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요. 그러나 손찌검을 했을 때가 어떤 경우인지 한번 살펴보세요. 그냥 가만히 있는데 와서 손찌검을 했나요? 아니지요. 보통은 입씨름을 먼저 하지요. 입씨름을 하다가 손찌검을 하겠죠. 분명 입씨름에서 남편이 졌을 거예요. 누구나 말싸움에서 지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런데 내가 말을 잘 해서 싸움에서 이겼단 말이에요. 말에서 진 남편은 내가 말로 이겼듯이 힘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남편은 말로는 안 되니까 힘으로라도 이기려고 손찌검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아내가 남편에게 손찌검을 안 당하려면 말로 져버리면 됩니다. 말로 져버리면 굳이 주먹이 올 이유가 없어요.
... 전 누구인지도 모르고 졸린 김에 클릭해서 읽어봤는데 괜히 읽어봤다/ 못볼 걸 봤다 싶습니다. 가정폭력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시각은 충분히 비웃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면 그대로 당하는 것, 아니면 "맞춰주는" 것, 두 개의 선택만 있습니까? 경찰은 왜 있는데요;
말을 할 때 욕설이 나오는 것은 첫 번째는 습관적인 면이 있고, 두 번째는 말다툼에서 아내가 남편한테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해요, 그러니 남편이 화가 나니까 욕설을 하고, 그래도 안 되니까 주먹을 휘두릅니다.
그러니 질문하신 분께서 남편한테 져주세요. 누구를 위해서 일까요? 나를 위해서 입니다. 남편이 오라면 ‘예’하고 오고, 가라고 하면 ‘예’하고 가는 것부터 먼저 해 보세요. 혹시 그렇게 못 할 때는 ‘죄송합니다’ 하세요. 그렇게 자꾸 연습을 해 보세요. 그러면 큰 문제가 없어요.
‘그렇게까지 해 가면서 살 것이 뭐 있습니까?’
이렇게 생각이 들면 남편에게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정리하면 됩니다. =====================================================================
곁에서 용기는 북돋아줄 수 있지만, 구체적인 한 사람의 인생까지 책임질 수는 없으니까 결국 선택과 책임은 당사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그 환경을 떠나지 못한다면, 그 환경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본인이 져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최선이나 차선이 아닌 '차악'의 해결책을 말한 거겠죠('최악'을 그냥 계속 맞고 사는 걸로 가정했을 때). 저는 저 멘토라는 분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도, 특별한 호감을 갖고 있지도 않지만, 그런 맥락에서 이해했어요. zelazny님이나 다른 분들 생각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고요.
헤어지는 걸 선택할 수도 있지만, 당신이 굳이 같이 사는 걸 선택한다면 그래야 하지 않겠냐라고 이해가 됩니다.
상대가 왼쪽 뺨을 때리면 가드를 어떻게 해라, 라는 기술적인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미는 게 해결책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느 쪽이든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른뺨을 내미는 게 무조건 비현실적인 해결은 아닐 거라구요.
단지 문제가 되는 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저 말을 거짓말로 뱉는 경우겠죠. 오른뺨을 내밀라고 말은 하면서도 옆 나라와 싸움이 나면 전쟁과 살인도 불사하자는 경우라든가.
위 의견에 동의합니다. 공개법회같은 자리는 가정폭력상담전화번호나 이혼전문변호사를 섭외하라는 조언이 나올 자리가 아니겠죠. 법륜의 의견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나누는 말들은 언제나 맥락 의존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 영역, 현실 정치의 영역, 가정폭력상담 핫라인의 영역, 하다못해 침실의 영역에서는 각각 다른 문법들이 존재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법륜은 바로 자신이 처한 순간과 장소의 문법에 적확한 말을 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사이비 교주나 삼류 점쟁이도 맥락 의존적인 답변은 해줄 수 있겠죠. 그러나 법륜의 저 말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직한 조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항할 의지까지 상실하고 고분고분 지내다 맞아죽는 가정폭력 피해자라도 나와줘야 반증이 되려나요. 겨우 저런 게 소위 멘토의 수준이라니, 암울한 사회에요.
맞는 말씀이십니다만, 저는 문제를 해결해내는 데에는 언제나 두 가지 (이상)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태를 "가정폭력"이라고 이름붙이고 젠더화된 폭력의 한 형태로 해석하면서 사법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한 편에 있다면, 바로 그러한 해결책이 만능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인 '마음' 영역이 다른 한편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점쟁이나 사이비 교주의 궤변, 전횡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영역과 더불어, 그러한 해결책으로도 쉬이 다스릴 수 없는 신도들의 마음 영역이 구분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후자는 언제나 전자의 문법과 해결방식과 일치될 수 없다고 저는 봅니다. 저는 저 질문자가 전자식의 해법을 모를만큼 무지한 여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다만 후자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저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질문했던 것이지요. 네. 어쩌면 그녀가 멍청하고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이면서 노예적인 사고에 사로잡혀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에게는 그런 측면이 더 중요했나봅니.
따라서 법륜의 말은 전자의 경우만을 파악했을 때는 우스꽝스러운 말에 불과하지만, 전자의 영역으로 별로 해결하고 싶어하지 않는 저 질문자의 마음을 후자의 편으로 해갈시키기에는 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말씀하신대로 극단적인 가정폭력 피해자 발생 가능성을 법륜 식의 설법과 연결시키는 건, 오히려 현재 매우 부족하게 이뤄지고 있는 가정폭력 관련 치안 서비스를 강화해야한다는 매우 현실적인 필요를 별로 뒷받침해주지도 못한 채, 지금 보이는 쉬운 타깃을 공격하는 것에 불과한 것같습니다.
저는 이 글에 대한 분노가 분명 그럴만한 것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비아냥'으로만 응대하기에는 세상이 꽤 복잡하다는 생각이 줄곧 듭니다. 개인적인 경험 상으로도, 사법적 조치들이 제가 처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했기에 매우 무기력한 가운데, 오히려 저를 끝까지 괴롭힌 것은 어떻게 그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 라는 실존적인 고민이었습니다. 전 스스로 종교인도 아니고 법륜을 비롯한 멘토들이 분명 우리 사회의 병리적 징후를 드러낸다고 파악합니다만, 흔들리고 부대끼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보다 불명료하고 비일관적이라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가정폭력 및 젠더 간 폭력에 대한 사법적 처벌과 사회적 서비스가 증진되어야 한다고 굳건히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개개인들이 법적 보호가 온전히 이룩해낼 수 없는 마음 치료를 종교로든, 무슨무슨 테라피로든, 혹은 의지의 승리로든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 역시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법륜과 더불어 저런 말에 공감하는 많은 이들을 '사이비' 취급하는 단순한 방식으로는 문제가 결코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고민을 많이 하고 쓰신 듯합니다만 다른 의견을 쉽고 단순한 비난으로 치부하시는 건 곤란합니다.
간단하게 세 가지 문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맥락지향적인 위로의 효용은 법륜이 질문자의 상황을 알고 사례에 적합하게 조언할 수 있을 때 적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질문자가 심각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인지 아닌지, 부부의 관계나 성격은 어떤지 판단할수 없는 상황에서 맥락을 고려한 조언은 커녕 위험한 넘겨짚기와 편견을 반영하는 말장난에 그칠 확률이 높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법륜 같은 조언이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길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저 법회의 출석자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되면 그만이라지만 그 말은 사이비종교나 다단계나 심지어 마약에 빠진 사람들에게도 적용 가능하겠죠. 저 질문자가 이혼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득 때문인지 아니면 폭력에 무뎌지고 무기력해졌기 때문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이 처한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거나 하는 이유로 또는 가해자에게 도리어 의존하고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불안한 정신상태 때문에 가해자를 떠나지 못해 더한 위해를 겪는 상황은 실제로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 결과에 대해 법륜 같은 자가 과연 책임을 질 수 있답니까?
법륜이 말한 내용의 더한 해악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고질적 폐해를 재생산한다는 데 있습니다. 당장 저 링크의 블로그만 해도 말씀하신 근사한 성찰 같은 건 찾아볼수 없고 여기서 보이는 몇 댓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싸움에 지지 않아서 매를 버는 여자라는 이 사회에만연한 편견이나 맞아도 참고 현명하게 도닥거리며 살라는 충고는 굳이 법륜 아니라도 한국 사회에 차고 넘칩니다. 그에 더해 한 사회의 종교지도자란 사람이 아주 쉽게 위험한 편견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죠. 글에서 선후관계를 오도하신 것이,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가 부족하여 법륜의 말이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게 아니라 법륜같은 이들이 쉽게 공고화하는 인식이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를 어렵게 하는 겁니다.
저 말이 질문자의 상황을 잘 아는 상담자에게서 나온 개인적 조언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분노의 댓글이 달릴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의 명성을 드높인답시고 대중을 모아 공개하는 문제해결의 방식이 한심할 정도의 단견에 해악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문제를 제쳐놓고 쉬운 화풀이 대상을 찾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질문자의 사정을 잘 알 수 없는 건 법륜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기하신 몇 가지 것들에 대해 확신할 수 없습니다. 과연 그것이 효용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죠. 실제로 법륜의 말이 그렇듯 우리의 의견 역시 넘겨짚기와 편견 혹은 말장난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은연중에 해당 질문자가 오직 법륜의 의견을 좇는 것만으로 생각하시는 것같은데요. 법륜이 저런 의견을 펴는 것과, 가정 폭력 피해자인 질문자가 실제로 "자신이 처한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 위해를 겪는 상황"이 인과적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기엔, 우리는 저 질문자의 사정을 잘 모릅니다. 게다가 이렇게 인과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자칫 질문자의 주체적 의지와 해석적 능력, 행위능력을 아주 과소평가할 수 있습니다. 가정 폭력 피해자들을 둘러싼 일반적인 성정치적 맥락에 대해 저도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지금 저 질문자에게 자동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새각합니다. 그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으며, 이혼의 득실을 계산하는 동시에 법륜에게 괴로운 '마음'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요. 피해자라고 해서 그녀를 인지적으로 불완전하고 의존적이며 불안한 정신상태의 소유자라고 묶어버리는 것이 더 위험한 것같아요. 우리가 그저 임의대로 그들을 전형적인 피해자 이미지로 고정시켜버리는 거죠.
그리고 법륜이 조언 하나 했다고 한 사람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고 따져 묻는 것도 과도하지요. 그런 언사 속에서 질문자는 법륜이 하는 말만 충실히 이행하는 종속적 존재로 상정되어 버립니다.
더욱이 윗분들이 말씀하셨듯이 법륜은 '선택'지를 제기하고 있기에 "참고 현명하게 도닥거리면서 살라는 충고"만으로 그칠 수 없구요.
게다가 계속 제가 말한 두 영역을 인과적으로 연결시키고 계신데요. 즉 저런 마음을 갇도록 법륜이 조장하니까 사법적 보호가 어려워진다고요. 저는 이 둘이 그리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보지 않으며 때때로 불일치하거나 분리되기도 한다고 보므로 저와는 다른 전제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법륜이 '상황을 잘 알앗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논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애초 저 상황이 놓여있는 제한적인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애초 자세한 상황이 질문자에 의해 제시되지 않았는데, 그것도 불교 승려가, 뭘 어떻게 더 조언할 수 있단 말입니까.
게다가 법륜이 스스로 명성을 높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도 우리는 알 수 없는 노릇이며, 그의 조언이 미칠 수 있는 구체적인 '해악' 역시 불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젠더 편견이야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질문자의 남편에게 깃든 젠더 편견을 제시하면서 이에 대처하는 방식의 일환으로서 해당 내용이 전개되었던 것이라고 파악하며, 그것을 투쟁적으로 돌파하기보다 법륜은 질문자가 가장 '덜 괴로울' 방식으로 대처해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점이 비판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맞으면서도 이혼을 하지 못하는 여성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의미있는 조언은 이혼해라 한가지 뿐입니다. 물론 거기에 따라오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나 조언을 해주면 금상첨화겠죠. 그게 그 여성을 구하고 나아가 폭력을 보고 자라가는 아이들을 구하는 길입니다.
맞을 짓을 하지마라, 참아라 따위의 이야기가 순간이나마 자기 위안의 이야기가 될 수는 있겠네요. 하지만 널리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본분인 종교인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닌 듯 합니다. 무엇이건 자기 책임이지만 두려워서,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용기를 북돋아주거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줘야지 용기없음을 깔아놓고 어떻게 저떻게 해라..라는건 살기힘들면 죽으라는 얘기와 다를게 없습니다.
글쎄요, 저도 결혼 경험이 없지만 저런 식의 조언이 문제인 건 저걸 듣고 혹시나 그대로 할 사람을 물리적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점 아닌가요? 얼마 전 방송된 로앤오더 에피소드에서 걸핏하면 때리는 남자친구와 -- 형사들이 강력하게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 "내가 자극하지 않으면 괜찮다," 남자친구는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며 단둘이 여행을 가서 결국 남자친구한테 살해되는(!) 여성 얘기가 나옵니다. 네, 말싸움에서 고분고분하게 구는 데에서 더 나아가 잘못했다고 비는데 때려 죽여요. 살인까지는 안 가더라도 가정폭력의 패턴에 대해 꽤 사실적으로 묘사한 에피소드라고 생각했어요. 저런 조언이 폭력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위안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위험을 초래한다고 생각해요.
말씀대로 결혼생활의 양상도, 폭력의 양상도 (정말 우발적인 폭력에서부터 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정폭력까지) 다양하고 그걸 일괄적으로 정리하진 못하겠지요. 정말 어떤 여성이 저분께 개인적으로 질문을 했고, 상황을 들어보고 저런 답을 했다면 거기까진 이해를 하겠습니다. 근데 저 블로그를 슬쩍 보니까 그런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일단 법회라는 상황에서 질문과 답이 오간 것 같고 그걸 블로그에서 "애절한 사연에 대한 법륜스님의 답변은 아주 간결하고 명쾌했습니다. 그 답변을 들어보세요." 이래가면서 삶의 지혜인 양 얘기하는 게 화난다, 이게 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잔인한 오후_ 도를 넘지 않는 댓글들에 제가 코멘트하지 않는 이유는 글의 내용과 댓글란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사칭 및 규칙 위반으로 지속적으로 신고하고 있다는 걸 미리 밝혀드립니다. nnacme님께서는 남의 닉네임으로 롤플레잉하고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하는 말들이 연기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형사고발과 이혼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게 제 의견이긴 합니다만, 세상일이 그리 깔끔하게 결정되지는 않죠.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각자의 사정으로 이혼 보다는 때리는 남편과 사는 편이 그나마 낫다는 사람도 분명 있거든요. 그리고 저야 제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경우의 수에 예외없이 들어맞는 정답인가 하면, 당연히 그럴 리 없구요.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됐건 부부생활에서의 트러블을 상담하러 온 상대에게 이혼을 최우선적으로 권유한다면... 훔... 이건 또 이거 나름대로 아수라장을 불러올 것 같은 예감이군요. 링크된 글은 물론 마음에 안 듭니다. 하지만 지극히 한국적이고도 전근대적인 부부관계 하에서라면... 안타깝게도 유효한 솔루션이 될 수도 있겠다 싶고, 그게 아직은 우리 사회의 한계랄 수 있겠죠.
솔직히 이 칼럼보다 이번 경우가 더 화가 나네요. 근친성추행은 이미 과거의 일이니 마음을 다독이는 게 중요하다쳐도 이건 현재진행형인데 뭐 다 피해자의 몫을 더 강조하니 말이죠. 이득이 있으니 안 헤어지는 거다? 마음가짐에 따라 성추행이 사랑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냥 세상 망상으로만 산 사람의 개똥철학으로 여기겠습니다.
저도 예전에 봤던 글이군요. 제가 위에 남긴 글처럼, 친족간 성폭력에 대한 사죄와 처벌과 별개로 어쨌든 마음 추스릴 방법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친족성폭련은 범죄이고 사회문제이죠. 그렇지만 사죄를 받고 그 xx를 감옥에 쳐 넣는다고 해서 내 삶이 절대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때에는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둥 기억을 위조해서든 현실을 부정해서든 끝까지 행복하게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하는 편이므로, 법륜 식의 해법이 충분히 질문자에게 '효용'이 있겠구나, 생각했었던 기억입니다. 게다가 (전 잘 모르지만) 불교가 좀처럼 '적대'를 상정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에도, 충분히 승려가 해 줄 할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법륜이 기어이 '네 아비가 개새끼다.', '꼭 사죄를 받아라.'라고 '달래'준다고 하더라도, 원망과 단죄 이후에도 삶이 계속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계속되는 삶'을 스스로 보듬을만한 조언으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여겨지는데요.
어쩌면 비슷한 경험으로 괴로워하다가 잠시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 법륜처럼 '현실 부정', '의지의 승리'를 결심한 뒤 오히려 평온해졌었던 기억입니다. 당시 제 그릇으로 "감사"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원망도 법적 조치도 해낼 수 없었던 '마음'을 정리하게 되었다면 족한 것 아닌까요(물론 마음정리도 이성적이고 사법적인 측면과 마찬가지로 결코 완벽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죠. 근데 인생이 원래 다 불완전하고 미봉적이고 그런 거 아닌가 싶네요. 자기 삶을 어떻게 자기가 100프로 다스리고 컨트롤하겠어요...).
게다가 지금 제기된 문제는 궁극적으로 '해당 질문자'의 평화로운 삶에 대한 바람인 것이지, 분노한 '타인'들이 나서서 정의를 이룩하자는 외침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성적이고 사법적 처리의 차원과, 비일관적이고 모순적인 개별 마음의 차원은 분리해서 봤으면 합니다. 간혹 전자의 차원이 후자의 차원을 단순화하고 때로 지배하는 것같을 때가 있는 것같습니다.
그건 해당 일간지의 편집 기조에 대한 것이지, 제가 여기서 논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법륜의 논의'에서, '법륜 논의의 공론화 과정'에 대한 것으로 바뀌게 될 테니 말입니다. 제 문제 설정은 법륜&질문자의 안녕과 평화, 에 대한 것으로 그친다는 점에서 제한적입니다.
반응들이 격렬하셔서, 본문을 읽어 봤는데 제가 불교에 밝지는 않지만, 그냥 스님이 하실만한 이야기를 한거네요. 먼저, 아주머니의 남편은 고칠수 없다. 고칠수 없으면 맞춰야 한다. 맞춰서 살수 없으면 헤어지면 된다. 헤어지지 못하는것은 욕심 때문이다. 지는것과 이기는것은 차이가 없다. 제가 갓 군대에 들어가 처음 일요일을 맞고, 종교 활동을 나가가 되었는데, 저는 불교를 선택했습니다. 불당에 신병들이 바글바글 앉아 있는데, 스님이 그러시더군요. 앞으로 군생활 하면서, 온갖 해괴한 꼴을 보게 될 것인데, 이런 저런 일때문에 몸이 병들고, 마음이 병든다. 그렇다고 때려 치우고 나갈수는 없는일이고, 욕하면서 풀고, 술을 먹을수 있으면 술을먹고 담배를 피울수 있으면 피우면서 어떻게든 풀어라. 이런일 때문에 죄의식 가질 필요없다. 세세한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군대라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링크의 아주머니가 들은 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드네요. 당시에 저는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었고, 그 군법당의 스님이 해줄수 있는 최선의 이야기를 해준거라 생각합니다. 고참이 괴롭히면 대대장에게 소원수리 쓰라는 식의 조언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조언은 스님이 아니라도 해줄수 있는 조언이고, 굳이 법당까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러 갈 필요도 없었을거라 생각이듭니다. 다만 블로그에 최고의 조언을 듣고, 모두 행복해 졌다 식의 자화자찬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었을것 같습니다.
흠.. 종교란게 자신 영혼의 영역, 그러니까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라 그런 맥락으로 저 스님의 발언도 이해가 되네요. 요새 종교가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게 그런 부분이 현실의 구체적인 행동지침인냥 나와 시대와 가치에 맞지 않는 이상한 모습으로 변질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대처와 자신의 내적 대처는 분명 구분되어야 하는데, 저런 발언을 사람들이 그렇게 잘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네요. 맞으며 참고 살아라, 라고 그냥 말 그대로 받아들일 아주머니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매맞고 사는 아내가 불교의 법회에서 자신의 문제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조언을 구하는 상황(맥락)에서 그 아내가 원하는 답이란 이미 다 결정되어 있는 거 아닌가요? 찬반의 댓글 단 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특히나 매맞는 아내의 경우에는 답은 이미 아내의 마음 속에 정해져 있습니다. 그걸 권위있는 누군가가 확인해주기를 바라는 게 아내의 마음입니다. 그 아내가 굳이 법륜스님의 법회에 가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한 것은 법륜스님이 자신이 원하는 답을 해줄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고 법륜스님은 그 아내에게는 충분히 권위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라고 보입니다.
그 아내에게 남편의 사법처리와 이혼만이 유일한 해법이다라고 말해주는 게 제대로 된 카운슬링일까요? 아내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요.
이 문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약을 먹기를 거부할 때 억지로 먹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유사한 패턴이긴 하지만, 사법처리와 이혼만이 유일한 해법인지도 확실하지 않고(그 근거가 로앤오더의 한 에피소드에서 가상으로 죽은 한 아내일 뿐이라면), 그렇기에 그 아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준 법륜스님이 크게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보편적인 진리는 없고 맥락에 따라 해법이 달라진다는 방편적 설법의 방법론이 보통 불교계에서 쓰는 카운슬링 아닌가요? 사실 어떤 카운슬링 업계든 보편적 답을 고집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만.
이 글을 발제한 사람부터 몇 몇 댓글 쓴 회원들까지 정말 수준들이 심각하게 덜떨어졌네요. 제가 이런 표현까진 안하려고 했습니다만 중간에 땡중아 어쩌고저쩌고하는 발언을 보니 심각하게 수준이 덜떨어진다라고 밖에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가장 악질적인 것은 이 글을 발제한 분이네요. 예전에 노무현 발언 중에서 앞뒤 다 잘라먹고 막말한다고 지랄하던 언론수준이랑 똑같네요. 똑같아.
"남편이 손찌검을 해서 괴로워하던 여성이 법륜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폭력은 쓰지 말라고 아무리 사정해도 고쳐지지 않는다며 하소연 했습니다. 이혼을 하려고 해도 아이들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참고 살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훌훌 털고 떠나버리면 되는데, 그러자니 아이들이 걱정입니다. "
여러분이 위와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은 종교인입니다. 그럼 뭐라고 답변해 주실건가요? 이혼하라고요? 본인이 이혼을 하고싶지 않다고 하지 않습니까. 애들이 있어서 참고 살아야 한다네요. 경찰에 신고하라고 얘기해 줄까요? 가정폭력센터같은 곳에 전화걸라고 할까요? 그건 고명하신 스님이 할만한 답변도 되지 않고 질문자가 원하는 답변도 아닙니다. 질문자가 원하는 답변은 어떻게하면 "남편을 바꿀수 있을까" 입니다. 아마 질문자 입장에서는 덕이 높고 이름있는 스님이니 뭔가 신통력이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비법을 물어본 거겠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도를 쌓은 고승이라도 요술이란 건 없습니다. 비법이랄 게 있을리가 없죠. 법륜스님은 간단한 답변을 쉽게 설명해 준 겁니다. "내가 남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내가 남에 맞추어라."라는 게 요지입니다.
‘그렇게까지 해 가면서 살 것이 뭐 있습니까?’이렇게 생각이 들면 남편에게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정리하면 됩니다.
라는 말이 중간에 있죠. 이게 단순하고 명료한 정답입니다. 법륜스님이 폭력남편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맞고 사세요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선택지가 있지만,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본인이 좋아서라고 말을 하지요. 결국 현재 맞고 사는 것 또한 본인의 선택의 결과라는 말을 돌려서 비판을 한 겁니다. 결국 이런 굴레에서 본인이 빠져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머물고 있으면서 상황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부단히 어려운 일 이기에 욕 안먹고 안 맞고 살려면 내가 맞춰서 살라는 겁니다.
저는 스님이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와 함께, 질문자에게 가장 합리적인 답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질문자 본인도 아주 답변이 흡족했던 것 같네요.
몇 몇 덜떨어진 댓글을 단 회원분께 묻습니다. 당신이 종교인 법륜의 입장이라면 질문자의 질문에 과연 어떤 해답을 주실건가요? 어떤 대답이 나오던 저는 당신에게 한 껏 비아냥을 드릴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puigryu/ 종교인이면 왜 이혼하라고 답변하면 안됩니까. 자신의 명성과 위치, 직업때문에 질의자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일 '이혼'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면 안되는겁니까? 자신이 종교인이랍시고 그 명성을 지키기 위해 이리돌리고 저리돌리는 말장난을 하다뇨. 이건 경계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본인이 싫다해도 아이들이 폭력을 보고 자라야하고, 그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해야한다. 폭력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폭력을 휘두른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느냐. 지금은 이혼이 두렵고 이혼후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겠지만 무엇이 진정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줄 것인지 생각해보라. 맞고사는 것일지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일지"는 말을 해줄수도 있죠. 굳이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폭력을 당하고 사는 사람에게 상식을 가진 사람이 해줄 수 있는 답변입니다. 종교인은 항상 세속에서 벗어나고 상식에서 벗어난 둥둥 뜬 답변을 해줘야합니까? 그렇다면 그건 제대로 된 문답이 아닙니다. 폼을 잡는죠.
오랜 시간 폭력에 노출된 사람은 폭력에 익숙해져서 자포자기할 가능성이 높은데 (처음부터 자존감이 낮았을 수도 있고) 남편을 피해 절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극복의지가 없다며 탓하는 것부터가 잘못되었죠. 가정 폭력 피해자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따뜻한 위로이고 , 그 다음은 폭력에서 탈출할 실질적 방법에 대한 조언과 용기겠죠.
라는 문장을 보고 본인이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 따위의 결론이 쉽게 나오지 않네요. 덧붙여 제 머리는 장식이 아니라 법륜스님이라는 양반의 다른 글이나 가치관들에 대해 매우 익숙한지라 본문에 대한 비판에 끼게 됐고요. 또한 머리까지는 모르겠고 제 비판의식 역시 장식이 아닌지라 이렇게 상식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보고도 표면에만 집착, 어거지로 좋은의미만 발굴하는 행태는 못보이겠습니다.
라는 문장을 보고서도 이게 왜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간단한 결론 도출을 못 하시는 것 보니깐, 악세사리로 두뇌를 달고 다니시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해독력에 덜떨어진 부분이 심각하신 것 같으니, 애써 이해해 보시라고 말씀드리는 것도 시간 낭비가 되겠네요.
puigryu/ 네. 저 문장을 보고 그런 단순한 결론에 도달하시는 것, 그리고 거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머리가 장식어쩌고 얘기하는 것이 puigryu님의 한계겠지요.
링크된 글의 상담 여성은 이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못합니다. 아이가 있으니까요. 이혼을 원하지 않는게 아니라 이혼은 원하지만 아이가 있으니 하지 못합니다. 이거나 저거나 이혼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은 동일하지만, 많이 다른 문제입니다. 어쨌든, 그러니 어쩔수없이 참고 살아야하고 그게 답답해서 남편을 변화시키려하는데 그게 뜻처럼 되지 않는다...가 저 문장을 보고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겠죠. 이런 전제아래 고작 맞춰서 살아라..라는 이야기밖에 못하는 태도는 더더욱 비판받아야 합니다. 매맞는 여성-아이-이혼과 관련된 짜증나는 구조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니까요.
물론 puigryu님은 이렇게 글을 써드려도 머리니 두뇌니 운운하시는 이야기밖에 하지 못할겁니다. 덧붙여 땡중아 어쩌고 하는 유저는 동일한 닉네임을 가진 분이 수차례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철저히 외면하는 유저이며 이 스레드 내에서도 관련 상황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물론 님에겐 중요한게 아니겠지요.
메피스토님이 한가지 모르시는 게 있는데요. 지금 표현을 최대한 자제해서 말씀드리고 있는거예요. 저랑 오프에서 만나서 얼굴 맞대고 있었다면 지금 쌍욕이 날라가고 있었겠죠.
님이 지금 뭐가 문제인지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링크따라가서 글을 그냥 피상적으로 읽고 오신겁니다. 그리고 글을 비판하시면서 대안이라고 말씀하신게 "이혼해라"라니 참 덜떨어지신거죠. 이혼하라고는 법륜도 분명히 말을 했는데 말이죠. 다만 님이 덜떨어 지니 불교적으로 답변을 해 주고 있는 법륜식 언어를 당신만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겁니다. 위에서 무수한 댓글들이 달려있는데도 말이죠.
물론 메피스토님은 이렇게 글을 써드려도 왜 법륜이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안녕히 가세요"라는 화법이 무슨 알인지 모르고 "이혼해라"라는 정론밖에 말하지 못 할 겁니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님에겐 중요한게 아니겠지요.
puigryu/ '법륜식 언어'라니. 대중을 대상으로 설법하는 종교인이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군요. 대단합니다. 절 비롯한 위에 많은 분들은 이 해괴한 언어에 적응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비상식적인 이야기에 몇몇 사람들이 억지로 좋은 의미를 붙여주거나 해석하고, 누군가 그것을 지적하면 '쌍욕'을 날리는 현상....아. 죄송합니다. 종교인의 이야기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겠네요. 위에 몇몇분들이 언급하셨음에도 종교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승려의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비판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졸지에 덜떨어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혼할 수 없다면 참고 사는 쪽에 마음을 더 편하게 해주는 조언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조언도 수 많은 방향이 있을텐데, 맞는 건 당신이 말로 이겨서 그런 거니, 상대가 하라는데로 순종하면 안 맞을 거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몹쓸 소리 같습니다. 저 말 듣는 그 순간만의 위안이면 모를까, 집에 돌아가서 한 번만 다시 폭력을 겪어도 전혀 도움이 안 될 말이고, 폭력의 원인을 내 탓으로 돌리게 하는 말인데요. 정말 미봉책이라도 적어도 폭력의 수위가 어떤지 묻고, 억울한 마음을 공감해주고, 자존감을 잃지 않게 해주고, 힘을 내주게 하는 그런 시도를 해봐야죠, 공개 설법이라는 이벤트가 구조적으로 내밀한 상담을 막는 것이라면, 답할 수 없는 문제에 척척 답해내는 오만을 걷어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