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잘 안나요

평소에 정신없이 회사 다니고 약속 잡고 사람들 만나서 얘기 듣고 얘기 하고 

틈틈이 스마트폰에

시간날 때 마다 자동반사적으로 들어가는 SNS로 멍때리기 하다 보니 


지난 몇년동안에는 제가 "기억하는 행위"에 부은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기억하는 행위가 점점 귀찮게 느껴지고 있구요.. 


가끔 대화의 일부는 생각나는데 이 이야기가 나올 때 내 앞에 앉아있던 사람은 누구였지 생각이 안날 때도 있어요. 


그리고 그날 점심은 누구랑 먹었더라도 생각이 안나요.. 이건 거의 안나는 것 같아요.. 


좀더 어린 시절에는 2-3일에 한번씩 손으로 일기 쓰는 행위가 제게는 그나마 기억하고 기억한걸 언어화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것도 요즘에 아주 가끔 생각나서 일기장을 열어보면 마지막 페이지에 한달전에 쓴 일기가 적혀 있어서 깜짝 놀라곤 합니다. 사실 일기장이 눈에 밟히긴 했는데 일기를 쓴다는건 기억하기니까 그게 귀찮기도 했어요. 의식적으로 머릿속을 어떤 질문에 대한 답에 집중하고 그걸 떠올려보는게, 그래서 잠시 쉼표를 찍는 행위가 귀찮게 느껴지다니. 얼마나 내가 충동적이고 자동반사적인 행동에 몸을 맡기며 살았나 싶어요.  


뭐든지 요샌 후다닥 반응이 오고 

뭐든지 쉽게 구글에서 검색해 볼 수 있고 그런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찐득하게 앉아서 기억하는 행위는 귀찮아진걸까요. 

그냥 앞만 보고 내일 할 일만 생각하기도 벅찬데, 지금 끝내야할 일로도 정신없는데. 아직 못읽은 페이스북 업뎃도 많고 계속 생기는데.. 트윗 업데는 계속 생산되고 있는데.. 

계속해서 무한 생산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재를 쫓아가기 위해.. 나의 과거를 지우고 있는 걸까. 이렇게 생각하니 한심하네요. 남들의 수많은 현재가 무슨 상관이라고. 


그러다보니 얼마전에 누가 제게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묻는데 머릿속이 깜깜 생각이 안나는거에요.. 내가 올해 본 영화가 뭐였더라.. 

집에 와서 기억을 돌이켜보고 아 맞다.. 올해 본 영화 중에는 지슬이 느무느무 좋았고 마스터는 생각보다 별로 였어. 

아 나 대학시절에 이터널선샤인이 너무 좋아서 4번넘게 보고 대사도 외우고.. 살인의 추억은 극장에서 3번.. 아, 글구 아비정전.. 

근데 이 영화들의 제목을 듣는게 너무 오랜만인거 있죠. 혹시나 까먹을까봐 좋아하는 영화를 적어서 두었어요.. 꼭 옛날에 싸이월드 하면 자기소개 글에 좋아하는 것이나 취향 적어놓듯이. 그렇게 해야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듯. 


그리고 또 누가 제게 올해 좋았던 논픽션 책은 뭐였냐고 묻는데, 

올해 읽었던 책이 뭔지, 적어도 한달에 한권은 읽었는데.. 또 생각이 바로 안나는거에요. ㅜㅜ 

한참 머리를 쥐어뜯다가 피로사회 하나 떠올렸습니다. 


그러다 트위터에서 앵무새 죽이기 관련 칼럼을 추천한 트윗을 보고 생각났어요. 아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다시 첫장으로 돌아가 읽고 싶었던 앵무새 죽이기. 앵.무.새.죽.이.기. 몇년간 잊고 있던 그 여섯글자와 함께 그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오랜만에 회상하게 해주었더랬죠.. 근데 난 이렇게 잊고 있었다니. 그 트윗이 아니었으면 기억도 못했을 중요한 책인데. 


그래서, 비록, 그날 뭐했다는 단조로운 행위와 일상의 시간순서대로의 배열일지라도 

하루하루 시간 나는대로 

일기를 쓰면서 기억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 


연관없는듯 연관있는 동영상인데 


구글은 우리가 모르는 상태로 남는 순간을 모두 없애버려서

그래서 우리 인생을 망쳐버렸다는.. 코믹하고 슬픈 비디오에요. 

우린 더이상 not knowing state 에 있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게 생겨도, 금새 알게되기 때문에, 뭔가를 알고 싶은 그 욕망을 느끼는 순간도 사라졌다.. 

http://www.youtube.com/watch?v=PQ4o1N4ksyQ 


너무 슬프지 않나요. 

어릴때 학교 수업에서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질문을 하면 

학생들이 틀린 답을 내도 바로 답을 알려주지 않을때 있죠 

조금더 힌트를 주고 또 새로운 힌트를 주고 

그러면 그 궁금증이 새로운 궁금증을 낳으며 뇌의 다른 부분을 자극하는데 

그렇게 호기심과 알고싶은 욕망에 모멘텀이 생겨 점점 커지다가 

결국 답을 알게 되는 순간, 아! 하고 이해되는게 있잖아요. 


그렇게 앎에 이르는 과정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요. 기억도 그 과정의 일부일텐데  


구글 때문에, 페이스북 때문에, 스마트폰 때문에, 인터넷 때문에, 

인간의 기억하는 기능이 점점 퇴화되고 있는 거겠죠? 


어떤 내용을 적어서 컴퓨터에 저장하면요 

그 내용을 기억하는게 아니라

컴퓨터 어느 폴더 밑에 어느 폴더에 저장했는지 저장 위치를 기억하게 되요 



    • 반복되는 업무나 일정을 어플이나 일람표에 저장하는 순간 몽땅 잊어버린다는 걸 얼마전에 깨달았어요.. 심지어 매일 반복되는 업무도 해당 파일을 열어봐야 기억이 나는.. 많이 공감되는 글이네요.
      • 저장해놓고도 까먹고 저장하지 않아도 까먹어요. 딜레마네요 ㅎㅎ
    • 어릴 때는 시간이 굉장히 안 가다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억력의 감퇴와 연관성이 있다고 합니다. 고로 같은 시간 대비 남보다 길게 느껴지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기억력의 퇴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알고 나서부터 작년부터 기억력에 좋은 습관이라든가 운동을 한다든가 음식 등을 꾸준히 섭취했는데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는 듯...? 시간이 흘러가는 체감 속도가 좀 느려진 느낌이 들어요 작년보다는 확실히.
      • 굉장히 신기한 이론인데 설득력 있네요. 기억력에 좋은 음식이 있나요? 콩 두부 미역 이런 몸에 좋은 음식이 떠오르는데..
        • 카카오가 대표적인 두뇌건강식이죠. 그리고 두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원활한 혈액순환도 필수예요. 그래서 두뇌를 건강하게 하려면 꾸준한 워킹을 해야 한다고 하구요. 명상을 하거나 글을 꾸준히 쓰는 것도 치매예방이나 두뇌건강을 체크하는 데 아주 좋다고 합니다. 작가들에게서 치매가 비교적 덜한 이유도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고, 문장에 이상한 부분이 나타나면서 치매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래요. 아무튼 가급적이면 스맛폰이나 지나치게 인터넷에 기대는 습관은 버리는 편이 좋고요.
          •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 어쩌면 스마트폰은 똑똑해서 스마트폰이 아니라 인간의 똑똑함을 가져가서 스마트폰일수도 있겠군요.
      나중에 역사가 말해주겠죠. 스마트폰이 인간에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말이죠.
    • 시간도 점점 빨리가지 않나요?
      ...
      나이들어서 그렇습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4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6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1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1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7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4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0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3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7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6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3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