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 알랑 드롱과 이병헌


몇 년이 지나서 다시 본 르네 끌레망의 '태양은 가득히'에서도 결국 기억에 남는건 햇빛에 등짝을 다 그슬린 알랭 드롱의 상체뿐입니다. 아니, 원래부터 지중해에서 그리스 조각같은 알랭드롱을 보기위해서 간셈입니다. 천박함과 뻔뻔함, 기만자와 어린아이의 표정을 동시에 품은 그의 얼굴과 몸짓은 스트레이트인 내가 봐도 숨이 턱,하고 막힙니다. 알랭 드롱은 배우가 캐릭터를 잡아먹는 배우입니다. '태양은 가득히'를 보고나면 리플리라는 캐릭터보단 요트를 몰던 '알랭 드롱'이 기억에 남죠. 그는 다른 영화에서도 원래 그랬습니다.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를 보고 난 뒤엔 트렌치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매만지던 알랑 드롱이 판화처럼 새겨졌으며, '암흑가의 두 사람'에선 단두대에서의 마지막 그의 얼굴만이 영화의 전부로 기억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사와 성격이 원래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경찰보단 악당을, 좋은 집안의 아들보단 비루한 출신 성분의 캐릭터를 연기할때 맞춤양복을 입은 듯 했습니다. 잘생기긴 했지만 귀공자와는 거리가 멉니다. 마초적이지 않은 얼굴이지만 상스럽고 날 것의 매력이 있습니다. 이건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본디 가지고 태어나는 성질같기도 합니다. 

태양은 가득히를 한국판으로 어레인지 한다면 리플리 역은 이병헌이 맡아야 한다. 라고 친구들과 술먹을때 우긴적이 있습니다. 글을 쓰며 찾아보니 박찬욱감독도 이병헌이 한국의 알랑 드롱이라는 말을 한적이 있더군요.영 헛소리는 아닌셈인데, 이병헌의 목소리와 연기력을 떠나서, 잘생긴 얼굴을 감안하면 동년배의 한국배우 중 가장 넓은 연기의 폭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가진자와 못가진자, 배운 이와 못배운이, 선함과 악함을 모두 소화할 수 있어요. 하얀색 옷입고 수리검 날리는 지극히 만화스러운 닌자와, 최지우의 실땅님과 번지점프의 인우를 (비록 세월의 갭이 있지만) 그는 빠지는거 없이 해낸편입니다. 그리고 어떤 역을 맡더라도 눈알 저편에 깔린 강렬한 에고는 스크린에 투사되죠. 이것이 알랭드롱과 이병헌의 교집합입니다. 햇빛에 다 뒤집어진 등짝으로 바다를 쳐다보던 리플리의 눈빛은, 이병헌만이 대체할수 있을겁니다.

이병헌의 출연작 중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가장 이병헌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건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이었습니다. 고급양복을 입은채 건물꼭대기 층에서 쉐도우 복싱을 하던 그의 모습에서 보이던 나르시즘과 에고는 연기가 아니라 본인의 실제 모습일거라 생각했습니다. 캐스팅을 잘하고 캐릭터에 맞게 잘뽑아낸 감독의 역량도 훌륭하지만, 영화에서 비친 선우의 모습은 배우 본인이 자존감과 나르시즘없이는 그 몰락이 그만큼 처절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겁니다. 그 정도면 잘난척해도 된다고 봅니다. 

    • 데뷔때는 한쪽 눈을 고정하고 다른 한쪽 눈알만 돌리는 개인기를 보여야했던...정말 헐리우드까지 갈 줄은 몰랐습니다.
      • 그거 보고 싶네요 전 모르는데 ㅎㅎ
        • 이거 알면 연식 자폭
      • 전 맥클리 컬킨 흉내내던거 기억나요. 자기가 먼저 태어났으니, 그 친구가 자길 닮은 거라고 농치면서ㅋㅋ
        • 한창 스타덤에 오른 컬킨 흉내까지 내면서 안간힘을 쓰던 시절이 아닌가 싶은데요. 스포츠 신문에 빅 컬킨 뭐 그런 제목도 기억나고
    • 본인도 몰랐을거 같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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