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들...

[마약 전쟁]
중국의 한 마약 조직의 중간 보스 차이 틴밍은 정말 억세게 재수 없는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마약 공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인해 자신의 아내를 비롯한 다른 공범들이 다 죽은 것도 그런데, 그 일로 병원에 실려 왔을 때 하필이면 막 마약 운반책들을 체포해서 병원으로 끌고 와 관장시키고 있었던 장 반장과 마주치게 되었거든요. 중국에선 마약 거래로 사형당할 수 있니 차이는 어쩔 수 없이 장 반장과 거래를 하지만, 협조하는 동안 의외로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는 차이를 장 반장은 별로 신뢰하지 않고, 그런 동안 차이는 살아남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으면서 계속 발버둥 칩니다. 보다보면 한국영화 [사생결단]이 연상되는데, [마약 전쟁]은 두기봉 영화답게 차갑고 건조하고 우울한 분위기 아래에서 이야기 속의 불안한 협조 관계를 지켜보는 동안 여러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을 만들어냅니다. 이야기 속 긴장을 계속 쌓아올려지다가 영화는 거의 파국에 가까운 절정과 함께 폭발하고, 그에 따른 엄숙한 결말은 아이러니와 냉소로 가득합니다. (***1/2)

[유로파 리포트]
[유로파 리포트]는 파운드 푸티지와 하드 SF 이 두 장르의 혼합쯤으로 봐도 될 것입니다. 2 년 전 실제로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 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영화는 그곳에 생명체가 있는 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떠난 유인 탐사선 유로파 1호가 발사 16개월 후 연락이 두절된 이후에 지구로 전송된 영상 자료들 그리고 탐사 프로젝트 관련자들 후기 인터뷰들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설정이야 간단하고 결말은 이미 처음부터 예고되어 있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꽤 알찬 볼거리입니다. 일단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소재와 배경에 정말 진지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접근했고, 캐릭터 묘사는 단순해도 좋은 배우들 덕분에 캐릭터들은 선명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훈련받은 전문가들답게 침착하게 절박한 상황들에 대처해 나가니 예정된 결말에선 의외의 숭고함도 살짝 느껴지지요. 제한된 환경에서 한 작은 아이디어를 잘 굴려가면서 여러 좋은 순간들을 선사하는 본 영화를 전 재미있게 봤고, 참고로 전 그 드넓은 우주 공간에서 미아 신세가 되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

[패션]
한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이자벨과 그녀의 상사 크리스틴은 겉보기엔 꽤 괜찮은 직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하지만, 우린 가면 갈수록 크리스틴이 얼마나 끔찍한 상사인지를 보게 됩니다. 이자벨의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것은 기본이고, 이자벨이 자기보다 앞서 가는 듯하자 아주 잔인하게 짓밟아버리는 건 물론 아예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지요. 이러니 이자벨은 서서히 정신적으로 흔들려져 가고 그에 따라 어떤 일이 벌어지면서 그녀는 더욱 더 곤란한 상황에 빠집니다. [패션]의 원작 [러브 크라임]을 보신 분들이라면 무슨 일인지 이미 아시겠지만, 이 시점부터 얄팍한 쓰레기의 거장 브라이언 드 팔마 옹께선 그만의 온갖 기교들을 펼치기 시작하고, 영화는 깔끔하고 차가웠던 원작과 구별되는 야하고 천박한 드 팔마식 재미를 선사합니다. 가면 갈수록 이야기가 허술해지는 게 불만이지만, 브라이언 드 팔마 옹께선 본인이 여전히 [팜므 파탈]과 [침실의 표적]의 변태 감독이란 걸 확실히 증명하셨습니다. (***)

[웨스트 오브 멤피스]
1993년 5월 5일 저녁, 아칸소 주 웨스트 멤피스에서 세 명의 8살 소년 스티브 브랜치, 마이클 무어, 크리스토퍼 바이어스가 실종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은 곧 수색에 나섰고, 다음 날 낮에 이 세 소년들은 참혹하게 살해당한 상태로 동네 근처 개천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희생자들 부모들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경찰은 범인 수색에 나섰고, 그 결과 세 십대 소년 데이언 에콜스, 제이슨 볼드윈, 그리고 제시 미스켈리 주니어가 주요 용의자들로써 체포되었습니다. 미스켈리의 자백을 토대로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썼다는 게 조 벌링어와 브루스 시노프키의 [Paradise Lost] 삼부작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끊임없이 지적되었고 그에 따라 이들의 처지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주축이 된 구명 운동이 최근까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했던 피터 잭슨과 프랜 월시가 제작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웨스트 오브 멤피스]는 약 140분 동안 자료 화면들과 인터뷰들을 통해 사건 발생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사건 경과 과정을 확연하게 요약해서 보여주는데, 결과물은 상당히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고발극입니다. 단지 좀 튀는 비행 청소년들이란 이유로 별 증거도 없이 이들을 애들을 제물로 바친 악마숭배자들로 포장해서 자신들의 제물들로 만들어 버린 그 때 당시 여론과 경찰, 그리고 검찰의 모습만 봐도 기가 차지만, 이들이 무죄란 사실이 확연해져만 가는 데도 거의 요지부동 자세로 일관한 아칸소 주 정부도 참 한심하기 그지없지요. 2011년이 되서야 마침내 이들 모두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들은 법적으로 유죄인 가운데(검사 측과의 거래로 무죄 주장하는 가운데 유죄를 인정하는 꽤 모순적이지만 실용적인 방식으로 풀려났거든요), 과연 누가 그 죄 없는 어린 소년들을 죽였는지는 아무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비록 후반부에 가서 상당히 의심스러운 인간 한 명이 있음을 다큐멘터리는 지적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1/2)

[머드]
[샷건 스토리즈]와 최근 국내 개봉된 [테이크 쉘터]의 감독 제프 니콜스의 세 번째 작품 [머드]는 전작들처럼 뚜렷한 지역적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아칸소 주 미시시피 강 유역 마을에 살고 있는 두 소년 엘리스와 넥본은 강 한가운데 있는 섬에 몰래 놀러 갔다가 머드란 이름의 도망자와 마주치게 됩니다. 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중인 머드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 주니퍼와 재회해서 같이 도망칠 계획인데, 그의 계획은 그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고, 그를 기꺼이 도왔던 엘리스는 머드와 주니퍼 간의 관계의 실상에 눈을 뜨는 동안 그의 일상 속 여러 다른 일들로 성장통을 겪게 되지요. 마크 트웨인의 두 유명한 소설들이 절로 연상되는 풍경들 속에서 영화는 이야기 속 여러 요소들을 잔잔히 굴려가고, 여기에 따라가다 보면 어느 덧 상당히 감정적인 순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배우들 연기야 모두 훌륭한 편인데, 특히 요즘 들어 꾸준히 좋은 연기들을 선사해 오면서 우릴 즐겁게 한 맥커너히는 본 영화에서 또 다른 명연을 선사합니다. (***1/2)

[에픽: 숲속의 전설]
만일 [에픽]이 10년 전에 만들어졌었다면. 아마 전 본 애니메이션 영화를 조금 더 좋게 평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고 보는 동안 제 눈은 심심하지 않았지만,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CGI만큼이나 일상적이 된 이 시점에서 본 작품은 개성이 눈에 띠게 부족한 편입니다. 갑작스럽게 중대한 역할을 맡게 된 주인공, 아버지와 주인공 간의 소원한 관계, 숨겨진 판타지 세상, 선과 악의 운명의 대결, 코믹 조연들 등등의 클리셰들로 가득 찬 것도 그런데, 보는 동안 다른 작품들에서 이런 뻔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더 잘 굴렸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거든요. 허접하진 않지만,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2)

[퍼펙트]
[밀레니엄 제1부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감독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할리우드 진출작 [퍼펙트]의 주인공 빅터는 처음엔 그저 뉴욕의 한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에겐 숨겨진 사적 동기가 있습니다. 그는 조직의 보스 알폰스의 신임을 얻으면서 그에게 복수할 기회를 기다려 왔었는데, 이야기의 발단에서 이미 그는 알폰스의 조직을 무너뜨릴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하고 있지요. 그러던 중에 그는 자신의 아파트 건물 건너편에 살고 있는 비어트리스란 이름의 젊은 여인과 엮이게 되는데, 반 협박 반 설득으로 자신의 개인적 복수를 해 줄 것을 요구하는 그녀를 받아들지 말지 빅터가 망설이는 동안 그의 본 계획도 슬슬 위태롭게 되어갑니다. 복수란 소재를 갖고 진지한 드라마도 하고 긴장감 있는 스릴러도 할 자세가 초반부에서 분명히 보이지만, 불행히도 중반에 가선 영화는 늘어지기 시작하고 후반부는 단순한 액션 영화 줄거리로 추락합니다. 어두컴컴한 이야기에 걸맞게 분위기도 잘 조성했고 콜린 파렐, 노미 라파스, 테렌스 하워드, 도미닉 쿠퍼, 이자벨 위페르과 같은 능력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실망스럽지요. (**)

[비잔티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감독 닐 조단의 신작 [비잔티움]의 주인공들인 클라라와 엘리너는 200년 넘게 살아 온 뱀파이어 2인조입니다. 클라라가 시내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동안 그녀의 ‘십대 여동생’인 엘리너는 글쓰기로 어느 싸구려 아파트 안에서 시간을 때우는데, ‘언니’가 바깥에서 바쁘게 몸 굴리는 동안 그녀는 자신들의 비밀을 드러낼 수 없는 갑갑한 일상으로 인해 쌓인 불만을 글쓰기로 풀곤 하지요. 물론 가끔 흡혈도 하는 가운데 이들은 생계형 뱀파이어들로써 그럭저럭 잘 살아 온 편이지만, 그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어떤 집단에게 추적당해온 지 오래입니다. 이야기 시작에서 최근 추적을 피한 이들은 어느 해변 마을로 굴러들어 오는데, 공교롭게도 이곳은 그들의 옛날 옛적 과거와 많이 연관되어 있는 곳이란 게 일련의 플래시백들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지요. 그렇게 잔인하거나 무섭지 않지만, 모이라 버피니의 연극을 원작으로 한 본 영화는 생각보다 상당한 유머 감각이 있는 고딕 흡혈귀 이야기라서 보는 동안 킬킬거리지 않을 수 없고, 의외로 상당한 감정이 들어간 십대 로맨스/성장물로써도 영화는 꽤 잘 먹히는 편입니다. 젬마 아터튼과 시어샤 로넌은 처음 등장부터 좋은 뱀파이어 2인조로 다가오는 가운데, 시어샤 로넌과 로넌보다 더 뱀파이어 같이 보이는 케일럽 렌드리 존스를 보다 보면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얼마나 유치함과 오글거림의 절정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실 겁니다. (***)
P.S.
1. 클라라를 보면 정말 인생 시작할 때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뱀파이어니 힘들지 않겠지만, 200년이 넘는 동안 좀 더 편한 직업을 가지는 걸 한 번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더군요.
2. 로넌이 최근 스테파니 마이어 소설 원작 영화 주연인 걸 고려하면 그녀가 본 영화에서 ‘십대’ 뱀파이어 연기하는 게 정말 재미있게 보이지요.

[포 엘렌]
자신들을 놓고 간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자매들의 이야기였던 [나무없는 산]의 김소영 감독의 신작 [포 엘렌]은 별로 만난 적이 없는 딸과 가까워지려는 주인공에 관한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인 록 밴드 가수 조비는 이혼 수속의 마지막 절차를 밟기 위해 추운 겨울 날 뉴욕 주 어느 마을에 왔는데, 자신의 딸 엘렌의 양육권이 전 아내에게 간다는 걸 뒤늦게 알고 당황한 그는 태어난 후로 본 적이 거의 없는 딸과 조금이라도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애를 씁니다. 한데, 보면 볼수록 그가 정말 안쓰럽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리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는 게 확연해져 가기만 하고, 나중에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의 어린 딸도 그 점을 확연히 인지하는 듯하지요. 그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는 담담한 자세 속에서 감정들을 잘 포착해가면서 우리의 관심을 붙잡고, 폴 다노의 가식 없는 연기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

[프랑켄슈타인의 군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소련 군인들이 한 이상한 무전을 받고 폐허가 된 마을에 와서 이리 저리 수색하던 도중 괴상한 광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알고 보니 그곳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미치광이 손자가 독일 나치를 위해서 특수 군대를 만들어 왔었던 비밀공장이었는데, 온갖 무기들로 재조합된 좀비들과 다를 바 없는 그의 군인들 앞에서 소련 군인들은 속수무책이고, 당연히 그들은 하나씩 하나씩 안 좋은 일들을 당합니다. 영화는 군인들 중 한 명이 들고 다니는 카메라를 통해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1940년대란 배경에 전혀 걸맞지 않게 와이드스크린, 컬러 필름, 그리고 동시 녹음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그런데, 배우들이 영어 대사를 하고 있으니 우스꽝스러운 티가 절로 납니다. 여기에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들어낸 온갖 괴상망측한 군인들이 등장하니까 황당함의 수준은 더더욱 증가하는데, 이런 난장판은 처음에 재미있지만 저예산의 한계 안에서 계속 황당함과 잔인함을 카메라와 함께 휘두르다 보니 짧은 상영시간에도 불구 서서히 피곤해져 갑니다. 적어도 나름대로의 개성은 갖고 있으니 좀 더 매끈한 리메이크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1/2)

[감기]
본 영화의 주요 증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가 별로 상관하지 않거나 혹은 짜증나는 이차원/일차원적 캐릭터들로 가득한 이야기, 2) 온갖 억지 설정들로 이야기를 서투르게 진행하는 각본, 3) 절박한 상황에서도 감동과 웃음을 짜내려는 질긴 시도, 그리고 4) 아역 배우를 귀엽게 보이게 하거나 울게 하는 것 외엔 별다른 연기를 유도하지 않는 심각한 태만함. 이 우울하기 그지없는 증상들에 면역되지 않으신 관객 분이시면 본 영화를 피하시길 바랍니다. (**)

[언어의 정원]
간단히 말해서, 싱그러운 여름 수채화 분위기로 장식된 작은 애니메이션입니다. 비록 이야기 자체는 변태적 면이 있지만요. (***)

[나우 유 씨 미: 마술 사기단]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지만 어느 새 라스베가스에서 공연을 하게 된 마술사 4인조 포 호스맨은 예고대로 기상천외한 쇼를 관객들 앞에 선보입니다. 관객들 중 한 명을 파리의 한 은행에 보내는 건 기본이고 그 은행 안에 있던 상당한 액수의 현금을 관객들 머리 위에 뿌리는 걸로 공연을 마무리하지요. 이에 당연히 경찰과 FBI가 수사에 나서지만, 로드스 요원이나 마술사들 트릭 폭로 전문가 브래들리 모두 두세 발짝 뒤처지는 가운데 포 호스맨의 마술 공연은 계속 됩니다. 공연 장면들은 재미있는 편이지만 보는 동안 내내 CGI 티가 나니 신기함이 적은 편이고, 단조로운 전개 속에서 캐릭터들이 기능상 역할에만 머무르니 실력 있는 배우들이 낭비된 감이 많이 듭니다. 이를 지켜보다 보면 개연성 부족이 이야기 여기저기서 눈에 뜨는데, 특히 결말은 캐릭터 경제학만 적용하면 금세 눈치 챌 수 있습니다(영화 보신 분들은 제가 무슨 말 하는 지 잘 알 것입니다). 시간 낭비하진 않았지만, 보고 나서 다른 좋은 영화들 볼 생각하는 동안 금세 잊게 되더군요. (**1/2)

[스트럭 바이 라이트닝]
한 평범한 미국 소도시에 사는 고등학생 주인공 칼튼 필립스는 자신의 고향을 벗어나길 갈망해 왔지만 그의 인생은 그렇게 될 팔자가 아니었습니다. 도입부에서 보다시피 그는 졸업 전 번개에 맞아 죽거든요. 저 세상으로 가버린 그가 지난 몇 개월 동안 노스웨스턴 대학 입학을 위해 어떻게 자신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해 온 걸 회상하는 걸 보다 보면 그는 처음엔 재수 없는 범생 같이 보이지만, 그가 협박까지 동원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걸 보다 보면 이야기에 상당한 우울함과 암담함이 느껴지기 까지도 합니다. 그가 한 짓들은 그리 유쾌한 건 아니지만 그 나이에 희망과 야망이 벽에 부딪힌 경험을 해신 보신 분들이라면 그의 좌절과 짜증에 공감이 많이 가실 겁니다. 영화의 각본도 쓴 크리스 콜퍼의 주연 연기는 든든한 가운데 앨리슨 제니과 레벨 윌슨 등의 조연 배우들도 볼 만합니다. (***)

[투 마더스]
어릴 때부터 단짝친구였던 로즈와 릴은 다 큰 아들을 둔(하지만 여전히 예쁘신) 아줌마들이 되어서도 여전히 가까운 사이고, 그건 그들 각각의 아들 이안과 톰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들이 같이 어울리는 걸 보면 레즈비언 커플과 그들 아들들 같아 보일 정도이니, 이안과 로즈의 관계가 시작된 것에 이어 릴과 톰의 관계가 시작되는 걸 보면 거의 근친상관에 가깝게 보일 정도이지요. 얽힌 관계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보다 보면 분명 막장스러운 면이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는 아름다운 여름 풍경과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들을 통해 꽤 심각하게 그려지고, 그 결과는 묘한 인상을 남기는 희비극입니다. (***)

[페인 앤 게인]
트랜스포머 속편들로 우릴 계속 고문해 온 마이클 베이가 [트랜스포머 4]를 만들기 전에 ‘작은 시도’를 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범죄 코미디 [페인 앤 게인]입니다. 코엔 형제 영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진짜 황당한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둔 본 영화의 주인공들은 근육만 키웠지 머리에 든 게 별로 없는 인간들인데, 이들이 작당해서 벌인 납치극과 그에 따른 강탈극은 정말 한심할 정도로 어설펐지만 결국엔 성공했고, 이에 득이 만만한 그들은 또 한 번 시도를 하다가 정말 엉망인 상황으로 단단히 굴러 떨어지게 되지요. 트랜스포머 영화들에 비하면 영화는 분명 소품이지만, 누가 마이클 베이 영화가 아니랄 까봐 영화는 슬로우 모션 기법과 메간 폭스 못지않은 수영복 차림 미녀 분들과 스포츠카들로 넘쳐나고 여기에 트랜스포머들 대신 체육관 떡대들까지 가미되니 영화는 정말 과잉으로 넘쳐납니다. 그런데 이게 재미있게도 영화 속 막가파 얼간이 캐릭터들의 막장 범죄극과 잘 맞물리는 편이고, 이들이 벌이는 행각들에도 상당한 블랙 유머가 있기도 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 요지경을 멀찍이서 바라다보면서 이죽거리는 동안 이 바보들이나 다른 주변 캐릭터들에게 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적어도 전 이 영화를 트랜스포머 속편들보다 더 편하게 봤습니다. 비록 코엔 형제나, 혹은 마이클 베이보다 이 장르에 더 재능 있는 감독이 맡았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1/2)

[아티스트 봉만대]
감독 봉만대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는 편이지만(전 본 영화를 통해서야 그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아티스트 봉만대]는 배경 지식 없어도 낄낄거리면서 볼 수 있는 모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척 봐도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에로틱 슬래셔 영화 [해변의 광기]의 대타 감독이 된 봉만대가 배우들과 스텝들과 함께 영화 제대로 만들려고 애쓰는 모습에 웃다 보면 에로 영화 장면들 만드는 과정을 흥미롭게도 지켜볼 수 있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봉만대 본인의 예술가적 자존심도 엿보이기도 합니다. 에로 영화 감독 봉만대에 대해선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본 영화는 그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능력 있는 감독이란 인상을 남기긴 합니다. 물론 그의 전작들을 볼 생각은 없지만요. (***)

[엘리시움]
모 블로거 리뷰 인용
“So far, my more jaded side still keeps saying “Elysium” is one of those ordinary SF blockbusters filled with bangs and booms and maybe it really is, but I sort of like the movie in spite of my reservation. It does not explore deeply into its ideas and potentials, but, folks, watching one of my fun childhood memories fully realized on the big screen is certainly not something I see everyday.” (***)

[메이지가 알고 있던 일]
[메이지가 알고 있던 일]은 헨리 제임스의 1897년작 동명 소설의 각색물인데, 재미있는 건 이야기 배경을 21세기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혼하게 된 부모 때문에 그들 딸이 겪는 심적 고통과 혼란이 예나 지금이나 보편적인 이야기인 걸 고려하면 그런 배경 전환엔 그리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요. 영화를 보다 보면 무책임하고 자기중심적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는 주인공 메이지가 정말 안쓰럽고 걱정스러운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 부모보다 아버지의 새 아내와 어머니의 새 남자친구가 더 메이지를 아낀다는 것이고 그러니 그들 셋이 더 가족 같아 보입니다. 심리적 요소들에 더 중점을 둔 제임스의 소설들은 그리 이상적인 각색 대상은 아니지만, 영화는 캐릭터들의 심정을 대사 없는 순간에도 잘 전달한 전반적으로 좋은 각색물입니다. 이야기인 중심이 오나타 에이프릴이나 그녀를 다정하게 둘러싼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와 조안나 밴더햄도 좋지만, 메이지의 정말 형편없는 빵점 부모들에게 어느 정도 인간적 면을 부여한 스티브 쿠건과 줄리앤 무어도 잊지 말야겠지요. (***)

[At Any Price]
아이오와의 한 지역에서 성공적인 농부이자 종자 세일즈맨으로 살아 온 헨리 위플은 최근 들어 꽤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경쟁자들 중 한 명이 자신의 고객들을 뺏어가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의 신고로 그와 계약 거래 관계에 있는 종자 회사가 계약 위반 여부로 그의 농장을 조사하게 되었거든요. 그에겐 두 아들들이 있지만 집을 떠난 맏아들은 아마 고향으로 돌아올 것 같지 않고 둘째 아들 딘은 자동차 경주 선수가 되는 데 더 열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카트 끄는 남자], [불법 카센터], 그리고 [굿바이 솔로]의 감독 라민 바흐러니의 신작 [At Any Price]는 그의 전작들과 많이 달라 보입니다. 미국 사회 주변부의 삶들을 바라보는 가운데 네오 리얼리즘 스타일이 물씬 풍겼던 전작들과 달리, 영화는 미국 농업 중심부를 이야기 배경으로 하고 있고 주연 배우들은 데니스 퀘이드와 잭 애프론과 같은 전문 배우들이거든요. 처음에 뻔한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사실적인 미국 농촌 묘사 속에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동안 영화는 변형된 아메리칸 드림의 빛바랜 모습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이야기가 후반부에 급전환되는 동안 데니스 퀘이드와 잭 애프론의 좋은 연기는 영화를 잘 지탱합니다. (***)
P.S.
데렉 시엔프랜스처럼 라민 바흐러니도 의외로 자동차 액션 잘 찍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