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커피에 왜 자꾸 집착하는가, 트렌치코트에 왜 집착하는가
트렌치코트를 수집 수준으로 가지고 있어요. 긴 외투가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얼마 전 더 근원적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를 찾았죠.
대학원생이라고 쓰고 반백수라고 읽는 생활을 하던 중에 영풍문고에서 트렌치코트 입은 어떤 여성을 봤지요.
우연히 제 앞에서 계산을 했고 수표와 신분증을 내미는 바람에 공무원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감색 트렌치코트를 꽉 여며 입고 있었어요. 굉장한 '안정'의 이미지로 트렌치코트가 박혀 버렸죠.
그 다음 해였나, 이월 쯤에 지하철에서 또 감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성을 마주칩니다. 시험이 코앞이던 때라 제 꼴이 말이 아니었는데 그 여성은 발 빠르게 봄옷을 바꿔 입고 노란색 머플러를 묶고 이른 출근을 하고 있더군요.
이 시험이 끝이 나긴 날까, 언제쯤 나는 저런 걸 제때 갖춰입고 다니게 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는 트렌치코트를 수집 중.
커피도 비슷한 기억이 있어요.
처음으로 어떤 시험을 치러 갈 때였는데 처음 가는 거라 시험장이 어떤지 잘 몰랐죠. 고등학교라서 커피자판기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어요. 커피 자판기에서 빼먹지 뭐~하고 갔더니 커피를 마실 수가 없는 겁니다.
커피.커피.커피. 계속 커피를 찾으러 다녔어요. 시험 볼 때도 아 나 커피 안 마셨는데. 그 생각을 하다가 망쳤죠.
중요한 결전을 치르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만들어 두기 쉽다고 하는데 저는 그게 '커피가 없어서' 였나봐요.
그 뒤로 제 별명은 한동안 차탈래 부인이 되었습니다. 이때의 결핍이 너무 강하게 박혀서 한동안 각종 차, 특히 커피를 비치해 두고 다방을 차렸다는 이야긔. 이쯤부터 진정한 중독의 길로 빠진 것 같아요. 시험 때 커피를 마시고 나가지 않은 이유도 아마 그때까진 별로 개의치 않고 살았기 때문일 거예요.
완전히 딴 얘긴데, 그때 왜 저는 시험장 문앞에서 노점상들이 파는 맥심믹스를 사지 않았을까요? 또 딴 소리. 이 양반들은 참 귀신 같이 알고 어느 시험장에나 진을 치고 계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