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0604)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내용있음]를 보았습니다.

 

 

* 영화 스포일러를 신경 쓰시는 분이라면 글을 읽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전 영화에도 스포일러라는 제목을 달아야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군요. 어쨌든 영화 내용이 있긴 있습니다.

 

 

 

 

 

    진지한 영화 리뷰는 보통 제가 회원 리뷰 창에 쓰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길거나 논리정연한 분석틀을 가진 감상을 쓸 계획은 없습니다. 한 번 문장 수정을 거친 정도에야 이 글을 등록하는 정도이겠지요. 회고해보면 저번에 저는 파스빈더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글을 썼었는데, 파스빈더가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마다 배우로 나오는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꽤나 흥미롭습니다. 저는 파스빈더를 처음 영화 안에서 보았을 때 그저 매력적인 젊은 청년으로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솔직히 밝히자면 사실 생긴 거 참 여자 좋아하게 생겼다, 라는 일차적인 생각을 했지요. 파스빈더가 사람의 성적 정체성을 가리지 않고 관계를 맺은 걸 생각해 보았을 때 아마 그러한 제 생각은 지나치게 일차적으로 나온 것이고, 또 동시에 편견에 가득 찼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저 저는 약간은 오동통하고 뵤루퉁한 그의 반항적인 얼굴에서 소위 남성성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가죽 자켓 입은 남자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가죽이 참 잘 어울려서 그게 또 인상적이기도 했고요. ... 이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는 무려 여주인공의 사위 역할로 나오더군요. 멍청하고 폭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어떻게 감독 본인이 자신의 얼굴이 그러한 역할에 잘 어울리는지를 그렇게 또 잘 아는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저는 사랑 영화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정열적이고 순수한 환희이지만, 그러한 선에서 논의가 끝날 수 없는 주제입니다. 사랑도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고 엮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이 영화를 딱 그 차원으로 보았습니다. 맨 처음 이 영화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현격한 사회적 차이에 집중을 하게 만듭니다. 여성이 대략 남성보다 스무살 이상은 많고, 남성은 그 때 당시에 차별받던 (사실 지금도 차별받긴 하지만요) 아랍인이며, 여성은 독일인입니다. 그들을 둘러싼 주위 인물들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이지요. 심지어는 끝까지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도 나옵니다. 이 영화는 이 논란 많은 커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관한 내용을 영화 전반부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전반부에서 젊은 아랍 남성과 결혼한 늙은 독일 백인 여성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곧 영화가 후반부로 접어드는 국면에서는 소강되지요. 처음에 저는 이러한 분위기 전환이 단순히 파스빈더의 의외로 낙관적인 성품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라는 소소한 의문을 마음 속으로 제기했습니다만, 영화를 끝까지 보니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결국 '반대와 반감'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게 마련 아닙니까. 그런 점을 고려해보면 파스빈더의 전개가,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결국 주위 사람들의 선량함과 무심함이라는 비폭력적인 요소로 좋게좋게 해결되는 게 사람 일이다, 라고 감독이 안일하게 생각한 것 아닐까? 라는 제 생각은 틀린 생각인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전반부보다 후반부였던 것 같습니다. 후반부에서 이제 타인들과 이 '괴이한' 커플의 갈등은 소강상태를 벗어나, 일종의 적응 상태로 진입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난항에 부딪치게 되는 것은 이 커플 두 명 본인들입니다. 이들이 보이는 일종의 권태와 서로에 대한 몰이해는 단순히 이들이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사실 이들이 갈등을 겪는 부분을 보면, 굉장히 사소하면서도 본질적입니다. 완전히 다른 이방인이라는 것을 알면서 서로를 사랑으로 품어주었지만 결국 그러한 사랑의 상대에게도 자신들이 감당해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알리에겐 에미가 쿠스쿠스를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 그러했을 것이고 에미 입장에선 알리가 평범한 독일인인 자신의 삶의 방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그러한 영역이었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것이 이들이 나이 차이가 많고, 다른 국적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즉, 이들이 보이는 이러한 갈등은 다른 모든 '일반적'이라 불리우는 모든 커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장면인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에미가 친구들이 있는데도 박차고 나가는 알리를 향해 '저이가 저러는 것은 아랍인들 특유의 우울한 문화 때문이지'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제 의심을 키워주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딱 보기에는 상대방의 다른 문화를 타겟으로 삼는 것 같지만, 이러한 대사는 조금만 변용하면 우리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배우자를 공격하는 대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이가 저러는 것은 시댁 특유의 정신병적인 문화 때문이지'는 어떨까요?

 

 

  제가 말하는 방향이 잘 정리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향해서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히틀러 시대의 불평등한 사고방식이 남은 독일 사회를 꼬집은 것이라는 해석이 무효하진 않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파스빈더가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사랑 안에는 그 의의와 동시에 한계점이 여실히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엄청나게 다른 차이에서 오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전자의 해석을 담아내고 있다면, 아무도 뭐라고 더 이상 대놓고 비난하지 않는 상황에서 즉 나와 사랑하는 대상 둘만이 관련된 상황에서 갈등과 권태와 일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가 제 눈에 더 들어왔다고 하는 게 좋겠군요. 이는 맨 마지막에 알리가 위궤양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 즉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매우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보입니다. 알리는 위궤양을 본질적으로 고칠 수는 없습니다. 그는 6개월마다 발병하는 이 병 때문에 또 이 병원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위궤양과 마찬가지로 아마 비슷한 주기로 에미와 자신과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품고 있기 때문에 위궤양을 절대 고칠 수 없다는 의사의 확진처럼, '고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에미는 의사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하죠. '제가 더 잘하면 나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의사는 또 이렇게 확진합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과 인간은 어떠한 차이를 얼마나 크게 갖고 있든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으며 이러한 필연적 몰이해는 서로가 서로를 분명하게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 거리감은 권태 혹은 일탈이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지 않았다면 그 권태와 일탈이 어떤 식으로든 봉합되겠죠. 다만, 이것은 사랑이 서로를 말 그대로 하나로 만드는 풀딱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단순한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뭐 어때요. 결국 그 둘이 꼭 서로 손을 잡고 있는 장면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의 사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서로 완벽히 하나가 아니라는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것, 혹은 먹어치우는 것 뿐이지요. 파스빈더는 편하게 그래, 그게 인간이고 사랑이지, 행복이 항상 즐거움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 라고 이야기해주네요. 생긴 것과 다르게 참 따뜻한 남자가 바로 파스빈더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영상 자료원에 사람이 많더군요. 처음 방문인데, 앞으로 기회가 되면 종종 방문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를 못 본 게 정말 아쉬울 따름이네요. 그래도 여전히 이 영화는 연인과 보기에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듀게 분들도 많이 오셨을라나요.

 

 

    • 말씀 하신 것과 조금 방향이 다른 얘기입니다만, 전 이 작품이 당시 서독의 사회상황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교활한 소시민들을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자면 적어도 주변인들에게 저 커플이 적응상태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결국 소시민들 간의 소소한 이익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대적인 이웃들이 알리의 강한 근력에 도움을 받고 적개심을 푼다거나, 슈퍼마켓이 생겨 손님들을 다 뺏겨 파리날리는 식료품상이 에미를 다시 손님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호객행위라거나, TV를 부시던 장남녀석이 자기 아이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나, 에미의 직장동료들이 임금협상을 위해 에미의 집으로 모인다거나 하는 모습들이 그러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나치시대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서독 사회에 남아있던 잔재들,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되어 외로운 여주인공 마저도 이 풍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이를테면 젊은 시절 나치당에 입당했었고 알리에게 종종 '히틀러 알아?'라고 물어보는 에미나, 히틀러가 자주 찾던 레스토랑에 가고 싶어하는 에미의 모습-보여주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사실 파스빈더는 히틀러 시대의 불평등한 사고방식이 남은 독일 사회도 꼬집고, 인간과 인간의 사랑 안에는 그 의의와 동시에 한계점이 여실히 존재한다는 것 모두를 말하고 싶었을겝니다. 고작 15일동안 몰아찍은 영화에 이렇게나 다양하고 심오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파스빈더가 거장이라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겠죠. :-)
    • cksnews/ 교활한 소시민들을 향한 비판까지는 제가 생각을 잘 못했네요. 사실 지적해주신 장면들이 정말 그러한 해석의 적확한 근거가 된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 좋게좋게 선량함과 무심함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은 가끔 그러한 시대적 변화와 상관없이 무뎌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cksnews님은 아마 시간이 저절로 해결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교활한 자기 이익이 더 정확한 표현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것이겠지만, 저는 그것도 맞고 이것도 맞고 라는 유동적인 입장을 표시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아마 무엇에 더 집중하고 덜 집중했느냐의 차이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누군가를 자신의 일에 끌어들인다라는 개념 자체가 시간이 해결해준 분노와 증오의 희석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정말 전개가 워낙 투박해서 보고 나서는 음-? 했는데 지금 이렇게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걸 보니 거장은 거장이네요..
    • cksnews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활'이나 비밀의 청춘님이 말씀하신 '순응'을 두고 저는 좀 막연히 저게 불안인가? 생각했습니다. 얼핏 너무 거창해 보일 수도 있지만 평범한 일상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이 '살아 남는다'는 걸 의미한다면, 알리와 에미(에이미?)이라는 새로운 변수/불안에 대해 주변이 (확대하자면 사회?)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 남는가 하는 고민 또는 방식이 아닐까... 하는거죠.. 처음엔 '배척'이라는 폭력, 다음엔 '받아들임'이라는 자기 세계로의 흡수. (자신의 세계를 바꾸지 않는 포용은 또 다른 폭력인 것 같습니다.) 에미가히틀러가 애용했다는 레스토랑에 알리를 데려가는 것도 알리를 자신의 일상으로 흡수하는 과정같아 보였습니다.

      어디서 알리를 연기한 사람이 당시의 애인이라고 들었는데 확실한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이 보고 싶었는데, 아싑게 놓치네요. :-(
      • 흡수라... 네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결국 그런 자기 방식만의 흡수가 이루어져 서로 마찰을 겪게 된 것을 고려해보면 말이지요.



        네, 정말 파스빈더 애인이었다고 하네요. 저도 같이 간 일행한테 들었어요.

        저 같은 경우 다른 보고 싶은 거 많았는데 이번에 시험 때문에 죄다 스킵입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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