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몇가지(스포)

훌륭한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하던 주인공이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비행기를 만드는 이야기인데 그 과정에 대해 관객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에피소드들이 나열되고 하는 그런 영화는 아닙니다. 주인공이 고난과 시련을 겪고 마침내 원하던 비행기를 만들었으나 그게 사실은 전쟁 무기였고 나라는 망했다는 식의 감정 고조가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지요. 주인공은 꿈을 간직한 체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같은 모습입니다. 다만 잊을만하면 한번씩 감독이 '얘 만드는 거 전쟁 무기고, 지금 열심히 전쟁 무기 만드겠다는 거'를 상기시켜줄 뿐이지요.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비행에 성공하는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해당되는 순간에도 감독은 별다른 세레모니 없이 건조하게게 장면을 전환하며 파괴된 비행기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에필로그로 넘어갑니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주인공은 그냥 비행기 오타쿠 처럼 영화내내 설계도면을 끄적일 뿐이고 감독은 순간 순간 그 주인공이 만드는 비행기가 끔찍한 살상무기임을 상기시켜주는 게 내용의 거의 전부인 그런 영화입니다.


물론 주인공 스스로도 자기가 전쟁 무기를 만들고 있음을 매우 잘 알고 있으나 그 사실에 대한 고뇌같은 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인공에 대해 감독은 어떤 판타지도 갖고 있는 거같지 않습니다. 비행기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역사 앞에 희생 당하고 이용당했다는 식의 미화는 없다는 거죠. 주인공은 어린시절 부터 자기가 만들고 싶어하는 비행기가 어떻게 활용되는 지 아주 잘 알고 있을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주인공(관객)이 그 사실을 잊을까봐 감독은 주인공의 꿈 속에서 그가 만드는 비행기가 무엇인지를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드는 게 목표인 주인공이지만 정작 스스로의 꿈속에서 나오는 비행기는 괴물인 것이지요. 그럼에도 주인공의 모습에는 고민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의 꿈 속을 무심하게 바라보다 잠에서 깨면  다시 열심히 비행기를 만듭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이렇게 열심히 비행기를 만들고 있을 때 영화 속의 독일의 비행기 엔지니어, 과학자는 히틀러 정권과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본 이들이 주인공은 무력한 개인일뿐이라는 변명을 해주기도 힘들지요.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주 잠깐 주인공이 흔들리긴 합니다만 마치 자신의 행위가 무엇인진 알지만 모른 척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평소의 무심한 자신의 모습으로 바로 돌아와 지금처럼 살아가면 된다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당시를 그저 '열심히' 살아왔고 과거를 외면한 체 다시 애써 살아가는 평범한 일본인의 모습이 주인공이고 그에게 정말 열심히만 살았으면 괜찮은거냐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괜찮은 반전 영화라고 봅니다. 일본을 파멸로 이끈 지배세력 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에 평범하게 살아간 이들을 호출을 하여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괜찮은 거냐는 질문을 던지 게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이지요. 보는 이들에 따라 평이 갈리는 영화인데 저는 주인공을 통해 전쟁을 대하는 일본의 평범한 이들의 모순적인 내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 영화로 봤습니다.



    • 좋은 감상 잘 읽었습니다. 보고 싶은데 주말에 마침 시간이 나지않아 못보았네요.
      금방 내려갈듯 싶은데 다음 주말까지 제대로 상영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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