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민담 혹은 만담, 뻔뻔함, 스포있음

1. 하루키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입니다
글쓰는 스타일이 저의 글읽기 코드와 잘 맞는다는 이유 때문인데요
하루키를 처음 접한건 어느 캐나다 강사 수업 시간 교재에서였어요
일종의 영어 문학 쓰기/읽기 수업이었는데
거기서 읽었던 것이 Wild Sheep Chase 양을 쫓는 모험이라고 번역된
장편이었을 거에요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것들도 그 때부터 읽었던 거 같습니다


2. 그러던 어느날 제가 군대에 가게 되었어요
아시다시피 군대에는 '불온서적' 이라는 이상한 제도가 있습니다
국방부 금지도서라고도 하던가요 근데 여기에 어느날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혹은 노르웨이의 숲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병사 몇 명이 자살을 하는 바람에;;;
이 사실을 안 지 몇일 후 집에서 소포가 왔는데 그 소포 안에
뙇하고 들어있는게 이 책이었어요....
작전장교가 불러서 가봤더니... 난리가... 너 내 군생활을 이렇게 망치냐며ㅠ
그저 할 말이 없을 뿐이었어요
정말 이 책이 올거라 생각도 못했고요 이렇게 나도 관심병사가 되나 싶었어요
인생은 정말 많이 꼬여있는 거 같아요

3. 하루키의 장편은 하나같이 구전 혹은 글로 기록되어 내려오는
민담의 형태를 그대로, 혹은 아주 뻔뻔하게 채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민담의 형식은 기본적으로 환타지를 바닥에 깔고요
주인공은 아주 특이한 경험과 고난을 통해 더욱 강해지거나 다시 태어나는 수준으로
거듭나게 되는 그런 내용이 많아요
결론은 거의 해피엔딩 하지만 뭔가 살벌한 느낌이 드는 뒷맛이 남고요
민담이 재미있는 건 이야기가 너무나도 황당하지만 그걸 우리가
황당함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세속의 어느 부분을 모티브로 삼아 그걸
어느정도 녹여내고 있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누가 줘서(?) 읽은 1Q84 역시 큰 틀에서 보자면 하루키 메가히트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어요 반갑다고 해야 할까요..



4. 더욱 뻔뻔한 기분이 드는 건 중간에 나오는 안톤 체호프에 관한 이야기 때문인거 같아요
사실상 무라카미 하루키야 말로 안톤 체호프를 잇는 적임자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 개인적으로는 예컨데 이런 불량한 공식,
안톤 체호프 = 레이먼드 카버 = 무라카미 하루키
흠.. 단순한 필체, 짧은 문장에 강렬한 내용, 꾸밈 없음, 슬픔과 기쁨의 공존, 알수없는 야릇한(?) 기분,
여러가지로 닮은 부분이 많은 작가들인데 중간에 등장하니 더욱 놀라웠어요
언뜻 생각나는 작가 중에는 커트 보네거트도 떠오르는군요
여기에 일본 특유의 분위기와 이야기들을 잘 섞으면 뭐라할까요
마치 일본인이 아닌 사람이 일본을 바라봤지만 사실 그는 일본인이었다는
뭔가 알수 없는 기분에 짧은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5. 하루키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자주 내는 사람이 아닌데
최근들어 몇번(한번인가요..) 제가 기억하기에 전에 누가 하루키에게
독도 문제와 센가쿠 열도 문제를 물었나 봅니다
하루키는 그런 문제로 이웃나라를 시끄럽게 해서는 안된다는 정도의
발언을 했던 걸로 알아요
근데 이번 1Q84에도 그런 내용들이 중간중간 들어있어서 놀랐습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는 몇번이나 올라갔는데 떨어지는 걸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나 싶기도 하고요
내용이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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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aughterhouse Starlets: Emma S." by Keith P. Rein on INPRNT








    • 1. 하루키는 어느 순간 잘 읽지 않는 작가이지만 '양을 쫓는 모험'은 저도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2. 얼마 전 읽은 책에선 김훈 중위 사건이 터졌을 때 군에선 자살이라고 결론내면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엮기도 했다던데 어처구니 없었어요. 괜찮은 책이라며 몇 마디 나눈 걸 우울감이 어쩌고 하면서 침소봉대했다고 하더군요.
      4. 체홉은 아주 좋아하지만 하루키와 체홉은 제겐 연결이 잘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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