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곳에 없어

 

 

    "그러니까 파리는 날씨도 구리고 지하철은 오물 냄새에 도대체 낭만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도시라니까. "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는 자신이 보고 겪은 도시에 대해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그러니까 낭만과 20세기 초반의 파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고, 그곳은 이미 관광지에 불과하거나 오물냄새와 거지들이 땅바닥에 누워 잠든 그런 도시라고 . 대체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보낸 날들마다 축제'라는 말이 어디서 유래한건지를 알 수 없다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설령 그곳이 파리가 아닐지라도, 어떤 도시이든 한 여행자의 기억속에는 분명한 인상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오직 '그 장소'에 낯선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인상이죠.

 

  하지만 여행자에게 한 도시의 인상이란 굉장히 개인적이고 복잡 다단합니다. 그 인상은 몇 장의 기념사진으로도 요약될 수 없는 무언가죠. 그 날의 날씨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잠자리의 안락함의 정도와 점심으로 먹은 음식의 소화 불량 까지, 사실 한 도시의 인상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한 개개인의 취향과 관점에서 초래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당신이 그곳에 있던 날의 우연들' 에 의해 크게 좌지우지 됩니다.  그래서 어떤 여행에서의 경험들은 굉장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몇몇 여행자, 아니 굉장히 많은 여행자들이 (혹은 관광인들이) 그 도시의 인상을 마치 보편적인 해설처럼 늘어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기도 하죠. 그 곳은 그런 곳이라고, 그 곳에는 가지 말라고, 그 곳은 정말 한번 즈음은 가봐야할 장소라고 권유합니다.

  그러나 설령 그렇게 모두가 칭송하는 도시라고 할지라도, 아주 우연적인 불운이 그 도시를 가장 치명적이고 더러운 도시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요. 파리는 낭만과 꿈이 살아숨쉬는 비포선셋의 로맨스일까요 아니면 세밀하게 들여다볼수록 불친절하고 괴팍한 프랑스인들이 모여살며 " 더러운 동네야"라고 고백하는 장소일까요.

 

 

 

 

   "모든 인간은 가설을 가지고 태어난다 " - 칼 포퍼

 

 

사실 이 이야기는 여행에 관한 말을 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에 대해 그리고 한 인간에 대해 우리가 경험론적으로 단정지어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결론들은 우리가 마음 속에 기대했던 가설의 증명이거나 자신이 취한 경험 속에서 우리가 이끌어낸 가설이죠. 여기서 '가설'이란 말은 그 것이 무조건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위의 칼 포퍼의 말 안에는 어떤 "과학적 관찰" 흔히 객관적으로 이 세계에 대해 합리적으로 연구하는 과학 조차도 자신들이 증명하려는 가설에 대한 '개인적 믿음'을 전제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모든 명제는 "그 명제를 보조하는 보조전제"를 숨기고 있으며, 끊임없이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가설 을 뒷받침하는 가설 을 뒷받침하는 가설로 가다보면, 결국 어떤 명제는 분명한 진리에 근거한 선언이 아니라 실은 하나의 믿음에 근거한 문구를 지닐 수 밖에 없게 되죠.  그러니까 모든 과학적 관찰 조차도 ' 가설'이 세워지지 않으면 실행이 불가능하며, 굉장히 명징한 '현실'을 담은 공식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그것을 '공식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 안에는 굉장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믿음에 근거한 투쟁들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 이러한 투쟁에 대한 여러 관찰들이 70년대 영국 과학사회학 이란 학문분과가 전제하고 있는 사항들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설령 당신이 파리에 평생을 살았든, 2년을 살았던 , 혹은 하루를 살았던지 간에 우리가 관찰을 하고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반론적인 명제를 이끌어낸 다는 것은 그것이 보편 타당한 말처럼 들린다 할지라도, 실은,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납득시킬 수 없는 믿음에 근거한 생각이 그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믿는 과학적 명리 , 예를 들어 멘델유전학 조차도 그것이 나왔던 당시에는 'x소리'로 취급받거나( 스님이 무슨 콩놀이를...)  그것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의 투쟁이 없었다면 (그러니까 '믿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 사실상 지금까지도 '개소리'로 취급받는 명리로 남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죠.

 

 

 

 

 

"사람의 생각은 강하고 끈질긴 기생충처럼 죽이기도 힘들고 전염성강해서 머릿속 깊이 박힌 생각을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 인셉션, 코브

 

 

  그렇다면 우리는 무언가를 강하게 믿는 사람. 아니 자신이 무언가를 강하게 믿는 다는 것 조차모르고 그것이 유일한 '현실'인 것처럼, 파리는 정말 더럽고 오물냄새가 나는 관광지라고 믿는 사람에게 "아니다 그것은 틀렸다. 현실은 ~" 이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파리에서 일주일을 보낸 친구보다 '더 오래 파리에 머문 사람을 데려와서 "진짜 파리는 ... " 는 이라고 말을 시작하며, 그 오래 지낸 자의 도시에서의 경험을 더 현실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사실 위의 복잡한 학문적 이야기 안에는 " 모든 것은 믿음으로 구성된 것이며, 유일한 현실, 유일한 진리란 없다"라고 보는 제 관점이 녹아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영화 인셉션 안에서의 꿈의 개념처럼, 자신이 '현실'이라고 믿는 꿈 안에 살고 있고, 그 꿈에서 보고 느낀 것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저나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토템을 보여주면서 ' 아니야 네가 보는 것은 꿈이야 ' 라고 말할 수 있냐는거죠.  아마도 영화 안에서의 방법처럼 그 사람의 강한 믿음을 바꿔 놓는 방법은 1. 강한 충격을 주거나 (공격적인 폭력 혹은 예상하지 못한 지적질. 혹은 약한 방식의 '계몽' ) 2. 그냥 죽여버리거나 (???)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그런 믿음을 가지기 이전에 선행된 믿음에 근거하여  (공유할 수 있는 믿음)  그 사람의 꿈 안에서 말을 건네는 방법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제법 많은 이론가들이, 그러니까 자신의 생각과 이론으로 세상이나 사람을 바꿔놓으려고 했던 학자들이,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내린 결론은 그런 '충고'는 실패하기가 쉽다는겁니다. 이론을 멋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좌절된 이론가들의 경험에 근거한다면 아에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영화 인셉션 안에서의 코브의 경우, 그의 아내 몰 (혹은 맬) 에 대한 기억은 거의 트라우마에 가깝습니다. 그 꿈 , 어떤 믿음 안에 들어갈지라도 자신의 트라우마, 멜이란 존재와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인거죠. 그게 남의 꿈인데도 불구하고.... 영화 마지막까지도 그가 과연 기억 안의 멜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에게 어떤 생각을 주입하든 간에 그는 그 생각안에서 ' 자신의 믿음을 발견할 수 밖에 없고, 아마 그것이 위의 대사에 언급된 "' 머릿속 깊이 박힌 생각'일 겁니다. 그걸 도대체 제거하기가 힘들다는거죠.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지. 너가 경험한 파리도 파리고, 내가 보았던 파리도 파리고...난 네가 가본 그 도시에 평생 가볼 수 없다"

 

 

 그냥 서문에 제시된 대화는 위의 대답으로 끝났습니다. 너의 믿음과 나의 믿음은 상반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은 자기가 분명히 경험한 바에 근거하므로 아무도 그 경험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요.

 물론 여기서 또 어리석은 논쟁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 야 임마, 너가 제대로 여행을 안해서 그래" " 야 너가 더 오래 머물면서 한 도시의 4계절은 모두 경험해야 겨우 아는거야 "

이런 말 안에는 오직 자신의 경험만이 인식론적으로 우월하다는 전제가 녹아있거나, 또 하나의 가설 " 제대로 된 여행이란게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거나 , " 오래 봐야 잘 안다 " 는 생각이 숨어있죠. 근데 만약 상대방이 이런 전제를 납득하지 않는다면?   예 . 그냥 대화는 "근데? 왜? 어쩌라고? 아닌데? " 로 선행되다가 서로의 자존감까지 다 걸고 상처투성이 인신공격으로 빗발쳐서 대화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 네가 여행 좀 했다고 유세하냐" 라는 인신공격은 덤이죠.

 

하지만 마지막 전개도 가능합니다. " 그래도 그 진부한 에펠탑은 예쁘지 않더냐."   그냥 상대방과 공유할 수 있는 믿음, 경험을 찾아서 그걸 공유하고 거기서부터 대화를 시작하거나, 혹은 그 공감에서 소통을 끝내는거죠. 어떤 방식으로든 대화를 한다는 것. 그것이 논쟁이든, 교감을 이루는 대화이든지 간에 상대방과 나와의 동일한 전제와 상식을 공유하는 대화의 판으로 이끌어야만 대화가 가능합니다. 서로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소통할 수 없다면, 그냥 둘다 어설프게나마 할 수 있는 영어로 이야기를 시작하는거죠.

 

가장 외롭고 슬픈 것, 그러니까 인간이 '릴리스의 후예'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언제나 제법 많은 경험들, 특히 불행들은 혼자만의 경험일 수 밖에 없고, 코브와 같이 트라우마에 가까운 상처들은 남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걸 공유하려고 할 수록 오히려 그 사람과 나와의 차이점만 발견하는 부조리극이 완성될 뿐이죠. 더 끔찍한 경우는 '그 트라우마에 가까운 경험'을 자신의 논리적인 주장에 보조 가설로 싣는겁니다. 숨어있는 가설 명제가 어떤 주장이 아니라 실은 그 사람의 상처인 경우는 숨겨진 가설을 드러내려고 할수록 진짜 주장하려고 하는게 뭐야?라고 묻는 숨바꼭질 대화가 되거나 , 자신이 인신공격당한다고 느끼는 주장자가 똑같은 인신공격으로 승부하는 경우도 벌어지죠.  

 

   영화 굿윌 헌팅에서 윌이라고 하는 그 상처받은 친구가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 지점에 있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논리적인 주장이나 인용으로 숨기려고만 하는 윌은 점점 방어적 태새로 자신에게 갇혀버리죠. 물론 그가 마음을 여는 계기는 그의 상담자인 숀이 "올리버 트위스트만 읽으면 너가 고아라는 경험을 내가 완벽하게 알 수 있냐? " 였고, 결국 대화는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상처나 경험에서 시작합니다. ( 두 사람의 대화의 물꼬는 사랑에 빠진 윌과 사랑을 믿는 숀이 그 경험을 공유할 때부터 시작되고 마지막 화해의 클라이막스는 윌이 숀에게 " 비슷한 경험이 있냐?' 라고 묻는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공유하는 믿음의 전제를 찾는거죠 .) 결국 인셉션의 아드리아네가 아무리 " 코브 벗어나요. 위험해요, 평생 상처를 안고 살수는 없어요"라고 외쳐도 , 멜에 대한 기억과 사랑을 지닌 코브의 마음, 그게 상처라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그를 , 그녀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녀는 그의 꿈 밖에 있으니까요.

 

 

 

"We're one. But we're not the same. Will we Hurt each other Then we do it again"

 

사실 저는 듀게에서 벌어지는 논쟁들. 아래 세멜리님의 논쟁이나, 가끔 채팅방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볼 때마다, 결국에는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생각에 '자신의 존재 ' 그 자체를 투영하는 투쟁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사회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것 같아도, 실은 자신의 경험. 자신이 살아온 바를 투영한 주장이 너무 많고, 그것은 상대방이 경험할 수 없는 '도시'입니다. 설령 비슷한 도시를 갔다고 할지라도 느끼는 바는 너무 다르구요. 결국에는 그것이 자신의 경험에만 의존한, 믿음에 근거한 주장임에도 그것이 자신 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내가 경험한 세상이 세상의 전부이며, 나의 손금은 모든 이의 손금과 닮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평생을 "꿈"안에서 사는겁니다. 혹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현실에 당연히 자신의 생각을 보태어 '이게 현실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되거나 말이죠 (설국열차 속 만이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장소라고 믿는 사람들) 하지만 사람들이 벌이는 논쟁들이 실은 정말 여성에 대한 논쟁이라던가, 한국사회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실은 자기 경험이,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하는 인정투쟁이라면, 그냥 서로 한꺼풀 벗고,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는 길이 마지막 단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믿음을 공유하고 싶다고 고백하는거에요. 믿음을 남에게 충고하지 말구요.

 

 

 

그러면 진짜 우리는 서로의 믿음과 가설을 공유하는 짝을 언젠가 만나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글쎄요.

 

 

 

 

 

 

 

 

 

 

 

 

 

 

 

 

 

 

 

 

 

 

 

 

 

 

 

 

 

 

 

 

 

    • 사는 모든 요소들이 가설이라는 믿음은 마음 맨 아래 있긴 한데 그뿐이죠.
      • 이런 생각도,
        결국 가설 속에 살기 때문에 가설은 생명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같이 사회통념의 가설이 힘을 잃으면 각자의 가설도 재생의 힘을 잃는거 같아요.
        • 인셉션 개념을 빌리면 사회통념이라는 일단계 꿈안에서 개개인이 또 자기 꿈안에 사는데(2단계) 첫번째 꿈이 흔들리고 불안해지면 개개인의꿈도 흔들리죠.
    • 그런데 사실 논쟁을 구경하는건 참 재밌어요.
    • 파리가 낭만적인 도시인지는 말할 수 없어도 헤밍웨이의 말은 맞더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저는 예술이 그러듯 비슷한 곳에 가닿을 수 있다고 믿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어렵지만 뭐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논쟁의 경우 합의에 도달하면 되는 일이지 정답이 필요한게 아니니까요. 그게 쉽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요.
    • 이탈리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나오는 이런 구절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제 말을 듣는 사람은 자기가 기대했던 말만을 간직할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폐하께서 귀 기울이시는 세계에 대한 묘사일 수도 있고 제가 돌아가는 날 저희 집 거리를 오갈 짐꾼이나 곤돌라 뱃사공들에 대한 묘사일 수도 있습니다. 또 제가 만약 제노바 해적들에게 잡혀 모험 소설을 쓰는 작가와 같은 감방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경우, 말년에 작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묘사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귀입니다.
    • 우리 개개인은 각자 보고 싶은것만 보고 듣고 싶은것만 듣는거죠. 그외의 모든것들은 부당하거나 옳지 않은것, 아님 쓸데 없는것으로 보일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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