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만에 돌려받은 <바그다드 카페>

 

 

한때 제 베스트 무비는 바그다드 카페였어요.

한때, 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이제는 베스트 무비 같은 거 생각하여 꼽지도 않을 만큼, 제 자신이 어떤 부분에 무뎌졌기 때문이에요.

 

바그다드 카페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 영상, 하늘과 사막의 색감 대비, 거기서 빚어지는 정서만으로도, 바그다드 카페에 누군가의 손길이 닿기 전의 외로움을

흠뻑 느낄 수가 있었어요.

요즈음 같으면 아주 대놓는다 싶은 상징적인 표현법들도 그때는 모두 신비롭고 좋았고요.

음악도 빼놓을 것 없이 모두 좋았죠. 너무나 유명한 제베타 스틸의 Calling You는 말할 것도 없고,

카페집 첫아들이 주구장창 치는 바흐의 평균율도, 마지막 흥겨운 때 나오는 '브렌다, 브렌다'도 참 좋았어요.

특히 바흐의 평균율은 이 영화에서 특히나 신비해요. 같은 멜로디를 계속해서 반복할 뿐인데, 그 안에서 많은 감정, 변화, 이런 것들이

은은히 배어나오고, 딱히 그 멜로디가 어떤 정서를 빚어내려 하는 것도 아닌 듯한데 듣고 있으면 묘한 평화로움에 젖어들게 되었죠.

 

 

10여년 전 이 영화를 케이블 TV에서 방영할 때 VTR 테이프에 녹화를 해두고

베스트 무비답게  틈틈이 보곤 했는데,

어느새 저희 집에서도 VTR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고, 친정집 저의 방도 몇 번 쓰임에 따라 새로이 정리하게 되면서

VTR테이프마저도 사라졌어요.

그리고는 그렇게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다가,

 

친정집 케이블 채널에서 VOD를 구매해서 옛날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알고서

어느 한갓진 밤, 목록을 뒤져 바그다드 카페를 찾아내어 구매했습니다.

 

그리고서 이틀 밤으로 나누어 찬찬히 영화를 보는데,

 

 

제가 이제까지 알았던 바그다드 카페는 바그다드 카페의 전부가 아니었더라고요.

 

일단, 제가 예전에 즐겨보던 녹화판 바그다드 카페는 곳곳이 편집된 버전이었어요.

드문 일은 아니죠,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영화 곳곳을 삭제하고 편집해서 방영하는 건.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VTR 테이프 속 버전이 당연히 원본 그대로인줄 알았던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를, 맨 처음에 이 영화를 볼 때는 당연히 비디오 가게에서 원본 테이프를 빌려서 첫 감상을 했을 테니,

그 후 케이블 TV로 이 영화를 볼 때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으면 잘린 데 없이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하고

녹화된 테이프를 원본마냥 여겼던 거죠.

지금 와선 가물가물해서 기억도 안 나요.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제대로 원본 테이프를 빌려 보았던 건지,

아니면 케이블 TV에서 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인지.(아마 후자인 것 같네요, 이제 생각하니.)

 

여주인의 말괄량이 딸과 야스민이 독일 옷을 입어보고 입혀주며 친해질 때나(아마 딸아이의 가슴이 살몃 드러나서 편집된 듯)

야스민이 '매직'을 선보이며 바그다드 카페의 중요한 사람으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 중의 몇 컷,

그리고 이게 왜 잘렸지 가장 아쉬웠던 것이

마지막, 야스민이 다시 돌아와 브렌다와 함께 '브렌다, 브렌다'를 부르며 멋진 무대를 선보일 때,

그 흥겨운 장면의 곳곳이 잘렸더라구요. 특히나 열받는 것, 브렌다의 남편이 돌아와, 막 무대를 마치고 들어온 브렌다와 마주치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브렌다와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장면을, 저는 이제까지 전혀 몰랐어요.

왜 그 행복한 장면을 잘라버린 건지...그때 브렌다는 정말 행복해 보였거든요, 더할 나위 없이.

 

 

한 작품을 가지고도 그것을 감상하는 나의 시기에 따라서

가슴 깊게 받아들이는 부분이 달라진다는 건 신기해요.

예전에는 여주인 브렌다의 괴로움과 후에 찾아오는 행복이 얼마나 그녀에게 따뜻하고 좋은 것일지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야스민이 찾아오기 전 브렌다가 얼마나 메마르고 힘겨웠을지, 그리고 야스민이 그녀 생활에 윤기를 주었을 때

그녀에게 찾아온 변화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이제는 눈여겨보게 되고 느끼게 되었어요.

마지막 '브렌다 브렌다'를 부를 때, 야스민과 함께 무대복 차림에 (그전까지는 전혀 하지 않던) 화장도 하고서

제법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제가 다 기분이 좋더라구요.

맨날 헝클어진 머리에 자기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틈도 없이

자녀들 셋에 일견 철없는 남편까지 감당하며 살아온 그녀가,

사실은 뮤지컬 배우 뺨칠 만한 멋진 노래솜씨와 재능을 갖고 있었다니.

 

 

 

아무튼, 십여 년이 지난 후더라도 한때 베스트 무비라고 생각했던-그리고 지금도 좋아해요- 영화를

온전한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래도 좋은 일이지요.

오늘 밤에도 다시 한 번 보고 싶네요.

 

 

 

 

 

    • 글쓴분의 감상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네요. 20년전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고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 20년전에 보셨던 영화라면, 바그다드 카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새벽길님이 보신 다른 영화인지?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지네요..
    • 제가 가장 좋아한 부분은 문신녀가 떠나며 하는 말.

      투 머치 하모니.
      • 음 비슷한 맥락에서 저는 바그다드 카페에 다시 찾아온 행복이 변함없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긴 했어요.
        사람 살 때 늘 좋기만할 순 없는 거니까요.
        그런 변화들이 격심할 때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면, 애초부터 그런 행복들에 거리를 지키며 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저는 그녀의 "투 머치 하모니"를 그렇게 이해했지요.
    • 제가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영화입니다. 두 번 봤는데 그 느낌이 아닐까봐 세 번째는 못 보고 있지요. 조만간 찾아보아야겠어요.
      글도 잘 읽었습니다.
      • 세번째 감상에서는 또 다른 좋은 느낌으로 보실 수 있을지도 몰라요.^^
    • 바그다드 카페를 본적은 없는데 기회가 되면 보고 싶어지게 하는 글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이 글 정말 좋아요. 잘 읽었습니다.
    • I Love myself,라곱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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