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과 죄책감 (우울한 글입니다.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 미리 알려드립니다.)

http://djuna.cine21.com/xe/?mid=board&document_srl=5737334

글을 지우지 않겠다고 했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리플을 읽고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마음이 서늘했던, 그래서 많이 아팠던 글은
왜 본인이 남에게 갖는 감정까지 깎아내리냐면서 안타까워하신 비네트 님의 리플 글과
마지막, "저는 종종 라곱순 님의 욕망은 왜 이리 억눌리고 거세되었을까 궁금합니다."라는 철철마왕님의 리플이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런 순결에 대한 생각들이,
다른 분들이 리플에서 말한 것처럼
또다른 순결에 대한 강박관념이자 죄의식일까.
그것도 물리적 순결보다 더 심한 기준을 적용해서.
혹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해서
평소처럼 자기비하의 늪에 빠져버린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예전 제가 혼자서 좋아하던 내 옆에 실재하던 짝사랑 대상들을 모두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금 알 것 같더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혼자서만 좋아하던 모든 짝사랑 대상인 이성들... 심지어는 초등학교때 같은 반 남자 부반장 아이까지.
제가 가지고 있던 감정은, 그 근본감은

놀랍게도, 죄책감 이었습니다.

(감히) (이렇게 많이 부족하고 뚱뚱하고 못생긴) 내가 (저렇게 눈부실 정도로 잘나고 멋진) 저 아이를/동기 친구를/선배를 좋아해도 좋을까. 라고 하는. 

작년 짝사랑 할 때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짝사랑 대상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심하게 열병을 앓았던지라.
미처 그 감정을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저의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그 분과 저에게 공통점도 많이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둘 다 (사회적인 기준에서 바라보는 요구사항을 적용하자면,) 많이 부족한 점들이 많았습니다. 
놀랍게도 대학때 전공도 같은 계열이었고요. 하지만 그분은 저보다 훨씬 더 실력이 뛰어나셨지만요...

하지만 역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맞았습니다. 
내가 내 곁에 실제하는 이성을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가 죄책감이었어요. 그 분 역시도. 
작년에 끊임없이 이곳에서 짝사랑 넋두리 할 때 자기비하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감히 좋아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도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하게 십대 시절부터 사람들에게 뚱뚱한 아줌마라고 불리우는 내 자신이, 
여성스러운 매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자신을 아름답고 연약하고 누군가에게서 보호받고 이성에게서 사랑받아야 할 보통의 여성이 아닌, 제 3의 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자체를 난처해 하고 많이 곤란해 하고 싫어하다 못해, 창피하다 생각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저런 저의 순결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강박관념의 원인은... 
역시 다른 분들이 지적해 주신 것이 맞았습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는데
그것을 넘어 심지어 그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끼는 것은... 
감히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괴로웠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을 비참하게 했습니다. 

내 마음속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빛이던 열병같던 짝사랑이, 동시에 나를 너무도 처참하게 만들어버린거지요.



이 마음가짐을 고치지 않고선, 전 아마도 영원히,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서 동시에 사랑을 받는 기적은

경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곧, 그런 그릇된 생각을 고치고 싶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말입니다. 언젠가는.

그래서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

지난번에 조언을 구하는 글을 올렸던 제가 좋아하던 분과의 식사 문제는,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저야 워낙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으니, 그 분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먹자고 했습니다. 순대국이나 돼지국밥 같은 음식 좋아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지만, 
제가 결정한 만큼 실망도, 후회도, 슬픔도, 비참함도, 모두 감당하겠습니다.




제가 겪고 있는 이 지옥이, 더 이상 저의 뚱뚱하고 못생기고 여성스럽지 못한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는것은 
이미 예전에 깨달았습니다. 
알아도 쉽사리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를 대하는 제 마음속은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황폐합니다.

저는 정말로, 지금의 내 마음속 지옥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다시한번 그때 정성어린 리플 달아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라곱순 올립니다.
    • 많은 분들이 이미 십대때, 혹은 이십대 초반에 극복하고
      좋아하는 이성간의 아름다운 연애와 사랑으로 보답받아야 할, 저런 못난 자아 관련 문제를,
      저는 지금까지도 미처 극복을 못해서... 이렇게 평생을 괴롭게 살았습니다.
    • 그분이 라곱순님에게 드시고 싶은 음식 종류를 물어보셨던 것 같은데 왜 그분에게 결정을 미루셨나요? 물론 상대가 싫어하는 음식은 피해야하지만.. 순댓국이나 돼지국밥은 아닌 것 같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을 딱 집어 표현을 못 하겠는데..^^; 어쨌든 라곱순님이 원하셔서 나가는 자리이 이왕이면 좀 조용하고 둘이서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식당으로 가시는 건 어떠세요.
      • 그냥 저도 그런 음식 좋아해서요...^^;;
        게다가 그 분은 그냥 저를, 예전에 같이 일했던 편한 친구로서 생각하시는 거니까요. 이성이 아니라.

        그리고 이 역시 아직도 제 부족한 자아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성간의 데이트 코스로서의 레스토랑이나 예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식당들은, 저를 많이 주눅들게 합니다.
        뭐랄까. 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고 느껴지거든요.
        • 저도 순댓국 좋아해요. 저도 이런저런 장소나 식당은 불편해하고요. :) 그게 이상한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거죠. 제 경우에는 사람많은 곳 자체가 불편합니다. :)

          굳이 정규 데이트코스(?)를 가셔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그분과 더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셨으면 해서요. 순댓국집은 술을 먹지 않는 한 그릇 후딱 먹으면 끝이잖아요.
          • 음, 예전에 밥 사드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제가 식사 후 차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 좀 더 하자고 해도
            약속이 있다고 다음에 마시자고 정중히 거절하시더라고요. 모든걸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종종 편하게 만나서, 이렇게 동네에서 식사 같이 할 수 있는 편한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 마음 이기기 응원하고 있어요.
    • 전혀 우울한 글이 아니네요.

      희망적인 글이라서 저는 기분 좋습니다.
    • 저도 그랬었어요... 내가 좋아한다고 해봤자 그애는 별로 안좋아하겠지..그러니까 절대 말 안해야지.. 뭐 이런 마음. 그런데 지금 제 주변 사람들이 이 얘기들으면 기절할거예요. '니가?'라고.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나의 귀한 애정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이들에게만 나누어주마' 이런 마음이랄까요ㅋㅋ
    • 저도 아직까지는 완전히 극복 못했지만, 가냘프고 보호본능 일으키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서 아무도 절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열등감에 빠져 좋았던 시절을 다 허비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열폭할 일도 없었고, 또 사람마다 취향은 제각각이라 그런 저를 좋아하는 사람도 간간이 있었는데 제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는 것에만 치중했었죠.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는 극복해서 스무살때도 안 입던 짧은 옷들을 입기도 하고(체형은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ㅋㅋ) 화장도 하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리고 열등감에 빠져 있으면 더 아무도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자신감이라는 게 남녀 모두 매력에 중요한 요소로 기여합니다.
      어릴 적에 너무 자학의 늪에 빠져 있던 사람을 밀어낸 적이 있었는데, 몇 년 후 극복하고 나름대로의 매력을 어필하며 자신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다시금 마음이 쏠린 적이 있었어요.
    • 다른 분들도 보시라고 올려드립니다. 예전에 비네트 님이 적어주셨던 글입니다.

      http://djuna.cine21.com/xe/4157369

      제목 :못생긴 여자의 연애 2012-06-08 이름 :비네트
    • 상대방이 모르는데 죄책감을 느끼실 필요가 있나요
    • 이미 다른 분들이 많이 말씀해 주셨고, 스스로도 알고 계시시라고 생각합니다만 안타까운 마음에 한 마디 얹습니다.

      라곱순님이 어떤 외모이신지 저는 실제로 뵌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요,

      못생긴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들도 생각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여자를 좋아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리고 스스로 예쁘다고 자뻑을 하기 시작하면 진짜로 예뻐집니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남도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지 않습니다.
    • 읽는 사람에게 죄송하고 뭐고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면 그만이고, 여기서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은 허공에 던지는 돌인줄 뻔히 알면서 아주 작은 영향이라도 있길 바라며 하다 못해 짜증이라도 내는 거죠. 한 번 식사고 백 번 식사고 식사 자체는 별 거 아닙니다. 기분 좋은 파트너와 한 끼 식사, 연애보다 충만한 시간일 수도 있죠.

      그런데 라곱순님은 지금 '나는 어차피 친구로 만족해야 하는 애'라는 기억을 또 하나 자기 손으로 쌓고 계세요. 젊음 한 번 가면 안 와요. 구구절절 쓰신 과거 아픈 기억들, 지금 또 본인이 역사를 되풀이하잖아요. 친구운운하며 일말의 기대감으로 젊은 시간을 허비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쉬운 게임으로 일단 악순환을 끊는 게 답 같아서 저는 이 관계에 대해 응원이 안 나옵니다.
    • 다 필요없고, 그냥 유럽 한번 다녀 오십시다.
    • 몇 가지 기적같은 계기가 없다면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하지만 기적같은 계기가 있다면, 정말 많이 바뀌어요. 저도 외모적 열등감이 심해서 더 예쁘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시절을 많이 허비하고 지금에 와서야 으아아 남들이 보던말던 진작 짧은 치마 입을걸! 너무 좋아아! 를 외치고 있습니다ㅠㅠ..

      그리고 그 죄책감도 잘 알겠네요. 전 내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이 남에게 알려지면 너무나 수치스러웠어요. 나같은 애가 누굴 좋아한다니 모두가 비웃을거야..하고요ㅠ

      그래서 우선은 없는 자신감을 위장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이상한 자존심같이 되기도 하겠지만....예를 들면, 그 분과 친구가 되자고 마음먹어도 1. 나같은 사람은 친구라도 되면... 과 2. 에라 안될 거 친구나 해야지 이젠 목 안맨다, 친군데! 라고 생각하는 두 가지가 있는 것처럼요. 그리고 좀 더 와일드하게 나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쁜남자가 인기 많은 것처럼 나쁜 여자도 인기 많습니다. 라곱순님은 너무 '착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으신 듯해서ㅠ..뭐 된장녀같은 얘기가 아니라, 잘 웃고 명랑하고 조금 제멋대로고, 말도 그냥 입에서 나오는대로 하고, 그리고 이것저것 잘 시키고, 아주 명랑한 '친구'로 사람들과 지내는 거죠. 그러면 어쩌다 기적처럼 한 명이 걸립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사람을 많이 바꿔주는 힘이 있죠. 라곱순님! 맘가는대로, 하고싶은 말도 하시고, 마구마구 해보세요! 밥먹을 때도 전 이런거 먹고싶어요. ㅇㅇ씨가 한 번 찾아봐주세요! 라고 막 시키고요..그리고 예쁘장한 가게들이 부담스러우시면 고깃집처럼 좀 시간들여 먹을 수 있는 곳은 어떤가요? 국밥집은 너무 후루룩 밥먹고 쎄굿바..라서ㅠㅠㅋ 아니면 좀 깔끔한 한정식집 (만오천원쯤하는..)



      전 일단 국밥은 고춧가루나 순대같이 이에 잘 끼는 음식 먹으면 사람이랑 대화하기 너무 불편하드라구요ㅠㅠ
    • 암튼 라곱순님과 비슷한 시간을 지내왔었고, 늘 응원합니다!!!
    • 언제나처럼 정성어린 리플, 모두 감사드립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꼭 나아지겠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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