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밑에 일대종사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냐고 물었던 사람인데 조금 전에 보고 나와서 집에 가는 길입니다.
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재밌게 봤어요.
추석 선물로 마늘을 한박스 받았는데 사무실에서 지하철 역까지 걸어서 10분(엉엉 마늘 좋은데 너무 무거워 이러고 씩씩거리면서 걸음),
환승 한번 하고, 또 역에서 영화관까지도 좀 걸어야해서 물품보관함에 마늘을 넣어두고 빠니니식당 찾느라 헤매다가 허겁지겁 먹고 서둘러 상영관에 들어갔어요.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니 오프닝크레딧을 하고 있더군요.
처음에 말했듯이 영화는 재밌었습니다.
궁이랑 마지막 어쩌고 하길래 설마? 하고 살짝 시간을 확인해봤더니 20분밖에 안남아서 깜짝 놀랐어요.
마늘 들고 끙끙 거리면서 이까지 오길 잘했구나-라면서 엔딩크레딧까지 끝까지 보고 나왔습니다.
기차역 장면에서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서 저 기차는 도대체 몇량짜리지 백년의 고독에서 가져오기라도 했나 끝도 없이 가는구만-_- 이러기도 했고
중간중간 결투 장면에서 약간은 실소가 터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어요.
일선천은 뭐 하러 나온 거지 하다가도 궁이와의 첫만남 장면을 생각하면 그것만 해도 가치가 있지! 싶었고요. 이어진 장면에서의 푸른 기차 연기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아까 글에서 형사랑 비교를 해서 왕가위 디스로 받아들인 분들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냥 예고편을 봤을 때의 느낌이 그랬어요.
듀게에선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때까지 본 영화편수가 전국민 평균으론 상위권에 든다고 자부하는데 어째서인지 중국어권 영화를 굉장히 안봤습니다.
왕가위 영화는 이게 처음이고, 장국영 영화도 딱 하나 봤고(패왕별희-근데 무지막지하게 재미없었어요),
주성치 영화도 하나도 안봤고, 오우삼도 헐리웃에서 만든 것만 봤고, 장이예모도 하나도 안 봤고... 그렇네요.
그래도 최근에 개봉하는 것들은 국적 안가리고 이것저것 잘 보는 편인데 옛날 중국 영화는 참 안봐지더군요.(와호장룡도 아직 못 봤음)
천성이 우울하질 않아서 아비정전 같은 우울한 정서가 지배하는 영화에는 영 정을 못 줄 것 같고,
딱히 보고 싶단 생각도 안 들지만 그래도 왕가위 영화 시작이 좋아서 기분이 좋아요.
아 덤으로 양조위의 이미지가 한결 좋아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 이 아저씰 색계에서 처음 봐서 언제나 저 아저씨 싫어 무서워 뭐 이런 상태였는데
몇년 전에 적벽대전에서 수의사 노릇을 해줘서 마음이 좀 풀렸다가 이번 일대종사로 호감으로 돌아섰어요.
차페크 님/ 중경삼림 며칠 전에 영화의 전당에서 야외상영 할 때 평일이라서 못 갔는데 좀 아쉬워요. apogee 님/ 막연한 느낌으로 전작전하면 전 실패할 작품이 많을 것 같아요. 그 기차 진짜 101량 족히 돼 보였습니다. mockingbird 님/ 전 양조위 작품은 색계, 무간도, 적벽대전, 일대종사 요렇게만 봤는데 이번에서야 아 양조위 멋있단 사람들 이제 이해가 된다 싶었어요.
오, 서면 빠니니식당 가셨나봐요! 저도 거기 전에 서울에서 여행온 듀게분이랑 한 번 간 이후로 또 가고싶어서 호시탐탐 기회노리는 중입니다 ㅎㅎ 뭐 드셨는지 궁금..! 버섯 들어간 거 완전 맛있던데!
장국영 영화 중 유일하게 보신 게 패왕별희라니 조금 안습이네요 ㅠㅠ.. 저도 장국영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라서, 주변에서 '장국영 안 좋아하는 여자는 본 적이 없어!' 이런 얘길 하면 속으로 욱하고 반발하는 축인데 왕가위+장국영 조합의 영화들을 계속 보다보니 푹 빠지진 않더라도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진 알겠더라구요. <아비정전>이나 <해피투게더>는 한두번 봤을 땐 '읭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나 많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이로군' 싶었는데 올해 둘 다 다시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반면에 왕가위 영화는 이게 처음이라고 하시니 다행인 거 같기도 하구요. 왕가위 초기작들은 정말 너무 오글거려서.. 동시대를 살지 않아서 그런지 이제와서 보면 촌스럽게 보이기만 하고 <타락천사>는 그냥 아오 작작좀해라! 하고 등짝스매싱을 해주고싶은 영화였는데.. <일대종사>는 참 간신히 왕가위가 중2병에서 드디어 졸업했어! 라는 대견한 느낌.. (폭풍 디스한 거 같지만 사실 전 츤데레입니다..★) 그러나 <일대종사>의 양조위는 왜 이렇게 안 멋있어보였는지 임창정 보는 거 같았어요.
로즈마리 님/ 허니 까망베르랑 자몽 주스 먹었어요. 맛있었는데 생각보다 껍질이 딱딱해서 급하게 먹다보니 입 천장이 까져버렸네요. 패왕별희는 몇년 전에 친구가 보지도 않고 DVD를 사서 저희 집에서 셋이서 봤는데 셋다 재미없어 했어요. 제일 강렬한 감상이 '아 저것들은 왜 자꾸 사람한테 침을 뱉는 거야, 더러워 죽겠네'였으니 말 다했죠. 나중에 그 DVD 산 친구는 한번 더 보니까 볼만하더라-라고 했지만 별로 또 보고 싶단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양조위는 멋있다기 보단 그냥 편안해 보여서 좋았어요. 아저씨 곱게 나이드는구나 싶기도 했고요. 따숩 님/ 제가 주성치 영화를 보면서 마음 편히(?) 웃을 것 같지가 않아서 하나도 안봤는데 인연이 닿으면(티비에서 만난다든가) 한번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