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자가 깊이 판다.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젊은 소설가들 에게 이런 말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깊이까지 닿을 용기도 없이 항상 중간에 퍼질러 앉아서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을 쓰고 있다고.




사실 깊이 라고 하는 것은 그 깊이를 지나온, 그 지점에 이미 가닿은 사람만이 파악할 수 있는 기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버마스 얘기를 하든 레드 제플린 이야기를 하든 간에, 그 것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그 말이 얼마만큼 맞는지 틀리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요즘 사회의 기준은 깊이가 아니라, 높낮이나 무게감 입니다. 모르는 사람도 "대다나다" 라고 해줄 수 있는 기준이

더 확실하게 먹히죠. 하지만 깊이라는 건 그냥 밖에서는 확인하지도 못하고 그 안에 들어가야 보이는 무언가에 해당합니다.

그 깊이가 인간을 향해있든 자신을 향해 있든지 간에 무언가를 깊이 이해하다 할 때 의 '깊이' 말입니다. 




소설가 김영하 씨가 인터뷰 과정에서 꺼낸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야기가 이 깊이를 얻는 과정을 잘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어릴 때 친구도 안만나고 책만 읽었대요. 친구도 없이 요시모토 바나나 아버지가 유명한 학자인데, 

일본 같은 사회에서 친구없이 지낸다는 건 좀 위험한 일이잖아요. 주변에서 걱정을 하니까 요시모토 바나나 아버지가 그랬대요. 

친구라는 건 다 쓸데없는 거라고,  애가 그냥 책을 보게 냅두라고. 인간에게는 어둠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어둠이에요. 

친구들 만나서 낄낄거리고 웃고 떠들고 이러면서 세월을 보내면 그 당시에는 그 어둠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그게 사라지는게 아니라 빚으로 남는거에요. 나중엔 그 빚을 갚아야 해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서론을 쓰냐고 물으실 지점인데,대략 이 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쑥과 마늘은 먹기 싫고 그래도 인간인 척은 하고 싶은 호랑이"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 입니다.


논의의 주제가, 고도의 사회과학이론에 관해서든 , 아니면 단순히 예술적 소양에 관련해서든 간에

요즘 자주 느끼는 부분은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자신의 소양이나 계급적 위치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기호로써 활용할 뿐

정작 그 기호가 담고 있는 의미에는 관심없거나 그 의미를 이해하고 고민하는 일련의 과정은 하기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오직 자신만의 경험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논리를 이끌어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것인지에 대한 가늠없이

그냥 그게 맞다고 믿어버리면 편합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잘 알고 계실 것이고, 그 경험으로부터 의미를 

이끌어내려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을 동시에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장 도서관에 쳐박혀서 3,4시간씩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전통적인 방식은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는 것처럼 쓰고 외로우니까 하기 싫고

인터넷에서 몇번 클릭으로 알게 되는 Fast knowledge 의 편리함에는 익숙한 사람들에게, 

고달프고 외로운 시간을 거쳐 고작 한문장 쓰고 한 문장 읽는 그 느린 발걸음은 속터지는 짓이죠. 


하지만 그 속터지고 우울하고 고달픈 과정을 거쳐야만 획득할 수 있는 게 '깊이'입니다. 




도대체 불가능에 관한 모든 논의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한 번 불가능의 얼굴을 본 사람은 

스스로 불가능이 되기까지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또한 그것이 제 똥을 주무르는 치매환자의 미소처럼 그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향락을 가져다준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알아버린 그 불가능의 입구는 생-사-성-식의 불길한 화환과 불후의 먹이사슬로 둘러싸여 있고, 

그 속에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못 나오는 심연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오직 인간과 가까이한 죄로 자손 대대로 천형 받은 짐승들처럼, 우리 또한 불가능이 애지중지 기르는 가축들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비록 천형을 피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천형 받은 줄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학이 소중한 것은 검은 보자기 속 어둠으로 들어가 스위치를 누르는 사진사처럼 한 순간, 한 순간 불가능을 기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홀로 문학이라는 암실에서 불가능과 마주하는 일은 고요한 시체 안치소에서 시트를 들치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합니다. 지금 제가 어두워야 불가능이 드러나고, 제가 사라져야 문학이 삽니다. 

비록 제가 문학적으로 살지 못해도 저는 문학을 믿습니다. 그처럼 제가 비록 불가능을 잊는다 해도, 불가능이 저를 기억할 것입니다. 


- 이성복,「문학, 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에서



이성복 씨가 7년 만에 새 시집을 내고 , 시집 뒤편에 실린 산문입니다. 여기서 "문학이 소중한 것은 검은 보자기속 어둠으로 들어가 스위치를 누루는 사진사처럼 불가능을 기록한다" 라고 쓰는데,

이것은 단순히 문학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첫문장에서 인용한 겐지의 이야기와 맞닿는 지점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한 지점에 올라가 높이 높이 인정받기를 누구나

바라지만, 사실 깊이 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가 알아줄 수 있는 차원의 것이라 하기에는 부르디외가 말하는 "일루지오"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그 "장"에 속한 사람만 보이는 환상에 가깝다는 거죠.

그 깊이만큼 가닿은 사람만이 눈치첼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 쉽다는 거죠. 


호랑이들, 의미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기호수집가", 다르게 말해서 앎을 명품 브랜드 처럼 기호만 취하는 사람들에게

가방 안에 무엇이 있느냐. 그 검은 보자기 속에 어떤 불가능이 있느냐 보다 그냥 가방 그 자체의 맵시에만 신경쓰고 그것으로부터 인정을 구하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기호 자체의 "교환가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차원의 맥락이 더 중요하므로

그것의 의미를 자세하게 묻거나 파고드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피곤하고 소모적인 인간으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지점은 그런 '치부'가 아니라, 아무런 대가와 고생 없이 그런 고달프게 파고드는 사람들의 성취를

오직 쉬운 설명으로 몬스터 죽이면 나오는 아이템처럼 취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고생과 어둠과 불가능 과 싸운 상처도 없이 오직 성취한 자들의 빛나는 승리에만 허덕인다면 , 김영하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냥 그들에게 평생을 빚지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정말 타인들의 인정과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한 취향이나 생각이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질문의 답과 자기 자신만의 의미를 구하고자 한다면

우리에게는 어둠이 필요하고 쑥과 마늘을 먹어야 합니다. 그 의미구함이 결국 불가능일지라도

그 것에 매달리는 자들의 용기와 싸움이 , 우리가 진짜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 친구가 있으면 좋겠지요
    • 우열을 가리는 담론은 무엇을 이야기하던 불유쾌해요.
      깊이가 자존을 실현해준다면 굳이 기호로 소비하는 사람들을 걸고 넘어질 필요가 없을텐데요.
      인정 받고 싶다면 동시에 인정 줘야죠.
      • 저는 이미 댓글이 지적하는 부분에 관해 적었습니다.
    • 어둠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기엔 현실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는 변명을 적어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어둠 속에서 지내는 거라면 자신 있는데...
    • 저 개인적으로 뭔가 가슴을 치는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마루야마 겐지 굉장히 좋아합니다.
      더불어 후루이 요시키치라는 작가도 그만큼 좋다고 생각하는데 제발 번역본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인간만이 인간과 호랑이를 구분할 수 있나요?
      •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 글이너무 어렵지만 깊이를 알수있는건 그 깊이에 다가가본사람뿐이란말이 인상깊네요
    • 그래서인지 분명 문학 속엔 파멸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 이성복의 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요즘 제 마음과 같네요.
      저도 잘 읽었어요.
    • 좋은 글이네요. 스스로 반성해봅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7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1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8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8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7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3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