학교에 엄마랑 같이 다녔으며
서울에 상경해서는 중위권대 법학과를 다니면서
매일매일 비디오를 1편씩 보는 그런 친구였어요
서울에 전세집을 얻어서 동생과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집이 좀 부유했던 덕인지 경제적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돈도 잘 쓰는 편이었지요
그녀와는 안 친한 사람이 없었어요
심지어는 신입회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팬클럽 임원하고도 친해서
임원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모가수의 자세한 스케쥴까지는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거든요
한 번은 그녀와 무슨 일로 개인적으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있는데
제가 무슨 질문인가를 했더니
기분이 아주 좋을 때 만나는 친구가 있고,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을 때 만나는 친구가 따로 있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저는 친구가 거의 없어서 기쁠때나 슬플때나 연락을 하는 친구는 정해져 있었거든요
저로서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었지요
기분에 따라 골라서 만날 만큼 친구가 많다는 거..
그런 건 대체 어떤 기분일지요
그녀는 졸업전에 방송국에 막내작가로 들어가게 되었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끝으로 그녀와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SBS의 옴부즈맨 프로그램에서 어떤 퀴즈쇼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작가라고 하면서 인터뷰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아마 지금은 메인작가가 되어 있겠지요
그 친구에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저는 참 그녀가 부러웠었습니다
친구가 많은 것도 부러웠고 모두와 친하게 지내는 것도 부러웠어요
그녀의 성장환경도 하다못해, 방송작가가 된 것도 부러웠습니다
저도 꿈이 방송작가 였거든요 하지만 프리랜서라는 특성상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않으면 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고
친화력 제로에 성격이 좋지 않았던 저는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어요
졸업사진 찍을 때 입을 정장이 없어서 인천에서 수원까지 옷을 빌리러 가야했던 가난한 2년제 대학생이었던 저는
그 친구는 생각하면 늘 마음이 쓰렸습니다 열등감때문이었겠지요
친구도 없이 외롭고 가난한 20대를 지나 지금은
착한 남편 만나서 사랑 많이 받고 나름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만일 방송작가가 되었다면 사내커플이었던 지금의 남편과도 만나지 못했겠지요
이래서 인생이란 정말 모르는 것인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