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똥군기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부산 모 대학에서 또 터져서 상급생들 불구속 입건됐다는 뉴스를 봤는데요. 얼차려받다가 이가 부러진 애가 있질 않나 못견디고 여학생이 자퇴를 하고...
이거는 제가 대학 신입생일때도 '아니 때가 어느땐데 아직도 이런게 있나'라는 소릴 들었는데 2013년이 됐는데도 여전하네요. 원산폭격은 이젠 군대에서도 안해요;
왜 이런걸까요? 사회 전체가 병영문화에 장악됐던 수치스러운 역사의 산물이다...라는 얘기는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도 안되죠. 맞는 말이긴 한데 책임소재가 사라지고 '답 없음'이라는 결론밖에 안되니까요. 무엇보다 이젠 군대에서조차 많은 노력으로 내무생활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솔직히 전의경하고 해병대는 논외로 하고(-_-) 가장 큰 집단인 육군은 그래요.
이런게 하루이틀이냐? 인간의 본성이다. 조선시대에는 신참 관리 통과의례 하다가 사람이 죽어나가고 집안이 파산했다. 미국의 명문대에서도 그런짓들 한다더라... 라는 쉴드도 있는데 같잖은 소리구요. 인류가 노예 부린게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고 지금 노예제 하자는 얘기랑 뭐가 다른지. 그리고 무슨 피도 안마른 대학생들 사이의 군대놀이랑은 성격이 다르죠. 전근대의 양반관료나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상류층 비밀클럽에서 벌어졌던 일은 '단체행사에 잘 나오고 노예처럼 선배를 잘 모셔'라는 의미의 똥군기가 목적이라기보단, 제한된 특권적 그룹 안에서 '우리'랑 '남'을 구분하는 결속이 목적이라고 봐야겠죠. 그것도 개소린건 마찬가지지만 성격이 다르니까 갖다댈것도 못된다는 얘기고..
저는 적어도(특히?) '대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자행되는 이런 덜떨어진 폭력의 책임은 거의 전적으로 교직원에게 돌려야 한다고 봅니다.
예체능 쪽에 유별나게 이런 군기잡는 악습이 만연한거야 주지의 사실인데, 그걸 학생에 의한 자정에 기대하는건 어불성설이에요. 마치 내무부조리를 해결하려면 이등병의 과감한 저항과 적극적인 소원수리가 필요하다 라든지 상병장의 인격도야와 품성제고를 위해 교육하자 라는 얘기랑 똑같죠. 굳어진 구조 안에 속한 사람은 거기서 미친척하고 아예 혼자서 이탈해버릴게 아니라면 구조 자체를 바꿀 수는 없어요.
당했던 후배가 선배되면 지 후배한테 또 그러고.. 이게 무슨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라'의 놀부심보나 '선배에게 갚을것을 나의 후배에게'라는 복수심의 발로가 아닙니다. 그런 폭력을 대물림하는 악습이 시스템이 된거에요. 말하자면 학과의 질서와 평화와 일사분란 정연한 학사진행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마치 민주주의에서 선거제도처럼 그게 하나의 제도가 된거죠. 이미 제도가 되버리면 구성원들은 거기서 안정과 만족을 얻습니다 .그게 가짜라도. 군대의 병사 내무반에서도 똑같은 프로세스고... 군대가 군통수권자를 정점으로 한 완벽한 계급조직인것 처럼 보이지만 병사들 사이에서는 간부세계와 동떨어진 별개의 질서가 있죠.
이미 제도가 되면 제도안에 편입된 사람에게서 변화의 동력은 절대 나올수가 없구요. 앞서도 말했지만 아예 거기서 왕따가 되서 이탈하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 답이 없는 문제냐? 그건 아니고요.
군대에서의 제 개인적인 경험상 해답이 있습니다. 밖에서 부수면 됩니다.
제가 있던 부대는 쩌~기 남쪽 동네에 있는, 훈련도 가라로 처리하고 모든게 '유도리'로 넘어가는 당나라부대였는데요. 당연히 내무반 상태는 개판 오분전이었구요. 선진병영문화가 어쩌니 해도 전혀 개선이 안되고 대놓고 구타와 상상을 초월하는 창의적인 괴롭힘이 만연한 곳이었는데요. 그게 딱 제가 눈치보면서 후임을 괴롭힐만한 짬이 됐을때 박살났습니다. 새로 온 중대장에 의해.
중대장은 기존의 간부들처럼 '병사들 나름의 질서'라는 것을 적당히 눈감아주고 거기서 오는 가짜 평화와 안정을 용납하지 못하는 캐릭터였습니다.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라기보단 사관학교 나온 지휘관으로서 자기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이는 성격이었죠.얼차려 주고 징계를 해도 그건 내 권한이지 감히 병사들끼리? 그걸 내 부하인 소대장이나 부소대장이 조장 묵인해? 이런 씨바.
그때부터 폭풍이 몰아쳤는데 여튼.. 기본적으로 지휘권과 규정이라는 권위가 있고 근무표를 못짤 정도의 영창/군기교육대 폭격을 하니 몇달만에 후임에게 손대긴 커녕 욕하기가 꺼려지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물론 쫄다구때 온갖 괴롭힘에 익숙했던 병장 고참들은 입에 욕달고 다녔지만 결국 욕하면서 전역해서 사라졌고... 군대 조직이란게 이거 하나는 좋아요. 까라면 깐다고, 금방 또 거기에 적응을 하더라구요.
대학 예체능과의 악습도 마찬가집니다. 이쪽은 어찌보면 더 질이 나쁜게, 여기는 군대처럼 철저한 몰개성화, 자율성 포기, 상명하복이라는 명분조차 통하지 않는 사적인 집단이죠. 예술쪽은 집단작업이라 불가피하다 라든지 체육쪽은 상명하복이 필요하다 라는 개소리가 만연한데, 풋내나는 대학생 그룹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치열한 기업의 집단프로젝트는 주먹질이나 원산폭격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걸 생각하면 얼마나 허황된 얘긴지 알수 있죠.
이미 제도로 만들어버린 선배들을 탓할 일이지 거기 안에 속해있는 애들한테 도덕적 비난을 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그때그때 죄지은놈 입건해서 형사처벌해도 그 한놈 한놈만 조질 뿐이지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는거구요.
되게 웃긴게 여기도 군대랑 똑같아서(군대의 간부-병사 관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느슨할 것으로 흔히 생각되는) 교수들이 자기가 가르치는 학과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묵인하는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조장한다는 거죠. 그 방법이란게 실제로 되게 유치합니다. 나이좀 있어서 리더쉽(?)을 인정받은 애들이나 상급생 불러서 '요즘 애들 말야 좀 타이를 필요가 있겠어' 하는 식이죠.
그런 짓거리가 명분을 주는겁니다. 시스템에 자양분을 공급한다고 할까... 학생사회라는 그 손바닥만한 그룹 안에서 권위의 원천이라는건 끽해야 교수뿐이죠. 실제로 모든 폭력이 교수의 암묵적/노골적 승인을 받고 이뤄지는건 아니지만, '이런 짓을 교수도 학교도 다 알고 있다'라는 형태의 승인이 자신감과 동력을 주는거죠.
물론 이런건 표나지 않게 이뤄집니다. '그냥 좀 타이르라고 했을 뿐인데' '난 별 말 안했는데' '사실 난 몰랐는데'라며 교수는 면피할 구석을 얼마든지 만들어놓죠. 사실은 그 '제도'가 제공하는 거짓 평화와 질서를 즐겼으면서도 말이죠. 공동묘지가 조용하다고 그게 질서와 평화라고 부르진 않을진대...
사실 엄밀히 말하면 교수라기보단 '학교' 차원이죠. 학교 차원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모래성처럼 부숴집니다. 의외로 별거 아니에요. 군대에서도 지휘관 한 사람이 뒤집는게 가능했는데 하물며 대학생 나부랭이야... '제도'가 됐다니까 되게 완고하고 무시무시해보이는데 실상은 한순간에 무너질수도 있는 별것 아닌거란 거죠.
후배 괴롭히고 때리고 기합주고 과장된 단체행동, 파시스트적인 충성심 강요 같은 짓거리의 결정적 책임은 자타공인 학교의 주인노릇하는 교수에게 있습니다. 운동권이 학생사회를 지배했던 시절이야 독자적인 질서가 있다쳐도 지금은 운동권이 희귀보호종 동물마냥 눈에 띄지도 않는 세상이 되버린 마당에.. 질서의 권위라는건 결국 그 정도라는 것.
그런 문화가 남아있는 학교 학과의 교수들이 어떤 식으로 학생사회의 폭력을 조장하고 즐기는지 실상에 대해서는 정말 별의 별 것이 다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만 모르고 태평하지...
솔직히 어찌보면 다 하나마나한 얘기일수도 있지만요. 그래도 '이런 폭력은 그게 체육과든 연극영화과든 뭐든 과를 불문하고 용납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는건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공감대만이라도 정착하면 다행이겠죠. 아직도 이런 사건 터지면 쉴드치는 사람이 더 많은게 한국의 현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