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배경의 부산물입니다.
전쟁이나 사랑 이야기는 아니군요.
주인공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하지만, 보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계급도 유전병도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담담하지만 주변 상황이 구질구질합니다.
천재지변의 대지진
경제적 불황
전쟁
여기에 관객이 포함됩니다.
주인공이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으면 나쁜 비행기 설계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관객은 평온한 시대 인터넷을 하며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며 주인공을 전쟁의 한 가운데 밀어 넣은 모습을 보며 심판의 즐거움을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자, 이제 주인공이 정의로운 자임을 증명해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이 윤리적 문제에 부딪히는 것은 그가 기술자라는 사실입니다.
전투기 만드는 것을 하지 않았다면 징집을 당하여 적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하고 있었겠지요.
당시 일본의 전쟁광기를 생각하면 탈영과 양심적 거부는 목숨을 포기하는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갈등을 겪습니다.
"단지 비행기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라고!"
유일하게 끝까지 공존했던 것은 유년시절 함께 자라온 전투기가 아니라 비행기말이죠.
꿈속에서 누군가가 묻습니다.
"꿈은?"
"지옥입니다."
전쟁이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비행기 대신 전투기를 만듭니다.
전투기는 계속 실패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만 완성된 비행기가 제로센입니다.
전쟁에서 전투기는 한 대도 귀환하지 못합니다.
헐리우드 영화처럼 없는 적도 만들고 심지어 외계인도 불러와서 무찌르는 시대에 패전한 전쟁의 전투기 실패담이 소재라니 일본 노감독은 열패감으로 자국민을 울리는 재주가 있군요.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인데 한 대 정도는 살아서 돌아오는 장면을 넣었다면 자국민을 위로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무참하게 박살을 내어버렸습니다.
노감독은 상당히 잔혹하군요.
변질된 꿈의 피해자는 바로 자신이 됩니다.
일상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고 윤리관마저 맞지 않으면 실패의 쓰라림은 더 빨리 스며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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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 하이머가 원폭으로 죄책감에 휩싸인 것은 미국은 다른 방법으로 승리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패전이 확정된 국가에 원폭을 퍼부을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죠.
바꾸어 말하면 미국이 궁지에 몰렸으면 그는 원폭에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는 말이겠죠.
원폭 덕분에 한국 임시정부는 진공작전이 무산되고 독립주체의 기회를 잃어버리죠.
국제사회는 힘이 아니라 정의가 넘치는 유토피아 세계입니까?
당시 원폭을 날랐던 폭격기 b-29의 설계사를 비롯한 전쟁에 가담했던 폭격기 설계사는 전부 죄책감(민간인 학살)에 휩싸여서 악몽을 꾸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미국이 이라크 폭격을 하려고 날렸던 스텔스 폭격기의 설계사는 전 세계가 자국으로 데려오고 싶어하는 기술자이죠.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자가 그보다 기술을 사용할 기회가 높은 자가 더 많은 사회적 채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처럼 역사적 진실을 뒤집어버리는 감독도 있는데 <바람이 분다>는 그런 면에서 일본의 힘도 보여주지 못하고 위로해 주지도 못하는 자국민에게 생채기만 주는 불편한 영화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