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아무르를 보다

하네케의 작품을 보면서 얻게 되는 큰 재미 중 하나는 그가 사운드를 연출하는 방식에서 옵니다.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에서 이자벨 위페르(에리카 역)가 섹스샵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협주곡이 신음소리로 전환되는 장면은,


하네케가 사운드를 단순히 이미지나 스토리를 보조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를 독립된 영화 언어로서 다루고 있다는 걸 보여 줍니다.



아무르에서도 하네케의 이런 능력은 그 빛을 발합니다.


안느(부인)가 발병하는 것을 보여 주는 아침 식사 신을 돌이켜 보면,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시작되고 그치는 전환을 통해 하네케가 상황을 연출해내는 솜씨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하네케의 카메라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관객은 안느가 병원에 가는 장면이나 수술실로 들어가는 장면을 볼 수 없습니다.


대신 하네케는 안느가 발병하는 아침 식사 신으로 돌아가, 빈 의자들과 남은 아침 식사로 어질러진 식탁 위를 보여줄 뿐입니다.


<아무르>의 촬영기법은 베리만의 <화니와 알렉산더>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두 영화에서 카메라는 오랜 시간 동안 집 안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 안 곳곳의 인테리어들을 마치 정물화처럼 비추면서 풍성한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하네케는 베리만의 방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테리어를 정물화로 제시하는 것 뿐만 아니라 벽에 걸린 풍경화들을 풀샷으로 잡기까지 하는데,


이 유화들의 느낌은 고독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안느의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관객들에게 잠시 간의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하네케는 좋은 영화란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해석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두 번 집안으로 날아든 비둘기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겁니다.


영화 후반부서 조르주(남편)는 적고 있습니다. 처음 비둘기가 들어왔을 때는 창 밖으로 나갈 때까지 기다렸지만, 


두번째 비둘기가 들어왔을 때는 잡아서 창 밖으로 날려 보냈다고, 그런데 생각보다 비둘기가 참 쉽게 잡히더라고.


이것은 안느가 죽음을 맞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면서,


영화 전반부에 안느가 조르주에 대해 "당신은 착하지만 고약하기도 해" 라고 평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네케의 <퍼니게임> 시사회에 참석한 빔 벤더스는 그 악랄한 전개를 참지 못하고 결국 시사회 중간에 극장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여기 <아무르>에서는  안느의 죽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아무르>는 관객들에게 안느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극장 밖, 죽음 밖으로 뛰쳐나갈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 듀게의 모두까기 인형이 되실 수 있었는데...
    • 리뷰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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