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곱순 님 덕분에 저도 묵혀 둔 악기를...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3때까지 취미로 플룻을 했었습니다. 그냥 별 생각없이 한 거라 실력이 좋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오래 했기 때문에 심적인 애착은 있었어요.
그래서 대학 들어가서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글쓰는 거랑 밴드에 더 관심이 있었어서 오케스트라는 하지 않았고
한동안 악기와 보면대는 방구석 어딘가에 방치해 두고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턴 보는 게 눈에 밟히지도 않고 그냥...고3때 악기 바꿨던 게 아깝단 생각 정도였죠.
그나마 피아노는 좋은 공연이나 영화 같은 거 보고 갑자기 필 받으면 어쩌다 한 번씩 뚜껑 열어서 쳐 보곤 했는데
플룻은 오래 했다는 심적인 애착 말고 악기로서 애착이 큰 건 아니어서 딱히 자극 받을 일도 없었고 손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쓰고 보니 정말 무심했네요.
사실 악기를 하면 별 생각 없이 그 소리 내는 거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잖아요.
그것도 피아노 치거나 다른 악기 해 보거나 할 때 좋아하는 점이었는데
역시나 플룻 불어볼 생각은 희한하게도 한 번도 안 해 봤었어요.
그런데 라곱순 님이 관악기를 꺼내시니까,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어 있는 리코더를 꺼내시니까
불현듯 저도 악기 케이스를 열어보고 싶어졌어요.
원래 손도 작은 편인데다 왼쪽 새끼손가락이 보통보다 한 마디 짧아서 피아노 칠 때 스케일 큰 곡 치기도 안 좋고, 기타는 몇몇 코드는 아예 못 잡거든요.
결국 가끔 필 받아서 피아노 쳐 보다가도 종국에는 재미없어서 그만 두고, 기타도 배우다 말다 하게 되곤 했는데
플룻은 이런 핸디캡이 별로 문제되지 않는 악기죠. 사실 악기 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요.
또 손가락 힘도 별로 없고, 기타 배울 때도 너무 힘이 없다고 힘있게 쳐다 된다고 계속 잔소리 들었는데
역시 플룻 불 때는 큰 문제가 안 되구요. 아 물론 숨이 차긴 하지만...
큰 애정은 없었는데 돌이켜 보니 의외로 저한테 맞는 구석이 많은 악기였던 것 같아요. 아...사실은 이래서 여자애들한테 플룻을 많이 시키는 건가요?
악보도 너무 오랫동안 안 해서 먼지 쌓인 게 더러워서; 많이 버리고 그나마 몇 개만 남겨놨었는데
요즘 아침에 열어보면서 조금씩 불어보고 있어요.
그래도 엄청 쇳소리 날 줄 알았는데 ㅋㅋㅋㅋ 그래도 걱정한 것보다는 소리가 덜 흉악하네요.
소리가 형편없었으면 또 금방 의욕 잃고 때려쳤을 텐데 ㅋㅋㅋ
이번엔 좀 진득하니(한두 달 정도는) 버텨 보려고요.
생각지도 않은 의욕이랑,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려 주셔서 고마워요, 라곱순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