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수 있는 일과 있을 수 없는 일
1. 다른 글 하나를 쓰려고 쓰기 버튼을 눌렀더니 2년전쯤인가? 게시판에 올리려 쓰다만 글이 하나 나오는 군요. 지금 봐도 음.. 싶어서 요약정리해봤습니다.
부엌에서 쓰는 스텐레스양푼그릇에 물받아 베란다 화단에 물을 주던 신랑이
물먹은 화단에서 흙이 또르르 떨어지자 급한 맘에 걸레로 그걸 훔치고는 과일씻고 채소씻는 그 그릇에 단순히 물이 담겨져 있다는 이유로 걸레를 빨았지 뭡니까?
그 광경을 목격함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제입에선 악소리가 나왔고 급기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제정신이냐는 소리까지 면전에 해대고 말았습니다.
신랑은 근 20년을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렇게 알고지낸 저에게 그런 악다구니를 들은 건 처음이라나 뭐라나
급하면 그럴 수도 있지 아님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순순히 말하면 될 것을, 그만한 일에 그런 어이없는 얼굴로 제정신이냐고 탓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화를 냈고
저는 적반하장의 센 반응에 놀라 의외로 말문이 막혔더랬습니다.
평소 웬만한 일에 많이 져주고 그래그래 그럴수도 있지 뭐, 내가 허술해서 그래. 미안해~ 하던 신랑이었습니다.
하지만 내내 생각해도 그 일만은 자존심이 많이 다치고 수용이 안됐던지
아는 사람들한테 다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이게 그렇게 있을 수도 없는 일이냐고 한번 따져보자 그랬었지요.
그래서 이 게시판에 글 한번 올릴 요량으로 뭔가를 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일이네요.
게시판에 글을 쓰다말고. 열린 공간에 개인적인 일로 그럴 필요가 뭐 있나 싶어 시댁으로 친정으로 전화를 돌렸더니
너가 좀 참아주라고, 갸가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거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다들 그러기만 하셔서 괜한 섭섭함에 한참을 슬럼프에 빠져있기도 했었죠.
음식담는 그릇에 걸레 넣지 말라는걸 굳이 가르쳐야 하는 일이냐고 했더니
신랑이 그러더군요. 급해서 그랬고 다음부턴 안그러도록 애쓰면 되고, 저지른 저건 이제 걸레그릇으로 쓰면 되지 않냐고
늘 간단하고 편하게 사는 신랑과 늘 복잡하고 챙겨가며 사는 저 사이의 문제였습니다.
밖에서 자기 일한다고 집안일은 늘 언제나 너무 나몰라라 하던 신랑을 향한 원망과 서러움이 그렇게 터진 거였는 지도 모르죠.
그렇게 사건을 마무리하고 둘다 반응이 너무 심했다고 서로 사과하고 했었지만
다시 지난 글을 읽어보고 이렇게 정리하며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어요. 급하다고 그럴 수 있다는 게..
정말로 제가 너무 많은 기준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일과 있을 수 없는 일을 구분지으며 사는 지에 대해서두요.
휴우.. 어쨌든 감당할 수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죠.
2. 하려던 얘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다르게 있어요.
생각해 보니 이것도 제기준에 있을 수 있는 일과 있을 수 없는 일로 굳이 구분짓자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영 다른 얘기도 아니네요.
딸아이가 올해 중학생이 되었어요. 나름 잘 크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몸도 마음도 건강하답니다.
제 아이 친구중에 좀 독특하게 생긴 아이가 있어요. 제가 보기에 못생긴 얼굴은 아닌데 얼굴이 좀 입체적으로 생겼다고 해야 하나
작지 않은 눈에 쌍가풀이 진하게 있고 코도 오똑하고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심한 곱슬머리에 몸에 비해 얼굴크기가 확연히 작은, 얼핏보면 혼혈인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누가봐도 평범한 얼굴은 아니예요.
근데 이 아이 A가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딸이 알게 되었다고 저에게 말을 하더군요. 이것도 학교폭력같다고 하면서요.
A는 3학년때인가 한번 딸과 한반이었고 같은 아파트에 7년정도 살다보니 반과 상관없이 딸아이랑 왔다갔다 만나면 반가워하는 그런 사이였는데 이번 중학교에선 옆옆반이래요.
한번은 딸아이가 A반에 선생님 심부름 갈 일이 있었는데 마침 A를 만나 복도에서 인사를 했대요.
근데 그때 마침 지나가는 아이들이 '아 내눈, 내눈. 나 쟤봐서 완전 재수없어' '그래 재수없어' 그러고 가더라는 거예요.
딸아이는 놀라서 멍~하니 얼음되었다고 하고 A는 그 애들 뒷통수에다 대고 욕을 해대고.. 그중에 하나는 '골룸이다~!' 그러고 가더라고..
저도 그 얘길 듣고 놀라서 A가 괜찮더냐고 물었더니 욕몇마디하고는 자기반으로 쑥 들어가서 더는 알 수가 없대요. 톡으로 괜찮냐고 물어봐도 괜찮다 그러고 말고..
그 후에 딸아이가 친구들 몇몇에게 슬쩍슬쩍 A얘기를 물어봤더니
1학년 학생들 거의가 A에게 '재수없다' '골룸같다' 그런 얘길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고 해요.
사실은 6학년때부터 그런 얘기를 들으며 은근히 왕따를 당했다고도 하구요. 독특한 생김새와 욕을 잘하는 게 이윤데, 생김새탓이 크다고 하더래요.
지금은 다른 초등학교에서 진학한 애들도 아무렇지 않게 유행처럼 그렇게 따라 놀린다고 해요.
모르면 몰라도 알게 되니 딸아이가 A를 많이 걱정합니다. 저도 이 사태가 정말 걱정이 되구요.
한창 사춘기로 예민한 여자아인데 대응할 수 있는게 욕밖에 없다는게 안타깝구요.
더 걱정은 A를 염려하는 아이들은 또다른 해꼬지를 당할까 쉬쉬하고 어른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A의 엄마에게 오랜만에 연락해서 혹시 학교상담 갔다왔냐고 하니까 선생님 잘 만나고 왔다고 A가 학교생활 너무 잘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럽니다.
A가 혹시 다른 얘기 안하더냐고 물어보니 학교다니는 게 즐겁다고 빨리 가고 싶다고 했대요.
그 소릴 들으니 저는 더 걱정이 되더군요.
생각한 것보다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A엄마가 알아야 할 것 같아 저녁에 술한잔 하며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소소히 정보를 수집한 바로는 6학년때도 힘들었을텐데 A엄마는 그것도 전혀 모르는 것 같아서, 제가 A의 지금의 학교생활에 대해 A친구들에게 좀 물어보라고 얘기해 줬습니다.
딸아이가 어떤 얘기를 들었는데 몇몇 아이들도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고.. 주변의 정보를 좀 수집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A엄마는 예상치 못한 일에 많이 놀랐지만 우선 자긴 모른척할테니 저에게 또 제 딸아이에게 A와 얘기를 나눠달라고 부탁하더군요. A가 무슨 생각하는 지 궁금하다구요.
사실은 학교에 상주해있는 Wee센터에 도움을 청하라고 하고 싶었는데
우선은 제가 A와 얘기를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어 주말에 A를 집에 데려오라고 딸아이에게 말해뒀습니다.
알고는 모른척 할 수 없는 일이니 순간순간 할수 있는 최선이라고 하긴 하는데 제가 잘하는 건지 판단이 안됩니다.
사실은 저도 엄마니, 제 딸아이가 이 일로 생각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고 많이 힘들어 할까봐 그것도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의도치않게 너무 깊게 개입이 될까봐 걱정스럽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인 것 같아서 딸아이에게도 피하지는 말자고 일러두었는데.. 생각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 제가 A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이 뭐가 있을까요?
엄마에게 솔직해지고 많은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걸 받아들여 줄지
Wee센터 상담선생님께 도움을 청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게 학교생활에 나쁘게 작용하는 건 아닐지
아님 철없는 아이들 이야기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라고 얘기해줘야 할지
그렇습니다. 생각이 많아요. A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철없이 놀리는 아이들 모두를 바꾸는 거 보다 어쩌면 힘든 아이에게 용기를 주는게 먼저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힘들어하고 자살하고 하는게 참.. 남일 같지가 않습니다.
많은 상황들을 알고 계신 듀게님들이 뭔가 저에게 좋은 이야길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올립니다.
저도 직장맘이라 새벽에 쓴 글을 지금 짬이 나서 올립니다.
고견 기다립니다.
봄 시작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