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주트 - 포스트 워 1945 - 2005,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저도 최근에는 차분히 읽기가 힘겹습니다. 왜 그런지는 뻔히 알 수 있는데, 책을 몇 쪽 읽고 나서는 발작처럼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또 몇 쪽 읽고나서는 재채기가 나오는 것처럼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그리고 몇 쪽 읽고나서는 옆으로 뒹굴면서 휴대전화로 웹서핑을 하기 시작하는 거죠. 개인적으로 하루 활자 섭취량을 꼬박꼬박 채워야 무언가를 달성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한동안 자유로울 수 있는데 요새는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더 빠른 속도로 할당량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보니 활자중독이라는 명사를 본 지 오래되었군요.) 과자가 한약보다 맛있다면 과자만 먹는게 당연하겠고, 정신적인 패스트푸드를 먹고 살이 뒤룩뒤룩 찐 다음에 (즉, 근육이 약해진 다음에) 일부러 정신적인 헬스를 하는 시대가 오는거겠죠. "살 찐 만큼 먹은 다음에 일부러 운동을 해서 살을 뺀다고?" 의 정신버전 농담이 나오지 않을까요.
도서관에서 어차피 한 권 안 읽는거 두 권 동시에 절대 안 읽는다란 (혹여나 다른 책이 읽고 싶다면 집에 안 읽은 책이 쌓여 있으니 그거나 읽어라란) 마음가짐으로 책을 딱 한 권씩 빌려보고 있는데 정말 다 읽는게 고역이여서 재대출을 2번이나 했습니다. 그게 바로 포스트 워 1945 - 2005 였는데요. 재미있는데 읽히지 않으니 여러모로 괴롭더군요. 흥미롭게도 이 책은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서관에 일 권은 없고 이 권만 있어서 그것만 읽었습니다. 아마 시작이 80년대 쯤의 유럽 테러리스트 목록 나열이었을 겁니다. 요새는 정치에 관심이 생기다보니 세계정치비교론 같은 책을 꼭 찾아보고 싶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습니다. 보면서 토니 주트에게 반해버렸는데 2010년에 타계하셨더군요. 이렇게 유려하고 꼼꼼하게 쓴 아프리카사나 아랍사, 라틴아메리카사나 아니 어디 대륙이 되었든 다른 대륙사가 있으면 당장 찾아 읽을 자신 있는데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감명받은 구절을 발췌해보겠습니다.
브레주네프가 헨리 키신저와 그의 냉정한 후임자들을 믿고 헬싱키의 불간섭 조항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옳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 뒷부분의 더 이상적인 조항들을 불간섭 조항들 못지않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는 (실로 키신저도) 생각하지 못했다. - 826쪽
1975년 헬싱키 조약이 맺어집니다. 이 조약에서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부분은 위에 보듯이 "불간섭 조약" 부분이었어요. 국가 간의 영토선을 명확히 하고 서로 거기에 간섭하기 없기를 약속하면서, 몇 가지 어용 조약들을 집어 넣죠. 7조 사상, 양심, 종교, 신앙 등 기본적 자유와 인권 존중이라던가 8조 인간의 평등과 자결권 보장이라던가요. 하지만 위에서 보다시피 그런 조약들이 그저 이상적이었을 뿐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할 거라고 이 조약을 맺은 이들조차 예상하지 못했죠. 이 후, 인권단체와 NGO단체들은 이 조약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기반으로 인권 운동을 하게 됩니다. 저에겐 참 신선하더군요. 국가간 조약에서 아무 생각 없이 넣었던 이상적인 문구들이 현실적인 힘을 얻으며 발전해나가는 지지점이 되었단 것 말이죠.
발트 해 연안 공화국들을 제외하면 소련 내의 그 누구도 독립적인 영농이나 시장 경제를, 이를테면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가격을 매기고 구매자를 찾는 일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 1986년에 개인노동활동법으로 제한적이나마 소규모 사기업이 허용된 이후에도 소비자는 거의 없었다. 3년 뒤에 사업가는 소련 전체에서 2억 9,000만 명의 인구 중 겨우 30만 명뿐이었다. - 976쪽
고르바초프는 당 총서기의 막대한 권력을 이용하여 내부로부터 당 독재의 창자를 뽑아 버렸다. (중략) 고르바초프는 가까운 조언자의 견해에 의하면 '체제의 유전적 오류'였다. - 987쪽
그러나 공산주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는 선례가 없었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은 베오그라드에서부터 버클리까지 학회와 대학, 카페 등에서 지겹도록 이론화되어 왔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 1118쪽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뽑자면 그 중 하나가 공산주의가 어떤 식으로 무너져가는지 아주 섬세하게 설명해준다는 것일 겁니다. 저에겐 그런 부분도 부분이었지만 지중해권 국가들의 대부분이 5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에 독재를 겪었다는 부분도 꽤 충격적이더군요. 그 시대에 한국처럼 유럽에서도 일당 독재를 경험하는 국가가 흔했다는 바로 그 지점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독재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 된건 한국이나 루마니아나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도 할 수 있구요. 위의 글에서는 얼마나 기묘한 (그러면서도 당연했던) 세계가 존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시장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3억명 가까이 되는 세계를 저는 상상력이 부족해서 상상할 수가 없군요. 특히 그 사람들이 막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대는 더더욱 말이죠. 게다가 아무도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어서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반쯤 실패한 이행기를 겪은 동유럽 국가들이 앓는 소리를 내는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겠죠. 저에겐 지금에서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이행 시나리오가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더군요. 예를 들어 경제 성장이 아닌 쇠퇴가 일상이고 법칙인 시대에 대한 생각이라던가 말이죠.
그리고 중간의 [체제의 유전적 오류]라는 구절이 저에겐 섬뜩하게 달라붙습니다. 사람들은 현재 있는 체제의 모국인이라면 체제가 같은 체제를 끝없이 복제/유지한다는게 상식일 때 체제 붕괴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겠죠. 그러나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체제의 유전적 오류라는 말은 굳이 공산주의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닐 겁니다. 완벽히 똑같은 복제를 반복하는 체제에 있어서 언제나 [내부로부터] [창자를 뽑아]버리는 사태는 언제나 나타날 수 있을 것임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러나 루마니아는 차우셰스쿠의 특권적 지위에 끔찍한 대가를 지불했다. 1966년, 차우셰스쿠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마흔 살 미만의 여성으로 아이가 넷이 안 되면 낙태를 금지했다(1986년에는 마흔다섯 살로 나이의 한계를 높혔다). 인구 증가는 거의 전통적인 '루마니아주의적' 강박이었다. 1984년, 여성의 최저 결혼 연령이 열다섯 살로 낮춰졌다. 낙태를 막기 위해 가임기의 모든 여성은 매달 의무적으로 의학 검사를 받아야 했다. 낙태가 허용되더라도 당의 대표가 입회한 상태에서나 가능했다. 출산율이 하락한 지역의 의사는 임금이 삭감되었다.
인구는 증가하지 않았지만, 낙태로 인한 사망률은 다른 유럽 국가들의 사망율을 크게 앞질렀다. 유일하게 가능한 형태의 산아 제한이었던 불법 낙태가 종종 최악의 위험한 조건에서 널리 실행되었다. 1966년의 법으로 이후 23년 동안 최소한 1,000명의 여성이 사망했다. 실질 유아 사망률은 너무 높아서 1985년 이후에는 신생아가 4주까지 생존한 이후에야 공식적으로 기록되었다. 공산당의 정보 통제의 극치였다. 차우셰스쿠 정권이 전복될 무렵, 신생아 사망률은 1,000명당 스물다섯 명이었으며, 공공시설에 수용된 아이들은 약 10만 명에 달했다. - 1018쪽
독재자들 가운데 차우셰스쿠는 매우 특이한 정책입안자였습니다. 뭐, 독재자들은 다들 특이하긴 했지만 각각의 내적 논리에 맞춰 국가를 자기 마음대로 운영했지요.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성향이 인구 조절을 축소 방향으로 국가 정책을 짰을 때 루마니아는 정반대로 달려나갔습니다. 예전에 [2060년에 인구 비율은 어떻게 될까?]에서 들었던 의문 중 하나인 국가가 인구 증가 정책을 펼쳤다면 감소 경향을 막았을 수 있었을까? 란 질문에 대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 사례로 알 수 있는 답은 : 아니요, 막을 수 없습니다, 입니다. 차우셰스쿠는 국가를 운영하면서 외채를 더 빌리는 건 절대 생각하지 않고 자립하기 위해 꾸역꾸역 갚아나가는 독재자 타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인구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인구를 증가시키는게 필요했죠. 하지만 (우연하게도 한국의 독재 시기와 거의 겹쳐지는) 20년간의 인구 증가정책은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악효과만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불가리아 경제가 계속 실패하고, 모스크바의 새로운 국면이 명확해지면서 공산당 지도부가 점차 불안해지자, 지프코프는 국내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른 원천을 모색했다. 그것은 민족주의였다. 불가리아에 상당한 규모로 존재했던 터키계 소수 민족(900만 명이 채 못 되는 인구에서 약 90만 명을 차지하고 있었다)이 구미가 당기는 표적이었다. 터키계 소수 민족은 별개의 민족이었고 다른 종교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시절의 불길한 상속인이자 상징이기도 했다. 그 시절은 이제야 겨우 직접적인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웃 나라 유고슬라비아에서 그랬듯이 불가리아에서도 흔들리던 공산당 독재 국가는 최고조에 달안 민족적 편견에 따른 분노를 국내의 의지할 데 없는 희생자들에게 쏠리게 했다. - 1027쪽
상당히 익숙한 이야기일 겁니다. 저는 그저 한국이 (자칭) 단일 민족에 단일 언어를 쓰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닌가 싶더군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단일 민족/언어인데도 사상이 달라서 갈라 싸움이 가능했기도 하고. (다행이라 쉽게 말하기엔 많은 죽음들이 그나마 이런 조합이여서 이 정도 수위에 머무르고 있다고 안도해야하는 것인가 생각도 들고.) 더 나아가서는 단일 민족이 희석되고 있다는 가시적인 문제들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걱정스럽기도 하고. (간단히 다문화 2세대의, 또는 3세대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는 20 ~ 30년 후.) 그 때는 단일 민족이 아닌 단일 국민이라는 것에 판돈을 다 걸어야 할 사태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국가 시책의 진행 방향을 보면 뒤숭숭합니다.
(전략) 세르비아계는 350명의 국제연합 평화유지군을 인질로 잡았다. (중략) 이제 다국적군의 존재는 세르비아계를 압박하기는커녕 그들에게 또 하나의 엄폐물만 제공한 꼴이 되었다. (중략) 400명의 평화유지군 파견대의 공식적인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믈라디치의 부하들이 도착했을 때 네덜란드 대대는 무기를 내려놓았고 세르비아계 군사가 이슬람 사회를 뒤져 남자들과 소년들을 체계적으로 골라냈을 때에도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중략) 이후 나흘 동안 7,400명에 이르는 남자들이 거의 전부 죽임을 당했다. 네델란드 병사들은 안전하게 고국으로 돌아갔다. - 1104쪽
이건 그냥 평화유지군의 잉여력을 보여주는 사례 하나. 이후 미국이 전면적으로 사태에 개입하기 시작하자 너무나 쉽게 해결됩니다.
오직 체코 공화국에서만 (프랑스와 이전에 소련에 속했던 나라들과 더불어) 공산당은 그 이름을 그대로 두는 대담함을 보였다. 그러나 중부 유럽의 모든 탈공산주의 국가에서 유권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공산당에 비교할 수 있는 '반대' 정당들을, 이를테면 반미 정당이나 반유럽 연합 정당, 반서방 정당, 반사유화 정당 등을 지지했다. 그리고 위에 열거된 모든 정당들을 지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발칸 국가들에서는 '반미주의'나 '반유럽주의'가 전형적인 반자본주의의 약호였다. 이들은 엣날을 드러내놓고 그리워할 수 없었지만 위장된 여론에서 향수를 즐겼던 과거의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좋은 핑곗거리였다. - 1133쪽
한국에서야 공산당의 공짜도 내밀지 못했지만 공산주의에서 해방(?)된 동/북유럽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일본만 보더라도 전후 극좌 극우로 난리났던걸 생각해볼 수 있겠죠. 한국에 언젠가 당명으로 공산당을 걸고 나올 수 있을까요? 한 100년 후 쯤? 그리고 줄기차게 본서에서 나오는 이야기지만 소련 내에서 상당수의 중산층들은 지루하긴 했지만 싫지는 않았던 생활을 보내 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독재 시대에 모든 사람이 고통만 받았다고 하기에는 상당히 어렵고 비약적인 해석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300년 동안 유럽적 생활양식을 구성하는 특징이었던 국가 간의 전면전은 1913년에서 1945년 사이에 종말론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20세기 전반에 약 6,000만 명의 유럽인이 전쟁이나 국가가 후원한 살인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1945년에서 1989년 사이에 유럽 대륙에서 국가들 사이의 전쟁은 사라졌다. (각주 *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계산에 넣더라도 20세기 후반에 전쟁과 관련된 사망자 수는 100만 명에 못 미친다.) - 1221쪽
상당히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 넣어봤어요. [국가 간의 전면전]이 [유럽적 생활양식을 구성하는 특징]이라는 말 상당히 웃기지 않나요. 전쟁은 하루도 끊기지 않는다란 말을 누가 하긴 했지만 현대에 있어 과거를 비춰보면 (사망자수에 비교하자면) 한 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평화기간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지요. 6천만명의 사망자라. 우리나라 현재 인구가 한꺼번에 죽고도 천만명 부족하네요.
또 하나의 희생자는 거의 똑같이 유서 깊은 유럽의 제도, 즉 대중적 지식인이었다. _ 중부 유럽과 동유럽에서 일찍이 정치적 지식인들을 동원했던 문제들은, 즉 마르크스주의나 전체주의, 인권, 이행의 경제학은 이제 젊은 세대에게 짜증스럽고 냉담한 반응만 자아냈다. _ 유럽의 지식인들이 여전히 도덕적 진지함과 보편적 정책 처방을 결합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외교 문제였다. _ 그러나 유고슬라비아의 절박한 상황조차 지식인들을 대중 사회의 중심으로 되돌려 보낼 수 없었다. _ 2003년 5월 31일,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자 철학자요 지식인인 위르겐 하버마스와 자크 데리다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에 '우리들의 부활. 전쟁이후 : 유럽의 재탄생'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_ 이 글과 동시에 서유럽 전역에서 유명한 공공 인사들이 유사한 글들을 발표했다. 움베르트 에코 _ 잔니 바티모 _ 아돌프 무슈크 _ 페르난도 사바테르 _ 리처드 로티 _ 글을 기고했다. 만약 이토록 명성 높은 지식인들이 그토록 유명한 신문에 동시다발적으로 글을 쓴 사건이 앞선 세기의 일이었다면, 그 백 년을 통틀어 중대한 대중적 사건이었을 것이다. 성명서이자 무기를 들라는 호소로서 정치적, 문화적 공동체에 파문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와 하버마스의 주도적 행위는 많은 유럽인들이 공유한 정서를 분명하게 표현했지만 사실상 아무런 주목도 끌지 못했다. 뉴스로 전해지지도 않았고, 동조자들의 인용도 없었다. _ 상당히 많은 유럽 국가의 정부들이 이러한 글들에 나타난 견해에 일반적으로 공감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데리다나 에코 같은 교수를 초청하여 의논한 정부는 하나도 없었다. 입만 아팠을 따름이다. - 1277쪽
이라크 침공에 대해 지식들이 입을 모아 성토했지만!... 현대 지식인들의 힘없음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왜 이렇게 되었는가는 다음 저서인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에서 좀 더 자세히 나옵니다. 한국에서 지식인들 말 잘 안 듣는다고요? 데리다랑 하버마스가 함께 글 써도 유럽에서 아무도 안 들어요. 우린 아마 안될꺼야. 포기하면 편해. 이런 느낌이에요.
더 커저만 가는 연금 수령자들의 비용을 부담하기에 충분할 만큼 일하는 젊은이들이 없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연금수령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세금을 내지 않으며 게다가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었다. 한 가지 해답은 퇴직 연금을 줄이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해답은 연금 지급 시점을 늦추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을 더 오래 일하게 만든 후에 은퇴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세 번째 대안은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월급 봉투에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두는 방안이었다. - 1287쪽
외국계 펀드는 독일에서 이윤이 가장 높은 기업들을 인수하는데, 인수전에서 독일은 적수가 되지 못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교원연금에서 시작하여 위스콘신 소방공무원 연금, 영국 중부 광산노동자 연금"에 이르기까지 독일 기업들은 점점 다른 나라 사람들의 노인 부양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기관이 되어가고 있다. - <사라져가는 세대> 202쪽
요 부분은 재미있어서 발췌. 그리고 그에 대한 다른 관점도 하나 더 넣어봤어요. 우리들을 사역시키는 외국인 주주들은 누구인가?에 대한 절반 정도의 답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노인 부양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기관] ㄷㄷ하지 않습니까. 국민연금은 모든 나라에서 가장 크게 운용할 수 있는 기금일겁니다. 저 세 가지 대안에 대해 다양하게 유럽에서 적용시키는 사례가 저 글 뒤에 나오지만 궁금하시면 찾아 읽어보시길. 그게 그렇게 쉬운 길만은 아니더라구요.
포스트 워 2권에 대한 중간 정리를 해 보면 "미국식 삶의 모델"과 "유럽식 삶의 모델" 그 두 가지를 현대에서 어느 쪽을 받아들일 것이냐, 그리고 어느 쪽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느냐에 대한 결과가 진행 중인 것임을 알 수 있었죠. 토니 주트는 후자 쪽에 더 호감을 가지고 있어 서술이 부드럽지만, 저도 굳이 "미국식 삶의 모델"을 좋은 모델 삼는 건 이제 너무나 낡은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고 유럽식을 본받자는 것도 이 책의 중간에서 나왔던 포드 자동차 기업을 외국으로 직수출 불가능한 각국의 내부 문제를 생각해보면 어려운 일이겠죠. 거기다 "아랍식 삶의 모델", "라틴 아메리카식 삶의 모델", "아프리카식 삶의 모델", "동아시아식 삶의 모델" 등등의 고려하지 못한 모델들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어느 정도는 자신감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우리의 삶의 모델을 구성하고 설계해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은 들더군요. 적당히 짬뽕도 하고. 다음 책에서 토니 주트는 공동체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우리라고 묶어줄 수 있는 그 무엇 말이죠. 이 아래부터는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에서 발췌한 글들입니다. 간단하게 그 책은 "큰 정부를 추구할 것인가, 작은 정부를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가 큰 정부로 한 번 망하고 작은 정부로도 한 번 망했는데, 사실 큰 정부에서 좋은 점도 많으니까 큰 정부 것에서 좋은 것에 대해 재평가 하면서 그 유산들을 물려받자"라고 합니다.
{미국식 사회 보장 제도나 영국의 국민건강보험 = 이러한} 이러한 복지 사업들의 중요성은 그러한 일을 하자는 생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모든 미국인들에게 안전한 노후를 보장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 또는 영국의 모든 시민들이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비용에 대한 걱정 없이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생각에 독창적인 부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정부가 이러한 일들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은 전대미문의 것이었다. - 82쪽
케인스는 눈에 띄게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1926년 경제학자들의 주요 과제는 "정부의 의제를 정부의 의제가 아닌 것과 끊임없이 구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204쪽
저는 뭐, 정부가 세금을 걷어서 하는 정책들에 대해 흑자나 적자를 따지는건 어떤 면에서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공공서비스이며 그렇다면 원래 밑지고 하는 장사를 국가 단위의 십시일반으로 했던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왜 효율성을 위해 민영화를 한다 하게 되었던 걸까요.
'좌파(the left)'는 오랜 기간 동안 도시의 산업 프롤레타리아와 관계를 맺어 왔고, 그들에게 크게 의존했다. _ 하지만 1950년대 내내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프롤레타리아는 지속적으로 파편화되면서, 감소하고 있었다. _ 노동 계급의 공동체와 노동조합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구좌파(the old Left)는 본능적으로 집산주의와 조직화된 산업 노동자에 의한 공동체적 규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_ 이 시기에 스스로를 신좌파(the new Left)라고 일컫는 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_ 남성 프롤레타리아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이제 '흑인', '학생', '여성' 등에게 넘어가고 있었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는 '동성애자'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흑인과 학생, 여성, 동성애자 같은 집단은 복지 사회의 제도적 장치 속에서 개별적으로 대표성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신좌파는 단순히 자본주의의 부정의에만 항거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무엇보다 모든 종류의 '억압적 관용(repressive tolerance)'과 그것의 최종 진화형이라고 할 수 있는 복지 국가를 비판했다. _ 무엇보다 신좌파와 그들을 추종하는 젊은이들은 구좌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집산주의(collectivism)를 거부했다. _ 하지만 신좌파가 내세운 개인주의는 공동의 목표도, 전통적 권위도 존중하지 않았다. _ 그 시절[1960년대]에 좌파가 된다는 것은, 혹은 급진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본위적인, 자기개발적인,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자신만의 관심사에 매몰된다는 것을 뜻했다. - 93쪽
재미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의구심이 생기는 부분입니다. 누구나 입에서 읊조려 보았을 마법의 단어, "파편화"에 대한 이야기이도 합니다. 간단히, 구좌파에는 서로를 묶어주는 끈끈함, [공동의 목표]와 [전통적 권위]에 대한 [존중]이 있었고, 그것은 [집산주의]였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좌파와 우파를 합해서 신좌파의 반대항에 놓게 된다면, 신좌파에는 집산주의가 그 둘에 비교해서 배제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신좌파가 법률 개정 등의 정치적 행동에 대한 약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죠. 간단히, 명분이든 무엇이든을 중심으로 뭉치지 못하면 정치 권력은 발휘하지 못한다란 주장입니다. (그렇다고 신좌파가 주장 했던 것들에 대한 폄하 같은것을 이 책에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편집된 부분에 그런 것들이 가치가 없지 않았다고 언급합니다.)
민영화는 단지 납세자와 소비자의 부를 새로이 민영화된 기업의 주주들에게 넘겨주는 역진적 부의 분배를 실현했을 뿐이다. - 116쪽
민영화에 대해 이 책은 상당 부분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국가의 자산을 구매하는 데 있어서 손해보는 부분을 국가가 때워주면서 웃으며 겨자먹기로 기업에게 판매했으므로 기업은 아무런 위험risk도 지지 않고 그것들을 사들일 수 있었으며, 그것은 위와 같은 한 줄의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현대 들어 편협한 관심사를 가지는 젊은이라는} 이러한 문제들은 세계화라는 말이 우리를 얼마나 호도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수천 킬로미터 밖의 다른 사람들과 실제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버클리와 베를린, 강갈로르의 학생들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공간이 문제다. 정치는 특정 공간 안에서만 작동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투표를 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그가 선출된 지역 안에서남 적법한 권위를 가질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와 실시간으로 접촉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특정 공간 안에서 작동하는 정치를 대체할 수 없다. - 126쪽
우리가 공동선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공공장소, 공공재,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격려하기까지 한다면, 오로지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을 바라보려 하는 젊은이들의 경향을 열렬히 지지한다면, 이때 우리는 공동의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의 참여가 줄어드는 현상에 놀랄 필요가 없다. - 135쪽
슬프게도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공공 정책의 핵심 내용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식인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이러한 일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대신 선택 사항들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윤리적인 문제에 개입하거나 항의하는 일을 더 좋아했다. 그 결과 우리 자신을 어떤 통치 방식 아래 둘 것인가에 관한 논쟁은 정책 전문과들과 '싱크탱크들'에 맡겨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습에서 벗어난 생각은 자취를 감추었고 대중은 논쟁의 주체에서 배제되었다. - 162쪽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냉대는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닙니다. 유럽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투표율이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 EU와 관련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권한을 가진 사람들을) 뽑는 투표율은 과반수 이하 정도로 낮게 나옵니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주의 사회에 있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윤리적인 문제에 개입하거나 항의하는 일]를 좋아하는 지식인들이 전해주는 정보로는 국가 시책에 대해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불균형을 불러 일으키고, 다른 채널, 즉 종교나 그 외의 채널에서 정보를 얻게 만드는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한국은 [공공장소, 공공재,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격려]하고 있지는 않고 말로라도 복지 정책에 투자하겠단 말을 하는 걸 보면 지적하고 관리만 한다면 조금은 선에 가까운 결과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체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단언하는 자, 혹은 정치적 실책이 있을 때마다 이를 선동의 수단으로 삼는 자들에게서 배울 점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하지만 극단으로 치우칠 대 일어나는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의견 불일치, 반대 그리고 불만은 열린사회를 숨 쉬게 하는 대동맥이다. 우리는 주류 의견에 반대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자를 필요로 한다. 만세불변의 동의에 기반을 두고 민주주의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 자체의 생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 159쪽
이 부분은 시류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기묘한 부분입니다. 그래도 제게는 꽤 의미심장한 부분이었습니다. 이래 저래 정리를 해봤는데, 제가 뽑은 것들은 역시 맛보기에 불과하고 실제 수치들이라던가 흐름들은 본서를 읽으시면 훨씬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겁니다. 전 이 분이 앞으로 최신 서적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슬플 뿐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