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그냥 얘기가 하고 싶었던거에요

개인적인 잡사가 들어있는 글입니다.

불편하신 분은 스킵 부탁해요.




1.

요 며칠 굉장히 우울했습니다.

왜인지 몰라요.

그냥 자고 일어나니 만사가 우울했어요. 

세상 모든 것, 모든 사람이 다 내 적처럼 보이는 느낌.

모두가 날 미워하는 느낌.

하다못해 건물의 벽까지 '죽어버려!'하고 소리지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런 느낌이 언제 드는지 전 알고 있습니다.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 일각을 보냈습니다. 


어제는 새로 온 직원분과 얘기를 했어요.

이 분은 너무나 발랄해서, 나이 마흔이 다 되어가신다는데 외견도 성품도 그렇게는 안 보입니다.

이분이 변죽을 너무 잘 울려줘서 중간에 이것저것 잡담을 했어요.

신기하게도 우울한 느낌이 가시더군요.

전 어쩌면, 그냥 얘기를 하고 싶었나봐요.

무슨 얘기이든 그냥 얘기를 하면서, 누군가 내 말에 장단을 맞춰주고, 고개를 끄덕여주길 바랐던가봅니다.


어쩌면 그 전날 새벽에 깨어서 먹고 잔 렉사프로 덕분일지도 모르겠지만.



2.

쌀이 다 떨어졌습니다.

잔뜩 쌓아뒀던 레토르트 카레도 다 얼마 안 남았고요.

화장실 휴지도 달랑 두 개 남았어요.


그런데, 늘 그렇지만 나갈 시간도 데려가줄 사람도 없지요.

그래서 누군가를 붙잡고 부탁을 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런데 갑작스럽지만 지금껏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어요.

지금까지는-한국에 있었을 때는- 누군가에게 그다지 부탁을 하지 않았어요.

누군가를 귀찮게 하거나 폐를 끼치거나, 빚을 지는 것보다는 그냥 포기하거나 혼자 하는 것이 백배는 편하지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조금 '이러저러한데 큰일이다' 하고 서두를 꺼내면 상대 쪽에서 '어 그래? 그럼 내가 도와줄까?' 하는 대꾸가 돌아오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일이 없어요.

내가 '이러저러해서 곤란한데 큰일이다' 하고 얘길 꺼내도 아무도 '그래? 그럼 내가 ~~해줄까?'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전 깨닫는 거죠.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남에게 의존해왔는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며 살아오는 것을 알게 모르게 당연시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또, 누군가에게 부탁한다는 행동을 하기 싫어서 다른 사람이 '자연스럽게' 호의를 비쳐오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런 비겁한 행동을 하면서, 한 번도 부끄럽다거나 반성하지 않았다는 걸.


우스운 일이지요.

지금껏 자신은 늘 혼자라고 생각했으면서, 사실은 누군가의 호의를 당연히 여기고, 한 번도 감사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던 자신을 이제와서 깨닫다니.

해주길 바라는 게 있으면 부탁하면 됐을 텐데. 

비겁하고 치졸하고,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자신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이러니 늘 혼자일 수밖에 없었네요.

세상 모든 것이 날 봐주지 않는다고, 삐지고 투정하던 어린애에서 한치도 자라지 않았네요.

대체 언제쯤이면 전 어른이 될는지...

자꾸 타인의 눈에서 실망만 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저라도 실망하겠죠. 

막막합니다. 

어른이 되는 법은 대체 어디 가서 배울 수 있을까요.

강연회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해도 할 수 없지, 하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 낯빛을 더 살피고 있는 한심한 자신이었습니다.



3.

잠을 아무리 자도 피곤해요.

매일매일 꿈을 꾸는데, 꿈 속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밖에 없어요. 

차를 운전하는데 브레이크가 안 듣는다든지,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나르는데 넘어져서 몽땅 엎는다든지...

고향 꿈, 집에 가는 꿈, 옛날 풍경이 보이는 꿈....

요즘은 너무 피곤해서 방에 돌아오면 씻지도 않고 엎어져 잡니다.

덕분에 방안은 난장판, 돼지우리나 다름없죠.

쓰레기는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설거지는 안 한지 일주일도 넘었고...

널어뒀던 빨래도 귀찮아서 가지러 가지도 않았어요. 

그러고보니 무사할지 모르겠네요. 누가 안 집어 갔으려나.

모든 게 귀찮아요.

오늘은 겨우 쉬는 날이지만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네요....


이대로 쓰러져서 영원히 안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숨쉬는데 콧속에선 피냄새가 나고.. 

숙면의 비결 같은 건 없을까요. 

전 왜 늘 자면서도 머릿속으론 생각이 안 멈추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대체로 쓸데없는 생각을.



    • 미안하지만 청소부터 하면 기분이 좀 달라질듯도 합니다.
      • 자랑은 아니지만 청소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입니다. 어릴 적부터 청소가 제일 싫었죠...-_ㅜ;;
    • 그래도 에아렌딜님 글 읽다보면,그럭저럭 잘 해나가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우울하고 생각이 많지만 어쨌던 자신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피곤한 거야 일이 그렇게 많으니 당연한 것 같습니다.저도 집이 엉망진창이에요-_- 빨래너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고 두번째로 싫은 게 걷는거에요;;;킁
      •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방은 엉망진창이었죠. 청소를 해도 금방 어질러버려요.
    • 군대에서 가장 부러운 친구가 누우면 곯아 떨어지는 친구였죠.

      때때론 생각없이 단순하게 살아가는게 더 편하겠다 싶을때도 있어요.
      • 저도 꽤 생각없이 사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눈만 감으면 잠들지만 그래도 편하지는 않네요.
    • 어른이라는 게 나이 먹는다고 해서 절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진짜 어른인 사람은 몇프로 안될걸요.ㅎㅎ 저도 자면서 온갖 생각을 다 하는지라 님의 마음이 조금 공감은 갑니다. 음. 저도 이야기가 하고 싶을 정도로 아주 우울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써야할지 모르겠는 거에요. 저는 한가지 사건이 터지면 집요하게 생각을 하는 편이라...
      • 그렇죠. 절대 나이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나이 먹어도 어른이 아니면 나이값 못한다고 욕 먹는 게 또 현실인지라...
        저도 생각이 잘 정리가 안 되어서 어디서부터 써야할지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아요.
    • 제가 백수라 시간이 많은 편인데 들러서 청소도 도와드리고 장도 대신 봐드리고 하면 좋겠다 싶네요. (그러나 청소에는 완전 잼병이라는 것이... ㅎㅎ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외에 계시지요? ^^;) 자도 자도 피곤은 안가시고, 잠들었다가 눈을 떠 보면 난장판인 방이 주는 피로가 어떤 건지 좀 알아요. 늘 도움을 받을 순 없지만, 그런 순간에 누군가 조금만 도와 주면 큰 도음이 되는데. 어디서 읽기론, 어느 영양소가 부족하면, 그게 들어 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진대요. 도움이 필요하니까 상대의 호의에 기대고, 혹시나 하고 기대하는 것이겠지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봄되느라 볕이 굉장히 좋네요. 해바라기 좀 하시고, 행복하세요. :-)
      • 말씀만으로도 고마워요. 오늘은 날이 따뜻하네요. 방안에 있으니 더울 정도에요. 한나님도 행복하시길..
    • 1,3번은 요새 저도 좀 그런데 또 날이 화창하고 점심으로 먹은 카레도 맛있어서-_- 기분 돌리고 그래요. 곧 봄이에요.
      • 뭐든 계기는 사소한 것이겠지요. 예전에 직장 동료분이 대접해주신 스트로베리 밀크티가 너무 맛있어서 기분이 확 좋아졌었던 기억이 나네요.
    • 전 에아렌딜님이 먼 그곳까지 가셔서 이렇게 생활하고 계신 것만으로도 참 용감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현재 상황이 그닥 좋진 않지만 그래도 우리 씩씩한 에아렌딜님은 잘 해내실 거라 믿습니다. 힘내요.
      어쨌든 한걸음 한걸음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잖아요. 좀 닭살스러울 지도 모르겠지만 토닥 토닥...
      그리고 청소나 설거지는 뭐.... 원래 땡길 때 하는 거 아니었어요? 하핫!
      사람이나 술, 청소 및 설거지는 묵힐 수록 좋다던가...
      • 좋게 평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땡길 때 설거지나 청소를 한다면 한 백년쯤 후에나 할지도... 먼산.
    • 2번 글이 참 좋네요.
      깨달음 후에 성장이 오는 법이죠. 잘 해내실거란 느낌이 듭니다.
      • 깨닫기만 하고 고치지 않으면 그것도 낭패인데요... 사실 어렴풋이 깨달은 적은 있었어요. 하지만 또 정신 못차리고 이러네요. 정말이지...
    • 방금 설거지를 겨우 끝냈어요. 그나마도 쉬엄쉬엄 느릿느릿.. 하루에 하나라도 해낸 게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 고마워요. 저의 소소하고 보잘것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셔서 고마워요. 정말이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요, 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고맙습니다.
    • 잠을 적게 자세 피곤한게 아니라 잠을 많이 자서 피곤한 겁니다. 저도 연휴때 그런 경험 많거든요...
      잠을 짧고 깊게 자야 합니다. 그럴려면?? 운동해야죠^^ 친구와 약속을 잡고 거기까지 뛰어가는거예요ㅎㅎ 아니면 요가비디오 다운받고 따라하기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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