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잔인하고 또 이기적이죠. 자신이 찌질하단 소리는 듣기 싫으면서 상대에게는 곧잘 하곤 하니까요.
얼마전 EBS에서 "어린 시절 억압된 분노는 나중에 배우자 등 가장 가까운 상대에게 분출된다"라는 내용을 봤어요. 어떤 이는 그래서 그 분노마저 감싸안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사람들이 헤맨다고 말하죠. 하지만 스스로도 극복하기 힘든 부분을 감싸줄 사람이 어딨나요?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관계가 참다운 방향아닐까요?
저는 약간 생각이 달라요. 찌질이라는 말이 육두문자처럼 저속하진 않고 패륜아 같은 말처럼 도덕적인 여지를 주지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떨쳐내긴 어렵지만 딛고 일어서야 하는 개인의 결점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조롱기가 포함되어 있지만 자조용으로 쉽게 쓸 수 있는 만큼 판단의 여지를 줄 수 있는 말인것 같고요. 집단적인 비난을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상황의 뉘앙스를 고려해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런 집단 의견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미묘한 판단이 모여서 일종의 윤리를 형성하니까요. 이런 집단 윤리가 때로는 폭력이 될 수도 있지만, 집단 윤리 자체를 부정한다면 그 찌질한 당사자 주변의 상황이나 똑같은 경우의 처한 사람들의 경우가 무방비한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약간의 조롱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이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정도의 수위 조절이 필요하겠죠.
그런 경우는 빵셔틀에게 어떤 말을 갖다 붙여도 똑같은 의미를 지닌 심한 말이 되죠. 찌질이든 부하든 꼬붕이든 심지어 셔틀이든. 셔틀이라는 말 어디에 부정적인 의미가 있나요? 세상에? ㅎㅎ 그 경우에는 말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 문제이고, 본문은 말의 표현의 문제이니까요. 다양하고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찌질이라는 말을 극단적인 상황 때문에 쓰지 말자는 건 슬픈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경제적 약자는 사회 경제적 구조 때문에 그 위치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죠. 이런 사람들에게 찌질이라는 말 잘 안쓰이는 것 같아요. 본문의 타겟도 이 경우는 아닌 것 같고. 심리적 약자인 경우 정신 질환은 방금의 경우와 마찬가지겠고, 중2병과 호환될 수 있는 미성숙한 인성을 지칭하는 경우가 본문이나 제가 생각하는 찌질이의 대상인데, 저는 이 경우 약간의 조롱이 섞이는 게 좋다고 보는 거죠. 찌질이는 다른 심한 욕설보다는 판단의 여지를 더 주는 말이에요. 유머스러운 자조에 쓰이기에도 무리가 없구요. 이런 미묘한 중간적인 언어는 나름의 가치가 있어요.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롱이 가능한 용어는 상대에 대한 부정적 판단을 표현하면서도 그 전달을 완충 시킬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이런 미묘한 강도를 갖고 있는 비난어를 없애자는 건 비격식적인 비난이 일말의 여지도 없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오로지 격식을 갖춘 비난만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서로 상황에 대한 논리적 판단 이외에 감정을 유연하게 교환하면서 서로를 다잡아 줄 수 있을까요? 쓰다보니 이 소박한 말에 너무 권위를 부여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요지는 찌질이는 쉽게 쓸 수 있고 다른 모욕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수용될 수 있는 말이라서 긍정적이고 즐거운 용례가 많다는 겁니다. 말 자체로 부정적인 말은 있지요. 찌질이, 바보, 멍텅구리, 다 그렇지 않나요? 빵셔틀의 경우는 상황의 영향이 강하고, 중2병이나 연애실패담 같은 경우는 말씀드렸던 개인의 가벼운 인성적 결점을 찌질이라는 말이 지칭해주는데, 이게 일종의 중심적 의미이기도 하니 말이 중심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비판인가 비난인가를 선명하게 할 필요가 있죠. 차라리 육두문자는 진솔하기라도 하고, '패륜'의 낙인에 대해서는 '윤리'를 두고 반론할 수나 있습니다. '찌질하다' 같은 모호한 비난은 이 비난의 정조를 공유하는 이들의 막연한 공감, 적개심으로 정당화 될 뿐, 비판의 기능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떨쳐내긴 어렵지만 딛고 일어서야 하는 개인의 결점]이 선명하여 이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이를 적시하지 못하고 '찌질하다'는 표현 뒤에 숨는 것으로 비판에 대한 책임에서 달아날 이유도 없습니다.
또한 이 불명료한 언어로 표출되는 집단의 윤리는 모호한 공감의 환상에 기반한 허구일 수 있고, 다수의 합치된 판단이 보다 윤리적이라 볼 근거도 없습니다. 폐쇄된 소집단 내의 왜곡된 윤리적 판단의 사례들은 흔하게 볼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