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처음 본 날
바다를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하세요?
언제 바다를 처음 봤는지, 그러니까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봤는지,
어디서 어디로 가다가 봤는지, 열 살이었는지 열두 살이었는지,
바다의 빛깔은 어땠는지, 바다는 얼마나 컸는지, 옆에는 누가 있었는지,
그런 걸 기억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저는 종종 그날을 떠올려요.
제가 처음으로 바다를 봤던 날 말이에요.
말하자면 그건 즐겨찾기를 해놓은, 기억의 서랍 같은 거죠.
제게는 그런 서랍이 여러 개 있어요.
그건 아마도 여섯 살이나 일곱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건 분명하거든요.
정말 아주 오래전의 일이에요.
마치 꾸벅꾸벅 졸면서 본 영화의 장면들처럼,
그날의 기억은 뭉텅뭉텅 끊어져 있어요.
하지만 또 어떤 순간의 기억은 놀랍도록 생생하죠.
그 기억의 시작은 항상 어떤 음식점이에요.
어른들이 아주 많았고, 제 옆에는 할머니가 있었어요.
어떤 아저씨가, 아니 어떤 아줌마가, 아니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누군가가 제게 다가왔어요.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고, 할머니에게 말을 건네고, 또 용돈으로 지폐를 줬어요.
천 원짜리 두 장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게 얼마나 큰돈이었는지 지금은 상상도 못하겠어요.
여섯 살이나 일곱 살 꼬마에게 그 이천 원은 세상을 다 살 수 있는 돈과도 같았어요.
구슬을 사고, 전자오락을 하고, 장난감을 사고, 떡볶이를 먹고...
아무리 써도 그 돈은 다 못 쓸 것 같았어요.
끊어진 기억 속으로 버스 한 대가 달리고 있어요.
어쩌면 오래된 절이 있는 관광지에 갔을 거예요.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고, 나무그늘이 있고, 그 건너에는 오래된 절이 있었죠.
그게 그날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사실 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버스가 사람들을 싣고 여기저기 다녔던 것만은 확실해요.
버스 안에서 저는 할머니 옆에 앉아 있었죠.
머릿속에는 온통 이천 원에 대한 생각뿐이었을 테고.
여섯 살이나 일곱 살 꼬마에게 그런 오래된 절을 보는 게 무슨 감흥이 있었겠어요.
어서 집으로 돌아가 돈을 실컷 쓰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겠죠.
심장이 두근거리고 자꾸 웃음이 나왔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그런 큰돈은 그날 이후 두 번 다시 가져본 적이 없어요.
세상을 다 살 수 있다고 여겨지는 그런 큰돈 말이에요.
사람들은 쿵작거리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기억에는 없는데 아마도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저는 문득 주머니 속에 넣어둔 지폐가 없어진 것을 알았죠.
바닥도 찾아보고, 의자도 찾아보고, 주머니를 몇 번이고 다시 뒤지고, 아무리 찾아도 없었어요.
눈앞이 핑핑 돌며 구슬과 장난감과 떡볶이의 영상이 하나둘 사라져 갔죠.
마치 비누거품으로 만든 방울이 하나둘 터지듯 말이에요.
그걸 영영 잃어 버렸다는 걸 알고는 엉엉 울기 시작했죠.
누구라서 울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어요.
버스가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동안 계속 울었어요.
그러다 할머니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죠.
저기 바다 좀 보라고,
하지만 낮은 언덕이랑 나무에 가려서 바다는 잘 보이지 않았어요.
산길 같은 곳에서 버스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다는 나타났다 사라졌고, 나타났다 사라졌죠.
저는 그게 뭔지 잘 몰랐어요.
하지만 이상한 게, 바다가 나타날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렸죠.
그게 처음으로 본 바다였어요.
저는 울음을 그쳤어요.
마침내 버스가 도착한 곳은 풀이 무성한 들판이었어요.
길게 자란 풀이 바람에 흔들리고,
들판이 끝나는 곳에는 하얀 등대가 있었죠.
바다는 머리 위에 있었어요.
저는 바다가 우주보다도 넓다고 생각했어요.
갈매기들은 풍선처럼 떠다니고 있었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더 이상 울지 않았어요.
이천 원을 잃어버린 것은 모두 잊었어요.
대신 저는 바다를 생각했죠.
버스는 어두운 밤길을 달렸고,
저는 등대에 올라가 봤던 커다란 등을 생각했어요.
어쩌면 할머니 품에서 잠들었을 거예요.
이게 바다를 처음 본 날에 대한 기억이에요.
하지만 이 서랍을 열 때면,
그 속에는 항상 할머니도 같이 들어 있어요.
할머니를 영영 잃어버렸다는 걸 알았을 때도 저는 엉엉 울었죠.
그래서 이 기억은 항상 슬프게 끝나요.
바다를 좋아하세요?
그렇게 묻는 것은 참 싱거운 질문 같아요.
바다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저 역시 그날 이후로 항상 바다를 사랑했어요.
한 번도 싫어한 적이 없었죠.
그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해서, 일생을 잊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참 드물잖아요?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가 있죠.
저는 그 영화를 딱 한 번 봤어요.
지금은 줄거리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그 영화에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 있어요.
영화의 시작 부분인데,
짐 캐리가 회사로 출근하다 말고 문득 바다로 가잖아요.
저는 그 장면이 좋아요.
눈발이 마구 날리는 간이역에서 회사에 전화하고,
파도가 몹시 거친 바닷가를 혼자 걸었죠.
2월의 몬탁이라고 하더군요.
차갑고 황량하고 쓸쓸해 보이는 바닷가였죠.
저는 그 장면을 좋아해요.
언젠가 한번은 그곳이 어디쯤인지 궁금해서 찾아본 적도 있어요.
뉴욕 옆의 롱아일랜드라는 섬에 있더군요.
제게는 부시맨이 찾아다닌 세계의 끝과도 같은 곳이었어요.
어쩌면 평생 그곳에 갈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바다가 있느냐고 물으면,
저는 2월의 몬탁이라고 대답할 거예요.
최근의 저는 좀 많이 변했어요.
사실은 이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몇 번이나 썼다 지웠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세월이 흐른 뒤에는 누구나 자신이 변하는 걸 느끼고, 또 누구나 한 시절이 지나가는 걸 느끼죠.
저 역시 제 삶이 언제나 여름 같을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어요.
하지만 그 시절은 정말로 끝이 있더군요.
이제 그건 알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에요.
그 시절이 끝났다고 해서 삶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 뭔가를 영영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지 모르겠어요.
몇 달 전인가, 사자자리 유성우가 내린다고 했을 때도,
누군가가 새벽에 그걸 보러 갈 거냐고 묻더군요.
저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걸 보기 위해서 산에 올라가 밤을 샜던 시절도 있었거든요.
이번에 끝난 고갱전에도 갔는데,
고교시절 그렇게 좋아했던 그림들 앞에 직접 서 있으면서도
이건 그냥 그림이네, 하고 무덤덤한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확실히 저는 좀 많이 변했어요.
정말 이대로 죽어가는 태양처럼 계속 식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것인지,
그걸 잘 모르겠어요.
바다와 같은 뭔가를 만나고 싶어요.
모퉁이를 돌았을 때 나타난 바다를 보고 울음을 그쳤던 것처럼,
마음을 모두 사로잡는 뭔가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잘 모르겠어요.
살다 보면 그런 게 다시 나타날까요?
2월의 몬탁에 가서,
이천 원은 모두 잊고 바다만 보고 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