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소프틀리 봤어요 (스포일러)
멀티플렉스에서 아트하우스 영화를 상영하면 당연히 가서 봐줘야지.. 하는 마음에 아침 일찍 터덜터덜 집 앞 메가박스를 다녀 왔어요.
킬링 소프틀리가 나름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뭐 엄청난 시네필은 아니에요. 그냥 금요일에 아무것도 안하는... 잉여인데
앤드류 도미닉의 전작은 하나도 본 게 없고,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이 괜찮은 평을 받았다, 하는 정도만 알고 갔지요.
그 마저도 걸음이 너무 느린 바람에 오프닝 시퀀스는 다 놓쳤음. 에구구구..
영화 속 tv에선 오바마가 경제 위기에 대해 연설을 하는데 그게 엄청 자주 나옵니다. 크레딧에 대통령 이름을 올려야 할 정도임.
그리고 미국의 미래와 경제 위기의 극복에 대해 뭔가 거창하고 희망찬 연설을 하는 오바마의 음성을 뒤로하고 건달들은 돈을 훔치고 마피아들은 자기들의 일을 하죠.
무슨 홍보자료에선 마피아들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책임을 전가하고 어쩌구 저쩌구 이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이해관계랑 비슷하다고 하던데
사실 마피아들이 저지르는 비윤리적인 범죄들은 수백년간 그들이 습관처럼 해온 거 아닌가? 현대의 모럴 헤저드에 비유하긴 좀 다른 거 같...
그치만 평론가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생각해야죠
원작은 그 두 가지의 다른 필드의 이야기를 미국의 모럴 헤저드라는 주제로 잘 엮어놨을 것 같은데... 안 읽어봐서 할 말이 없어요.
'범죄 스릴러' 장르 영화로서는 어떤가? 브래드 피트가 맡은 "똥폼" 재키 외의 등장인물 모두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욕을 내뱉고 범죄를 저지르고 폭력 앞에 쓸려가요.
이런 류의 하드보일드 영화들이 다들 그렇듯 자기가 처한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재키만 '냉혹한 시대의 유일한 프로페셔널' 타이프의 킬러임. (바로 이 망할 세상을 움직이는 논리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지st 의 차가운 도시 남자)
그런데 또 이런 건달들이 엄청 말은 많아요. 비속어 섞어 가면서 카메라 앞에 대고 수다를 떨고, 사실 얘네들 대화의 질은 좀 왔다갔다 해요. 재밌는 것도 있고 그냥 불쾌하기만 하는 것도 있고.
이런 구질구질한 캐릭터 속에서 배우들은 참 자기 일을 잘 하죠. 리처드 젠킨스, 제임스 갠돌피니, 레이 리오타 다 좋고요. 저는 러셀 역의 벤 멘델존이 특히 좋았어요.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의 유일한 무비스타니까 저런 차도남 역할이 썩 잘 어울리지만, 저는 피트가 번 애프터 리딩에서 맡은 멍청한 백인 트레이너 역할이 더 재밌었어요...
게다가 피트는 여기서 원작자나 감독이나 아마 말하고 싶었던 주제를 축약하는 대사를, 그러니까 시나리오를 작업하면서 이건 이 작품의 펀치라인이야! 라고 생각했을 그 대사를 입밖으로 내서 영화를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America is not a country it's a business" 근데 별로 효과는 크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영화속 캐릭터들이 가하거나 당하는 폭력이 너무 생생하고 끔찍하게, 그런데 쓸데없이 스타일리쉬하게 묘사되어서 짜증났어요. 말 그대로 불쾌했습니다.
초기 파이트 클럽이나 세븐에서 볼 수 있었던 데이빗 핀쳐식 기교과시형 폭력 묘사에요. 갱이 카메라 앞에 주먹을 날리고 굵은 피가 렌즈에 퍽하고 튀고 뭐 그런 스타일이요.
하드보일드 영화에서 어느 정도의 잔인함은 그 장르를 구성하는 필수요소 아니겠습니까? 저도 이해합니다. 잔인한 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싫었던 건 이런 식의 , 어느 정도 캐릭터들을 떨어져서 관찰하는 건조한 영화가, 그것도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의 방향 잃은 미국에 대해 뭔가 심각하게 말하려고 하는 영화가, 갑자기 피가 렌즈로 튀는 게 슬로우모션으로 계속 되는 스타일리시한 뮤직비디오 스타일로 전환되는 것에 놀랐던 거죠.
생각도 안하고 있던 폭력에 내가 그대로 노출된 기분이 들어서 싫었습니다. The Man Comes Around를 BGM으로 브래드 피트가 드라이브 할 때 알아 봤어야 하는데...

(브래드 피트의 첫등장!)
마무리는 어떻게 할까요.
1. 주인공들이 읊는 대사나 주제의식은 와닿지 않았다.
2. 폭력이나 헤로인을 다룬 감각적인 시퀀스가 있는데 영화와 잘 맞는 느낌은 아니다. 따로 떼고 보면 더 좋을듯.
3. 배우들 연기 질은 좋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