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이야기] 4박 5일 데리고 있다가 새주인 찾아 보냈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유기견이 한마리 들어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늘 저녁에 새로운 주인을 만나 새집으로 떠났고요.

 

본래는 신고를 받으면 데리러 가서 바로 위탁하는 동물병원에 맡기는 절차를 밟는데

얘는 TNR 대상 길고양이 잡으러(?) 갔다가 어쩌다 주워온 녀석이라 일단 사무실에 두고 새주인을 찾아보자- 이렇게 됐습니다.

 

저희집에서 개사료와 화장실 패드 등의 물자를 조달하고 사무실에 있던 이동용 캐리어를 집 삼고 제대한 공익이 두고 간 옷을 이불 삼아

지하창고에 이 유기견의 거처를 마련했고, 오늘까지 4박 5일을 보호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번 정도 공중방역수의사(군복무중인 수의사)랑 제가 창고 청소 해주고, 마실 물도 갈아주고,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산책도 시키고 이래저래 병원에 가서 케이지에 갇혀만 지내는 것보다는 나은 환경을 제공해줬어요.

물론 유기동물 무슨 시스템에 공고하고, 내부 게시판에 입양할 분을 찾는 글도 올렸고요.

 

수의사가 이빨 상태를 보곤 한두살 정도밖에 안됐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하는 짓이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했더군요.

너무 활발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길에서 떠돈지 제법 된 것 같은 행색을 하고서도 여전히 성격이 밝은 아이였습니다.

며칠 돌보면서 관찰한 결과 배변훈련도 잘 돼 있고, 거의 짖지도 않고,

데리고 나가면 돌봐주는 사람만 졸졸 따라다니고 맞은 편에서 낯선 사람이 오면 슬슬 피하는 걸로 봐서 영 바보도 아니고

여러모로 마음이 쓰이고 아 제발 좋은 사람이 나타나서 데리고 갔으면-하고 바라게 되는 녀석이었어요.

 

 

저는 원래 푸들을 좋아하고, 십수년 전 개를 입양할 때도 푸들을 주장했던 사람이라 정말 심하게 유혹을 느꼈습니다.

만약에 얘가 갈색이나 검은색 푸들이었으면 정말 정신 못 차리고 아빠+세마리 짐승들의 반대를 무릅 쓰고

얘를 집에 데려오는 만행을 저질러버렸을지도 몰라요.

 

게다가 이 녀석이 저를 너무 좋아하는 겁니다. 어제부터는 제가 가면 막 오줌을 지리면서 반길 정도였거든요.

수의사한테는 안 그러는데 저한테 그러는 걸 보고 "여자라서 좋아하나?"라는데 이유는 모르겠습니다.(참고로 얘는 수컷)

아무튼 산책을 나가도 뛰어노는 것보다 저한테 안아달라하고, 다리에 매달리고, 옷자락을 물고 늘어지고 이러는 게 막 눈에 밟혔어요. 

우리집엔 짐승을 썩 좋아하지 않는 아빠도 있고 니랑 서열 경쟁하면 명이 짧아질 열두살 된 할머니 개님이랑

니같이 날뛰는 개를 좋아할 리가 없는 고양이가 두마리나 있단 말이다! 내 너무 좋아하지마, 엉엉- 이런 기분이었달까요.

 

 

 

어쨌거나 다행히 오늘 다른 과 직원이 데려가겠다고 했고, 마당이 넓은 집이라니 아주 개같이? 개처럼? 개답게? 살 것 같아요. 

이 녀석을 데려가고 싶지만 집에서 손자를 봐야돼서 기르던 개도 다른 집에 보냈다는 과장님은

아 그런 집 가면 아주 똥개 돼버릴 건데... 개도 개 나름이지 침엽수 니가 데려가라! 이런 실없는 소릴 하셨지만 여튼 다행입니다. 

 

안녕, 잘 살아라 개야.

얘한테 과하게 정들까봐 이름도 안 지어줬습니다.

    • 아..예전 저랑 살던 아줌마 개랑 너무 닮아서 눈물이 찔끔ㅜㅜㅜ
      이런 애들을 왜 버리는 걸까요ㅜㅜㅜㅜㅜ
      • 그러게 말입니다.ㅠㅠ 그런 인간들한텐 저주를 퍼붓고 싶어요.
    • 침엽수님. 정말 착하시네요.. 저도 눈물나요 ㅠ.ㅠ 좋은 일 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 착한 사람(X) 그냥 개 좋아하는 사람(O) 입니다. 애가 불쌍할 뿐 전혀 고생스럽진 않았어요.
    • 아..정말정말 좋은 일 하셨어요. 전 가끔 길 잃고 아스팔트 위를 배회하는 애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 한참을 지켜보게 되더라고요. 어쩌지도 못하면서 그냥 지켜만 봐야할때의 무기력감! 침엽수님 기분 좋으시겠어요.^^
      • 네 저도 보통은 슬퍼하면서 지켜보기만 하는 입장인데 이버 아이는 무사히 입양되어서 정말 기뻐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9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1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3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2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4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