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와 혐오의 가치
* 어제 백토의 주제는 일베였습니다. 놀랍게도 게시판에서 이미 숱하게 나온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논리였죠.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이 진성호, 변희재였다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p. 직접 방송을 보시면 알겁니다.
* 사람들은 보통 분노와 혐오, 증오라는 감정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분노만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는다 같은...어디 영화에 나왔을법한 대사들을 떠올려봐도 그렇습니다.
또한 논쟁 중 주제에 대해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는 사람은 감정적으로 사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취급을 받기 쉽습니다.
증오-혐오의 대표적인 케이스 중 대표적인 예가 나치이고, 그들은 말할필요도 없이 인류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쳤습니다.
그런데, 이런 평가가 과연 올바른 일일까.
분노와 혐오는 지양되어야 마땅한 가치이고 객관성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장벽같은 것일까.
메피스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증오와 혐오는 문제의 해결과는 별개의 개념이고, 증오와 혐오 그 내부에서조차 그 가치가 갈리기때문입니다.
아동강간살인범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증오와 혐오, 한국사회에서 전라도 사람을 바라보는 증오와 혐오는 다른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보호받아 마땅한 어린이를 무참하게 살육한자+그 행위에 대한 증오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본인이 가진 편견을 이유만으로 혐오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죠.
그 감정을 지칭하는 표현이 동일할 뿐인데, 그것은 언어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분노와 혐오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은 이 단어의 한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자유'라는 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자유에는 책임과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저 천방지축 날뛰거나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착각합니다.)
단지 편의상 분류되었을 뿐인 특정대상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에 근거한 증오와 혐오는 반드시 무차별적 폭력;사회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반사회적인 범죄자에 대한(혹은 범죄행위 전반에 대한) 증오와 혐오는 그 사회가 정의를 지향하고 보다 더 발전될 수 있는 동력원이 됩니다.
물론 사회정의를 직접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법과 제도입니다. 하지만 형량을 떠나, 법과 제도는 반사회적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증오와 혐오가 공감대를 형성한 뒤에나 만들어집니다.
그릇된 현상에 대한 증오와 혐오, 그리고 이 감정들에 근거한 '공격성'의 표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흥미롭게도 기득권층이 자주 애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민주화 운동이나 시위를 탄압하기 위해 자주 써먹히는 단어들은 '과격함'이고, '폭동'이며, '테러리스트'입니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비판하는 것도 과격함이고, 탄압과 압제에 저항하는것이 폭동이며, 그 과정에서 큰 물리적 충돌이나 사건이 일어나면 테러가 되는 구조죠.
표면적으로 본다면 지양되어야할 가치들일 수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마찬가지로 구분 가능한 것이고, 또한 구분 해야만 하는 것이죠.
흥미로운건 일베적 가치관을 둘러싼 여러 논란입니다.
부정적 의미에서 사회를 좀먹는 증오와 혐오를 거리낌없이 보여주는 일베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행동을 논리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선비질'취급을 받습니다.
한편으로, 논리적 지적 이외에 그런 일베적 가치관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은 '과격함', '공격성'이라는 표현으로 칭해집니다.
명백한 반사회적 가치관들을 비판해도 그 어조가 강경하다는 이유만으로 일베와 동일한 취급을 받거나 심지어 나치 취급을 받아야합니다.
이미 객관적인 가치판단;반민주적인 행동을 일삼는 자들을 비판한다는 이유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 레테르를 달아야합니다.
이런 일이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대상과 그 대상이 저지르는 패악, 그리고 그 대상이 훼손하는 가치에 대한 합리적인 사유,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함량미달 인식은 어설프고 덜된 양비론이나 중립주의 등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온갖 패악질과 반사회적 행동들을 그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극이죠.
주제를 떠나, 당연함에 대한 의심은 좋은것이지만 근거도 없이 지나친 의심은 의사결정의 진행을 아예 막는 장애물에 불과합니다.
일베적 가치관이 그릇된 것이라는, 당연한 인식조차도 소모적인 논란의 방식으로 이미 지난 수년동안 존재해왔습니다.
독재가 끝나고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시점에서 사멸되어 마땅한 것들이 그 질긴 생명력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분노와 증오, 혐오라는 감정을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매도하기에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비판이나 움직임에 조금의 공격성이라도 보인다면 그것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몰아가는 것이죠.
반민주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들을 지적하고 저항하는데 팔다리가 다 잘린것도 모자라 입까지 봉인된 것입니다.
분노도 분노 나름이고, 증오와 혐오도 그 나름입니다.
합리적인 판단아래 통제될 수 있는, 그리고 정상적인 민주사회 시민이라면 당연히 느껴야할 증오와 혐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한 증오와 혐오는 적극적으로 권장되어야 합니다. 권력자, 기득권 및 부당한 사회적 현상을 견제, 억제할 수 있는 촉매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것을 일베식 가치관;지양해 마땅한 천박한 증오, 혐오와 구분시켜 주는 것이 법과 제도, 더 나아가 교육, 계몽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베가 성장하고 유지될 수 있는 원동력은 단순히 어린 아이들의 치기어린 욕구와 고집, 편견때문이 아닙니다.
마땅히 증오와 혐오를 느껴야할 대상들조차도 몸을 사리고 입을 조심해야하는, 가치판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이기 때문이죠.
과연 박근혜가 당선될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