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바낭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과 잡상에 의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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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틀 전에 직장을 떠나왔습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 일이 있었던 1년이었습니다.

제가 거의 유일하게 좋은 얼굴로 떠나온 직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떠날 때 유일하게 누군가 눈물을 보여준 직장이었습니다.

그 눈물이 꼭 서운함 때문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슬프게 여겨준다고는 생각해도 되겠지요?

정말이지 사장만 아니었다면 천년만년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한 곳이었기에 아쉬웠지만...

지나치게 지쳐 있었기에 떠나올 때 드디어 한시름 놓았다고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습니다.

참 묘하지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마음과, 그 이상 없을 만큼 홀가분한 흥분이 공존하다니.

사실 울적해지려면 금방 밑도끝도 없을 것이기에, 애써 슬프다는 생각을 피하려고 하기도 한 탓도 있습니다...


슬픈 마음이나 이야기야, 털어놓자면 한도끝도 없이 있겠지만... 생략합니다.



2.

지금은 후쿠오카의 호텔에서 쓰고 있습니다.

일을 그만두자마자 온 몸이 아파오고 머리가 시종 어지럽습니다만..

그래도 후쿠오카를 떠나기 전에 한 번 다녀오자고, 텐진의 루피시아에 다녀왔습니다.


루피시아에 들른 것은 2년 전에도 한 번 있습니다만... 

사실 그때도 어떻게 찾았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용감하게도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한 시간 반을 헤멨습니다.

결국 스마트폰의 지도를 보면서 사람에게 물어물어 도착하니 참 낯익은 곳이었습니다...

길치에 방향치인 자기 자신을 늘 과신하고 또 후회하는 게 일과입니다.


사실 반나절을 호텔에서 빈둥거리며, 나갈까 말까 고민했다는 건 비밀입니다.

저는 모르는 어딘가를 나간다는 게 너무나 고역입니다.

길을 못 찾겠거든요.

여기가 어딘가 난 누군가를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 사람에게 물어물어 지도를 찾고 또 봐도 대체 길이란 것은 왜 이리도 복잡하고 심오한 것인지.

워낙 촌동네에 살다보니(한 시간이면 대략 시내를 돌아볼 수 있지만 그나마도 길을 잃는 저란 방향치는...) 대도시에 오면 참 머리가 아픕니다.

길 찾다 하루가 다 가니 남들이 한 다섯 군데쯤 구경할 시간에 한 군데를 찾고 또 찾습니다.

후우.

어쨌든 루피시아에 들러 아이스티도 한 잔 하고, 직장 여러분에게 보낼 선물로 차를 잔뜩 샀습니다.

2년 전에 들렀을 때는 가진 여비에서 얼마쯤 쓰면 괜찮을까, 하면서 궁핍한 학생이란 처지에 서글펐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산 것은 세 개였는데 그 중 두개는 꽝이었습니다. OTL


지금은 그나마 그동안 번 돈이 있으니, 내가 번 돈 내가 쓰는데 누가 뭐랴 하면서 마구마구 샀습니다.

신나게 선물을 사고 보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저 때문에 늦게 퇴근하게 된 직원 언니들 미안해요...

받은 고마움만큼, 보내고 싶은 보답만큼 사지는 못했습니다(아마 그러려면 제가 번 돈의 절반은 써야 했을 거에요). 그래도 꽤 많이 샀습니다.

택배까지 부탁하고 나오니 그냥 마음이 조금은 기뻤습니다.

선물을 받으시고 기뻐해주셨으면 좋겠네, 좋겠네.



3.

생각해보면,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습니다.

바다 건너 땅에서, 설령 다시 일본에서 일하게 된다 해도 벌어먹고 살 일이 있으니 언제 오가게 될지 기약이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한 번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인연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말 잘해주셨는데.

정말 고마웠는데.

다시 만날 기약이 없습니다.


만나고 싶은 마음이 부족한 것 뿐 아니냐고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지만...

과연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다시 또 그 땅에 올 일이 있을까요.

생각하면 또 눈물이 날 것 같기에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가방 한 구석엔 주소와, 편지가 들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힘내, 가끔 날 떠올려주렴.. 이라고 적힌 편지가.


보답받지 못하는 마음만큼 슬픈 것도 없는데.

저는 보답을 하고 싶은데...

그것도 그냥 욕심에 그치겠지요.




4.

떠나오기 전까지도 방 청소를 했지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청소를 못 합니다... -_-;

제가 쓴 방은 어머니 가라사대 돼지우리, 미친x 궁둥이같은 곳이 됩니다. -_-;;

정말 청소해보니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쓰레기가 사업장용 봉투로 열 봉투 정도 나왔습니다. -_-;;;

짐은 또 뭐가 그리 많은지, 택배로 한 상자 부치고 안심했더니 또 한 상자 나왔습니다.

결국 잊어버리고 차에 올랐다가 아차 한 것은 안 자랑...


-_-;;;;

돈 많이 벌면 꼭 집 청소해 줄 사람을 고용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결국 자기가 하겠다는 생각은 죽어도 안 하는 게으름뱅이)




5.

사실 돌아가도 뭔가 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취직처는 정해지지도 않았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보나마나 어머니와는 또 싸우게 될 겝니다.

그 모든 게 눈에 뻔히 보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그냥 안도하고 싶습니다.

병원에도 가야겠지요.

허무가 절 집어삼키기 전에, 지금은 그냥 쉬고 싶네요.


아무 생각이 안 난다, 고 자기 자신을 세뇌시키며...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이만 자야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글 재밌습니다. ^^ 재밌게 잘 읽었어요. 언젠가라는 닉은 어째 좀 허전하군요. 전에 쓰시던 닉이 참 이뻤는데 말예요. 떠나오셨고 쉬고 있다니 제가 다 마음이 놓입니다.
      • 아.. 이 댓글보고나서 작성자 확인했습니다.
        뭐... 제 댓글이 불편할까봐 닉네임 보면서 요즘에는 피했었는데...;
        결국 또 이렇게 댓글 달았네요;;;;
    • TAG는 무시하고 볼게요. 재미있거든요.
      5. 벌써 주무시면 제 댓글은 아침에나 확인하겠군요..(라지만 댓글 달리길 두근두근 기대하고 있을거라는거... 작성자라면 그런건데!! 뻥치지마욬ㅋㅋㅋ!!)
      1. 떠나도 날 위해 슬퍼해 줄 사람이 있다는 건.. 그만큼 노력하셨다는 의미 같네요. 일적인 문제든 인간적인 문제든간에
      2. 끝나자마자 바로 휭~ 와... 부러워요. 아... 저도 따라할테요.
      4. 봉투 제일 큰거로 10봉투면....... 음...
    •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당분간은 그동안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해 푹 쉬세요 :)
      한국 오시면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많이 만나시고 재충전을 하면 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힘이 생길 거에요.
      낯선 땅에서 혼자 살면서 일하는 건 쉬운 게 아니죠. 대단한 용기와 인내력 결심 등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것을 경험하셨고 또 그게 앞으로의 삶에
      힘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 몸살이 올수도 있어요. 저도 최근에 안 좋은 일이 생겼는데 제 일도 너무 바빠서 쉴 시간도
      생각에 빠지거나 울 시간도 없이 지내다가 오늘 저녁에야 바빴던 것이 조금 정리가 되니 몸이 아프네요; 몸살이 올 것 같이요. 건강 잘 챙기세요.
      청소ㅎㅎ 청소 이야기 쓰시니 최근에 엄마께서 제 손을 보시더니... 청소 좀 그만해라. 손 다 망가진다ㅠ.ㅠ 하시는 거에욧!!!
      제가 손에 살이 없거든요. 내 손이 뭐가 어때?하며 동생 손과 비교를 해보니 녀석은 포동포동 하얗고 예쁜데 저는 햐얗긴 하얀데.. 뭔가.. 손이......
      갑자기 예전 남자친구가 까페에서 제 손을 만지작 만지작 하더니만 버럭!하면서 집안일 그만하고 동생 좀 시켜!! 손이 이게 뭐야!! 했던 기억이 -_-;;
      청소 많이 하지 마세요ㅎㅎ 청소 하더라도 저희 엄마가 그러시는데 고무 장갑을 꼭 끼라고;; 고무 장갑 안 끼면 손 망가진다고 당부하시더라고요.
      손 예뻐서 뭐한다고;; 저는 깨끗한 집이 더 좋아요 >_<
    • 컹; 댓글 달고 스위트블랙님 댓글 읽고는 예전글을 보니 그리웠던 분이시네요!! 그것도 모르고..
      그리웠어요. 가끔 듀게에 접속할 때에도 계시려나 하며 생각하곤 했죠 :)

      일본에서 일 하신지 벌써 1년이나 되었네요. 저도 조금은 함께 1년을 보낸 느낌이에요. 쓰시는 글을 읽고 생각을 하고 닿지는 않겠지만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내고 또 안부를 궁금해하고.. 걱정을 하고 하면서요. 그동안 정말 정말 잘 하셨어요. 멋지고 자랑스럽고 예뻐요.
      낯선 땅에서 1년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옆에 있으면 제가 마구 마구 안아주고 싶네요. 컹; 죄송;
      저는 언젠가님이 참 대견하고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요.
      이 경험들이 뼈와 살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바탕으로 힘내면서 또 다음을 생각해요. 진짜 진짜 진심으로 1년동안 고생 많으셨고
      장하고 예쁘고 대견한데 제 짧은 표현력으로 전달이 안되네요 컹;;
      앞에도 썼지만 몸살이 날 수도 있어요. 한국 돌아와서 올 수도 있고.. 푹 쉬어 주시고 맛있는 것도 든든하게 많이 드세요.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고 한국 잘 오시길 기다릴게요. 그동안 언젠가님! 잘 견뎌주고 열심히 사는 모습 보여줘서 고맙고 또 장해요!! 제 진심이 잘 전달되길.
    • 저도 윗분들 덕담 읽고 작성자 확인 해봤습니다. 전 같은 분인지도 모르고, 언젠가님은 새 회원이라고 생각했는데 글 분위기가 마음에 드네, 이랬었거든요.

      차에 취미가 있으셨구만요. 카페인 함유만 되어있으면 우걱우걱-_-;; 마셔버리는 저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상한 취미.

      제가 얼마전에 제 자신에게 틀어준 노래인데요, 한번 들어보셔요.

      "건배, 지금 당신은 인생의 큰 무대에 서서..."
      다음 단계로 한 걸음 내딛으신 것 축하드려요.
    • 댓글 달아주신 스위트블랙 님, 이인 님, 봄의 속삭임 님, 러빙래빗 님 마음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 아...너무너무 반갑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금까지 이국땅에서 홀로 많이 힘드셨던 경험들이 앞으로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도전하는 삶이 참 멋지고 부럽습니다. 저도 그래야 할텐데요.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저도 닉네임만 보고 하마터면 모를 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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