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듀나무숲] 마지막까지 민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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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 못해서 구박받던 직원이 갑자기 퇴사하겠다고 했다는 윗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길게 안끌고 월요일부터 안나오기로 결론이 났고, 어제부터 포풍 인수인계중입니다.
이 사람이 하던 업무가 크게 3개인데, 1개는 제가 관리를 해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그 업무 인수인계 할때 저도 같이 참관을 했습니다.
인수받는 직원이 설명을 듣다 질문을 하면 동문서답을 해요. 자기 업무에 뭐가 키포인트이고 뭐는 아니라는걸 파악하지 못한건지 자기가 아는 것만 설명하려고 하더군요.
인계 받는 직원에 'A가 어떻게 B로 연결이 되나요?' 하고 물어보면 'A는 뭐뭐고, B는 뭐뭐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물어보는 사람이 A랑 B가 뭔지 몰라서 물어보는게 아닌데..
보고 있던 저는 답답해서 'A에서 어떻게 되기 때문에 A를 바꾸면 B는 이렇게 바뀌는거다.' 라고 설명을 해주고요. 그 시간이 점점 늘어나서 나중에는 제가 설명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더군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인계를 하는건지, 이 사람이 인계를 하는건지...
그러다가 뙇...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던 업무중에 하나가 어떤 설비를 관리하는 것이었는데, 거기 돌아가는 프로그램에 일간, 주간,월간 실적을 리포트로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사용하기가 좀 까다로와서, 파트장이 쉽게 쓰기 위해 어떻게 어떻게 고치라고 했었죠.
이게 올해 1월 이야기인데, 1월에 완료 한걸로 업무일지에 기록이 되어 있고요.
그런데, 인수인계 하다가 그 프로그램을 열어보니... 리포트 기능을 삭제했어요. 설비 Log를 직접 보게 바꿔놨더군요. (Log는 1분에 몇백개가 찍힙니다.)
'이거 왜 삭제했나요? 그냥 리포트 사용 방법만 바꾸라고 했는데요?'
'좀 까다로와서 그냥 없앴습니다.'
'이거 없애고 나한테 말했나요?'
'했겠죠...?' (했죠도 아니고 했겠죠..? 라고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하냐고...)
'언제요? 수정보고서 썼나요?'
'썼습니다.'
'가져와 봐요'
PC를 한참 뒤적뒤적하더니.. '안썼나보네요'
'업무일지엔 기록했나요?'
'네 했습니다.'
'열어봅시다' 하고 업무일지 파일 열어보니 기능을 삭제했다는 얘기는 (당연히) 없고, 파트장이 지시한대로 했다고 적혀 있더군요. 그렇게 썼으면 1월에 이미 난리가 났겠죠.
'이건 장난 아닙니다. 반년치 실적 리포트가 없는걸 위에다 뭐라고 보고 할건가요?'
'리포트가 없는건 아닙니다. 설비 Log 는 있으니까, 그걸로 만들면 되잖아요.'
'그걸 누가 만들어요? *** 대리가 수작업으로 다 만들고 퇴사할건가요? 아니면 자동으로 바꿔주는 컨버팅 프로그램을 만들건가요?'
'......'
아니.. 어려우면 주변에 물어보던가, 나한테 못하겠다고 상의를 해서 방법을 찾아보던가 해야지.. 고치라니까 그냥 없애 버리고 누가 안열어보겠지 하면 어떻게 하냐.. 이건은 잘못하면 퇴사가 아니라 징계면직이나 피해보상소송까지 가능한건이다.. 왜 일을 키우냐.. 에효..내 잘못이다.. 다 했다고 했을때 확인해봤어야 하는데 그냥 업무일지만 보고 실물을 확인 못했으니.. 등등...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냥 묵묵히 땅만 바라보고 있더군요. 결국 인계받던 직원이 '그냥 제가 옛날 소스 보고 컨버팅 할 수 있게 해볼게요' 라고 했습니다. 하아...
그런데... 소스가 어디있는지 몰라요. 헐... 소스를 열어보고 까다로와서 못한게 아니라 그냥 소스를 못... 아니 안 찾은거였어요.
그래서 뒤져서 소스를 찾아서 열었는데.. '아.. 이렇게 짜여져있구나...' 라고 하더군요... '소스 한번도 안열어 봤어요?' '네..'... 으헝헝헝....
그래서 새로 인계받는 직원이 비공식적으로 리포트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어서 반년치 리포트도 살리기로 했고요. 이 양반은 이렇게 퇴사하는 순간까지도 민폐를 끼치네요.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도 님하랑 나이차이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얘기 하기 미안하지만.. 새 회사 가서는 동료나 상사들이랑 이야기 좀 하고, 문제가 있으면 그때그때 이야기 해라. 이야기를 하면 욕먹을지는 모르지만, 윗사람에게 이야기를 한다는건 그만큼 책임도 같이 지자는 거다. 혼자 숨기고 덮어놓고 전전긍긍하다가 그게 크게 터지면 그때 혼자 다 책임지는거다. 자존심 상하고 두려워도 모르면 물어보고, 문제 생기면 바로바로 이야기 해서 커지기 전에 직속상사가 수습할 수 있게 해줘라.. 등등...
본인도 이야기를 하더군요. 자기도 처음부터 그런거 아니었는데.. 자기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당하고.. 주변에 물어보는 것도 한두번이지 다들 바쁜데 자꾸 물어보는 것도 미안하고.. 파트장은 뭘해도 혼내고.. 차장, 부장들은 언제까지 물어볼거냐.. 왜 공부 안하냐.. 하고 끊어 버리고.. 후배들한테 물어보자니, 걔네들도 바쁜데 민폐끼치는 것 같다고.. 새 회사가 여기보다 급여는 적지만, 새출발하고 싶어서 간다고 합디다.
둘은 인수인계 정리하러 현장 사무실에 갔고 저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네요.
다음에 어떤 사람이 충원될지는 모르겠지만, 일은 당장 못해도 괜찮으니 배우려는 의지 있고, 잘 물어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