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바벨-17, 바벨 2세 기타 등등
1995년 출간된, 역사적인 그리폰시리즈 1권 '내 이름은 콘라드'
젤라즈니도 젤라즈니였지만 무엇보다 가슴 뛰었던 것은,
책날개에 수록된 출시 예정작 리스트!!
지금 봐도 쟁쟁한 책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바벨-17'과 '중력의 임무'는 제목이 멋있어서 그랬는지, 자세한 내용도 모르면서 오매불망 기다렸지요.
'중력의 임무'는 시리즈 8권으로 실제 출간되었지만 '바벨-17'은 감감 무소식이다가...
시리즈 10권 '인간을 넘어서'를 기점으로
출시 예정작 목록이 삭제됨;;
그후 얼치기 SF팬 신분으로 장르문학 주변을 서성이면서 기다리기를 십 수 년.
그간 '바벨-17'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몇 번 접했던 터라
폴라북스에서 김상훈씨가 새로 런칭하신 '미래의 문학' 출시 리스트에 '바벨-17'이 있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표지도 아름답습니다...(폴라북스 책들이 대체적으로 만듦새가 좋아요-)
오래 기다린만큼 내용에 대한 기대가 잔뜩 부풀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억누르는가가 즐거운 감상의 관건일 듯 ㅎ
그리고,
제목이 비슷한;;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바벨 2세' 8권 세트는 현재 50% 할인 행사 중!!! (52,000원 26,000원)
말 나온 김에,
아서왕 전설의 대표작, 장 마르칼의 '아발론 연대기' 8권 세트도 반값 할인 중 (88,000원 44,000원)
이 책은 반값은 아니고 따끈한 신간입니다.
표지만 보고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만화판 14권이 벌써 나왔나, 깜짝 놀랐는데
웬걸 무려 '공식 가이드북'! ㅋㅋ
어떤 내용이 실려있을지 무지 궁금합니다그려.
『호텔 타셀의 돼지들』로 인상적인 데뷔를 하신 오은 시인의 두번째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가 나왔습니다.
제가 받은 책은 본문과 표지가 거꾸로 제본되어서, 교환해야 하나 기념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나 고민중;;
부조리
ㅡ 명제에 담긴 취향
오은
명색이 삼월의 햇살은,
따사로워야 한다
벚꽃은 익살맞게 한껏 흐드러져야 한다
새싹들은 느티나무의 꿈을 안고 태어나야 하고
바람은 살랑거리며 코끝을 간질여야 한다
그래야 고객들이 만족한다
자고로 벚꽃은,
소리소문 없이 우리 곁을 떠나야 한다
절정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 고객들이 아쉬워한다
자신들의 게으름과 인생무상을 같은 선상에 두고
비로소 미움에 승부를 걸 수 있게 된다
미워 언제 졌지?
언제 미워졌지?
단어의 선택과 배치는 더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야만 고객들이 만족한다
인생의 덧없음을 몸으로,
인생은 덧만 없는 게 아니라
멋이나 벗 같은 것도 없다는 사실을
맘으로, 깨우쳐야 한다 삼월에는
절절히 황사가 날리고 시시로 산성비가 쏟아지므로,
꽃구경 후에 하는 식사는
응당 근사해야 한다
매운탕은 칼칼해야 한다
밥은 고슬고슬해야 한다
다음의 두 문장은 몇 번이고 반복되어도 좋다
고객들의 입맛은 까다로워야 한다
고객들은 입맛이 까다로워야 한다
어떤 명제는 계절이 바뀌면 효력을 잃는다
그리고 어떤 계절에는 이 명제가 거짓이어야 한다
따사롭다는 말은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
익살은 필요하지 않을 때조차 부리려 애써야 한다
영원이나 죽음처럼
언어의 밀도를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
내가 들어갈 여백을 최대한 넓혀놔야 한다
내가 들어갈 관은 내가 짜야 한다
다음 계절에 명제는 더 까다로워져야 한다
고객들의 입맛처럼, 한창 쇼핑을 하던 중
아득한 이의 부고를 들은 직후의 마음가짐처럼,
어떤 감정은 더 집요해져야 한다
그리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일제히 메뉴판을 노려보는 고객들의 눈빛
사월은 언제나 되거나 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