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셰임'과 밥
오늘 조조로 '셰임'을 봤어요. 아침 댓바람부터 볼 영화는 아니지 않은가 싶지만 얼른 보고 싶었거든요.
영화 끝난 뒤에 영화관을 나오면서 '영화가 되게 공허하다'라고 중얼거렸어요.
만듦새가 공허하다기 보다는 영화가 그리는 세계, 심리 이런 게 참 공허하고 허전하고 쓸쓸했어요.
게다가 하늘은 흐릿하고 이따금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은 다시 차가우니 더하더군요.
꼭 섹스가 아니어도, 그것이 나를 망친다는 걸 알면서도 누구나 하나 정도는 집착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집착할 수록 오히려 더 외롭고 벗어나고 싶지만 잘 안되고 그러다가 원래 그랬던 것 처럼 그 집착이 그냥 내가 되어 버리는 순간도 있을테고요.
뉴욕 여피는 커녕 서울의 날백수-_-지만 브랜든(마이클 패스벤더)도 저를 보는 것 같고, 씨씨(캐리 멀리건)도 저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배우(중 특히 마이클 패스벤더) 노출과 정사신이 빈번하긴 한데, 영화의 지향점이 그 부분이 아니다 보니 전혀 야하지 않고
오히려 좀 고통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그냥 갈수록 피골이 상접하는 게 느껴진달까요;;
푸른색과 회색의 색감이 좋았고요. 특히 초반 5분 정도는 이상하게 굉장히 몰입이 되었어요. 별 대사도 없는데 숨이 막힐 정도.
원래 계획은 영화를 본 뒤에 근처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책을 보는 것이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후유증이 커서 그냥 집에 왔어요.
영화 생각하면서 한 30분 걸어 집에 왔는데 집에 와서 아주 오랜만에 밥을 해먹었어요.
그냥 그 허전함을 집에서 내가 만든 밥을 먹으면서 채우고 싶더라고요.
한 3주 정도 집에서 밥을 전혀 안 먹었고 대충 밖에서 사 먹거나, 빵이나 떡, 과자 같은 것들로 떼우거나 했어요.
밥을 지어서 엄마가 보낸 준 반찬을 그릇에 덜어 가지런히 차려놓고 천천히 먹고 있으니까 기분이 한결 좋아지더군요.
나를 방치하지 말자, 나를 좀 더 소중히 대하자, 이런 며칠 못 갈 다짐도 하고요.
씨네 21 김지미 영화평론가가 쓴 리뷰( http://www.cine21.com/review/view/mag_id/73309 ) 중 마지막 문장이 딱 적절해서 옮겨옵니다.
"정신의 공허함으로 훼손되는 육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