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는 김에 하나 더; 바리스타 취중진담, 권요섭 “전부 그의 잘못입니다”

모 웹진에서 연재를 하게됐습니다. 격주로 바리스타 인터뷰를 해서 올리는건데요.

이걸 카페 소개 글처럼 듀나에도 올려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괜히 다른곳에 연재하는 글을 퍼나르는것 같아 걱정이 있었거든요.

다른 글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글만큼은 듀나게시판을 통해 공유하고싶어 한 번 옮겨봅니다.

 

 

  

바리스타 취중진담, 권요섭 “전부 그의 잘못입니다”

 

전부 그의 잘못입니다

요섭씨 OOO입니다. 내 핸드폰이 고장이네요. 이번주부터 A카페에 출근하지 마세요.
인수인계나 전달사항 있으면 OO씨 통해서 하세요.

권요섭 바리스타가 말로만 듣던 문자해고를 당한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사장이 볶은 커피가 맛없다고 솔직하게 말한것, 입으라고 했던 셔츠와 긴바지를 입지 않았던것이 화근이었다. 여기에 근무 태도 등의 다양한 이유가 해고 사유였다. 바리스타 경력 6년차인 그는 순식간에 무직자가 됐다. 예고도 없는, 갑작스런 문자해고는 날벼락이었다. 월급은 정확이 일한 날짜까지만 입금됐다. 다른 직장을 알아볼 시간도 없이, 해고 이유에 대해 따지거나 말 한 번 해볼 기회도 없이 직장에서 잘렸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권 바리스타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뉴스나 신문에서만 접했을법한 일이 그에게 벌어질지 누가 알았을까.

 

곰다방에서 통돌이로 로스팅을 시작했던게 2007년이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우후죽순 생겨나는 번지르르한 카페와의 경쟁에 지친 곰다방은 폐업을 결정했다. 때마침 들어온 A카페 사장의 제안은 너무나도 고마웠다. 자신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매장에 어느정도 익숙해지면 로스팅을 맡기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곰다방에서의 마지막 장사를 마무리한 권요섭 바리스타는 그렇게 A카페로 떠났다. 어려운 시절, 손을내밀었던 고마운 그 카페에서 문자로 해고당한건 전부 권 바리스타의 잘못이었다. 맛없는 A카페의 원두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한 일, 평생 셔츠라곤 입어보지 않았던 일, 개성있게 옷을 입고다닌 일, 거칠게 커피를 내렸던 일 모두 그의 잘못이었다. 트위터에 투덜투덜 직장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았던것도 잘못이었다. 사장님이 그걸 몰래몰래 찾아보게 한 것도 잘못이었다. 원래 바리스타는 힘이 없다. 아무리 실력있고 커피를 잘 내려도 월급은 쥐꼬리만하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건 당연한 일이다. 돈있는 사장은 언제든지 새로운 바리스타를 영입할 수 있다. 결국 다 권요섭 바리스타의 잘못이다. 커피를 시작한 일부터가 잘못이었다. 올림픽공원 앞에서 마셨던 그 커피 한 잔이 잘못이고 우연히 들렸던 곰다방에서의 인연이 잘못이었다.

 

커피와 일본어만 남았습니다

조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바로 도시락 전문점에 취업을 했다. 커피를 알게 된 건 일을하다 우연히 알게된 한 여자 덕분이었다. 그녀와 첫 만남을 가졌던 곳은 올림픽 공원 앞의 한 카페였다. 흔한 젊은 날의 사랑의 결말은 비슷했다. 잘될것만 같았던 사랑은 그녀의 일본 유학으로 무너졌다. 그녀는 떠났고 그에게 남은건 커피와 일본어였다. 그녀가 떠난 후 권 바리스타는 헛헛한 마음 달랠길 없어 일본어 학원에 등록했다. 평생에 바리스타가 되리라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가 ‘한미제빵학원’에서 커피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그때까지만해도 바리스타가 평생의 직업이 되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실 그는 곰다방의 단골이었다. 권 바리스타가 처음으로 곰다방에 방문한 날 들었던 음악은 그를 사로잡았다. 함께 마셨던 모카하라, 동티모르, 케냐는 감동이었다. 이래서 커피를 하는건가 싶었다. 마침 가게를 지키던 여직원이 떠났고 기회가 찾아왔다. 유니온 통돌이로 어설프게 볶았던 콩은 곰사장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곰다방의 바리스타가 될 수 있었다. 개업한지 2개월이 지난 2007년 5월 부터 곰다방이 문을 닫았던 2012년 6월까지. 권 바리스타는 그 좁은 다방에서 콩을 볶았고, 커피를 내렸고, 사랑과 우정을 나눴다.

통돌이로 콩을 볶는 일은 기계로 하는 로스팅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계식 로스터는 모든걸 수치로 알려준다. 투입부터 로스팅, 배출까지의 모든과정은 수치로 기록된다. 덕분에 로스터는 꾸준히 기록해둔 프로파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반면 통돌이 로스팅은 모든것을 감각에 의존해야한다. 로스터는 조그만한 손잡이로 전해지는 느낌과 냄새로 모든것을 판단한다. 곰다방에서 갈고닦은 권 바리스타의 로스팅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가 볶아낸 만델린, 오래된 탄노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고전음악, 능숙한 손놀림의 핸드드립은 수 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했다. 시덥잖은 디저트 카페들이 곰다방의 경쟁자로 성장하기 전까지 곰다방은 커피맛을 아는 사람들의 아지트였다.

 

성은과 요섭의 헬카페

가장 힘들었던 시기, 그에게 손을 내민건 카페 뎀셀브즈 출신의 임성은 바리스타였다. 비오는 날, 약속을 지키기 위해 흠뻑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맞춰 나타났던 그의 모습 덕분에 임 바리스타는 그에게 반할수밖에 없었다. 임바리스타는 아직도 둘이서 술이 잔뜩올라 나눴던 얘기를 잊을 수 없다. 권 바리스타는 학생때는 아랫목에서 사이다에 계란 가져다놓고 ‘상실의 시대’를 읽는게 꼰대들이 선정한 청소년 권장도서 읽는것보다 낫다고 했다. 그 말이 무슨말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임성은 바리스타는 권요섭 바리스타의 커피에 빠져들었다. 그 친구가 엄동설한에 문자로 해고를 당했다. 둘도 없는 친구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을때 손을 내밀어야 했던건 동정이 아니라 의무였다. 스킨헤드 통돌이와 수염 시네쏘가 지옥과 같은 카페를 만들자고 말했던건 문자 해고가 있었던 그 겨울이었다.

‘요섭과 성은의 헬카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걱정속에 보광동에 문을 열었다. 곰다방 시절의 그 깊은 맛을 내는건 아직 무리일지도 모른다. 한동안 통돌이와 멀리 지냈기도 했고 추운 겨울에 받았던 상처가 아직 덜 아물기도 했기 때문일테다. 그래서 그는 여느때보다 더 열심히 콩을 볶고 커피를 내리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 셔츠와 긴바지의 정장차림은 60세가 넘으면 입을 생각이다. 평생 통돌이로 콩을 볶으며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려고 한다. 한 40년쯤 커피를 하면 장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게 그의 생각이다.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건물 3층 즈음에 카페를 열고 누군가에게 감동의 커피 한 잔을 선사하는게 그가 가진 목표이다.

 

NEXT

곰다방에 처음 들렀을때 그를 단골로 만들어준 그 음악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오래된 그 탄노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뭔지 모르는건 곰사장도 마찬가지죠. 권요섭 바리스타는 그 음악을 들으며 마셨던 한 잔의 감동을 되살리기 위해 곰다방의 단골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 시도는 매번 실패했죠. 아련한 기억을 되살리려다가 결국 사장님께 발목잡혀 좁디좁은 다방구석에서 콩도 볶고 커피도 내리게 됐습니다. 곰처럼 우직하게 드립커피만 뽑아대던 그 다방이 망하는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곰다방에선 달짝찌근한 캬라멜 마끼아또도 안팔았고, 타로점도 안봐줬고, 음악도 구닥다리 고전음악만 틀었기 때문이죠. 가만보면 권바리스타가 해고를 당한일에는 원인에는 곰다방 사장님의 지분도 조금은 있는것 같네요.

권요섭 바리스타가 문자로 해고당한 일은 바리스타 근무 여건이 얼마나 열악한지 보여줍니다. 실제로 많은 프로급 바리스타들이 불안한 고용체계속에서 커피를 내리고있죠. 카페인 중독, 계속되는 커피 추출로 인한 요통, 비정상적인 근무시간 등 카페의 노동환경은 열악하기만 합니다. 커피를 위한 바리스타의 열정은 노동으로 환원되고, 그들은 커피내리는 기계가 됩니다. 앞으로 계속될 바리스타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계속 다뤄보고자 합니다.

 

 

http://www.factoll.com/2013/06/beirut-interview-01/

 

    • 남의 일 같지 않군요. 프리랜서 번역가 인터뷰나 기획해볼까...
      • 많은 서비스업 종사자가 비슷한 사연들을 많이 가지고 있죠.
        당연히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정당한 임금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도 낮은 비용에 희생을 강요받고 있구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드라마 같은걸로 인해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그럴싸하게 비춰졌지만, 실상은 안그렇죠. 저도 해본일이지만...
      돈 버는 일이 못되는게 현실...
      • 그래서 많은 바리스타들이 바리스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다른길을 찾아보라고 말하곤 하죠. 슬픈 현실입니다.
    • 곰다방의 오랜 단골이었던지라 문어 아저씨(!)의 근황이 반갑기도 하면서 한 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네요. 어쩌다 한번씩 홍대 거리에서 곰사장님을 스쳐 지나갈때가 있는데 손이라도 덥썩 잡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하죠. 새로 열었다는 카페 꼭 한 번 찾아가봐야겠네요. 좋은 정보&리뷰 감사 드려요:-)
      • 곰다방에서 맛보던 그 진한 만델린을 느낄수 있는 카페입니다. 시간나면 꼭 찾아가서 마셔보세요. 2-3시쯤엔 통돌이도 돌리고 하니 가서 구경하셔도 좋을듯해요.
        즐거운 시간되세요 :)
    • 사장 입장에서는 저런 종업원이 탐탁치 않을 수 있겠네요. 자기가 볶은 커피 보고 맛이 없다고 하지, 복장은 자기 편한대로 입고 나오지, 트위터에다가는 안 좋은 소리 올리지...
      • 애초에 커뮤니케이션이 안됐습니다. 사장님은 귀를 막고 눈을 감았죠. 그 카페 커피 맛없는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종업원으로서 해야할 쓴소리를 한게 일이 된거죠. 사장님의 입장이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지만, 커뮤니케이션 없이 문자로만 사람을 해고하는건
        어찌해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 사장님이라는 분이 정말 이상하신 분일 수도 있고, 바리스타분이 이전 카페에서 일하시던 고유의 스타일을 유지하시다가 마찰을 일으키셨을 수도 있고, 수많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심정적으로는 이해하나,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 바리스타(혹은 한국의 서비스 직종)가 힘이 없는 거랑, 근무처에서 지정된 옷을 안 입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나요? 잘못한 건 잘못한 거죠. 저 역시도 호텔 프론트 데스크에 레스토랑 서버 등등 서비스 업종 종사에 어느 정도 근무한 경력이 있고, 한국 서비스업이 정말 개한테 줘도 안 먹는 더러운 직종인 건 알지만, 카페 종업원이 자기 맘대로 반바지 입고 오면서 '거칠게'(이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한다면 저라도 자를 것 같아요.
      • 그 카페에 애초에 지정된 옷이란건 없었습니다. 고용 당시에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명시를 한 적도 없구요. 무조건 사장의 잘못은 아니겠지요.
        언제든 사장 맘에 들지 않으면 자를 수 있는 형태 때문에 바리스타가 힘이 없다고 한겁니다.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사장에게 순종해야 하는것도 안타깝구요.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적어도 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 해방촌 콩밭커피 아낙네가 지인이라 종종 갔는데 가는길에 헬카페도 들러봐야겠네요.
    •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원두커피 마실 짬이 안나는 요즘이라 글만 읽어도 갈증이 좀 해소되는 느낌. 바리스타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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