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찾아온 날
일요일 오후, 친구의 전화를 받았어요.
전화를 받자마자 지금 출발하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더군요.
아내와 아기도 같이 간다고 덧붙였죠.
친구는 중간에 두어 번 전화를 걸어 길을 물어봤어요.
제가 시골에 내려온 뒤 처음으로 찾아오는 방문객이었어요.
비만 내렸던 여름의 막바지였죠.
마을회관이 보이는 길이 맞느냐고 묻는 전화를 받았을 때 저는 집을 나섰어요.
길 위에 친구의 차가 보이자 손을 머리 위로 크게 흔들었죠.
그 모습을 보고 친구는 천천히 차를 돌렸어요.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 있더군요.
조수석에 올라탄 다음 몸을 돌리고 아기의 얼굴을 봤어요.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서울을 떠났으니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이었던 거죠.
아기에게만 시선을 향한 채 혼자 웃고 있으니
친구의 아내가 ‘오빠, 잘 지냈어?’ 하고 인사를 했어요.
별로 달라진 모습은 아니었죠.
그녀는 친구보다 나이가 좀 어렸어요.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종로에서 처음 봤을 때는
대학교 일 학년이었는데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죠.
시내 쪽으로 향하는 도로는 꽉 막혀 있었어요.
차들이 이렇게 많은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저는 조금 당황했죠.
일요일 오후, 그리고 가볍게 비가 흩뿌리고 있었어요.
차가 꼼짝도 못하고 있자 저는 차라리 차를 돌려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어요.
굳이 시내 쪽으로 가지 않아도 음식점은 많았으니까요.
반대 차선은 텅 비어 있었죠.
앞쪽에서 털털거리는 경운기를 추월할 때는 다들 웃음을 터뜨렸어요.
저는 그게 늘 보는 광경은 아니라고 말해줬죠.
친구는 송풍구에 잠시 손바닥을 대 본 다음 에어컨을 껐어요.
뭘 먹으면 좋을지 결정을 못하고 도로를 따라 늘어선 음식점 간판만 하나 둘 지나쳤죠.
친구는 막 글을 배운 아이처럼 간판에 적힌 메뉴만 읽고 있었어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 때쯤 친구의 아내가 아까 지나왔던 오리고기집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친구는 다시 차를 돌렸어요.
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은 짙은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었죠.
흐린 날 저녁이면 볼 수 있는, 그 특유의 빛깔 말이에요.
오렌지색 등이 곳곳에 불을 밝히고 있는 그곳은 음식점이라기보다는 카페 같은 분위기가 났어요.
풀이 무성한 마당에 차를 세우고 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친구는 혹시 손님이 아무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어요.
저는 우리가 타고 온 차만 덩그러니 서 있는 마당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죠.
예상대로 텅 비어 있는 홀을 지나 방으로 올라가 앉으니
넓은 유리창 너머로 풀이 무성한 마당이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어쩐지 아늑한 기분이 들었어요.
종업원에게 훈제 유황오리를 주문하고 나서 친구는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했죠.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서자마자 담배를 달라고 했어요.
두세 모금만 피우고는 바로 끄더니 화장실을 나섰어요.
혼자 남아 계속 피우기도 뭐해서 저도 곧 담배를 끄고 말았죠.
친구의 아내는 아기가 누구를 닮았느냐고 물었어요.
저는 아기가 친구를 쏙 빼다 박았다고 말했어요.
친구의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죠.
친구의 아내는 ‘딸은 아버지를 닮는다는 말이 진짠가 봐’하고 중얼거렸어요.
그리고 어디가 그렇게 닮았느냐고 다시 물었죠.
저는 아기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어요.
딱 꼬집어 어디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기는 친구를 참 많이 닮았더군요.
‘글쎄, 그냥 한 인간의 본질이라고나 할까? 단순히 겉모습만이 아니라 그걸 넘어서서 결정적인 뭔가가 닮았어.’
친구의 아내는 ‘그래?’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아기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어요.
퉁퉁한 볼을 발갛게 붉힌 아기는 잠이 오는지 눈을 거의 감다시피 하고 있었죠.
훈제 고기는 맛있었지만 좀 더 결정적인 뭔가가 빠져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맥주를 한 잔 두 잔 마시는 사이에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 갔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시를 떠난 저의 시골생활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친구는 내년에 마을 청년회장 자리에 도전하라고 농담을 했어요.
‘여긴 그런 것도 없을 거야. 말만 시골이지 아직 여기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정말 원하는 곳에서 살려면 좀 더 깊이 들어가야 된다니까.’
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렇지만 이곳이 마음에 든다고 덧붙였죠.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다고 했어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창문만 열면 산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밤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줬어요.
그날 밤, 잠에서 깼을 때 배가 조금 출출했죠.
컴퓨터 앞에 잠시 앉아 있다가 결국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주방으로 향했어요.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 위에 얹은 다음
점화 스위치를 켜려는 순간 문득 동작을 멈췄어요.
어쩐지 라면이 먹기 싫었어요.
좀 더 따뜻한 것, 아니 좀 더 결정적인 뭔가를 먹고 싶었죠.
차를 몰고 이십 분 거리의 시내 쪽으로 향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음식들이 떠올랐어요.
설렁탕이나 순댓국, 그게 아니라면 뼈다귀 해장국이라도.
서울에 있을 때 산책 삼아 밤거리를 걷다가 즐겨 먹었던 음식들이었죠.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도로에는 차들이 한 대도 다니지 않았어요.
시내에는 몇 대의 차들이 조용조용 지나다니더군요.
저는 천천히 중심가를 한 바퀴 돌면서 주위를 살펴봤어요.
불을 밝힌 것은 편의점, 그리고 김밥천국뿐이었죠.
한 바퀴를 돌고 다시 한 바퀴를 더 돌았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설렁탕집은 없었어요.
순댓국집은 하나 있었지만 불은 모두 꺼져 있었구요.
골목 한쪽에 차를 세워 두고 김밥천국으로 걸었어요.
거리에는 술에 취한 중년의 여인 두 명이 택시 앞에서 큰소리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죠.
택시를 타려는 한 여자를 다른 한 여자가 붙잡고 있었어요.
다른 말은 없고 그저 ‘씨발놈’이라고 외치는 여자 목소리가 한두 차례 텅 빈 도로에 울려 퍼졌어요.
택시는 빨간 미등을 켠 채 기다리고 있었죠.
문을 열고 들어설 때 창가에 잔뜩 쌓인 차가운 김밥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저는 자리에 앉아 빽빽하게 적혀 있는 메뉴를 한참 바라봤어요.
적어도 삼십 개는 넘을 것 같았죠.
저 조그만 주방에서 그 많은 음식을 어떻게 다 만들 수 있다는 것인지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거기에는 먹고 싶은 음식이 아무 것도 없었죠.
저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더 메뉴를 들여다보다가 결국 뚝배기 불고기를 주문했어요.
뚝배기는 보글보글 끓고 있었지만
왠지 그건 몹시 차가운 음식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거기에는 결정적인 뭔가가 빠져 있었어요.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 정말 그랬어요.
저 말고 다른 손님은 김밥과 라면을 먹고 있는 서너 명의 택시 기사들뿐이었죠.
김밥천국을 나왔을 때도 여자들은 거기 그대로 있었어요.
택시는 떠나고 없었죠.
택시를 타려던 여자는 도로가에 걸터앉아 마침내 흐느끼고 있었어요.
다른 여자는 여전히 팔을 잡아끌고 있었구요.
차를 세워 둔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 등 뒤에서 다시 한 번 ‘그 씨발놈 때문에’하고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강이 보이는 공터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한 대 피웠어요.
강물에 비친 달빛 주위에 언뜻 먹이를 찾는 황새 같은 것이 보였죠.
얘기를 끝내고 ‘재미있지?’하고 물었더니
친구는 헛웃음을 한 번 웃더니 ‘그건 왠지 슬픈 얘긴데...’하고 말을 얼버무리더군요.
자는 것 같던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자 친구의 아내는 젖병을 꺼내 아기에게 물렸어요.
그리고 일어서서 천천히 아기를 안고 흔들었죠.
아기를 낳았는데도 몸매가 여전히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살이 좀 쪘느냐고 묻자 그녀는 피식 웃으며 오히려 더 빠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늘 소녀 같던 여자였죠.
친구는 술에 취해 잠들고 둘이서 밤늦게까지 체스를 뒀던 날이 문득 떠올랐어요.
그리고 월드컵 스페인전 때 빨간 두건을 쓴 그녀의 모습도.
저는 혼자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어요.
마당에는 풀이 무성했죠.
불을 환하게 밝힌 창 안쪽에는
친구의 모습, 그리고 아기를 안은 친구 아내의 모습이
미술관 벽에 걸린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왔어요.
두 사람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제게는 들리지 않았죠.
하지만 그건 참 따뜻한 그림이었어요.
저는 가까이 다가가 창을 톡톡 두드려 보았어요.
친구의 아내는 웃으며 아기의 손을 잡고 살짝 흔들어 주었죠.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친구는 다시 화장실에 가자고 했어요.
또 담배를 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담배를 피우면서 시는 많이 썼느냐고 물었죠.
그 말에 친구는 얼굴을 조금 찡그리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어요.
‘시를 못 쓰지... 아기 보느라고 책도 제대로 못 읽는데.’
그리고 아직 한참 남아 있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죠.
친구의 아내는 아기를 안고 서서
문을 열고 나오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가까이 다가섰을 때 ‘오빠’하고 불렀죠.
‘그런데 눈은 나 닮지 않았어?’
저는 아기의 눈을 잠시 들여다보았어요.
‘그러네. 눈은 널 닮았네.’
그제야 친구의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어요.
‘그렇지? 눈은 날 닮았지?’
어느새 도로는 깊은 어둠에 묻혀 있었죠.
친구는 개울가에 차를 세우고 저를 내려줬어요.
우리는 인사를 나눴고, 다음에는 내가 서울에 가겠다고 제가 말했죠.
차를 돌리는 동안 친구의 아내가 차창 안에서 손을 흔들었어요.
저도 손을 흔들려고 했지만 차가 움직이는 바람에 이미 조금 늦었죠.
저는 어두운 길 아래로 차가 사라진 뒤에도 한참을 더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집으로 걸음을 옮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