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식간에 다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오늘 일 때문에 한시간 정도 길에서 서있어야 할 일이 생겼는데,

그 앞에 구두 매장이 있었더랬죠.

 

구두 매장 앞에서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었는데, 쭉쭉 뻣은 잘 생긴 양남자들 사이로

동양인 여성이 있었더랍니다.

 

딱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

긴 생머리에, 검은 색 정장스타일에 흰색 블라우스.

그리고 뿔테 안경.

 

쭉쭉 뻣은 양남자 사이에 좀 왜소해 보이는 동양 여자가 있으니 눈에 확 띄더라구요.

손금을 봐주는지 직원들 사이로 손바닥을 보면서 뭐라뭐라 하는게 보였습니다.

 

순간 궁금해졌습니다. 저 사람은 한국 사람인가, 일본 사람인가, 중국 사람인가.

요즘에 중국 사람들 해외에 엄청 나오더라고요. 일본사람은 일본 사람 티가 많이 나는 편인데,

중국 사람은 묘하게 한국 사람하고 비슷해서 정말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볼 때, 요즘 중국 사람들이 워낙에 쇼핑하러 많이 오니까 중국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왠지 한국 사람처럼 생겼더랍니다. 뭐 딱히 근거는 없지만 그냥 느낌이요.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냥 지나갔으면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말았겠는데,

일이 있는지라 계속 그 근방에 서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는 바람에 인터넷도 못하고,

영화같은 것도 못보고, 수다도 못 떨고, 가방도 안 가지고 나와서 읽을 거리도 없고,

그냥 멀뚱멀뚱 지나가는 사람 구경밖에 할 수 없는 상황.

 

자연스럽게 그 동양 여성에게로 눈길이 가더라구요.

저런 식으로 일하는 구나... 어느 나라 사람이려나..

몇살쯤 됬을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눈이 딱 마두쳤습니다.

 

한 10초 정도?

 

순간 뭔가 울렁하는 느낌.

 

금사빠 타입인 사람입니다만, 그런 울렁도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낌이더라구요.

순간적으로 시선을 피하는데, 옆에 양남자랑 뭔가 수근거리는게 보입니다.

 

그리고 몇번씩 흘끔흘끔 보면서 눈 마두치고 서로 눈 피하고,

한시간여동안을 기다리는 동안 몇번씩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느덧 일이 점점 마무리 되는 것이 보이자, 고민을 합니다.

과연 나는 저 분과 어떤 사이로 끝나야 하는가.

그냥 눈 마두치고 끝나는 사이인가 아니면 인사라도 나눈 적이 있는 사이어야 하는가.

 

그냥 헤어져도 앞으로 크게 기억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일이 있었지.. 하다가 그런 일이 있었나? 그렇게 희미해져버리겠죠.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왜 하필 이 시간에, 이 장소에, 저 구두 가게 앞에서 서있었으며, 저 분은 왜 하필 저 가게에, 저 시간대에 일하고 있는가.

어쩌면 이것은 운명이라는 것인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런 운명을 여기서 놓친다면? 나중에 후회하려나?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매장에 들어가서 말했죠.

 

저기요.

 

한국 사람이면 반응할 것이고, 아니면 그 나라 말로 뭐라고 하겠죠.

 

에?

 

그 순간 '예' 인지 '네'인지 '에' 인지 정확히 못들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이런 것은 처음이였으니까 뭐라고 말해도 잘못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에'에 가까웠다고 생각된지라 다시 말했습니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결론을 말씀드리면 한국 사람이 아니였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확인할 새도 없이 "Are you korean?" 이라는 질문에 "No" 라는 대답이 나오자마자

"Sorry for bothering you" 하고 나왔습니다.

 

얼굴은 후끈후끈. 그래도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 왠지 모를 아쉬움, 만약에 한국 사람이였으면 뒷수습은 우째하려고 그랬나 했던 안도감.

그래도 혹시 한국 사람인데 무서워서 아니라고 한걸까 하는 의구심 등등이 교차하네요.

 

그래도 만약 그 분이 저의 운명이였다면, 오늘 건넨 한마디는 그 운명의 시작이 되었겠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뭔가를 해야 일이 진행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결론은.. 5월중에 듀솔클에서 운영진의 기획의 번개가 있다고 합니다. 

도전하세요. 남자든 여자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

 

    • 저도 금사빠 타입인데요, 운명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아. 내가 좋아하는 외모와 분위기가 저런 스타일이군.. 의 확인에 그치죠.
      • 금사빠에도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보다보니 빠지는 경우와 특정 순간 가슴이 찌릉 울리는 경우. 전 후자가 운명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운명 자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엮임 중에 가장 특별한 순간라고 한다면, 그 특별한 순간에 이르기 위해 수많은 일들이 정확한 타이밍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운명이라는 설명이 가장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거든요.
        • 음. 보통 내 가슴을 찌릉 하게 울리는 상대는 다른 사람 가슴도 찌릉하게 울려서요. 그건 단지 미의 힘이지 않을까요?
    • 두근거림이 글에서 전해져와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설레는 순간 가끔 있죠. 근데 저도 그러니까말이죠님처럼 그런 상대는 그냥 다수에게 어필하는 매력을 가진 거겠지라고 생각합니다.ㅜㅜ
    • 반응이 '에?' 였다는 데서 일본사람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설렘이 전해지는 글이네요. 저도 설렙니다. 길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반해 용기를 내 말을 걸어 시작되는 연애가 제 상상 속에선 가장 로맨틱한 연애인데 소심한 성격인지라 한 번도 낯선 여자분에게 말을 걸어 본 적이 없네요. 언젠가 꼭 한 번은 해 보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시간만 자꾸 가네요.



      그런데 용기를 내서 말도 거셨는데 대화 좀 더 이어나가지 그러셨어요ㅎㅎ 제가 다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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