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날이 좋군요.
창 밖에선 햇살이 마구 부서지고 있네요.
아스팔트 위에서도, 자동자 지붕위에서도, 그리고 어쩌다 지나가는 길 건너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위에서도 마구 마구 부서지고 있습니다. 소리없이요.
길에서는 아까부터 서너명의 남자들이 누구는 체육복을 걸치고 누구는 잠바를 걸치고 누구는 담배를 물고 볕을 쬐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즐거워 보입니다.
그리고 어떤 여인이 지나갑니다.
굽 높은 뾰족 구두에 길고 검은 생머리를 날리며 꼭 끼는 내복같은 바지를 입고 젖가락 같은 두다리로 꽂꽂히 모델처럼 걸으며 남자들의 곁을 지나갑니다.
담배를 피던 남자의 머리가 여자를 따라 돌아갑니다.
잠바를 걸친 남자의 머리도 여자의 뒤를 따라 돌아갑니다.
체육복을 입은 남자의 머리도 여자의 뒤를 쫒아 돌아갑니다.
한참을 멍하니 쳐다봅니다.
여자를 쳐다보면서 고개가 자동으로 돌아가는 남자들을 바라보면서 미소짓는 사람을 쳐다보는 사람도 있을 법한 날입니다.
며칠전 라디오에서 들은 낙화라는 곡이 좋아서 알아보니 공후라는 악기로 연주한 곡이랍니다.
공후를 사려고 들어갔더니 너무 비싸서 접고 낙화를 백번은 넘게 듣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마꼰도 마을에 꽃이 진다."
백년 동안의 고독.
아르카디오가 아우렐리아노를 낳고 아우렐리아노는 아르카디오를 낳고 또 아르카디오는 아우렐리아노를 낳는 이 고독하고 왁자지껄하고 걸쭉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르카디오가 말년을 보낸 슬쓸하고 커다란 밤나무 아래에서
읽다가 한 잠 자고픈 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