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교양과 교양속물, 있어보임과 있음의 차이



  예전 듀게에서 "교양속물"이란 단어가 나왔죠. 500일의 섬머와 관련해서. 섬머 란 여자주인공의 독특한 취향이나 문화적 감수성이 정말 그 사람의 취향이라기 보다는

단지 '있어보이기 위한 ' 혹은 '특별해보이고 싶어하는' 속물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접근이었어요. 


이 교양속물이란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속물교양의 탄생"(박숙자)이란 책도 근래에 나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어떻게 '속물교양'이 탄생했는지를

설명하면서 '고전'과 같은 유명한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와 독서가 단지 "계급적 기호" (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접근처럼) 로 활용되면서,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장식물에

그친다는 거죠. 이런 관점을 역사적인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접근 하는 책이에요. 


이 책의 서문을 보면, 이 교양속물 혹은 속물 교양이란 말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와 함의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는 저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라 정확한 인용이 아닙니다)


대 는 이 는 은 고, 을 다 는 로 다. (...) 의 는  은 즉 한 다. 음 그 

이 닌 의 을 한 구. 이 왜 지 고 이 는 지 고 구 의 써 을 한 적  다.

트 의 향, 급 의 호, 의 본, 과 의 호. 게 란 구 에 는 로 

의 과 의 구 그 다. "


즉, 흔히 말하는 고급이다라고 느껴지는 취향을 남들에게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자신의 계급적 지표를 드러내고,

결국에는 인정 욕구 로 문화적인 기호들이 활용되는 속물 교양의 유래를 찾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에요.

교양속물 들에게 그런 기호가 무엇이 자신에게 의미하는지 그것이 가진 함의는 상관이 없는 것이죠.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 생각나는 영화가 "스물 타임 크룩스" 죠. 풍자로 가득한 이 영화는 하루아침에 졸부가 된 부자가 자신의 미천한 취향과

교양을 가리기 위해 아주 단시간에 고급취향을 과외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는, 그런 '졸부'의 과외 가 아니라 도대체 

"고급교양,고급취향"이란게 뭔데? 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그런 '인정받기'위한 도구로써 쓰이는 문화적 취향이 아닌 진짜 취향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영화,음악,문학,미술 을 이야기할 때,

아 이 사람은 그냥 '있어보이기 위해' 운운하는구나와 아 이사람은 진짜 좋아하는구나 라고 하는 것은 누가 판단할 수 있는걸까요? 그리고 정말 사회학자들의

극단적인 생각처럼, 문화작품의 의미와 가치는 정말 그것이 내재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 그냥 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걸까요?


아마 이런 이야기를 깊게 파고 든다면, 거의 비평적 영역으로 넘어가 이야기는 도저히 게시판에 올릴 수 없는 차원으로 가겠죠.

('교양' 그 자체도 아시아로 넘어오면서 뒤틀려진 개념이니까요 )


 


제가 이런 이야기를 길게 꺼내는 이유는 가끔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느끼는 어떤 기묘한 느낌 때문입니다.

또, 오래전부터 유행한 '허세'라는 말.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힘을 과장하여 내보이는 것 이란, 그 사전적 정의와 상관없이 너무나 쉽게 쓰이는 말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쓰는 몇몇 사람들 중에는 상대방의 힘이 진짜 존재 하냐 안하냐 에 상관없이 자신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없다고' 판단하는 것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취향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가지각색이고, 무언가에 반응하는 감각에 있어서 나라별 시대별 성별에 따라 너무나 다르기 마련인데,

어떤 사람들의 취향을 들어보면, 그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특정한 기준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령, A , V , D 를 좋아한다 하면, 분명 A, V , D에는 이 사람만의 기준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기준 자체가 없이 그냥 A, V ,D 자체가 취향이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 말이죠. 저는 이런 경우에 그 사람이 진짜 좋아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감흥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위에서 이야기한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오히려 그 A, V, D 가 그 사람의 감성에서 나온다기 보다, 특정한 류의 계급적 지표 라는 공통점을 띄는 경우도 있구요. 클래식과 군주론과 교수같은 옷차림...

 

또 그 취향이라고 하는 것. 그의 감수성이라고 하는 부분이 오직 '자신의 생각,자신의 감정, 자신의 느낌' 에만 반응하는 사람일 경우에도 저는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애초에 감수성이라고 하는 것은 외부 세계, 타인에 대한 상상력인데, 그들의 감성이란 단지 자신의 센치한 느낌이나 외로움,자기연민,생각에 대한 과장된 해석만 있을 뿐

정작 다른 사람의 동일한 질의 감정과 생각에는 그다지 반응하지 못한다면, 그냥 그 감성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차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마지막으로 정확한 앎. 제대로 느끼고 생각하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없이, 그냥 '제목'정도만 취하고, 마치 취향이 명품 의 브랜드 네임처럼 활용되는 경우도 많구요.

그러니까 가방의 질이 좋고 얼마나 실용적이고 디자인적으로 예쁘냐가 아니라 그냥 그 가방의 브랜드가 '~~~"이기 때문에 좋아하고 찬양하는 사례...





이와 같은 종류의 취향과 감성을 접하다보면, 이제 모든 것은 '소비'될 뿐, 더이상 그 자체로 자신의 의미와 생각을 만드는 다음 단계는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닐까

란 생각이 듭니다. 즉, 그 작품의 유명함과 인정받기 위한 정도 가 그 작품의 의미가 되는거죠. 해외웹진의 평가를 그대로 받아적으면서 똑같이 좋아하고 똑같이 싫어하는

경우처럼,  평론가마다, 리스너마다, 독특한 자신의 성격과 삶과 취향으로 인해 평을 달리하기도 쉬운 작품에 대한 해석이,

왜 하나같이 점점 단일한 취향, 단일한 감성을 드러내는지도 점점 반길 수 없는 모습이구요. 결국 그것이 얼마나 유명하고 인정받았느냐가, 즉 '좋음'이 되는 현재의 입장과

'힙스터'에 대한 여러 비판처럼 그런 외양과 인정만을 유행처럼 입고 버리는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는 그냥 점점 소외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글의 가장 큰 맹점은 (제가 취해서 쓰고 있다 는 점을 빼고) 그렇다면 진짜 취향, 진짜 교양, 진짜 의미가 뭔데? 라는 질문에 저조차도

모르겠다고 답할 뿐이라는 거죠...









    • Hopper님께서는 진짜와 가짜를 어떻게든 구분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실지 몰라도 저는 그 구분이 무의미하기에 그 경계선을 쫒아가면 당연히 플렉탈과 같은 숲을 해메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양을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하는 패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군가와 같은 책을 읽었다면 그 책에서 나온 여러 원리들, 구성들을 인용하여 대화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고대 희랍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던 그 많은 이야기들은 모두가 같이 '알고 있음'으로 해서 서로가 더 빠르게 미묘한 감정과 논리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 이스메네가 어떤 심정인지 알 거 같아'라던가, '나의 아스카는 이러치 아나'라던가, '정준하를 보는 정형돈의 마음이야'라던가요. 그렇게 서로 대화할 때 교양을 인용함으로 기능을 수행했다면 저는 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게슈탈트나, 초자아, 대타자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된다거나 접히거나 펼쳐지거나, 이중 주름이거나 쓴 사람들이 정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읽는 이들이 쓴 이들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제 상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저 같이 읽었던 이들 사이에서 그 '틀'로 서로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그 위에 무언가 쌓을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분명 현대 문화에서 국가 크기의 집단 내에 함께 공유하는 교양이라는게 딱히 없다는 것을 문제시 할 수 있겠지만 감수성의 차이를 통해 특정한 가치를 찾는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Hopper님께서 이해한만큼 남들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Hopper님이 외로움을 느끼실 수는 있겠지만, 그게 다른 이들이 잘못 살고 있다는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에는 제가 진짜가 뭔지 설명을 못하겠으므로 구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 글은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교양속물' 에 관한 생각을 늘어놓았을 뿐이죠. / 교양이 대화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하는 패라고 보는 정의는 조금은 한정된 관점 같습니다. 그 정의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을 전제로 하는데, 우리가 책을 읽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과정은 둘이서 하기보다는 혼자 가지는 시간을 통해 쌓이니까요. 꼭 나와 대화할 다른 사람이 있어야 '취향'과 교양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런 식의 정의는 조금은 좁게 해석하신 것 같습니다./ 감수성의 차이를 통해 특정한 가치를 찾는다 ,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에 잘못 살고 있다.<- 저는 이런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 현전 그리스비극들은 왜 죄다 그리스 신화나 호메로스 서사시를 소재로 삼았을까, 왜 창작극은 없나, 나라에서 개인의 창작을 금했나? 별별 생각을 다 했는데, 적으신 댓글을 읽으니 그 시대 보편적 교양을 극작수단으로 삼은 이유를 알 것도 같네요. 당시에는 미학적 성취 뿐 아니라 공동체의 연대감과 의식의 확산이 공연의 매우 중요한 목적이었다 싶구요. 좋은 힌트 주셔서 감사:)
        • 맥락은 상당히 다른데 폴 벤느의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를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본문과 관계 없는 이야기 이지만...<br />듀게에 접속하면 다양한 사고를 접하게 되어서 항상 많이 배우고 가요 ^^<br />감사의 말씀을..
    • 일단 '교양'과 '취향'을 구분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양'이라는 말은 독일 계몽주의자들이 'Bildung' 개념을 전개한 이래로 그 의미가 강하게 들어 오죠. 인간이 달성해야 할 어떤 이상적 상태가 있고, 그 상태를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예술작품들이 있고.. 때문에 그런 작품을 많이 읽은 인간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취향' 개념은 좀 더 애매한 것 같아요.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취향 또는 취미의 세련성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문화가 생긴 건 16, 17 세기 즈음이라 합니다. 그 전과는 달리 철저한 신분제가 동요하게 되면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하는 의견도 있더군요(근대 민주의의 출현과 근대 들어 작품에 대한 담론(및 미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뤽 페리의 "미학적 인간"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어쨌든 '취향'이란 개념은 '교양'처럼 어떤 특정한 집단이 이상으로서 내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료하게 정의하기가 어렵고, 어떤 것이 진짜 취향인지에 대해서도 정의하기 어렵지요. 이렇게 '취향' 또는 '미적 감수성'이 근대에 중요하지만, 정의할 수 없는 것으로서 통용되다가 독일 계몽주의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교양' 개념으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은 '교양'이 아니라 '취향'이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시대의 사회경제적 주류가 스스로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 낸 취향들이 좋은 취향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인문주의적 이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그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에 기반해 그 이상을 달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예술작품을 분류할 확실한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교양있음과 없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구별짓기'로 환원되지 않는 진짜 교양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인문주의적 이상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는 실제로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므로 그런 의미의 '진짜 교양'은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현대에는 인문주의적 이상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기도 하니, '교양' 비스무리한 것을 제창한다고 하더라도 조롱거리가 될 뿐이겠죠.

      취향은 계급 분할의 산물이고, 교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이상이라면, 남는 게 뭘까....하면 결국 궁극적으로 던져야 하는 질문은 '예술'은 무엇인가겠지요. 본문에서 명품을 언급하셨는데 예술작품과 상품을 경계가 흐릿해진 지금은 그냥 전부 예술성을 갖는 창작품이라고 정리를 해 버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온 천지에 넘쳐나는 예술성을 갖는 수많은 물건들 중 더 옥석을 가릴 기준은 무엇인가, 대체 그 기준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단호히 긍정적인 답을 내리려는 사람은 요즘엔 흔치 않죠.


      아무튼 저는 그냥 허세 부리는 사람과 무언가를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좋은 것인 이유를 타인에게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 또는 자신이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타인에게 납득가능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아스카 팬이라면 레이 팬인 제게 자신이 아스카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심리적인 이유를 제시하면 인정할 수 있겠죠-이라면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든 저는 그 사람의 취향을 존중하고,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든 간에 그 사람이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아무리 소위 말하는 '고전'들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좋은 작품인 이유에 대해 성찰에 기반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아무 생각 없이 남들 보니까 따라 보고 있구나 라고 판단합니다. 사실 좀 편협한 기준이긴 해요. 창작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거 잘 안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하지만 전 감히 창작자를 평가하려곤 하지 않아서..그런 사람들은 논외지요.
    • 남들이 교양을 어떻게 읽거나 소비하는지, 그게 과연 실체가 있는 무엇인지 혹은 젠체하는 가식에 불과한 건지는 판단할 방법도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그건 자신에게 던졌을 때 의미있는 질문이고, 내가 속물인지 아닌지는 뭐 직접 해보면 알겠죠. 그런 주제로 논문 같은 걸 쓰는 게 아닌 이상, 개인적 차원에서 그런 질문은 이미 일말의 의심?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 정확한 지적 같습니다.
    • Hopper_ 본문에서의 한편으로는 교양이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거나, 다른 편으로는 정서에 대한 [과장된 해석]이라고 말씀하시는게 일말의 가치 판단이 포함되지 않은 객관적인 시선인가요? [-이기 때문에 좋아하고 찬양하는 사례]라는 것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려는게 아닌가요? 문제 제기를 하시면서 '진짜' 즉, 모방해야 할 선을 [진짜가 뭔지 설명을 못하겠]지만 나눠지기는 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계신 거 아닌가요? 저는 Hopper님이 나눌 수 있을 것이라 말한게 아니라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어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증명이 불가능한 대상을 말할 때는 존재 유무에서부터 의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과의 대화 사이에서 규정되는 교양이 좁다고 하신다면, 타자와 함께하는 교양과 홀로 고립된 교양을 나눠서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요. 저는 홀로 쌓아 남과 대화하지 않고 존재하는 교양에 대해 생각하기 어렵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내에서 회돌이하는 사고가 교양이라고 할 수 있나요. [혼자 가지는 시간을 통해 쌓]인다고 하셨지만 그로는 교양이라는 것을 외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이겠죠.
      • 부유했던 프루스트는 출판사의 마감독촉도, 통장잔고의 압박도, 편집자와의 교감이나 교정도 없이 홀로 자기 집 방구석에 처박혀 기나긴 일곱 권의 소설을 혼자만의 취미생활하듯 썼다고 해요. 읽기 힘들기로 악명높은 소설이지만 작품성을 충분히 인정받았죠. 드물지만 이와 비슷하게 혼자 익어가는 '고립된 교양인'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프루스트는 안 그래도 신화화된 헛소문(우유만 마시고 식사를 전혀 안 했다는 등의)이 많은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부자였지만 고립된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고요.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으려고 인맥을 동원하고 선물을 보내고 딱지 맞고 결국 징징대면서 자비출판하고, 첫권 출간 전날 자작 인터뷰를 잡지에 싣고, 심사위원단에 있던 친구들 덕에 공쿠르상 받고, 누가 한 마디만 하면 꼬박꼬박 반박의 편지를 쓰곤 했죠. 출간이 시작된후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자와 쓴 편지만 책 한 권 분량이 넘습니다. 방구석에서 쓰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도 죽기 전까지 쓰는 내내 매일같이 사교계 모임에 참석했고요. 암튼 낭만주의가 유포한 신화와는 달리 고립형 작가는 실제로는 극히 드뭅니다.
          • 편집자 손을 안 거쳐 그렇게 난해하고 방대한가 했더니만^^;; 그럼 은둔에 가깝게 살았던 여성작가들은 어떨까요? 하긴 에밀리 디킨슨에게도 꾸준히 편지 주고받은 작가친구가 있었다 하고, 브론테 자매들에게는 서로가 있었으니 요새로 치면 트윗이나 게시판활동 많이 하는 거랑 비슷할라나요. 은둔작가로 알려진 권정생도 시골에서 살았을 뿐 삶이 자폐적이진 않았고, 미루야마 겐지는 은둔이라기보단 절제라는 편이 맞겠고요. 교양있는 외톨이들은 많을 것 같은데.. 홀로 교양을 소비하는 건 쉬워도 생산하는 건 어렵나 봅니다.
      • 저번 글의 댓글도 그렇고, 잔인한 오후님은 과장된 해석을 하시네요. 모든 글은 가치판단 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일리가 없습니다. 저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하신 부분에 있어 비판적이고 문제 제기에 가까운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진짜 교양" "가짜 교양" 이 두가지의 구분을 어떻게 판단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모두 가짜일까? 진짜는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이 글의 주제일 뿐입니다. 상대방이 의도한 글쓰기에서 그 나름의 해석을 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해석을 극단적으로 이끌어서 비판하는 것은 제가 답해드리기도 애매합니다. ;;아마도 제 글쓰기의 모자람 입니다. / 교양을 두 사람의 대화를 위한 패 다 라고 하는 것은 단지 교양 그 자체의 목적이기 힘들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교양을 쌓는 사람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대화'하기 위해 그런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죠. 자기 나름의 목적이 있을거구요. "대화할려고" 교양을 쌓는다는 포괄적인 개념은 아니라는 겁니다. (아래 다른 분들이 달아주신 사례를 보시면 ) / 잔인한 오후님의 댓글들 (이전 포함)을 볼때마다 당황스러울 뿐입니다. 왜 글을 자기 만의 해석으로 끌고 간 이후에, 그렇게 과장된 비판을 하시는건지 모르겠습니다.(대화는 그 나름의 동일한 해석을 공유해야 가능한데 잔인한 오후님의 해석은 언제나 전혀 다른 점을 짚거나 글에 숨겨진 가설까지 끌고 가서 그것이 그사람의 주장인것처럼 대합니다. ) 글에 대한 해석이나 느낌이야 자유이지만, 글쓴이가 의도하지도 않았거나 아에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가설까지 끄집어내어 말씀하시면 "난 그런 의도를 하지 않았다" 밖에 답이 없습니다. (비판이 유효하거나 제가 잘못했다면 위처럼 아에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글쓴이의 맥락과 입장을 한마디 한마디를 깨물며 숨겨진 전제를 끄집어내면 제가 그런 해석이 나오지 않도록, 각잡고 글을 쓰지 않는 이상, 어설픈 말은 아에 쓰지도 못하겠군요) 잔인한 오후님이 쓰신 다른 글의 댓글 논쟁에 있어서도 비슷한 문제가 벌어지더군요. 상대방이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르게 자신의 '산'으로 가버리면 저는 따라 가지 않는게 대책입니다. 그러면 무한대의 대화가 가능하니까요. 저와 대화를 하고 싶으시다면 상대방이 의도한 바를 먼저 파악하세요. 자신의 생각으로 단정짓지 마시구요.상대방의 가설을 상대방의 주장으로 삼아버리면, 무한대의 반박도 가능할겁니다
    • brunette_ 교양이 어떠한 지식이라면, 향유가 교양의 속성 중 하나일테니 교양과 향유를 떼어낼 수 없겠죠. 잔존하지 못한 성인이 성인일 수 있는가하는 것처럼, 잔존하지 않는 교양이 교양일 수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이는군요. (이야기가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에 잊혀진 위대한 자들이 성인이고, 잊혀진 위대한 이야기들이 교양일까 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이야기들은 살아 남은 것이죠. 솔직히, 말과 글이 개인을 뛰어넘는 층위에서 전승되는 걸 고려하면 '홀로 글을 쓰거나, 홀로 (언어나 언어 외로) 생각을 하거나' 하는 모든 성찰이 2인 이상의 대화와 다를 바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롯이 홀로 교양에 도달하는게 아니라 말글이라는 왜곡된 거울로 자기 자신을 계속 비춰내며 교양을 만들어내는 것 말이죠.

      하지만 교양이 어떠한 지혜라면, 딱히 향유될 필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모방하거나 물려주지 않아도, 심지어는 설명을 할 수 없어도 누군가가 교양하게 보일 수 있겠죠. '저 사람 교양 있다' 할 때의 교양이란 '있다'는 느낌이 주는 지식보다는, 그리고 원문에서 말하는 텍스트-컨텍스트의 이해보다는 그 사람의 메커니즘/정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도 그런 경지에 이르른 사람은 외롭겠죠..
    • 이쯤에서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 듀나의 고전칼럼

      씨네 스노비즘
      http://djuna.cine21.com/movies/scrawl_1999_09_25.html

      전문가들은 더 잘 알까?
      http://djuna.cine21.com/movies/scrawl_1999_04_15.html
    • Hopper_ 제가 굳이 자기 자신이 다는 댓글에 '저는 -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그에 대해 단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 붙이는 수식어구입니다. 그를 빼고 글을 쓴다면 가독성도 훨씬 좋아지고 문맥의 흐름도 이해하기 좋아지겠지만, 지금보다 더욱 더 단정적으로 보이겠죠. 제가 저의 산을 쌓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억지로 초대까지 하진 않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Hopper님께 드린 질문들, '~하게 말씀하시려는 거 아닌가요?'라는 반복적인 질문 형태도 Hopper님의 함의를 단정짓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그 뒤의 문장들 '-라 할 수 있나요', '-다고 생각합니다', '-이겠죠' 등도 Hopper님의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을 기다리는 비완결형 어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글을 해석 한 후 저의 가설을 남의 주장으로 [대]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글에서 비어있는 함의들을 채워넣고 제 가설을 진행시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가장 중점이 되는 전제들에 대한 설명이 모호하거나 비유나 묘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진짜와 가짜를 떠나서 '교양' 그 자체에 대한 정의는 어떠한가요. 적어도 이 전의 글에서는 '호랑이'에서 '인간'으로의 변화 자체에 내재된 그 수단을 교양이라고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또는 더욱 더 깊어지기 위해 (또는 가지고 있었을 경우 깊어지는 그 무엇), 암실에서만 잠깐 볼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비유라도 있었습니다만, 여기서는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교양의 설명은 제외되고 그 위에 진짜와 가짜의 교양에 대해서만 그것도 애매모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그것이 나누어지기 어려운 것이라면, 나누는 목적과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속성으로 인간을 분할하는데 있어 그것을 '왜 나누는가?'라고 질문해야 마땅한게 아닐까요?

      원글에서 아직 정해지지 않은 그 무엇을 가지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Hopper님 아닌가요? 게다가 그것은 저처럼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상대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에 달린 것들이지 않습니까. 글 제목에서의 [있음]과 [있어보임]은, [있음]은 자기 홀로나 타자나 개인으로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있어보임]은 2인 이상이 존재해야만 판단 할 수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 추측하고 판단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 동지로서, 이 글과 그 전 글에서 예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교양속물처럼 보이는 그들에게서 교양속물적 속성, 즉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타인의 인정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단정짓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가방의 브랜드가 "~~~"이기] 때문에 좋아하나요?, 라고 말이죠. 그들이 '네'라고 말하기 이전까지는 정말 ["~~~"이기 때문] 인지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이해하고 동일한 해석 내에서 이야기를 나누는게 최선이겠죠. 하지만 완결된 글로서 글쓴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오독될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이미 글 가체가 글쓴이와 분리되어 다른 것을 대리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저 물어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글을 이렇게 밖에 읽을 수 없는데 혹시 이러한 주장을 하고 계시는게 아니냐고 말이죠.

      저는 각잡고 글을 쓰길 요구하진 않습니다. 검열 등의 저항 없이 글을 써야한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저항이 없이 썼다는 전제를 글에 명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상대방이 의도한 바를 파악하기 위해 질문 드렸고, 저는 어느 정도 만족했습니다. 가장 첫 댓글에서도 썼듯, 저도 현대 문화에서 어떠한 가치판단의 중심점이 최소한이나마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문제제기의 조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데 있어 그 경계선을 이루는 조건이 모두들에게 납득 가능한 것이라면 현대의 가치관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만큼이나 전제가 확실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가짜들을 설명하기 위해 명확하지 않은 예시들을 드는 것은 제겐 위험해보입니다. Hopper님께서 언급하시는 그 가짜의 예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가설조차도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가치판단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질문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설의 주장에 대한 단정의 반박이 무한대를 이룬다는 말은 잘 새겨듣겠습니다만, 이번 글과 댓글들에서 그러한 기미가 보였는지 저는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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